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Sep 2013

지리산

기상변화가 많은 나날들이다. 내게도, 그리고 여기의 우리 무두에게도.
이 날들을 통과함으로 인해 보다 단단한 근육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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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만에 찾아서였을까.
산은 그대로일 터인데, 풍경은 많이 변해 있었다.

화려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는 건 쑥부쟁이니 구절초 같은 꽃들이 아니었다.
등산객들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빼곡하게 장식한 라푸마와 노스페이스 등의 고가 의류와 배낭, 번쩍이는 스틱들은 나의 기억 속에 입력된 지리산 풍경과 너무나 틀린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변함없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엘리시움에 침투한 지구인처럼 보였을지도.

그렇게 차려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의 높은 데시벨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몹시도 시끄러운 풍경은, 산 속에서 눈 크게 열고 조용히 귀기울이던 경험을 아득한 기억으로 호출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나누던, 조용히, 가만가만 건네는 인사도 실종된 지 오래. 하산 직전에 만났던 단 한 팀의 사람들이 건넨 인사는 멸종직전 천연기념동물의 그것처럼 반갑고 귀해 보였다.

어쩌면 당분간은 이런 류의 “등산”이란 건 안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는 산보다 들을, 사람 사는 마을을 걸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인지도.

다행히도 반나절쯤 걸었던 둘레길은 호젓했다. 꽤 깊은 숲길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내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희안하게 저 아래 마을에서 개짓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제주도 올레길이 갖지 못한 걸 지리산 둘레길은 갖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좋았다.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짧은 여행은 절반쯤은 예상과 다르게 채워졌다.
뭐 여행이란 게, 삶이란 게 그렇게 의외성으로, 갖은 우연과 인연으로 엮어지는 것인 게지, 하면서도 남는 아쉬움과 반성과 다짐 혹은 각오가 있다. 이것이 나를 좀 더 강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 되어야겠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 다운로드 받은 앱이 유용했다.
“지리산 둘레보고”라는 것인데, 둘레길 뿐 아니라 등산로, 숙박과 음식점을 비롯한 관광정보가 꽤 튼실하게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둘레길 모든 코스와 등산로를 표시해주고 내 위치를 표시해주는 것. 길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너댓번이나 경로를 이탈했다가 얘 도움을 받아 제자리를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이 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때 돌아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경로 같은 거 신경 안쓰고 하릴 없이 걸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인적 없는 산길은 나같은 길치에겐 그리 만만치 않으므로.
지리산 가시는 분들 참고하시면 좋겠다.
https://itunes.apple.com/kr/app/jilisan-dullebogo/id569385507?m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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