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헤드와 웹자유주의

기어헤드.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도 만지작거리고 고치고 개조하기를 좋아하는 괴짜들을 일컫는 영국 속어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나도 어느 정도는 기어헤드의 기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잘 못타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지도 않는 자전거가 궁금해 들여놓고 들여다보고 있을 뿐 아니라, 며칠 전 스탠드처럼 바꿔 보겠다고 멀쩡한 걸 분해했다 폐기해버리는 물건도 왕왕 있고, 컴퓨터나 기타 기기들을 최적화 시킨다고 붙들고 있기도 하며,  그다지 생산적일 수 없는 블로그를 워드프레스 시스템을 파헤치는 시험장으로 주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출장 나온 AS 기사 아저씨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을 만큼 많은 각종 공구들은 또 어떤가.

스스로를 기어헤드로 고백하는 웹칼럼니스트 김국현은 it의 원동력이 바로 이들에게 있다고 자부한다. 그들에게 바치는 그의 응원은 찬사에 가깝다.

“기어헤드의 궁극이자 완성형은 센데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다. 아마추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뭐든지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극대화된 형태로, 기술적 심미주의자로서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큰 상태이기도 하다.” –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중에서

그리하여 그가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기어헤드. 자랑스러워할 만한 몸과 마음의 상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어헤드 치고 나쁜 사람 없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지론은 지금껏 크게 틀린 바가 없었다.

이 지론을 나 역시 공감하고 지지한다. 당신도 그러하다면 당신 역시 기어헤드일 가능성이 높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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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물음에 ( it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IT에 의해 우리의 생활과 사회가 영향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IT가 현실 밖의 현실, 세계 밖의 세계를 만들어 스스로 대안을 자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 대안이 소개되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IT가 만드는 이상계, 어텐션 이코노미와 평판 경제에 입각한 느슨하지만 낭만적인 시스템을 제시한다.

“실제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디지털화와 그 네트워크 덕에 우리는 작은 아이디어를 증폭시켜 시계의 형태를 바꾸는 힘을 갖게 되었다. 예컨대 웹은 그 믿음에 대한 증명이다.”

오픈소스에 대한 몰이해에서 드러나는 정부 정책의 한계와 판단에 대한 비판은 예리하다. 오픈소스를 공짜로 이용하려는 자의 시선만 있고, 그 기저에 깔린 생산력이 발휘하고 있는 경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작은 코드 한 줄이 세계적 혁신을 일으킨다는 꿈. 이를 잃은 현장에서 오픈소스는 SI를 위한 염가의 원자재 공급원으로 인식되어…. ‘제조 건설 입국’의 생리하에서는 오픈소스라는 창조적 운동마저 하도급 자재 수급의 방편으로 이해되고 마는 것이다. ”

그래서 정부는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판결된다.

액티브X는 독자 기술의 꿈이 불러온 기술 쇄국의 딜레마로 정의된다. 그래서 “칼을 드는 순간, 내 스스로 누군가를 소외시키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칼을 드는 순간 내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고 저자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공인인증 체계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조선 총독부령에 의해 만들어진 인감 제도 조차 폐지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국가의 인허에 의해 증명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웹은 현실의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는 자유의 플랫폼이다. ‘웹’으로 대표되는 ‘세계로서의 네트워크’, 즉 이상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할 정치, 경제적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장의 미래를, 사회의 미래를, 심지의 인류의 미래를 실험하고 있다. 웹이란 우리에게 남은 유일무이한 자유의 실험대이자 희망의 공간이다. 현실계에 의한 어떠한 제약과 의무도 철폐된 웹 자유주의,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대안이다.”

저자가 보고 있는 현실의 한계가 철폐된 웹 자유주의의 미래는,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던 견고한 설국열차를 세워버린 봉준호 감독 만큼의 그것만큼 낭만적이다. 그것은 열차를 나온 아이들이 바라본 눈덮인 세상처럼 아름답고 또 광활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영원하리라 믿어지던 설국열차를 폭파해 버릴 만큼 파괴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하더라도 폐쇄된 열차 안에서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력적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막 <설국열차>를 보고 왔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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