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식충이들

식충이들/ 오은
 
  밥을 먹는다 습기 먹은 김을 먹고,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고기 2인분을 먹고,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탄내도 덤으로 먹는다 풀 먹은 옷을 입고 담배를 뻑뻑 먹으며 출근을 한다 동료들에게 빌어먹을 골탕도 먹고 겁을 먹고 찾아간 부장에게 욕도 한 두어 바가지 얻어먹는다 독서 좀 하려 했더니 책 모서리는 개먹어 있고, 코 먹은 소리로 친구에게 전화하지만 전화는 먹통이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지금 이 순간, 공주님들은 이슬을 먹고 부잣집 어린이들은 꿈을 먹고 화투판에서는 똥을 먹는 아주머니들도 있겠지 연탄가스를 먹는 이들, 본드를 먹는 이들, 미역국을 먹는 이들, 아무렇지도 않게 꿀꺼덕 검은 돈을 먹는 이들도 있을테지
  퇴근 후, 술을 처먹고 아편 대신 육포도 씹어 먹고 좀먹는 속이 걱정되어 보약도 챙겨 먹는다 왕년에는 식은 죽 먹기로 1등을 먹었었는데, 어떤 일이든 척척 거저먹었었는데, 식욕은 왕성해지는데 먹어도 먹어도 떨어지는 게 없다니! 독하게 마음 먹고 회사의 공금을 좀 먹어 볼까? 콩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그러다 운 좋게 한자리 해 먹으면 뇌물도 먹고 쓴 소리에는 적당히 가는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배우자의 영혼도 야금야금 갉아먹을 테지
  나는야 벌레 먹은 사과처럼 흉해져서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다가 자살골을 먹고 스스로 입을 열어 레드카드를 먹는, 자면서도 어김없이 끊임없이 틀림없이 산소를 먹는, 그러면서도 항상 배고프다고 소크라테스처럼 투덜거리는
 
  당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앉은자리에서 손 하나 꿈쩍 않고
  1,397바이트를 소화시킨 무시무시한 당신은

–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 2009)
* 음식 사진을 올리고 난 후, 뱅쇼님의 블러그에서 이 시를 봤다.
“극단의 언어유희”가 신랄하다.
 오늘 내가 먹은 것들을 떠올려 보고, 오늘도 너무 많은 것들을 먹었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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