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늙어갈 때 느슨한 인간관계가 필요해요”

“혼자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간관계만큼이나 느슨한 인간관계가 절실해요. 느슨한 인간관계는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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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어. 

근래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아침이나 자기 전 가벼운 요가를 한다.  유튜브의 “요가소년”이나 “요가은”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준다. 
특히 자기 전에 까먹지 않고 해주면, 수면 진입이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자주 까먹는다.)

요가 마지막에는 “송장 자세”라고 불리는 걸 한다. 
편안히 누워서 몸 전체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이전의 요가 동작이 고단할 수록, 신체의 긴장이 클수록,  이 시간은 편안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수면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쾌감이다. 

실제 송장이 되는 일도, 죽음에 이르는 일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삶의 고단함과 긴장에 비례한 편안한 휴식이, 달콤한 안식이, 보상처럼 주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스텔라 아르투아~

필요한 게 있어 몇 년전 하드 디스크를 뒤적이다, 담아놓기만 했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시간이 훌훌 간다. 
밀린 일들이 많은데… 싶어 그만 닫으려는 순간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런던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간 조그만 펍.
피시앤칩스를 시켜놓고 맥주 한 모금 마시다 사진 한 장 박으려는데,
그 찰나에, 이것도 추억이라며 불쑥 나의 프레임 안으로, 나의 과거로 들어온 주인장 아저씨의 얼굴. 
그는 어떤 과거를 지닌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청량한 맥주 한 모금이 무척이나 아쉬운, 장염 후유증으로 맥주는 꿈도 꿀 수 없는,
미세먼지 가득한 건조한 저녁에.  

뉴스들.

매일 매일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집중해서 뭘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장자연씨 사건의 증언자로 나선 윤지오씨는 증언의 고귀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그녀가 견뎌왔던 시간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꽃 같을 앞날에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낸다.
 
승리와 정준영 두 사람의 뉴스는 못 보고 지나치기는 정도로 쏟아진다. 뉴스 영상에서보이는 그들의 앳된 얼굴은 순진한 악마같다.  웬만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많은 것들을 어린 나이에 쉽게  얻었던 대가일 듯도 싶다. 정준영을 용서했던 전 여차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지만(그녀가 용서를 안 했더라면 추가적인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김학의 일당의 “성폭력” 사건 등의 일방적인 피해자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연인이었던 그를 고발하는 것은, 그를 사랑한 나 자신과도 냉정하게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롤랑 바르트는 일찌기 “사진의 시대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 그 침입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적인 것의 공개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적인 것이 있는 그대로 공개적으로 소비된다.  ” 고 간파했다. 그러면서 “사적인 것은 (소유권에 대한 법률에 의해 통제되는) 재산일 뿐 아니라 또한 그 이상으로, 나의 이미지가 자유로운(자유롭게 소멸할 수 있는) 장소, 양도 불가능한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 내면의 조건이다.”라고 강조한다. (밝은 방 90p.)이번 사건들의 피해자들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그러므로 가장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몸을 잔혹하게 침탈당한 것이니.. 응당한 처벌과 보상과 위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전두환과 이순자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작지 않은 충격이다. 전두환의 얼굴은 너무 안온해보여서 화가 치밀어오르고, 이순자의 얼굴은 진짜 사나운 괴물 같아 보인다. 광주 항쟁의 증언자로 새로이 나서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벌써 39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만큼의 세월이 필요했구나 싶다. 대학 새내기로 입학해 어두운 학생관에서 틀어주던 질 안좋은 “비디오” 영상을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경험이, 그 충격이 나의,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큰 변곡점이 되었는 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 지 돌아보게 된다. 그 와중에 전두환 물러가라 외치는 동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어여쁜 지…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틀림없이 더 좋아질 것이다!!

 

오랫만에 화초 몇 개를 들였다.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껏 호흡해주기를. 이들의 날숨으로 나의 들숨이 편안해지기를.

커피 그라인더

뭔가를 함부로 끊으려 하는 게 아닌가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겠다고 아주 잠시 커피를 끊으려했다가 오히려 커피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말았다.
이런 걸 커피 요요현상이라 해야하나.
게다가 커피맛에는 더 민감해져 커피를 바꾸고, 이 참에 오래 고민하다 말던 그라인더도 저렴한 놈으로 장만하고 말았다.

빈스업 충전그라인더.
USB 충전, 입자크기는 돌려서 조절.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열심히 갈고 저절로 멈춘다.
그냥 후르륵 가는 게 아니라, 착착착~ 조금씩 균일하게 정말 열심히 간다. 고맙고 대견하다.  가격도 착한 25,500원.
안 쓰고 있는 핸드밀도 있긴 하나, 너무 귀찮아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방치중이고,
그라인더가 있으면 한 번에 좀 더 많이 주문할 수 있게 되어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지름의 핑계가 되어 주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죄다 핸드밀을 쓰던데… 이렇게 편리한 걸 놔두고 불편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존경을!

커피는 알라딘에서 중고매장에서 사거나  주문해먹곤 했는데 오래 전 이용해봤던 까페 뮤제오로 옮겼다.
알라딘 브랜딩도 괜찮았지만 맛은 여기가 나은 듯.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안 좋은 건 비싼 커피나 도구의 유혹이 있다는 것.  주의를 요망.

클라이언트란…

카카오톡에 나온 이모티콘. 어찌나 리얼한 지…

“화려하면서 심플하게,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느낌으로” 부터 시작해 너무나 빠짐없이 친숙해서
클라이언트들은 저 32개 멘트들을 메뉴얼에 저장했다가 경우에 따라 하나씩 꺼내놓는 것만 같다.
잘 캐치하고 잘 그렸다. 이런 건 사줘야하는데 싶지만, 늘상 이런 걸 듣고 있는 내가 쓸 일이 없이 없으니…

휴~ 일하기 시러….

박야일 개인전

얄님의 전시가 내일이다. 큰 사고를 겪고 나서 하루 11시간씩 매달려 그린 그림이라니 안 볼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 증상도 부지런히 쉰 덕에(쉬는 일도 부지런해야 할 게 있더라) 수그러지기 시작하니, 내일이든 모레든 오랜만에 인사동 나들이를 갈 수 있겠다.
인사동 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하니,
지난 추억들이 밀려들어 살짝 콧날이 시큰해진다.
얼마 전부터 자꾸 맥락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운데,
얄님의 그림 앞에서 또 눈물이 나면 어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온이도 보고 싶고 오프닝에 가는 게 좋을 것인데..
조용할 때 슬쩍 다녀오고 싶기도 하고…

낼 상태봐서 결정해야겠다.
오늘은 열심히, 부지런히 쉬고.

문상을 다녀오다

멀리, 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나름의 삶의 이력으로 통상적인 관혼상제의 네트웍에서 살짝 비껴있는 탓에,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그 형식이 잘 익숙해지지도 않는 일이다.
가족과 조용히 보내려하니 멀리서 명복을 빌어달라고 소식이 온 터라 살짝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 녀석의 심성 때문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상주의 얼굴에 드러나는 반가움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상주는 말했고, 성당 교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이 처음 보는 내게 건넨 “식장은 크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없어~” 라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와중에 다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정신없을 와중에 보내온 내용에 마음이 흔들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긴 문자를 보낸 걸 나중에 확인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죽음만큼 누구나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저마다의 삶에 이미 준비된 죽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리고 맞닥뜨리는 것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죽음을 미리 마주하고 있노라면 함께 마주한 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확인되기 마련이다. 상주의 위치에서든 문상객의 위치에서든.

비교적 이른 나이에 문상객을 맞이했던 나는 상대가 저쪽에서 걸어올 때 그와의 관계의 깊이가 절로 가늠이 되던 경험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엔 문상객의 입장에서도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해본 셈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러나 언제고 필시 내것이 될 나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도.

서영인,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가지고 있는 책들이 버거워 팔아먹으려고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는 알라딘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한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이라는 타이틀이야말로 나의 현재 삶을 간단히 핵심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말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전자책 기미가 보이지 않는 책을 바로 주문하기까지 한 데에는 그 날의 상황도 한몫 하였을 것이다. 너무나 내키지 않는 약속을 앞두고 속으로 궁시렁대던 그 날의 나는, 결국 이 책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쁜 나의 오늘을 기꺼이 사랑하리라고 굳게 마음 먹게 되었으며, 삼 년하고 반 년 전쯤 떠나온 망원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집주인이 넓은 정원이 있던 옆집을 사들여 게스트하우스로 만들고 당시 폭중했던 중국방문객들이 그 정원에서 밤새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수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여전히 망원동을 이 책의 저자처럼 어슬렁 어슬렁 산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난 후 어딘가에선, 이 책을 추천한 누구처럼 이 매력적인 저자를 만날 수 있을까하여 두리번 거리고 있었을 지도.  나도 그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사년 째 쓰고 있는 내 아이폰처럼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산뜻하고 가벼운 책 속엔 역시나 공감 백배의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의 이야기가 이렇게도 친근하고 다정하게, 바로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건, 그런 책을 만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공감이 폭발했던 대목 하나는, 단어, 특히 고유명사가 생각나지 않는 증상을 야콥슨의 분류에 따라 선택의 축이 무너지는 “유사성 장애”로 풀면서 덧붙이는 말들이다.

“나는 <언어의 두 측면과 실어증의 두 가지 유형>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니까 나는 보편적이고 경미한 ‘유사성 장애’를 앓고 있는 중인 셈이다.
또래의 지인들, 친구들끼리 만나면 우리는 우리의 신체에 찾아온 비슷한 장애로 더욱 돈독해지곤 한다. 그리하여 언어의 장애를 넘어서는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인접성의 유추로 결속한다. 이를테면 “저기, 거기 사는 그이가 있잖아, 그랬다는데 글쎄 “, “진짜야? 그래서 어떻게 됐대” 뭐 이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드는 유사상 장애 연대가 결성된다고 해야할까.”

“선택의 축이 삐걱거리고 있지만 결합의 축에 기대를 걸어 볼 여지는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낱말의 맥락에 덜 의존할 수록 인접성 실어증 환자의 발화에서는 고집만 강해지는 반면, 유사성 장애를 가진 환자는 발화를 일찍 포기한다. ” 나는 이 문장을 천재 언어학자 야콥슨의 유머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접성조차 잃으면 고집불통 영감탱이가 되는 거야. 유사성 초기에는 말을 아끼고 더듬고 망설이지만, 인접성 장애에 들어서면 그는 자기가 하려는 말의 진의나 말을 듣는 상대와 상관없이 고집만 강해진다.” -p088

(음 이렇게 옮기고 보니 그날의 자리가 그렇게 불편했는 지가 이해된다. 말을 아끼거나 더듬거나 망설이는 법이 없는 일방적인 말들이 비싼 참치회와 마찬가지로 왜 그렇게 소화가 안되었는 지.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침의 피아노>도 건너뛸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김진영 선생이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은 후부터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 기록한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아담하고 깔끔한 양장본의 책은 생전에 딱 한 번 뵈었던 선생의 모습을 상기시켜준다. (잠시 일했던 일터에서 선생의 강의를 진행했었다.)

철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의 한계는 비교적 평탄하고 부유했던, 그리하여 안온했던 환경, 처지에 있는 것 같다던 이야기가 이 책의 제목과 외양에 겹쳐지는 건 아무래도 나의 오바겠지. 지금 여기의 가난한 나의 삶을 긍정한다 하더라도, 이 생을 떠날 때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집에서, 베란다 밖 풍경을 내려다 보며 (피아노와 베란다가 있어야할 것이다.) 지난 삶을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욕망이 내게 내재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반가운 책이다. 선생의 벤야민 강의나 바르트 강의도 출간되면 좋을 것이다.

생일

생일이다. 부지런한 온라인 마켓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생일쿠폰을 보내온다. 덕분에 충동구매가 두어 건 발생했고 생필품도 몇 가지 쟁여 놓았다.
당일날 제일 먼저 도착한 축하메시지는 영낙없이 먼 미국땅으로부터다. 헤아려보니 벌써 10년이다. 나는 한 번도 그들의 생일축하를 챙긴 기억이 없는데(어쩔 수 없다. 생일을 안 가르쳐준다. ) 매년 빼먹지 않고 보내오니 고마운 일이다.

오늘 받은 축하에는 마음이 더 흔들렸다. 함께 했던 엘에이의 아드모어 하우스와 당귀주가 그립다는 말에, 그 때 참 좋았지.. 라고 답을 보내면서는 코끝이 찡해왔다. 그때를 통과할 때는 삶이 온통 뿌연 안개 같았는데… 돌아보니 늘 쨍하던 그 땅의 하늘처럼 꽤 청명한 시절이었던 것만 같다.

오늘 받은 그곳 사진.  언제든 놀러 오라 하였다. 언젠가는 가야겠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접속했다. 이사를 계획하다 여건상  좌절하면서 알라딘 중고책 판매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되어 구매만족도 100%의 골드셀러가  되었다. 정산금액도 생각보다 쏠쏠하다.  한 달이 안되었는데 벌써 50만원이 넘었다. 책을 등록하고 포장해서 보내는 일은 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일이긴 하나  재미도 있다. 오래 끌고 다니던 오래된 책을 반가이 찾아주는 이가 생기면 보람도 느낀다. 판매평가 코멘트 게시판에 글이 등록되면 답도 꼬박고박 단다. 고맙습니다, 라는 짧은 말에 진심이 실린다. 쇼핑몰에서 저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들의 노고도 생각하게 되어, 상품 구매후에는 구매확정을 빨리 하고 별점도 남긴다.

천장에 가까운 긴 책장 하나를 낑깽대며 복도로 끌어내고 들어왔을 때는 한층 훤해진 방 안이 너무 좋아, 진작 맘 먹을 걸 후회가 되었다. 그처럼 책을 쌓아둔 게 호기심이었든 허영심이었든 무엇이든 간에…  이제 비우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사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젊은 친구- 페미니즘책을 열심히 읽고 취미로 랩을 하는-가 새로 산 책을 보여주는 타임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한창 책을 읽을 나이군. 나는 이제 버리는 때라. 흐흐 ”  머 가진 게 얼마 된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아직 더 길을 가야하고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위험신고를 보내고 있으니.

오늘은 맛난 거를 먹기로 하였다. 알라딘에서 정산한 금액을 환전 받을까 하다가.. 조금 아껴두기로 한다. 책 팔아 먹는 거로 탕진하기에는 왠지 찔리는 느낌이 있다, 아직은.

Ólafur Arnalds – Particles ft. Nanna Bryndís Hilmarsdóttir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이가 찍어온 사진들을 넋 놓고 구경한 이후부터 아이슬란드 뮤지션들의 음악을 종종 듣는다.
아름다운 그곳의 풍광에 어울리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음악들은, 이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더없이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느라 극도로 피로해진 심신을 다독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Ólafur Arnalds 가 여러 명의 아이슬란드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통해 내놓은 곡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먼 이국땅에 대한 동경을 단단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이슬란드 사진을 보여준 이는, 자연이 아름다운 아이슬란드가 여행하기 좋은 곳이긴 하나 너무 심심하여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단언하였는데, 이들의 음악 역시 누군가는 “수면음악”이라 할 만큼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반복되는 단조로움과 멜랑꼴리한 나긋함이 있다.  심심할 지 모르나 치명적일 수 있을 매혹이다.

어지러이 돌아가는 배경이 높은 등대 내부라는 말을 듣고 나니, 저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보컬 Nanna Bryndís Hilmarsdóttir (발음하기가 어려워..)가 눈 감고 노래하다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아 영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