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기

날씨가 정말 춥구나.
추위를 핑계로 방안에서 빈둥빈둥.
할 일이 많은데 진도가 안나간다고 일어나 어슬렁거리다
커피를 반통은 내려 마신 것 같고, 인터넷으로 주문해 채워두었던 냉장고도 표나게 비어간다.
냉장고가 너무 작은 게야, 라고 항변한다.

주원앓이가 대세라든가.
밥먹는 사이 켜놓았다가 보게 된 드라마속 남자는
목소리가 내 아는 이와 꼭 닮았다.
현실속의 그는, 물론, 목소리만 닮았다.
그런데도 추억이 어른거리는 걸 보면,
목소리가 일으키는 연상작용은 강력하다.
아니, 드라마의 환타지가 그러한 것인가.

ㅊ삼촌은 겨울이 좋다고 했다.
“겨울이 좋을 수 있는 건, 따뜻해질 수 있어서야. 그러니까 겨울은 따뜻해야 하는 거거든.”

겨울을 좋아하기 위해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고 전기히터도 수시로 틀고 따뜻하게 밥을 해먹고 따뜻한 커피도 수시로 마신다.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다 세일한다고 함께 들여온 전기 방석은 두어 번 틀어보곤 냅두었다. 너무 따뜻해서다.
전기세가 신경쓰이는 것도 있지만, 추운 겨울에 너무 따뜻하게 지내는 건 좀 찔리는 일이다.

베란다에 세탁기와 하수도가 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닥에 손이 안닿아 까치발을 하고 버둥거리게 하던 덩치큰 구식 세탁기는 옷가지 몇 개를 끌어안고 꽁꽁 얼어 있다. 이젠 간단한 건 손빨래를 해야한다. 손빨래 하는 게 싫어 니트류 같은 연약한 옷은 절대 안사는 나이건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추운 데서 찬물로 하는 거 아니면 손빨래도 할 만하단 생각이 든다.

자그만 방안에서,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고, 최소한의 반경으로 사고를 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손가락만 까닥이며 다시 최소한의 일을 한다.
환기를 하려 잠시 창을 열었다 들여마신 바깥세상의 공기는 너무나 차가운데,
나는 ㅊ삼촌처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은가보다. 

*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영하 50~70도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러시아 마을을 소개했다.
 뜨거운 물을 컵에 담아 허공에 뿌리니 바로 얼음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뿌려지고, 언 바나나는 망치로 쓸 수 있단다.
그 곳의 겨울이, 삶이 궁금해진다. (추운 겨울 나이테의 단단함, 촘촘함, 밀도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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