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Sep 2012

난 병원에만 다녀오면 센치해져…

까짓 대단치도 않은 증상으로 종종 자기 존재를 알려오는 까탈스런 신체구조를 가진 탓에 오늘은 두 번째 피부과 병원나들이를 했다. 상류층의 표식이 하얗게 빛나는 피부와 치아라는 시대를 살면서 두 종류의 병원과는 평생 두터운 담을 쌓고 사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그도 얄짤 없다. 지난 번 첨 갔을 땐 약이 졸리고 술 먹는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는 핑계로 약을 팽개치고 증상을 외면하고 말았는데, 그게 잘한 짓은 아닌 걸로 판명됐다. 몸 여기저기가 부풀어 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잠을 방해하더니 오늘은 입가가 단단히 부어올랐다. 방안의 작은 거울로, 마치 <변신>의 그레고르가 갑충이 된 자신의 몸을 관찰하듯 찬찬히 살펴보다 우스워져 히죽 웃어봤더니 영락없는 시골의 동네 바보-삼식이다.

지난 번의 경험을 생각하면 병원엘 가기가 영 싫었지만 이번 주말의 즐거운 스케줄을 위해선 뭔가를 해야했으므로 조금 더 걸어가 작은 의원을 찾았다. 시골 동네 의사같은 아저씨는 동네 삼식이의 형상을 하고 온 환자를 맞아 증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약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오해 같은 얘기를 신이 나 해주었다. 주량이 센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듯이 약에도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약이 세다고 탓하는 건 약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얘기다.(들을 땐 정말 맞는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는.) 실제 운전도 가능한 약을 처방해줬다는데 낮동안 아무 일도 못한 걸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운전이 가능한 약을 처방해준 건, 이 증상을 방치한 것에 대해 ‘졸려서 일을 할 수 없어서’라는 이유를 댔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씩 약을 줄이지 않고 아예 내버려둔 건 만성으로 갈 위험을 방치한 것이라는 타박과 함께 경고도 받았다. 부은 부위가 식도 부근이 되면 기도가 막혀 조용히 사망할 수 있다는 거다. 고작 두드러기로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는 닥터 하우스를 떠올리게 했으며 그의 리얼리티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는데 ‘쩌는 매력’의 하우스는 어찌 살고 있나.

사실 이 증상을 마냥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이화님이 블로그에서 소개하신 야채쥬스도 해먹고, 오늘은 좋다는 검은깨죽도 끓어 먹었으며, 엊그제부터는 잊고 있었던 반신욕도 재개했다. 그리곤 병원에도 왕림했으니 나로서는 할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다. 어제 반신욕을 하면서 읽은 김애란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으로, (생일날 미역국은 못 먹여줬지만 나름의) “나를 위한 제사”를 지낸 셈이다. 이젠 몸이 이에 반응해줄 일만 남았다.

“기옥 씨에게는 요즘 그런 게 필요했다. 때가 되면 중년들이 절로 찾게 되는 글루코사민이나 감마리놀렌, 혹은 오메가3처럼…… 몸이 먼저 알아채 몸이 나서서 요구하는 것들이. 이를테면 설에는 똑국이, 보름에는 나물이, 추석에는 송편이, 생일에는 미역국이, 동지에는 팥죽이 먹고 싶다는 식의. 그래야 장이 순해지고, 비로소 몸도 새 계절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는, 어느 때는 너무 자명해 지나치게 되는 일들이 말이다. 제사는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지내줘야 했다. 기옥 씨는 음식으로 자기 몸에 절하고 싶었다. 한 계절, 또 건너왔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시간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내가 네 이름을 알고 있으니, 너도 나랑 사이좋게 지내보자’ 제안하듯 말이다. 기옥 씨는 그걸 ‘말’이 아닌 ‘감’으로 알았다. ” -<하루의 축>

결핍으로 가득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체로 그러하듯) 자기연민에 함몰되지 않고, 생에 대한 긍정으로 의젓하고 생기발랄한 미덕을 눈부시게 보여주었던 김애란 소설의 20대 언저리의 주인공들은 새 소설집에서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달라졌다. 온통 고통스럽고 속수가 무책한 삶들에 대한, 그 구구절절한 생의 면면들에 대한 섬세한 포착은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꽤 놀라운 것이다. 이제 서른 즈음?의 김애란은 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갇혀 고통받는 안쓰럽고 “막막한 존재들”의 “그런 목소리들을 위무하고 그런 우울을 애도하는”(우찬제) 작가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평자의 표현에 의하면 “현실과 동시대인들의 고통의 구체적 세목을 함께 앓는 서사 윤리를 내면화” 하는 작가.

얼마 전 허용님의 블로그에서 본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도 등장한다. 이 아리송한 시의 제목은 신의주 어디에 사는 박시봉씨의 주소다.

“… 그냥 이 시를 떠올리면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힌 한 남자가 생각나. 자기가 누워 있는 초라한 장소의 주소를 반복해서 중얼대는 사내가….. 그리고 낯선 데사 자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주소지를 따라 부르게 돼.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하고.”  – <호텔 니약 따>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하고, 언젠가는 나도 따라하게 될 것만 같다. 굳고 정한 나의 갈매나무 같은 것을 떠올리며.

장마에 이어 태풍이 지나간 후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또 하나 인상깊게 가까이 다가온 건 <물속 골리앗>의 한 귀절.

“태풍에 몸을 맡긴 채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고목이었다. 나무는 대낮에도 검은 실루엣을 드리우며 서 있었다. 이국의 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두 눈을 감고- 그것은 동쪽으로 누웠다 서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 떼처럼 쏴아아 움직였다. 천 개의 잎사귀는 천 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 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 어떻게 죽는 것이 나무다운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종(種) 내부에 오랫동안 새겨져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천 개의 잎사귀, 천 개의 방향이 가진 하나의 의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극렬한 생의 충동이 보여주는 풍경은 장렬하고 숭고해보인다. 그러한 생의 충동이란 것이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비극성에서 오는 것이라면, “비극은 예술가의 품위”라 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아마도 이응준?)도 쉽게 수긍된다. 어디 예술가만 그러한 품위를 전유할까. 비극이 내 삶의 품위와 존엄과 삶에 대한 긍정의 근거가 되는 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이제 고작 서른에 이러한 삶의 비극성을, 또한 그로부터 솟아나는 생의 충동을 ‘공감’하고 ‘몰입’하고 ‘탐색’중인 그녀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그녀의 마흔이 기대된다.  

비행운10점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 기억력에 자신이 없어 찾아보니 이응준이 맞다. 그의 말.

“비극은 작가의 품위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비극을 관리할 줄 안다. 진실한 비극이 사라지면 시인은 역겨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 나는 어떤 자가 예술가인가 아닌가를 감식할 때 먼저 그의 가슴속에 명쾌한 비극이 있는지 아닌지를 본다.”

** 주절주절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이 현상으로 보면, 술과 약을 비교했던 의사의 말이 허투루 한 것이 아닌가보다. 졸리다고 제껴둔 일을 하려니 다시 졸리다. 낼 아침까지 사이트 인트로 하나 바꿔 달아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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