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다녀오다.

날이 후끈하다.

강화에선 햇살은 눈부셔도 공기는 꽤 쾌적했는데 역시 도시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닌가보다.

드라마틱했던 강화답사에선 애지중지하던 렌즈가 탈이 났다.
장비를 흔쾌히 들어준다는 장정이 둘이나 있어 욕심을 내서 싸들고 간 게 화근이었다.
렌즈 하나를 맡아달라고 넘긴 지 일분이 안되어서 (내게는) 청천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렌즈는 오토포커스 기능을 잃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또다른 생채기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게는 젤 비싼 렌즈인 데다 정식 수입된 것이 아니라 AS가 난감하기도 하거니와,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렌즈라 찔끔 눈물이 났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겉으론 쿨하게.  

렌즈의 부상외에 또 다른 몇 가지 고약한 일이 나를 강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임무를 마친 내게 달려라 하니 같다는 신선생님의 칭찬이 전해져 왔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어서 머리속이 복잡하다.  
어쩌면 친구 J의 조언처럼, “산을 정말 잘 타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건 책임감이라고 하지요. 타인들에 대한 배려라고도 하구요.”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했는데, 물론 그러진 못했다. 때로는, 아닌 언젠가는 그렇게 대처해보리라, 마음만 먹는다.

J가 던지는 그런 얘길 듣자면 그 친구를 삶의 에너지 고갈, 탈진의 상태로 몰로갔던 사태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이러저러한 타인에 대한 규정이 그 이면에 타인에 대한 착취를 포함한 많은 전략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 또 그 대상에게 꽤나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재미있게 읽기 시작한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에서 언급하는,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우울한 성과주체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시스템으로 확대 고착되면서 자기착취, 자기파괴로 치닫는.
정신없는 일정으로 인해 이제 겨우 두어장 읽었지만 꽤나 명쾌하고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친구에게도 추천해주어야겠다.
책 두께도 얄팍한 미덕을 지닌, (빨강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보라색 약과도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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