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부활

이 위력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하루 한 두번씩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어젠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작에 백업을 해두고 포맷을 하려 맘을 먹었으나 게으른 몸이 이성의 권고를 무시하여 방치를 해온 것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불가능해진 포맷은 제껴두고 무작정 케이스를 열었다.
언제 쌓였는지 신기하기만한 먼지들을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긁어내고
실로 무력해보이는 몇 개의 팬들과 파워 서플라이를 바꿔줘야하나 하고 잠시 째려보다가
문득 오래 전의 경험이 뇌리를 스치면서 두 개의 램을 뽑아 힘차게 다시 꽂아주었다.
(그 오래 전 그 때에 이런 짓을 하면서 투덜거리던 것도 생각났다. 여자들 보고 컴터에 무능하다고 한심히 여기는데, 램 하나 꽂는 것도 이렇게 힘이 필요한 걸 어쩌란 말이야.. 하고.)
그리곤 반대편의 뚜껑도 화알짝 열어둔 채 그 앞에 선풍기를 들이대고 전원을 켰더니.. 아 기특하게도 컴터가 살아났다. 휴~ 

컴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컴터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끔씩 조각모음을 해줄 때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해줄 때도 그렇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맷을 확 해버리면 멀쩡해지는 걸 볼 때도 그렇다.
여름잠을 자버리고 싶은 요즘엔 리셋 기능까지 질투가 나고,
오늘은… 내 안의 뚜껑을 확 열고 선풍기를 들이대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린다.
(내 머리와 가슴과 심장과… 여러 곳의 쿨러가 제 기능을 못해 과부하가 된 것만 같아서… )
마구 혹사시킬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

아무튼… 오늘 일기의 목적은 이거다.
다음에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나면 오늘의 일을 기억할 것.
그러니까.. 점차 버거워지는, 그럼에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나의 메모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희경이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라지는게 맞는 거래. 우리가 느끼는 세월의 빠르기는 기억의 양에 비례한다는 거야. 그러니 나이가 들면 기억하는 양이 적어져서 세월이 빨리간다고 느낀다는 거지.”
맞아 맞아 손뼉치던 우린 그날, 친구 신랑이 사준 오리고기를 배터지게 먹고선 스무살 때 사소한 얘기들을 꺼내놓으며 오리고기의 “회춘” 효능을 감탄했었지…


* 함께 “회춘” 했던 친구 희경이와 진이…

2 답글
  1. 푸른고원
    푸른고원 says: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 같은 것에 다소 관심이 있는 편인데, 같이 공감할 사람이 없는 걸 늘 한탄했더랬어요. 다음에 만나면 그 애환을 한번 나누어 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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