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een 과 Inconvenient Truth

바야흐로 환절기.
잠시 몸과 마음을 앓느라 제껴둔 시간에 인물을 앞세운 영화 두 편을 봤다.
The Queen 과 Inconvenient Truth


The Queen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주연: 헬렌 미렌, 마이클 쉰)

The Queen은 좀 색다른 혹은 뜬금없는 영화다. 이 시대 왕실의 존재만큼이나 그러하다.
예상과는 달리 제법 비중있을 이슈들을 비껴가면서 왕실의 품위에 집착하는 고집스런 여왕의 개인적인 면모를 소박하게-그러나 우아하게 보여준다. 토니 블레어의 등장도 재밌는데, 그가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왕(헬렌 미렌)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고 영상으로 보는 다이애너비-people’s princess-는 참으로 아름답다.


Inconvenient Truth (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  배우: 엘 고어 )

만약 엘 고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대체로 엘 고어의 강연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그의 강연은 명쾌하고 자상하고 재밌으며 설득력 있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세계자원의 40%를 소비한다는 미국은 역시 에너지 소비도 엄청나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0%란다.
미국이란 나라는 어쩌면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반성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뒷부분에 등장하는 미국인의 애국심을 내세운 호소 중엔 다소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뛰어난 강연자이며 정치가임에는 틀림없는 듯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지구생존을 위한 메세지만으로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게 무겁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봐야만 하는 영화. 그것이 존재이유인 영화.

엘 고어. 잘 생겼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이라 했던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올랐다니, 그의 영향력에서 뭔가 기대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http://www.climatecrisis.net

씨네21 기사를 덧붙인다.
사진을 올리려다 찾았는데, 영화를 생생하게 잘 그려냈다.  영화볼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왕년의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 앨 고어입니다.” 연단에 선 남자가 자신을 소개하자 청중은 왁자한 웃음을 터뜨린다. “저로선 그 사실이 특별히 우습진 않습니다만.” 시치미 뗀 앨 고어의 응수에 간지럼 을 탄 폭소는 더욱 커진다. 즐거운 서두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연이 고발하는 지구의 위급한 상황은 객석의 웃음기를 거둔다.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든 민주당 후보 앨 고어는, 정치 밖에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한 실상을 절감하고 연구한 고어는 1천회 이상 순회강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비보’를 알렸다. 고어의 설득력 넘치는 슬라이드 강연에 매료된 환경운동가 겸 제작자 로리 데이비드는 이를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결심을 다졌다. 데이비드의 손짓에 <펄프 픽션>과 <킬 빌>의 로렌스 벤더, ‘갓밀크’(Got Milk) 광고의 스콧 Z. 번스 등 ‘선수’들이 제작진에 합류했다. <불편한 진실>은 콘서트 실황을 제외한 미국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 중 역대 흥행 3위에 올랐다. 대선 당시 ‘지루한 앨’로 불렸던 고어는 일약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 모델로 발탁됐다.

TV시리즈 <24> <NYPD 블루> <앨리아스>를 연출한 경력이 있는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은 <불편한 진실>을 교육방송 동영상 강의처럼 찍고 편집했다. <불편한 진실>의 객석은 강의실 청중의 자리가 되고 스크린은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의 영사막이 된다. 강연을 중계하는 틈틈이 감독은 앨 고어의 ‘진실’도 삽입한다. 고어의 수심어린 옆얼굴과 낡은 사진의 몽타주 위로 개인사를 반추하는 전 부통령의 보이스 오버가 흐른다. 고어의 누나는 폐암으로 요절했고 아버지는 평생 지은 담배 농사를 접었다.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여섯살배기 아들은 고어에게 “지상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자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은 진정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무능하거나 유능해질 의사가 없었다. 이것이 고어가 광야에서 외치게 된 사연이다. 고어의 자전적 회고는 선거 캠페인 필름을 연상시켜 다소 부담스럽다. 지구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선 고어의 고독한 실루엣은 과도하게 비장하다. 그러나 이는 길게 불평할 문제는 못 된다. 앨 고어가 누구냐는 물음은 <불편한 진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유가 보탬이 안 되는 사태가 있다. 지구는 신음하고 있다, 고 애절히 말해봤자 우리의 마음은 쉽게 동하지 않는다. 앨 고어는 학자적인 태도로 확고부동한 사실과 수치를 줄줄이 지목한다. 역사상 지구가 가장 더웠던 10년은 모두 지난 14년간 찾아왔고 2005년은 그중 제일 더웠다. 자연의 장기지속적 변화를 감안해도 상궤를 한참 벗어난 적신호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녹아 사라지고 있으며 알프스, 페루, 파타고니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혹서로 3만5천명의 인명을 잃은 반면, 인도 뭄바이는 37인치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데워진 해수는 태풍의 덩치도 키운다.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는 멕시코만의 더운물을 만나 괴력을 더했다. 2004년 일본은 10차례 태풍을 치렀고 허리케인의 ‘허’자도 모르던 브라질마저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 이처럼 가히 묵시록적인 연쇄 재해의 주요 원인은 과다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빚어진 온실 효과다. 인구 20억명을 돌파하는 데에 1천 세대를 소모한 인류는 2차대전 이후 단시간 내에 65억명으로 급증했고, 웃자란 기술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에너지를 유례없는 속도로 연소했다. 문명은 지구를 착취했으나 그 보복에 대한 방책은 세우지 못한 것이다. 기상이변은 사회와 생태계의 붕괴로 번질 것이라고 고어는 설명한다. 줄어드는 빙하는, 빙하 녹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세계 인구 40%의 갈증으로 이어지고 전염병 매개체가 사는 땅을 넓힌다. 10년 주기로 9%씩 북극이 녹는다고 가정할 때 네덜란드, 상하이, 플로리다는 오래지 않아 완전히 침수된다. 역시 물밑으로 수장될 세계무역센터 기념비를 맨해튼 지도에서 가리키며 고어는 적절히 반문한다. “우리는 정말 테러 이외의 위협은 방관해도 될까요?”

앨 고어의 강연 솜씨는- 어쩌다 선거에서 졌는지 의아할 만큼- 탁월하다. 명쾌하고 알기 쉬우며, 영상자료와 통계를 적재적소에 끌어들인다. <심슨 가족>의 매트 그뢰닝이 제작한 <퓨처라마>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토막 3D애니메이션도 삽화 구실을 한다. <불편한 진실>은 그래프가 얼마나 무서운 이미지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연평균 기온을 짚은 꺾은선 그래프가 이산화탄소 함량의 그래프와 베낀 듯이 나란한 선을 그리는 화면은 충격적이다. 그런가 하면 <불편한 진실>의 가장 강력한 감정적 호소는 조야한 3D애니메이션 예화에서 튀어나온다. 얼음대륙이 녹아 사라지면서 발 디딜 땅을 잃은 북극곰 한 마리가 하염없이 헤엄친다. 간신히 뗏목만한 빙하를 발견하는 흰 곰. 그러나 앞발을 얹자마자 얼음은 두 동강, 네 동강으로 조각난다. 실망한 곰은 다시 탈진한 팔다리를 젓지만 바다가 너무 넓다.

물론 우리는 앨 고어가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한 1990년대의 8년 동안 어떤 변화를 창조했냐고 온당히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앨 고어는 당시 정책의 공과를 해명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고 미국인의 부끄러움과 정의감에 직접 호소한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무지막지한 에너지 소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려 30%를 차지하는 미국은 2001년 자국 산업보호를 명분으로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가간 이행협약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앨 고어는 본인이 목격한 ‘내부 메모’를 증거로 들어 지구온난화 위기를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 토론 가능한 하나의 견해로 격하하려는 에너지 산업과 미국 정부의 전략이 미디어의 눈을 멀게 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불편한 진실>은 한장의 팸플릿 같은 영화다. <불편한 진실>이 영화여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이유는 대량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불편한 진실>은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많이 공중파 TV로 방영되고 동영상이 보급돼야 마땅한 영화다. 메가폰이기를 자처한 영화답게 <불편한 진실>은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엔딩 크레딧 가득 무수한 실천 사항을 나열한다. “나무를 심으세요.”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환경 공약을 내건 후보에게 투표하세요.” “그런 후보가 없으면 직접 출마하세요.” 결국 개인의 어깨에 짐을 얹는 결론인가 화도 치밀지만 그보다 발등의 불을 꺼야겠다는 다급함이 앞장선다. <불편한 진실>을 보고 나와 내딛는 땅은 여느 때와 달리 갓난아이의 살처럼 연약하고 애처롭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전경은 인류 사상 가장 많이 복제되어 널리 유포된 사진이라고 한다. 다시 들여다본 그 이미지는 여전히 아름다우나 더이상 장엄하지는 않다. 지구는 창백하고 푸른 점일 뿐이다. (씨네21, 김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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