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Jan 2017

2017년이 밝았다.

어스름한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날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뭉기적거리다 8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모닝커피와 신진대사를 위해 챙겨먹는 요구르트를 먹고 나와 도착한 곳은 결코 외워지지 않는 긴 이름을 가진 동네 대중목욕탕.
휴일이라 그런가 사람은 많지 않았고, 한적한 탕 속에서 오래 전 배운 자유형과 배형과 평형의 발동작을 한가로이 되새기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히 평화로웠다.
탕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지그시 눈도 감은 채로 시름을 떨궈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얼마나 개운해 보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엄마 옆에서, 들고 온 아기인형을 목욕시킨다고 엄마 흉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태는 얼마나 예쁘던지.
변기조차 타인과 공유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새해 맞이 이벤트로 어지러운 방 안 정리를 했다.
고장난 물건은 고치거나 버리고,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물건은 중고나라에 올려 처분했다.
스피드 앵글?을 주문해 조립하여 늘어난 잡동사니들도 정리하였는데, 남자들이 ‘만나기 쉽지 않다’말하는, ‘만들기 좋아하는 여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난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접합 부분이 느슨한 상태로 설치가 되었지만, 기능엔 문제가 없으니 뭐 어떠리.
불완전한 조립에도, 이제 막 더해진 나이 한 살의 무게에도 이상스레 마음이 가볍다.
바로 앞선 선배들의 위로가 그냥 위로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나저나 물욕이 많아진 것일까, 방 안 물건이 너무 늘었다.
새해부턴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도 마음도.

며칠 전 만났던 그는 예전보다 많이 여위어 있었다. 여윈 얼굴에는 형형한 눈빛이 도드라져 보였다. 깊은 강을 건너와, 깊은 강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의 눈빛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예전보다 가벼워 보였다. 10kg 체중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가벼운 맥주에 가벼운 수다로 얼큰해져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예전에 그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의 그는 뿌리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그는 날개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뿌리를 선망하여 내 뿌리의 미약함을, 든든한 뿌리의 부재를 아쉬워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날개를 선망하는, 뿌리로 인한 무게보다, 날개로 인한 가벼움을 욕망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또한 나이듦의 자연스런 현상일까?

새해가 밝았다 하여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서랍정리도 하다 반가운 사진을 발견했다.
언제인가.. 신영복선생님과 함께 맞이했던 새해 일출 사진이다.
누가 찍었는지 분명 해가 뜨는 시점이었는데 해도 없고 어스름한 하늘에 얼굴들도 심히 어둡고 희미하다.
(내가 나왔으므로 나는 아니다.)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는 그 목소리의 톤까지 생각이 난다.
한 해 동안 공전하는 지구 위에서 태양 주위를 한 바퀴나 돌았으니, 그 먼거리를 여행하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수고한 것이냐며 대견하다 해주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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