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Feb 2014

이진경, 나의 유목과 나로부터의 유목

예술가는 어떻게 유목하는가?: 나의 유목과 나로부터의 유목
이진경

이미 상투어가 된 감마저 있지만, 그런 만큼 지금이 ‘유목의 시대’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어딜가나 만나지 않기가 힘든 ‘글로벌’이란 말은 그 유목의 범위가 이젠 지구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명시한다. 물론 밝은 빛은 언제나 어두운 그늘을 만들기 마련이듯이, 글로벌한 이동은 더없이 강력한 절단기계를 감추고 있다.
자본은 지구 전체를 아무 장벽없이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이동하고, 자본의 증식을 위한 ‘고급인력’ 또한 그에 근접한 양상으로 이동하지만, 글로벌 도시의 물질성을 유지하는 ‘저급노동력’은 국경의 벽을 넘어도 매일 일상적으로 덮쳐오는 치안과 차별의 벽에 의해 절단되며 이동한다.

예술가들이 타고 있는 이동의 흐름 또한 전에 없이 빨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20세기 초, ‘현대미술’이 시작된 시기부터 미술은 어느 것보다 빠른 이동의 속도와 유목의 강도를 갖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마리네티의 시는 프랑스의 <피가로>지에 게재되었고, 슈츠킨의 콜렉션은 ‘촌뜨기’ 러시아 화가들로 하여금 가보지도 못한 파리의 새로운 미감을 체험하고 새로운 예술을 시작하게 했다.

취리히, 레닌이 살던 집 건너편에 있던 카바레 볼테르는 처음부터 ‘이방인’들이 모여 밤새 요란하게 ‘해체’를 진행하던 국제주의적 난장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다다의 국제주의는 다시 프랑스, 미국 등을 하나로 묶는 이동의 경로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내 주변의 ‘별 볼일 없는’ 친구들까지 걸핏하면 로마와 런던, 이스탄불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고 전시를 한다. 이런 국제적 이동의 회로는 이제 이런저런 기금과 ‘레지던스’ 등으로 충분히 안정적으로 제도화된 듯하다.

들뢰즈/가타리가 ‘노마디즘’에 대해 말했을 때, 이런 양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바디우가 세기란 책에서 장소 바깥, 법 바깥에서의 방황이나 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바시스’란 말로 20세기를 명명했을 때, 그가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느 것이 이토록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면,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이나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진 이라면, 그 빛의 이면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자신에 필요한 것을 찾아 부지런히 이동하는 ‘이주민’과 대비하여 ‘유목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적 정의를 제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게다. 필요한 것을 찾아 이동하지만 그게 다 떨어지면 그 땅을 버리고 떠나는 이주민과 달리, 유목민은 불모가 된 땅에 달라붙어 거기서 살아가는 법을 창안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목이란 보따리나 낙타, 비행기나 여권이 표상하는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앉아있어도 끊임없이 탈주와 변이의 선을 그리는 내적인 강도를 뜻하는 것이 될 게다.

유사하게도, 바디우는 ‘아나바시스’란 제목의 시를 썼던 두 시인을 언급하면서, 유목과 방랑의 상반되는 두 극을 보여주려 한다. 한 사람은 프랑스 외교관이 되어 ‘이동’하는 삶을 살았지만 나치 점령 이후 미국에 망명했고, 나중에 노벨상까지 받은 생-존 페르스(Saint-John Perse)고, 다른 한 사람은 모친을 처형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프랑스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며 살다 결국 자살한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선량한 외교관이었고, 자신의 ‘조국’과 결별하여 서구의 거대한 평원에서 벌어지는 서사적 사건을 다루는 고상한 방랑자였던 페르스는 장대한 스케일의 유목을 말하지만, 그것은 “제국의 꿈이 지닌 천국 같은 방랑적 힘”이었고, 그가 말하는 방랑적 박애는 ‘우리’라는 말로 ‘나’를 확장해가는 것이었다.

반면 첼란은 장대한 평원 대신 벽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간다. 그 길에서 보이는 가슴 밝히는 미래가 진실인 한 그것은 불가능한 어떤 것일 거라는 절망 속에서 방황하지만, 아무도 항해하지 않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다를 끌어들이며, 나도 우리도 없는, 아무나 하나로 묶어주는 ‘함께’라는 말로 ‘천막’을 친다.

외교관 페르스의 이동과 유목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면, 시인 첼란은 외부적 요인에 따른 것이었고, 전자에게 국경이란 넘어야 하고 넘을 수 있는 문턱이었다면 후자에게 국경이란 넘고 싶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전자에게 유목이란 국경을 넘어 다른 세계를 탐색하며 자기를 확장해가는 즐거운 여행이었겠지만, 후자에게 유목이란 국가적 관계 때문에 배워야 했던 러시아어나 독일어,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했던 외국어들처럼, 외부에서 자기 안으로 밀고 들어오며 ‘나’를 해체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자에게 ‘우리’란 나의 확장이었지만, 후자에게 ‘함께’란 “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천막”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동이나 유목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이지가 결정적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의로 시작한 여행 속에서 뜻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의 벽이 와해되며 외부에서 오는 것에 의해 침윤되는 이도 있고,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기에 두려움 속에서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자아의 벽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며 매일밤 떠나온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이도 있다.

블랑쇼가 유리 가가린에 의해 시작된 ‘우주여행’을 지구라는 대지, 인간의 고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비록 소박한 공상 속에서였겠지만, ‘우주여행’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는 가능성에 열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이 발 디딜 대지 없는 세계에서 나의 삶, 인간의 삶은 대체 어떻게 달라질까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영토를 우주로 확장해간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 한, 그 가능성이란 ‘나’의 확장으로서 ‘우리’를 이해하고, ‘내 땅’의 확장으로 ‘지구’나 ‘우주’를 이해하는 제국적 팽창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마음은 대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대지로 강하게 되돌아온다.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많은 이들의 찬사는 이런 제국적 우주여행의 관념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었던가를 역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지구를 떠나면서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극도의 그리움, 발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느끼는 중력의 한없는 아쉬움, 이를 단지 우주여행에만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뒤샹이 오래 전에 분명하게 해준 것처럼, 이미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대결하는 지점이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는 지점이다. 예술은 언제나 지배적인 것과 대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기억할만한 예술가란 그 대결의 지점에서 탈주선을 그린 이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술은 유목을 그 본질로 한다. 하지만 이 때 유목이란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다. 주어진 영토를 떠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지배적인 양식에서, 지배적인 관념에서 떠나는 것이다.

말레비치와 타틀린은 이를 지배적인 감각에서 떠나는 것, 감각을 전복하고 ‘혁명’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술가의 유목이란 근본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떠나 다른 감각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자신의 감각적 표현형식에서 떠나 다른 감각적 표현형식을 창안하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새로운 감성의 체제를 창조하는 것이고, 그런 감각으로 대중을 촉발하는 것이며, 그 감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난관은 그 다음에 온다. 새로이 창안된 양식이, 새로운 종류의 감각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그것은 더 빨리 자신의 영토를 만들게 된다. 대게 ‘성공’의 표지를 달고 있는 그 영토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출현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그래서 아방가르드조차 어느새 앞서 치고나가는 게 아니라 새로이 출현한 것들을 저지하고 쳐내기 십상임은, ‘입체주의자’인 메챙제 등에 의해 쫓겨난 뒤샹의 사례가 아주 잘 보여준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보스’가 된 앙드레 브르통이 ‘이단심판’을 하듯이 아르토나 다른 예술가들을 추방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번의 넘어섬, 한 번의 떠남은 유목을 정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유목이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음’이고, 지배적인 어떤 것으로부터도 떠날 수 있음이며, 그렇기에 영원히 반복하여 떠날 수밖에 없음이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이다.

이런 떠남과 이동은 무엇보다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 ‘내’가 떠나고 돌아다니는 여행이란 장사하는 상인의 여행이고, 나의 동조자를 규합하며 나의 확장된 버전인 ‘우리’를 만드는 팽창적 여행이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가는 제국적 여행이다. 예술의 본질에 부합하는 유목민이란 차라리 반대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대면하게 된 외부, 그 타자들을 통해 자신을 떠나는 자, 그렇게 내게 밀고들어오는 것을 통해 나를 변이시키고 내게 섞여들어온 그것을 변형하는 자, 그럼으로써 누구보다 자신의 감각에서 떠나며 감각적 혁신을 반복하는 자. 낯선 것들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영토를 비워두는 자,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것과 섞여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창안하고 재창안하는 자.

그는, 앞서 인용했던 첼란의 싯구를 다시 빌면, 내가 “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자일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던 것을 떠나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된 자일 것이다. 그런 해방을 반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워서, 텅 빈 천막처럼 존재하는 자일 것이고, 들어오는 모든 것과 섞이며 변성되는, 비인격적이고 비인칭적인 ‘함께’라는 접속의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장소 없이 떠돌기에 가는 곳 모두가 장소가 되는 ‘갤러리’가 되어 다른 이의 작품을 받아들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건 속에서 사실은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와 변이의 선을 그리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서, 다른 이가 떠올랐다.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찾아가 텐트(천막)를 치고, 텐트 안에서 연극으로 그 사건을 담으면서 다른 사건으로 변성시키며, 그럼으로써 자신 스스로의 감각을 반복하여 바꾸어가는 일본의 연극인들이(극단 이름도 멋있다: ‘바람의 여단’, ‘야전(野戰)의 달’).

이런 이들이야말로 예술가들이라면 이동할 때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강력한 촉발자들이다. 예술가에게 걸맞는 유목이란 ‘내가’ 이동하는 것이나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떠나고 나로부터 이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미술세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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