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Oct 2015

찬란한 시간

계좌를 만들러 은행에 갔다가 110세 보장 금융상품 광고가 크게 걸린 플랭카드를 보았다.
110세를 (110세까지 사는 걸) 보장해준다는 말처럼 들리네… 하는 생각을 하며, “110세 보장 상품이 있네요…” 했더니
남양 아쿠르트를 쥐어주던 직원이 말한다.
“그러게요. 얼마 전까지만해도 100세였는데 말이죠.”
오랫만에 맛보는 야쿠르트의 달콤함에, 오래 가는 감기로 무뎌졌던 감각이 살아남을 느끼며, 늘어난 수명이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L선배의 갑작스런 죽음이 예상보다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문득 문득, 새록 새록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들이, 전철을 기다리다, 걸음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끼어든다. 심적으로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알고 지낸 시간들이 길었고, 무엇보다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그가 보여 주었던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해보지만, 갚을 기회를 주지 아니한 어떤 일은 내 남은 생 내내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메세지.

sas

많은 이들의 우려와 절박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 치유를 찾았던,
그리하여 너무 서둘러 생을 마감했던 그가 선택했던, 보여주고 싶었던 마지막 모습이 이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는 이렇게, “앓는 시간도 찬란한 시간”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며 의연하게 (110세 보장 상품이 나오는 시대에는 너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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