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개개인은 뿌리 없음을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서 인식한다. …… 그러나 그 뿌리 없음이 자신의 정서로 된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소위 말해서 ‘대상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발 밑의 지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적 요인 때문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품안으로부터 배척되었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이 의식적으로 이처럼 기만적으로 인식된 현실과 담을 쌓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실험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들은 소위 말하자면 더 치열하게 실존하고 있다.” – 빌렘 플루서

체코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아우슈비츠 등에서 온 가족을 잃고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해야 했던 플루서가 자신의 미완성 자서전- 제목이 <설 땅 없음>(Bodenlos>이란다.- 에서 남겼다는 구절에 눈이 머문다.
그가 디지털 시대 선구적 미디어 이론가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문화의 패러다임 교체를 필생의 과제로 연구했던 것은 이러한 뿌리 없음의 태생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태생적 조건을 실존적 자유의 조건으로(!) 체험했던 플루서는 사진기술 속에서 20세기말의 문화의 위기를 성찰하면서 ‘정보화 사회-탈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과 디지털 기계장치의 변증법적 관계를 해명하는 ‘사진의 철학’에서 그 자유의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진의 철학은 사진적 실천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 필수적이다. 사진적 실천 속에서 탈산업적 콘텍스트 일반에서의 자유에 관한 모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진의 철학이 해명해야 하는 사실은 인간의 자유는 자동적인, 프로그래밍되는 또는 프로그래밍하는 장치의 영역에서는 그 여지가 없다는 점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위해서 어떤 여지를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의 철학은 자유의 이와 같은 가능성-을 장치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 속에서 메타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이 장치에 의해 지배당하면서도 죽음이라는 우연적 필연성에 직면해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에 대해 메타적으로 숙고하는 것이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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