오랫만의 산행이었다.

실로 오랜만의 산행이었음을, 온몸의 신경과 근육들이 재빠르게 알려왔다. 
오로지 인간의 편의와 문명의 이기를 위한 공간에 익숙했던 몸은 그와 전혀 상관없이 형성된 자연의 공간에서 방황하고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언젠가 봤던 것만 같은 산 위의 풍경들과 바다의 풍경들은 오랜 시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이가 변함없는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듯, 반가웠고 정겨웠다. 

 

먼 땅끝 마을까지의 투어를 함께 했던,  친구 소개로 만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큰 제스추어로 떠들썩하게 환대를 전해왔다.
건강하고 유쾌하여 매력적인 이들이었다.  그들 속에서 내 신체 나이는 잠시 십오년 쯤은 훌쩍 거슬러 올라간 듯도 하였다.

하나 모든 유쾌함과 흥겨움 속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이 내재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언제 사라지려나 싶은 근육의 통증, 갑작스런 맛난 음식들에 과부하 된 소화기관의 긴장, 어쩌다 내 렌즈에 잡힌 친구의 흔들리는 눈빛 같은 것들이 그 피로에 살짝 무게를 더하는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물감을 샀다

이번에 이삿짐을 싸고 정리를 하면서 다시는 뭔가를 방 안에 들여야 하는 도전이나 시작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그리 다짐했건만…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된 거였다는  핑계와 생일을 앞둔 적절한 타이밍과 어제의 꿀끌했던 상황을 결정적인 계기로 하여 새로운 지름 아이템이 도착했다. 이번엔 물감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엔 새 물감을 사야한다는 말을 못하고 굴러 다니던 튜브물감을 모아 팔레뜨에  짜서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건 아예 이렇게 팔레뜨에 끼워서 쓰게 만들어진 고체물감이란다. 

작다는 말을 듣긴 하였으나, 받아보니  진짜 조그많다. 물감 하나는 밀크 캬라멜보다도 작은 크기이고 참 이쁘게도 생겼다.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윈저앤뉴튼? 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어여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난 디자이너이므로. ㅎ

겉모습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색상도 참 이쁘다.  이걸로 무채색의 펜 크림들에 색을 입혀갈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레인다. 
물감을 써 본 게 중고등학교 시절일 테니 너무 아득한 일인데,  이걸 장만할 생각을 한 건 12색을 가지고도 엄청나게 많은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색연필이나 마카(이건 비싸기도 하더라)가 가지지 못한 미덕이다. 
마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풍부한 내면과 그 가능성처럼. 

이제 물감질을 시작해봐야겠다.  몇 해 전 스쳐갔던 더블린의 이 풍경부터. 
그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특별한 0.1프로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믿고! 

응암동을 떠나며

살고 있던 망원동이 뜨면서 너무 시끄러워져 훌쩍 이사를 감행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응암동에 와서 몇 해를 살았다.  이마트가 가까이 있어 편했고 적당한 (나름의) 맛집이 있었으며 불광천이 지척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바람 좋은 날엔 북한산 둘레길이나 서오릉 산책길도 좋았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기분이 심히 꿀꿀할 땐,  조금 떨어진 곳의 친구가 기꺼이 와 주어  벙구갈비나 스시냥의 단백질을 흡입하고 맥주를 마셨다. 맛있는 수제 맥주집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웠지만 브릭하우스의 ‘은평맥주’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마지막 천변의 까페에선 메뉴엔 크래프트 맥주라 써놓아 기대를 북돋우곤 IPA 캔맥주를 내주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천변이라 너그러이 봐줄 수 있었다. 

이사는, 일이 많다. 쓸 데 없이 품고 살아온 온갖 것들을 정리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가장 먼저 안 읽는 책들을 절반 이상 처분했다.  이사할 일을 생각하니 들어올 때에 비해 1/3 이하로 줄어든 책이 뿌듯하다.  부피도 부피지만 책은 정말 무겁다는 걸, 원래 나무였다는 걸 다시 상기한다.  이사해주시는 아저씨들에게 “힘드실까봐 책장 속의 책들을 다 정리했어요.” 라고 생색을 내야겠다. 빈 책장은 이사 들어오는 취준생을 위해 남겨놓을 것이다. 먼지 쌓인 상자 속에서 오래 된 손편지며 깜짝 놀랄 만큼 풋풋한 지인들의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그 중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들을 카톡으로 보내주니 반응이 즐겁다. 그래, 우리 모두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잡지 객원(사진)기자를 할 때 찍었던 송혜교의 고2 때 심히 풋풋한 사진도 나온다. 이러다 시간은 훌쩍 자정을 넘는다.

이사업체를 고르는 것도 일이다.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그 안에 채워 넣은 짐은 통상적인 정도를 넘으니 살림 규모가 애매해서 업체마다 견적 차이도 크다. 첫 번째 업체는 “우리는 경험 없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가지 않습니다.”라고 했고, 두 번째 업체는  “우리는 외국인을 보내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며, 세 번째 없체에선 “제가 직접 갑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세 번째 업체를 택했다. 

다음 정착할 곳은 신도림이다. 오래 전에 그 곳에 정착했던 J의 도움이 컸다. J의 말에 따르면 싱글라이프에 최적인 곳이란다. 과연 극장이며 마트, 공원, 도서관, 아트 센터, 구청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이 지척에 있다. J 뿐 아니라 H도 그곳에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조금 느슨한 네크워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늙어갈 때 느슨한 인간관계가 필요해요”

“혼자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간관계만큼이나 느슨한 인간관계가 절실해요. 느슨한 인간관계는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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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어. 

근래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아침이나 자기 전 가벼운 요가를 한다.  유튜브의 “요가소년”이나 “요가은”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준다. 
특히 자기 전에 까먹지 않고 해주면, 수면 진입이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자주 까먹는다.)

요가 마지막에는 “송장 자세”라고 불리는 걸 한다. 
편안히 누워서 몸 전체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이전의 요가 동작이 고단할 수록, 신체의 긴장이 클수록,  이 시간은 편안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수면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쾌감이다. 

실제 송장이 되는 일도, 죽음에 이르는 일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삶의 고단함과 긴장에 비례한 편안한 휴식이, 달콤한 안식이, 보상처럼 주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스텔라 아르투아~

필요한 게 있어 몇 년전 하드 디스크를 뒤적이다, 담아놓기만 했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시간이 훌훌 간다. 
밀린 일들이 많은데… 싶어 그만 닫으려는 순간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런던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간 조그만 펍.
피시앤칩스를 시켜놓고 맥주 한 모금 마시다 사진 한 장 박으려는데,
그 찰나에, 이것도 추억이라며 불쑥 나의 프레임 안으로, 나의 과거로 들어온 주인장 아저씨의 얼굴. 
그는 어떤 과거를 지닌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청량한 맥주 한 모금이 무척이나 아쉬운, 장염 후유증으로 맥주는 꿈도 꿀 수 없는,
미세먼지 가득한 건조한 저녁에.  

뉴스들.

매일 매일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집중해서 뭘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장자연씨 사건의 증언자로 나선 윤지오씨는 증언의 고귀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그녀가 견뎌왔던 시간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꽃 같을 앞날에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낸다.
 
승리와 정준영 두 사람의 뉴스는 못 보고 지나치기는 정도로 쏟아진다. 뉴스 영상에서보이는 그들의 앳된 얼굴은 순진한 악마같다.  웬만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많은 것들을 어린 나이에 쉽게  얻었던 대가일 듯도 싶다. 정준영을 용서했던 전 여차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지만(그녀가 용서를 안 했더라면 추가적인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김학의 일당의 “성폭력” 사건 등의 일방적인 피해자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연인이었던 그를 고발하는 것은, 그를 사랑한 나 자신과도 냉정하게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롤랑 바르트는 일찌기 “사진의 시대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 그 침입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적인 것의 공개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적인 것이 있는 그대로 공개적으로 소비된다.  ” 고 간파했다. 그러면서 “사적인 것은 (소유권에 대한 법률에 의해 통제되는) 재산일 뿐 아니라 또한 그 이상으로, 나의 이미지가 자유로운(자유롭게 소멸할 수 있는) 장소, 양도 불가능한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 내면의 조건이다.”라고 강조한다. (밝은 방 90p.)이번 사건들의 피해자들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그러므로 가장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몸을 잔혹하게 침탈당한 것이니.. 응당한 처벌과 보상과 위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전두환과 이순자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작지 않은 충격이다. 전두환의 얼굴은 너무 안온해보여서 화가 치밀어오르고, 이순자의 얼굴은 진짜 사나운 괴물 같아 보인다. 광주 항쟁의 증언자로 새로이 나서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벌써 39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만큼의 세월이 필요했구나 싶다. 대학 새내기로 입학해 어두운 학생관에서 틀어주던 질 안좋은 “비디오” 영상을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경험이, 그 충격이 나의,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큰 변곡점이 되었는 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 지 돌아보게 된다. 그 와중에 전두환 물러가라 외치는 동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어여쁜 지…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틀림없이 더 좋아질 것이다!!

 

오랫만에 화초 몇 개를 들였다.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껏 호흡해주기를. 이들의 날숨으로 나의 들숨이 편안해지기를.

커피 그라인더

뭔가를 함부로 끊으려 하는 게 아닌가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겠다고 아주 잠시 커피를 끊으려했다가 오히려 커피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말았다.
이런 걸 커피 요요현상이라 해야하나.
게다가 커피맛에는 더 민감해져 커피를 바꾸고, 이 참에 오래 고민하다 말던 그라인더도 저렴한 놈으로 장만하고 말았다.

빈스업 충전그라인더.
USB 충전, 입자크기는 돌려서 조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열심히 갈고 저절로 멈춘다.
그냥 후르륵 가는 게 아니라, 착착착~ 조금씩 균일하게 정말 열심히 간다. 고맙고 대견하다.  가격도 착한 25,500원.
안 쓰고 있는 핸드밀도 있긴 하나, 너무 귀찮아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방치중이고,
그라인더가 있으면 한 번에 좀 더 많이 주문할 수 있게 되어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지름의 핑계가 되어 주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죄다 핸드밀을 쓰던데… 이렇게 편리한 걸 놔두고 불편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존경을!

커피는 알라딘에서 중고매장에서 사거나  주문해먹곤 했는데 오래 전 이용해봤던 까페 뮤제오로 옮겼다.
알라딘 브랜딩도 괜찮았지만 맛은 여기가 나은 듯.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안 좋은 건 비싼 커피나 도구의 유혹이 있다는 것.  주의를 요망.

클라이언트란…

카카오톡에 나온 이모티콘. 어찌나 리얼한 지…

“화려하면서 심플하게,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느낌으로” 부터 시작해 너무나 빠짐없이 친숙해서
클라이언트들은 저 32개 멘트들을 메뉴얼에 저장했다가 경우에 따라 하나씩 꺼내놓는 것만 같다.
잘 캐치하고 잘 그렸다. 이런 건 사줘야하는데 싶지만, 늘상 이런 걸 듣고 있는 내가 쓸 일이 없이 없으니…

휴~ 일하기 시러….

박야일 개인전

얄님의 전시가 내일이다. 큰 사고를 겪고 나서 하루 11시간씩 매달려 그린 그림이라니 안 볼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 증상도 부지런히 쉰 덕에(쉬는 일도 부지런해야 할 게 있더라) 수그러지기 시작하니, 내일이든 모레든 오랜만에 인사동 나들이를 갈 수 있겠다.
인사동 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하니,
지난 추억들이 밀려들어 살짝 콧날이 시큰해진다.
얼마 전부터 자꾸 맥락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운데,
얄님의 그림 앞에서 또 눈물이 나면 어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온이도 보고 싶고 오프닝에 가는 게 좋을 것인데..
조용할 때 슬쩍 다녀오고 싶기도 하고…

낼 상태봐서 결정해야겠다.
오늘은 열심히, 부지런히 쉬고.

문상을 다녀오다

멀리, 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나름의 삶의 이력으로 통상적인 관혼상제의 네트웍에서 살짝 비껴있는 탓에,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그 형식이 잘 익숙해지지도 않는 일이다.
가족과 조용히 보내려하니 멀리서 명복을 빌어달라고 소식이 온 터라 살짝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 녀석의 심성 때문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상주의 얼굴에 드러나는 반가움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상주는 말했고, 성당 교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이 처음 보는 내게 건넨 “식장은 크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없어~” 라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와중에 다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정신없을 와중에 보내온 내용에 마음이 흔들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긴 문자를 보낸 걸 나중에 확인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죽음만큼 누구나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저마다의 삶에 이미 준비된 죽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리고 맞닥뜨리는 것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죽음을 미리 마주하고 있노라면 함께 마주한 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확인되기 마련이다. 상주의 위치에서든 문상객의 위치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