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를 보았다.

한동안 불규칙적인 생활로 늘어진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니 깜빡 놓쳐버린 몸의 리듬을 찾은양 쾌적했다. 조금 쌀쌀해진 아침공기를 흡입하니 천을 파는 곳에서 8천원을 주고 산 스카프가 흡족하다. 간지럼도 많이 타고 목이 답답한 걸 참지 못하여 추위를 많이 타 면서도 이런 걸 잘 안했었는데, 한 일년쯤 지독한 목감기로 여러 날을 고생하다보니 평생의 습관도 바뀌어 간다.

그저 습관이었단 말이지. 약간의 배신감도 스친다. 그리고 이걸 일깨워준 Y선배에게 고마움이 생긴다.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 말해줘야지. 술자리에서 한 말이니 기억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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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예매해놓은 조조영화를 보았다.
<그래비티>. 아찔하게 멋진 영화다.
영화는 “이게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듯,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힘을 한껏 보여주며 강렬한 영화체험을 선사한다.
소리, 수다의 영화이고, 끈, 관계, 기억, 두 발, 땅, 흙, 몸의 영화이며, 이 모든 것들이 중력이 되고 구원이 되는 영화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우주와 지구의 눈부신 광경은 물론이고)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작렬하는 환상적인 연기와 함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몇 안되는 관객들의 대화가 두런 두런 들렸다.
“음, 영화 끝내주는데”라든지, “이런 영화를 예매해주고, 자알 했어”하는.
뒷좌석의 총각이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뒷말을 들었을 땐 옛생각이 났고, 나도 맘속으로 스스로에게 얘기해줬다.
“오늘 선택은 정말 자알 했어”라고.
맷을 잃은 라이언(산드라 블록)이 그러했듯이.
아름다운 우주를 유영하는 건 아니어도, 그저 이 혼탁한 세상을 느릿느릿 먼지처럼 부유할 뿐일지라도, 이런 수다가, 기억이, 나날이 크고 작은 재난인 현재를 구원해줄 거라 믿으며  믿어볼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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