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을 바꾸다

최강희처럼 해주겠다는 미용실 언니의 말에 넘어가 헤어스타일을 확 바꿨다.
날이 더우니 포비같은 머리카락이 걸리적리기 시작하고, 거의 평생 한결같은 머리가 좀 지겹기도 했던 참이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 정말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견딘 결과를 미용실 언니는 매우 흡족했지만 내가 봐도 최강희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지난 월드컵 때 안정환 머리를 따라해서 실패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무튼 이런 모양을 하고 나가니 사람들이 참 많이, 오래 놀린다.
“아 최강희? 그래, 가만 보니 최강희 감독이랑 비슷한 거 같네 ㅋㅋ” 하는 식이다.
꾸준한 놀림을 받으면서 그래도 이마가 시원하고 사람들에게 재미도 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자, 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혹은 긍정적이기로 한) 나.  
N선생의 말대로 사는 게 참 심심한 거긴 한가부다.
“원래 그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이번 전시는 좀 실망이었어요. 이전에 좋아했던 은유와 상징의 맛이 없어지고 너무 직접적이니 재미가…”
거의 똑같은 말을 두사람으로부터 따로 들으면서 뭔가 물으려다 말았다. 목적어-무엇을 은유하고 무엇을 상징하는 지에 대한 언급이 빠진 은유와 상징의 맛이란 게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 앞에선 맛이라든지 재미라는 단어를 쓰기가 어렵다는 생각도 끼어들어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경직성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우리 몸에 뼈가 있어야 하듯, 이 땅에 발딛고 살고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저마다 최소한의 경직성은 있어야 하니까.

실상은 아직 전시를 보지 못했으니 별 할 말이 없었다. 주말까지라 하였으니 급한 일 대략 마쳐놓고 토요일쯤엔 잊지 말고 챙겨봐야겠다.

행복에 대한 과도한 추구가 행복과 반대의 상황을 불러오는게 아닌가 싶은 경우를 종종 본다. 음식에 대한 탐닉을 비롯해, 그 어떤 욕망-탐욕스럽고 세속적인 것이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든 상관없이-의 추구도 강박이 되면 삶을 해하게 되지 않을까.

세월을 따라 무심하고 무감해지는 마음과 감각도 서글픈 일이지만, “건강한 강박”을 유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어쩌면 그는 단지 자신의 진정성을 내가 알아주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미리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안심시켜준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무심한 시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어쩌면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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