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사랑이라니

회사의 82년생인가, 83년생인가 순진해 보이는 말간 얼굴의 젊디 젊은 개발자는, 빚없는 여자를 만나서 빚없이 사는게 꿈이라고 말한다. 뉴하트처럼 능력있는 여자가 자기보다 못한 여자를 만나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거라고 한다.
그가 안쓰러웠다 했더니, 사람들이 그런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그래.
사랑 따위 꿈꾸기엔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는 것이다.

며칠 전 후배들이랑 술 한잔 하다가 어쩌다 사랑, 이라는 얘기가 잠시 나왔는데,
내가 “사랑따윈 안 믿어” 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알았다.
언젠가 뭔 이유로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게 그녀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사랑, 이라는 말을 발음하는 일이 참 줄어든 게 사실이다.
말해봤자 내가 뱉았다는 저 지경이거나, 치기어린 사치로 치부되거나, 가쉽거리나 농담이나 조롱에 등장하는 것이 다이다.
현실세계에 속하는 어떤 것이 아닌 것으로 매장된.

그렇지만 그게 다일까.
사랑이란 건, 있고 없고 하는 게 아니라, 믿고 안 믿고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품고 행하며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며 사는 것. 그건 정말 큰 행복인 것인데, 가지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해버리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닌가, 라는 뜬금 없이 유치한 생각을 잠시 했었다. 명동 한 복판 이층 호프집 창문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엘에이에서 잠시 다니러 온 친구가 화려했던 제 이십대를 회상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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