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날씨 : 까칠 까칠

지켜야하는 것이면 지킬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싸워야하는 것이라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5 답글
  1. j says:

    작년 오늘 …흰 쌀밥에 미역국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마음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생일 축하합니다…

    응답
    • kalos250 says:

      고마워요.
      먼 땅에서 맞이했던 생일날. 잠이 덜 깬 눈으로 마주했던, 전혀 예상치 못했던 푸짐한 생일상의 기억이 생생히 살아나네요.
      마치 동화속 소공녀가 된듯 했던, 그처럼 따뜻하고 풍요로운 생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또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올해엔 미역국도 못 먹었어요.ㅎㅎ)
      날씨가 적당히 놀러가기 좋은 만큼 화사해진 요즘엔, 당신들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함께 먼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아쉬워서 그런가봐요.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과 그 땅을 떠나는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당신에게 이리 생일축하를 받으니, 정말 멋진 응원단의 힘찬 응원가를 듣는 듯 합니다.
      잘 살께요. 건강하게. 그대도 그럴꺼지요?

      응답
  2. sattva says:

    흑기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희망과 절망의 위태로운 변주곡-

    1. 아침, 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선선하다. 치열하게 죽어가는 매미들의 서러운 울음 탓일까? 여름은 끝자락을 길게 늘인다.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들의 영면을 애도하듯 어디선가 귀뚜라미는 조용히 흐느끼고, 그 영가에 이끌린 가을이 저만치 서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느덧 1000일을 훌쩍 넘겼다. 생존을 위해, 단지 ‘살기위해 죽음을 각오한 단식’도 벌써 80여일을 바라보고 있다. 파리한 얼굴, 바스락거리는 살갗, 메마른 몸뚱이는 가랑잎을 닮았다. 스산한 가을들녘에 구르는 매미의 주검을 닮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모진 목숨을 생각하며 나는 한 없이 무기력 했다. 몇 차례의 농성장 방문 중 한번 뵙고나 가라는 한 분회원분의 요청에도 그네들의 앞에 서기가 두려워 차마 사다리를 오를 수 없었다. 아니, 그 아래에서조차 도망치고 싶었고, 머무는 내내 그 충동을 참아내는 것이 고작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얼마 전 꺼져가는 숨을 잠시 잡아두기 위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고 한다. 최저임금보다 10원을 더 받는 그 끔찍한 노동을 다시 하기 위해서 단식은 계속된다고 한다. 시작은 봄이었으되, 무더운 여름을 넘기고, 벌써 가을의 초입이다. 삶을 위해 죽음을 택한 걸음은 여전히 위태롭고 아득하게만 보인다.

    2.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영화 속에 그려지는 고담시의 모습은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전 세계 모든 대도시와 닮았다.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굳이 ‘50보 100보’의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결코 본질을 호도할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타인의 생명조차 한 없이 가볍게 여기는 악인의 존재가 그러하며, 시민의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는 등한시한 채 악인들과 손잡고 잇속을 챙기는 정부 기관의 기능이 바로 그러하다. 현실을 극복할 아무런 의지도 없어 보이는 시민들의 무력한 모습이 그러하고, 무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추악하기까지 한 경찰의 모습이 또한 그러하다.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기괴하게 얽힌 이러한 현실 조건들이 배트맨이라는 독특한 영웅을 직조해 냈다. 정의수호를 천분으로 여기고 체제유지에 일정 복무하는 여타의 영웅들과 달리 배트맨은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기에 스스로를 필요악으로 규정한다. 그런 까닭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어둠을 배경으로 활약하며, 늘 경찰의 추격을 받는다.

    3. 지난 8월15일 촛불집회는 100회를 맞았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인가? 100번이 넘는 촛불집회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막아내지 못했고, 교육감선거에서 패배했다. 시민들의 몸뚱이는 결코 무쇠가 아니었다. 지친 시민들은 하나 둘 자리를 비웠으며, 그 틈을 탄 경찰의 폭력은 갈수록 공공연해지고 가혹해졌다. 폭력의 공포는 사람들을 더욱 위축시켰고, 빈자리가 늘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경찰은 폭력의 강도를 더해갔다. 그들이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더 큰 공포를 느꼈다. 그 날은 밤새 하늘도 흐느꼈다.

    시민들의 요구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저 합리적인 국정운영을 바랐고, 합법적인 법집행을 원했을 뿐이다. 이에 돌아온 정부의 대답은 참으로 난감한 것이었다. 처음엔 못 듣는 척 하더니 때를 만난 듯 폭력을 휘둘렀다. 물대포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색소를 섞었고, 연행한 시민 수에 인센티브를 걸었다. 경찰은 사복체포조를 투입했고, 시민들은 인도와 상점을 가리지 않고 연행되었다. 지난 3달 동안, 아니 광복이후 60년의 세월동안 그토록 짓밟히고도 참아 온 국민들이, 무참히 유린되어 누더기로 남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참으로 가엾게 여겨졌다.

    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처녀작 ‘메멘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을 줄곧 잃어버리는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쫒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남자는 폴로라이드 사진과 메모들로 기억을 보완하며, 범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기억에 관한 독특한 설정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별다를 것 없는 영화다. 미장센이나, 가끔 등장하는 폭력과 살인의 장면은 다른 영화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영화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불쾌감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공포로 뒤바뀐다. 마치 무한반복하며 상승하는 캐논의 변주처럼 영화의 끝부분은 첫 장면과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주어지던 불쾌한 암시는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화의 엔딩은 끝없는 추격과 살인이 반복될 것을 암시한다. 무한히 반복될 것임에 분명한 악몽은 공포를 넘어선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함을 느끼게 했다. ‘자기회기’와 ‘영겁회귀’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화두인 듯 보였다.

    5. ‘다크 나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놀란의 색깔을 잘 드러낸다. 마치 ‘클라인씨의 병’처럼 열렸지만 닫힌 도시 고담시와 그 속에 부유하는 시민들이 그러하며, 배트맨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조커’의 존재가 또한 그러하다. 부패한 경찰조직에 몸담고 있는 정의로운 경찰 ‘고든’이 그러하고,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에서 살인마로 돌변하는 ‘하비 덴트’ 검사가 바로 그러하다.

    어린 시절 우물 속에서 마주쳤던 박쥐에 대한 공포, 자신의 변덕으로 부모가 살해되었다는 원죄의식, 범죄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사회에 대한 분노 등등의 복합적 심리상태가 ‘자신을 가장 두렵게 했던 모습으로 악인에게 공포를 선사하자’라는 ‘웨인’의 욕망의 기제가 된다. 즉 배트맨의 가면 뒤에는 공포와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욕망에 가장 충실했던 ‘조커’는 물구나무 선 배트맨이지 않은가. 애인을 지켜내지 못한 슬픔에 조커의 유혹에 빠진 하비 검사 역시 가면에 가려진 또 다른 배트맨의 모습으로 보인다. ‘조커’의 계략에 빠져 본의 아니게 범죄를 도왔던 ‘고든’형사 또한 다르지 않다. 고담시는 고담시 시민들이 가지는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며, 조커, 고든, 하비는 배트맨의 가면으로 감추어진 웨인의 얼터에고처럼 보인다.

    6. 지난 5월, 6월 촛불집회가 날로 그 규모를 키워나갈 때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다. 무능하고 무책임 하며 부정하기까지 한 현 정부를 비난하는 모습은 자못 정의롭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 흥분은 크고, 열기 또한 뜨거워서 한미FTA의 성사에 모든 것을 걸었던 지난 정권의 국회의원들조차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한 동안 나는 민망하고 참담했다. 바로 얼마 전 그들 자신의 손으로 지금의 정권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아래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몇 년째 힘겨운 싸움을 버텨내는 이들의 고통스런 신음이 당시의 정의롭던 시민들에겐 그다지 큰 일이 아닌 듯 여겨져서 더욱 비통했다.

    7. 두 척의 배가 있다. 한쪽에는 죄수들이 가득 차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시민들로 채워져 있다. 두 척의 배에 폭발물을 설치한 후 조커는 각각의 기폭장치를 서로 다른 배에 전달한다. 12시까지 기폭장치를 누르는 게임이다. 먼저 기폭장치를 누르는 쪽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끔찍한 게임의 결과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괴롭히더니, 영화가 끝난 후부터 무려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줄곧 머리를 아프게 했다.

    미시경제학의 이론 중에 ‘네쉬균형’이란 게 있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라는 명칭으로 보다 널리 알려졌다. 두 명의 죄수를 심문한다. 두 죄수는 아무런 소통도 할 수 없다는 조건이다. 죄수들은 자백, 또는 부인의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두 죄수 모두 자백하면 5년 형을 산다. 둘 중 한 죄수만 자백하면, 자백한 죄수는 풀려나고 부인한 죄수는 10년 형을 산다. 만일 두 죄수 모두 부인하면 둘 다 풀려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둘 다 부인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상대방이 자백할 때 자백하면 5년 형, 상대방이 부인할 때 자백하면 풀려난다. 상대방이 자백할 때 부인하면 10년 형, 상대방이 부인할 때 부인하면 풀려난다. 상대방이 자백하든 부인하는 최선의 선택은 자백하는 것이다. 두 죄수가 소통할 수 없다는 조건 때문이다.

    이 이론은 폭력으로 폭력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좀 더 확대하자면 핵으로 핵을 견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드러낸다. 만일 일정시한이 주어진다면, 핵을 보유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핵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두 배 모두 자신이 가진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다.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안도한다.

    8. 살다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선의로 곤경을 벗어나게 되기도 한다.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힘들이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두 배에 갇힌 죄수들과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한다. 그들은 배트맨의 영웅적 도움이나, 조커의 갑작스런 개심 따위의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차마 수많은 생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빼앗을 수 없기에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기적은 다른 게 아니다. 그 어리석은 선택이 그들 모두의 생명을 살렸다. 그들은 더 이상 흑기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되돌아보면 역사는 크나큰 힘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어리석고 연약한 힘들이 역사를 바꾸어 왔다. 흑기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배트맨은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영화가 길었던 때문인지 생각은 많고 글 또한 두서없이 길어져서 당혹스럽다. 기륭전자, 이랜드, 하이텍알씨코리아……이름 없는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지금 이순간도 우리의 참담하고 끔찍한 역사를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흑기사를 기다리지 않는다.

    점심은 별 다른 일정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미역국 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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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촌사람 says:

    오랜만에 오니 생일이셨네요. 따뜻한 흰 쌀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은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몬가가 있는 것 같아요. 매일을 생일같이 맘 따뜻한 사람들과 나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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