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동안의 아이보기

꼬박 나흘 동안을 아침엔 “장금이”(제부의 바쁜 한의원일을 돕느라 부지런히 약을 짓는 걸 일컬어 앞집 애기엄마가 붙여준 호칭)로, 이후부터 취침시간까지는 다섯살 아이의 눈높이로 살았다.

핼로키티와 돈을 최고로 아는 아이에게 “이웃집 토토로”와 “아이스에이지”, “몬스터주식회사” 등을 보여주었고(놀랍게도 아이는 흔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하나도 본 적이 없다했다. 대신 엄마가 보던 무슨 김희선이 나오던 드라마 비디오를 보며 줄거리를 내게 설명해주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선물을 사달라고 졸라서 들어간 핼로키티 점에선, 이미 집에 있지 않은 상품을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 ),아기자기한 어린이 컴퓨터게임, 그림그리기, 숫자 글자 공부도 하였으며, 함께 뛰어놀고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었다.

아이는 엄마도 별로 안찾고 잘 먹고 잘 자고, 자다깨도 이모를 찾았다. 다행한 일이었고 기특한 일이었지만, 이 어린 아이와 내가, 완강한 가치관의 차이에 부딪히는 건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아이는 발음이 약간 불안한, 그러나 근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돈은 정말 중요한 것이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야”
“옷을 예쁘게 입는 건 정말로 중요해. 밉게 입으면 사람들이 안좋아해. 이모는 옷이 몇 개야? “

아이의 가장 큰 취미 생활을 옷을 골라서 바꿔 입고 거울 앞에서 폼잡기, 두 번째 취미는 여러개나 되는 자기 지갑을 열고 돈 세어보기이며, 아이의 가장 큰 애정표현은 1불짜리 지폐를 선물하는 것이다. 나도 한 네 번쯤은 1불 지폐를 받았다.

또한 아이는 지갑이든 가방이든 남의 집 서랍장이든 뭐든 열어보고 꺼내보는 취미를 가졌다. 그리고 맘에 드는 걸 “선물” 이라는 이름으로 강탈하기. 나쁜 버릇이었으므로 야단을 쳐보기도 하였으나 허사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엄마가 이걸 지적 호기심이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오전에 가는 유치원에선 친구가 없다. “그곳 아이들이 수준이 낮아서 아이들과 못놀고 선생님하고만 말을 해요” 라는 떠들썩한 엄마의 자랑을 열번도 더 들었다.

선물을 사달라고 졸라서 들르는 신발가게, 옷가게, 선물가게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골라대는 모습은 강박증 환자 같고 타인의 물건, 특히 옷과 신발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어, 앞집 돌 된 아기의 옷까지 마구 꺼내어 입어볼 정도였다.
그리고 야단을 칠라하면 뻔한 거짓말을 해대곤 해서 나를 슬프게 했다.

아이의 이런 행동엔 그의 엄마가 되풀이 해대는 어떤 말들과 행동들에, 인과관계가 너무나 뚜렷한 선이 찌익 그어졌다. 이 아이를 맡아 돌보면서, 나는 종종 암담해져 한숨이 나왔고, 김규항씨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도 했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토토로를 보며 함께 낄낄거리고 불쌍해, 귀여워, 환호해대는 걸 보면 분명 영낙없는 다섯살 아이인 것을,
도대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자격으로,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말이다.
 
기도원에서 돌아와 아이와 떠들썩하게 애정을 확인한 후 내게 고맙다고 “기도원식으로” 포옹을 해대는  그녀를 맞이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웃음은 부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이제 끝이다. 난 최선을 다했으며 이젠 좀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다짐도 한다.
이젠 내 일에 매진해야지.

휴. 온몸이 욱신욱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3 답글
    • kalos250 says:

      그러게…. 어쩌다 이런 일에 말려들고 말았네.
      이럴 줄 알았음 지리산에도 같이 가고 그러다 좀 천천히 오는 건데. T.T
      이젠 내 일에만 신경쓸겨.
      거절의 미학을 배워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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