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리 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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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군이 내게 이 라디오의 뽐뿌를 보낸 지가 칠팔 년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달린 결과 그는 이젠 큰 부피와 무게와 (물론 가격도!) 나이까지 먹은 진공관 스피커를 쓰다듬고 있는 오디오 매니아가 되었고, 나는 어제서야 이 쪼고만 라디오를 손에 넣었다. “너의 뽐뿌가 이제서야 결실을 맺는구나” 했더니 그가 허허 웃었다. 언젠가 “누나처럼 섬세한 귀를 가진 사람이 좋은 기기를 가져야 하는데” 하믄서 찐하게 안타까워해줬던 그다.

어쨌거나 나의 이 우울한 시기를 건강히 건너게 해줄 디딤돌로 채택되어 내 방에 들어온 티볼리 모델원은 결론적으로 근래 내가 지른 것 중에 최고의 지름으로 등극 되었다. 역시나 듣던 대로 수신감도가 좋아, 잘 안 잡혀 지직거리던 주파수도 명쾌하게 잡는 건 물론이며, 아닐로그 음색이란 게 무슨 의미인지도 첫소리에 감을 잡게 해주었다. 디지털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촉각적 음색이랄까, 그래서 더 가깝게, 좀 내밀한 느낌으로 감겨오는 소리에 빠져 내내 -티비뉴스를 보면서도- 틀어놓고 지내는 중이다. 수년 동안이나 하필 KBS FM1이 잘 안나오는 지역에만 살게 되는 바람에 폭풍 검색으로 안테나선도 사서 연결해보곤 실망을 했었는데, 단박에 아주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흐흐.

주파수와 수신감도라는 게, 타인들과의 관계, 소통에 있어서도 중요할 것이다. 수신감도는 강해서 상대의 작은 낌새도 잘 알아채는데 주파수가 조금씩 어긋난다면 잡음이 심해 소통이 어려울 것이고, 주파수는 정확하지만 수신감도가 약하다면 상대방이 발산하는 낌새, 신호에 둔감하게 되고, 그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생기는 애로나 갈등이 클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남녀관계 비슷한 영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경우가 아닐까 싶고, 후자의 경우엔 그 주파수가 의심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겠다. 그러다보면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려보게 되는 그런 경우들. 내 안의 수신장치를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가진 렌즈를 다 팔아먹고 단일화한 탐론 줌렌즈가 좋긴 한데 너무 무겁다. 손목이 아프니 들고 나가기가 꺼려지고, 들고 나가도 잠깐을 못 버티고 쓰윽 대충 찍게 된다. 그러니 아이폰보다 오히려 더 못하다. 아무래도 단일화를 깨고 35mm 단렌즈 하나를 장만해야겠다.
 

* 이 라디오의 개발자인 헨리 크로스 HENRY KOLSS씨는 세계 최초의 어큐스틱 써스펜션 스피커인 AR-1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오디오 명예의 전당 멤버에 선정, 프로젝션 TV를 개발한 공로로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는 그는 이 제품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단다.
“나의 이 새로운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이나 사무실 등, 어느 곳에서나 음악을 보유하며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내가 40여년간 노력한 결과의 산물입니다.”
고마워요, 헨리 아저씨.

4 답글
  1. 길
    says:

    저또한 몇 년째 뽐뿌질을 당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완소아이템이라 사료됩니다.
    이번에 이사오면서 오로지 거의 FM라디오 송출기능만 갖고 있던 오디오를 처분하여
    현재는 안드로이드 DMB에 의존하고 있는 바
    아마 조만간 저도 지르지 않을까 싶은데, 해주실 조언 있으신감요?(살 때 어느 사이트를 이용하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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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los250
      kalos250 says:

      중고를 사려면 와싸다닷컴, 독일직구로 하면 가장 싸다함. 국내수입정품은 원형사운드(신형은 스틱안테나가 달렸음)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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