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수다

이사한지 몇 달이 되어가는 합정동 사무실, 이제 익숙해진 얼굴의 사람들이 수다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중 가만가만, 타인과 시선을 잘 맞추지 않고 조용히 지나치던 젊은 처자는 한 번 말을 나누기 시작하자 엄청 수다스러워진다.

10년 동안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적질을 끈질기게 해대던 대학 남자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이제는 니가  그렇게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시대가 아니야. 정신 차려라.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10년 동안 줄기차게 그랬다면, 그렇게 애써 괴롭혔다면,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했더니 옆의 다른 친구가 말한다.
그런 남자들이 있어요. 괜히 그런 데서 쾌감을 느끼는.
결혼해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그가 굳이 대학 여후배에게 연락을 해 퍼부었다는 그 언어폭력의 실상 – 넌 아직도 그렇게 못생겼니? 큰 얼굴에 눈코입이 어쩌고 하는- 을 전하는 그녀의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이 그 십년의 세월 동안 그녀가 감내해왔을 모욕감, 분노감을 생생히 증거하는 동안, 도무지 그런 남자들의 심사를 이해 못하겠는 나는, 그런 그녀가 몹시도 안쓰러웠다.

그녀는 아이유를 지독히 싫어했다.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상한 방식으로 이용해가며 인기를 얻는다고 했다. 어둡고 음흉하다던가, 그런 표현을 쓰며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걔는 꼭 그런 캐릭터만 고른다니깐요, 라며 동의를 구하던 다소 공격적인 어투에도, 그녀가 당했다는 언어폭력의 상처가 어른 거리는듯 하였다.  아이유에 대해선 (사실 별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선뜻 동의가 안되었던 나의 응수. “아이유가 좀 유니크한 매력이 있지요. 뭔가 상처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다소 숫기 없어 보였던, 스포츠 교육 관련 일을 하는 젊은 아저씨도 어느새 수다가 폭발하였다.  겨울엔 스키 강습을 하였는데 하절기를 맞아 수상스키와  인명구조 강사 자격증 취득을 검토하고 있단다. 스포츠맨에 대한 선입견으로 꽤 건강하고 밝아보였던 그도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젊음의 패기로 뛰어들었던 회사의 동료들과 맛본 급격한 성공, 그만큼의 추락.  그리고나서 시골집에 쳐박혀 4년째 글을 쓰고 있다는 친구를 응원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그리고 아이유가 나오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 주위 여성들은 아이유를 싫어하고 드라마도 욕하지만, 작가는 자신같은 이땅의 아저씨들의 상처를 진짜로 알고 있는 거 같다며,  상처받은 아이들이 일찍 큰다던가 경직된 인간들이 불쌍하다는 드라마속 대사를 그 증거로 내놓았다.

이쯤되니 안 보던 드라마가 궁금해져, 재방을 들여다 보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지극히 동시대를, 참 좁은 세상을 살고 있구나, 하고.
아이유 연기 잘하네… 짠하게.

예술의 추억

저장만 해두었던 칼럼을 하나 찾아 읽는다.  좋아하는 김진영 선생의 글이다. 편리한 기기와 웹환경 덕에 언제든 바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들이지만 이 분의 글은 느린 속도로 읽어야 하는 글, 이라는 생각에 링크를 저장해두고 읽는다. 저장했다는 사실을 흔히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글 발표를 잘 안하시니…

원래 강연을 좋아하신다고, 잠깐 근무하던 직장에서 뵈었을 때 듣기도 하였으나, 근래엔 또 건강이 많이 안좋으셨던 모양이다.  투병소식과 함께 페북에 올라온 사진에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하였는데… 얼른 회복하시어, 오래 오래 그 매력적인 내면의 사유를 멋진 필력으로 많이 펼쳐주시면 좋겠다.

*예술을 “추억” 한다는 제목이 붙은 건, 예술의 몰락을 전제하는 표현이겠다. 미투 운동, 특히 예술제도권내 “음란폭력의 난장”을, 강자의 매커니즘을 내면화한 현대사회의 현실과 함께, “권력의 시녀가 되어 강자의 폭력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몰락한 예술의 현실로 설명한다. 세이렌의 텍스트를 통해.

 

[김진영, 낯선 기억들] 예술을 추억하면서

김진영 , 철학아카데미 대표

미투의 홍수가 세상의 가면을 벗기고 있다. 그동안 위선의 가면 아래서 약자의 성을 짓밟고 유린했던 음란폭력의 민낯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제도권도 있지만 추세로 보아 그 속살 풍경을 들키는 일도 시간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특별히 주목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건 예술이라는 고상한 제도권이 알고 보니 가장 헐벗은 음란폭력의 난장이었다, 라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오래된 전설 하나를 기억해 보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세이렌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반은 새이고 반은 여자의 형상을 지니는 조류인간 세이렌 자매는 인간의 두 원초적 감정인 매혹과 공포를 다 같이 상징하는 존재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그녀들은 매혹적이지만, 그 노래에 취해 뱃길을 벗어난 항해자들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치명적 공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신화 안에는 오늘 그 맨얼굴이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폭력의 내밀한 관계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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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처음 보는, 거미의 거미줄 치기.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와 움직임, 리듬에 끌려, 자꾸 보게 된다.

경칩

경칩이다. 어젯밤 뉴스에 하도 놀라서, 오늘은 새삼 별로 놀랄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이리 어리석을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는데, 권력이란 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올해 초 S선생님의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읊던 그는 분위기만으로 작년과 꽤 달라보였다. 이전엔 그래도 나름의 지향이 뚜렷하고 패기있어 보였던 그의 추모사는 어딘가 모르게  자의식 과잉의 독백 같은 불안한 낌새가 느껴졌다고, 돌아와 친구와 앉은 술자리에서 토로하긴 하였으나… 이런 충격적인 뉴스를 보게 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환부가 작지 않을 것으므로, 큰 진통과 상처, 후유증과 파장이 우려되지만…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오듯 또 새로운 기운이 이 낡고 썩은 것들을 대체해 갈 것이다. 그 환절기가 너무 길지는 않기를 바란다.

릴레이 전시

얄님의 전시가 내년 2월에 있을 예정이란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림 팔아서 다음 사람을 지목해 개인전을 지원해주는 것. 릴레이 형식”이라 하니,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간의 그 연대가 멋지다.
2월 13일 오픈. 기억해놓았다가 놓치지 말아야겠다.

드레인, 회귀

우리 뛰어노는 동안 해 저물고
우린 마지막을 함께해

네가 날아가는 동안 나는 걷고
우린 마지막을 함께해

* 그랬으면 좋겠다.  뛰어노는 동안, 그 동안에 해가 저물고…

흔들리는 풍경은 그저 
우리들의 이야기 되고 
다가오는 폭풍은 그저 
또 하나의 노래가 되네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나봐…

한가로운 연휴 아침,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라는 프로를 보다가 깜놀.
반려견 행동전문가라는 직업이 그러한 것인지 강형욱이란 개인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문제되는 집을 방문하자마자 단번에 문제점을 간파해내고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사실상 반려견 뿐 아니라, 가족-인간 행동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집의 문제는 덩치 큰 세 남자-삼부자의 일상적인 거친 행동들과 작고 여리고 관계의존적인 성향의 엄마에 대한 무관심 혹은 부족한 배려, 그 결과로 이어진 엄마의 개에 대한 집착(엄마는 개를 마치 갖난 아이인양 안고 먹이고 재운다. 아들들이 갖난 아이였을 때 그러했듯이)이 촉발한, 그야말로 가족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전의 훈육으로 스트레스가 있던 감수성 예민한 개는 이 상황에서 엄마의 보호자를 자처하여 다른 가족을 공격하고, 엄마에게는 완벽한 갓난아이가 되어 집착하고 의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 역시 개 행동 교정 팁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관계 개선을 위한 지침을 포함한다. 엄마에게는 먹이고 안고 만지는 것을 금하고 세 남자에게는 거친 말과 행동을 금하고 부드러운, 상호존중의 태도를 주문하여 균형을 꾀한다.
그 결과는 자못 놀랍다. 단 한 번의 상황극만으로 반응을 보이던 카스라는 이름의 개는 일주일만에 “착한 개”로 변한다.
물론 그 상황이 지속, 고정화될 수 있을 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한 번의 상황극, 일주일간의 태도 변화만으로도 변화되는 개와 달리 인간은 잘 변하지 않으므로. “나쁜 개는 없”을지 모르지만 교정되지 않는 “나쁜 인간”도 있으니. 그러한 저항성, 비결정성이 어떤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좋은 인간”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요즘 같이 무기력해진 때에는, 누가 날 좀 교정시켜주었으면,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으면 싶기도.

아노말리사

아노말리사 (Anomalisa,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감독, 2015)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놀라운 디테일 속에서 뜻밖의 싸늘한 리얼리티를 맞닥뜨리게 되는 영화.
제니퍼 제이슨 리(리사 역), 톰 누난과 데이빗 듈리스(마이클 역)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지만, 주인공 마이콜이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얼굴과 목소리로 인식하는 (프로골리 증후군이라 한다지) 설정 속에서, 목소리를 그 자체로 타인과 맺는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매개하는 주요한 장치로 사용한 배치가 놀랍다.
목소리 외에도 (가면속의) 표정이나 몸짓 등의 장치들도 매우 인상적인데, 실사가 아니어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디테일이, 실사가 아니어서 생략된 정보가, 더욱 생생한 캐릭터와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불편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대체로 부드러운 시선으로 영화를 음미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형식 자체의 미덕과 숨은 장치들의(을 통한) 배려일 듯.

크랜베리스, 돌로레스 오리어던

아일랜드 얼터너티브 록 밴드 크랜베리스 (The Cranberries)의 리드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이 지난달 15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이웃블로그에서 접했다. 신규앨범을 준비하던 그녀의 나이는 46세.
애잔하면서도 영롱한 결을 지닌 노래를 이어 들으며 추모의 마음을 모아본다.

크랜베리스의 노래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건 <Dreams>일 것이다.
아득히 오래전 자신의 컬렉션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선물로 주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안에 이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컬렉션이 맘에 들어, 테이프가 늘어져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할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와 함께 갔었던 신촌전철역 뒷쪽의 “놀이하는 사람들” 이나, 어쩌면 종로의 “라커스” 같은 데서도 그녀의 노래들을 신청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스라한, 그래서 참 좋았던 시절의 기억이다.

이렇게 목소리로 남는 음악이란, 인생이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또 경이로운 것인지…
Rest in peace Dolores…

목소리.

오랫만에 페북에 접속해보니 며칠 전 뉴스룸에서 보았던 최영미 시인의 폭로에 대한 파장이 여전하다.
하나 방송 직후에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주어 보게된, “저급한 젠더의식”을 너무 적나라하게, 뻔뻔하고도 심히 너절하게 드러내었던 이승철 같은 부류의 반응은 논외로 하더라도, 며칠의 간격으로 발화된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이 사회의 태도엔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약자로서 비명을 지르는 일에 있어서도 그 비명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사회적으로 잃을 게 많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상 약자가 아닌-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상 한 때 명성이 높았던 시인의 말도 그러할 진대…

* 연이은 불면의 밤에 돌려보는 평창 올림픽 하이라이트가 예상외로 재밌다.
반전의 드라마에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숱한 고통을 감내한 도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몸짓에 감동하여 뭉클해지기도 한다.
눈부신 설경 혹은 빙판을 배경으로 자유자재로 몸의 중심을 이동하며 균형을 지켜내는 젊은 신체들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중심의 자유와 균형을 얻기 위해 그들이 통과해온 강도 높은 시간들,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