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심한 밤에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것.
며칠 팍팍해졌던 가슴팍이 넉넉해지며 쭈글쭈글해졌던 심장이 다시 링클프리로 펴지는 느낌이다.
나에겐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이런 시간들이,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며칠 전 이번 엘에이행을 결심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가졌다.
하이클라스 백인들만 산다는 동네를 지나 도착한 곳은 높은 빌딩만 빼곡한 Century Park East.
맘씨 좋은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화이팅을 뒤로하고 빌딩을 올려다보니, 낯설기만한 풍경속 빌딩 로비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스타벅스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자, 참 이렇게 낯선 도시에 내가 왔구나 실감이 났다. 온통 회색빛 빌딩만 가득한, 은하철도 구구구에 등장할 법한 낯선 별에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한 후에 들어선 사무실안 풍경은 흔한 허리우드 법정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유사해서 오히려 친근했다. (이곳은 꽤 큰 규모의 로펌. 클라이언트 정보를 보니 큰 규모의 관공서들과 이름이 친숙한 허리우드 스타들이 즐비하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그 안에 심히 뻘쭘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

나를 맞이한 변호사 P는 6살때 이민을 온 한국교포. 그의 한국말은 커서 노력해서 다시 배운 것이라 했는데, 쉬운 단어를 고르거나 영어로 바꾸느라 내머릿속은 분주해졌고 말은 느려졌다.
그러다 곧 이런 저런 사람들의 빠른 템포의 유창한 영어가 내 귀에 쏟아져 들어오자… 각오한 일이었긴 해도…  나는 다시 낯선 별에 불시착해 외계인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

P씨의 친절은 감동적이어서, 대충 그러저럭 일을 진행시켜 준 것은 물론,언어소통의 문제가 심히 고민이라는 내게 조언을 해주고 용기를 주려 하다가 급기야는 나의 영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노라며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해서 P씨의 친구들과 만난 곳은 단성사. (코리아 타운의 단성사는 주점이고 피카디리는 당구장 이름이다. -,.-)  변호사와 포토그래퍼였던 그들과의 대화는, 절대적인 시간과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대화내용의 양이 아주 부족했던 지라,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기억 나는 것이라곤, 한국과 일본을 전혀 모른다는 한국인,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두 친구가 벌였던 재미없고 별 내용도 없으면서 치열했던 민족 감정의 논쟁. 심심해진 내가 소주 한 잔을 홀짝거리며 멀뚱하니 그들을 지켜보다 던졌던, 행복하냐는 질문 하나.

문득 그리워졌다.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한강이 한 줄기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일산 내방 창가.
그곳에서 책상 위 자그마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의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만 같았다.

1 답글
  1. 혜영 says:

    잠시만 모진 맘 먹고, 받을만큼 돈 받고 후딱 와서
    다시 그 책상 위에서 음악도 들으시고,
    맛난 수다 떨고 맛난 거 먹읍시다.
    아. 개그야의 ‘사모님’이란 개그 다운받아 보시구랴. 골목대장 마빡이도. 잠시 즐거워질 거유.

    응답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