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의 추억

오래 전 어설픈 연애를 했더랬다. (뭐 누구는 한 때 안그랬겠냐마는.^^)

만나면 영화를 보거나 고작 용산을 어슬렁거리던 우리가 어느날 손잡고 찾아간 곳이 인라인샵이었다.
발크기를 재고 발에 맞는 인라인을 신고선 샵을 어기적 어기적 걸어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랑 산에 기어오르기 말고는 완전 잼병인 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머, 당연히 쉽지는 않았으나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맘 먹고 스케이트 짊어지고 상암정도는 가줘야 하는 게 좀 귀찮았을 뿐.
그렇게 그와 인라인을 타러 다닌 게 몇 번.
어느날 내가 말했다. “나 넘어지려할 때 왜 안 잡아줘?”
운동신경이 나보단 훨 나아 진도가 좀 빨랐던 그가 대답했다.
“같이 넘어질까봐. 그래서 당신이 더 다칠까봐.”
그의 우려와 달리 나는 별로 넘어지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라인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모님에 의해 내가 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나대로의 이유로 먼저 손을 놓자 하였으나, 그의 이유는 “같이 손잡고 있다가 당신이 더 다칠까봐” 바로 그거였다.  
그가 가고 남은 인라인 스케이트는 가볍지 않았다. 3종 보호대와 헬멧까지 끼워져 있는 배낭에 고이 들어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라인을 보다가 퍼뜩 짊어지고 상암으로 향했던 게 오늘처럼 더운 여름날이었다.
상암 월드컵 공원에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앉아 스케이트를 신던 때가 꽤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케이트의 끈을  하나 하나 꿰어 조이던 일, 그리고 혼자 일어설 때의 비장함 같은 것이.
그렇게 한동안 인라인을 탔다. 열정적으로 무료 강습을 해주던 강사들이 있는 동호회를 기웃거리다 한 수 배우기도 했고 그들과 줄줄이 기차대열을 만들어 한강을 넘어 먼 길을 달리기도 했다. 한강 옆을 달릴 때 스치는 바람이 참 좋았다.
나는 더 이상 인라인을 타지 않는다. 여태 가지고 있던 인라인은 이번에 이사올 때 처분해버렸다.
이제 제대로 도전해보려는 건 자전거다.
얼마 전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고래 동생이 서울을 떠남으로 인해, 혼자 길을 찾아야 한다.


잊고 있던 옛날 일들이 생각난 건 조금 전 오랫만의 산책길에서다. 어떻게 자전거를 끌고 나올까 고민하다 안전하게 한강에 이를 수 있는 루트를 발견한 것이 홀로 대견했던 때문이다. 혼자 인라인을 짊어지고 나갈 때처럼 비장할 필요도, 이유도 물론 없다.  
가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주내로 출정을 나갈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대체로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보다 혼자 익히는 것을 잘 하는 것 같다.
타로점에서 “sword”패가 왕창 나와 점을 봐주던 신통한 이가 놀라워했던 게 생각난다.
그 어떤 것도 몸으로 부딪히며 상처받고 그러면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고?

그런데 요즘엔 진짜 인라인 타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신기한 일이다.


 
이런.

노래를 올리고 보니, 그 때가 떠오른 게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있던 때문이었군. 크.
2 답글
  1. FineApple
    FineApple says:

    가히 한 편의 쓸쓸한 단편소설이군요. 감성적인 글 참 잘 쓰셔요. ^^
    윤광준님 책은 다 읽었습니다. 시간 나면 함 정리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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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los250
      kalos250 says:

      흠흠. 모든 사람이 다 차단되나봐. 비밀댓글만 된다니 희안하군. 원성이 자자^^하네.
      빨리 워드프레스로 갈아타야겠다. 괜찮은 테마 없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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