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바쟁,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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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위엄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감각한 기계장치의 장점을 통해서 지속 도중에 정지되어 자신의 운명에서 해방된 삶의 당혹스러운 현존이다.
사진은 예술처럼 영원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방부 처리하고 시간을 부패로부터 구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 앙드레 바쟁,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 中에서 (from 이윤영 역, <사유 속의 영화>)

짧지만 내용의 무게가 있는, 긴 울림이 있는 글을 천천히, 틈틈이 읽는다.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뿐 아니라 또 다른  의미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거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도 하는 독서경험이 모처럼 즐겁다. (나의 독서 태도에도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진적 이미지를 특징짓는 유사성의 범주가 회화와 다른 사진만의 미학을 결정한다. 사진의 미적 잠재성은 현실적인 것의 드러남에 있다. 빗물이 고인 보도 위에 비친 그림자, 한 아이의 몸짓을 외부 세계의 조직에서 구별해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냉정한 렌즈만이 사물에서 습관과 편견을 제거하고 내 지각을 감싸고 있는 모든 정신적 때를 벗겨서 사물을 내 주의에, 따라서 내 사랑에 원래 있는 그대로 제시할 수 있다. 사진, 즉 우리가 알지 못했고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자연스러운 이미지 위에서 자연은 결국 예술을 모방하는 것 이상을 해낸다. 즉 자연은 예술가를 모방한다. “

자연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를 모방한다는 것은 (좀 모호하긴 하나) 대략 사진 이미지가 가진 직접성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회화가 그러하듯) 현실적인 것, 사물,  삶의 현존, 자연, 세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스스로가 말하게 한다는.

사진에 대한 꽤 근사한 헌사처럼도 들리는 이 귀절을 들여다보다 오래 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어느 고원(티벳이었을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신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그들은 신과 얘기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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