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Nov 2011

으아… 오늘도 잠이 안와.

불면의 시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 철학, 혹은 예술 등의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 뭔가 주워들었을 법도 한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없이 빠작거리는 사소한 생각들, 기억들, 생각을 멈추고 어서 자야한다는, 내일에 대한 강박.  
며칠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잠이 덜 깬 채로 멍하다가 밤에 일찍 반신욕을 하고서 잠이 설핏 들었는데, 한시간 만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내일 일에 대한 간단한 뭔가를 묻는 전화였다. 그리고선 말똥말똥.
정신없이 빡빡했던 일정이 끝나고 몸이 좀 편해져서 그런가. 이제 달콤한 잠은, 고달픈 일과에 대한 보상으로만 주어지려 하는 것일까.
그 며칠간 잠을 청하며 이불 속에서 한두 시간을 뒤척거리다 영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면, 물을 끓여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우유 등을 데워 마시며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읽었다.
글씨가 깨알같던 1998년 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에 수록된 것이다. (사실 이런 책은 내 책장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아 처분되었기 때문) 게다가 이런 제목이면 수면을 부르기에 적절할 수 있었을 텐데.
페이지수가 많지 않지만 행간이 길었던 이 텍스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미래가 지니는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에게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간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門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내일, 아니 오늘 일요일은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이 있다. 여러 시간 긴장이 필요한 일이 끝나면 맥주나 한 잔 마시고 혼곤한 잠을 청해봐야겠다.  

Comments

  1.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멈추기, 복잡한 심상을 담담하게 만들기, 머리를 고요하게 만들기, 나는 이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이 수련이 경지에 오르면 잠이 옵니다.
    불면의 상념이 인간의 멋이라고 생각했던 내 사춘기를 생각하면 큰 변화이자 깨달음입니다. 나로서는…

    • 오랫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거긴 벌써 하얀세상이겠네요.
      여긴 어제서야 추위가 시작되어, 어, 참 겨울이었지, 그러는 참입니다.
      어제는 여러 번 잠을 깨긴 했어도 비교적 오래 잤는데,
      한나절 긴장있는 노동과 알콜의 힘을 빈 것이니, 그 수련의 경지는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제게는. ^^
      그렇긴 해도, 생각 하나쯤 꺼내어놓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으니,
      이렇게 나아지겠지요.
      추운 겨울, 따숩게, 건강히 보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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