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길지도 않은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참 많은걸 잃었구나
잊기 싫었던 기억들을 이 길 위에
나는 참 많이도 흘렸구나

주섬주섬 빈 가방을 뒤저
너를 위한 마지막 편지를 쓴다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이렇게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두리번거리고 한 눈 팔면서
많은 기억들을 흘리는 동안
어느새 나 혼자 남았다

언젠가는 너도 이곳을 지나갈까
그 때까지 이 편지는 여기 남아 있을까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공들여 접은 편지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 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다시 길을 가야지

어쩌면 이제 우리가 어딘가에서
다시 한 번 마주칠 일은 없을 지도
버려도 다 버리지 못 할 너의기억
함께 가는 이 길이 외롭지 않아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공들여 접은 편지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 놓고서
안녕 이제 난 다시 길을 가야지

– 정재일, 주섬주섬

저처럼 울고, 저처럼 앓으면서 보냈던 한 시절의 어린 나의 기억들과
또 한 시절 당신이 내 길 위에 흘렸던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할” 숱한 기억들과
내가 잃기 싫었으나 잃어버린, 혹은 떠나보낸 그 많은 기억들을 호출해, 주섬주섬 챙겨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의 “Mourning Diary”를 쓰고
그 위에 “작은 돌 하나” 얹어 놓으면
안녕하고 다시 떠나는 길이, 혼자 남은 여행길이 덜 외로워지나?
그렇게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일까?

(저 아이는 어떻게 저런 먹먹한 눈빛과 표정들을 지을 수 있는 건지 놀랍다.
저 아련하고 눈물겨운 영상속에 “눈물꽃”으로 알게 된 정재일의 목소리 또한 잘 스며들어 녹아있는 느낌.
시와의 트윗을 통해 보고 찾아보니 2009년 개봉을 한 영화구나.
이런 영화를, 함께 먹먹해져서, 눈물이 나서, 제대로 볼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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