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센타

가슴이 아픈 게 아무래도 신체적 증상인가봐,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겠어,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몸이 훨 가벼워졌다.
마치 병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아이를 데리고 사는 것만 같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생일상을 차려주는 일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무심한 엄마.  
그런 걸 미안해하지도 않는 당당한.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몸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대신 카메라와 렌즈를 가지고 서비스센타로 갔다.
마이너 브랜드를 고수하는 까닭에 센터로 가는 길이 멀다.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에 대해서도 작동되는 쓰잘 데 없는 투사와 고집 때문에 수족이 고단하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전철 타고 버스를 갈아 타고 강을 건너 도착한 서비스센터에 기기를 맡기고 점검이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비치되어 있던 <윤미네집>을 넘겨 보았다.
사진집에 담겨진 그림들은 온통 “즐겁고 행복한 유년”이라 말할 때 그려질 만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집에서 자란 이가 (신의 질투를 받지 않는 한)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될만큼 .
행복을 느끼는 것도 능력이라면 그 능력을 키워주는데 이만한 환경이 있을까 싶게.  
누구에게나 있었을 평범한 일상, 이라고들 하지만 이 단어들 앞에서 결핍감을 느낄 아이들이, 불우한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 때 아이였던 어른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 을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  
렌즈는 이상없는데 바디 포커스 부분이 심하게 뒤틀어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친절한 기사가 결과를 말해주는데 내 몸의 척추가 한 차례 들썩였다.
그럴 줄 알았어, 중요한 때 포커스링이 버벅버덕 대더라니.  
그러니 사는게 집중이 잘 되겠어.
또 또… 쓸데없는 투사가 작동한다.
이번엔 너무 많이 나갔다 싶어 서둘러 잡아채와 내 몸안에 넣고 꼭 꼭 잠근다.
다음주 초반이면 잘 교정된 카메라 바디가 손 안에 들어올 것이다.
교정받을 기회는 가지지 못했지만 새로운 일정들을 시작해야하는 내 바디도 정신을 차리고 온순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맛난 것도 찾아 먹여주고 기름칠을 좀 해줘야겠다.  
여름의 막바지 더위가 뜨겁다.  
그래도 농민들을 생각하면 불평을 할 수가 없다.
빨리 빨리 곡식을 영글게 해주고 과일에 단맛이 흠뻑 들게 해준 뒤 우아하게 이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답글
    • kalos250
      kalos250 says:

      그 센서를 마비시켰던 것들을 걷어내면, 그 감각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쳐가네요.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 때는, 적어도 생에 한 번쯤은 우리 모두 능력자였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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