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kalos250

쐬주, 김소진

아아, 쐬주병의 비어버린 밑바닥을 맨정신으로 보는 일만큼 쓸쓸하고 또 소름끼치도록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밑바닥을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일만큼 비겁한 일도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쐬주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연약한 비명을 질러야하는 사내의 혀를 마비시킴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단련시킨다. 그래서 비명 대신에 일순간이나마 […]

추상충동

온통 지형이 사막이었고 나일강의 잦은 범람으로 자연과 적대적이던 이집트 사회에선 추상충동이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중권씨의 말을 들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세계를 점차 단순화시켜 보고 싶어하는 욕망 역시, 인생의 지형으로서의 세계가 (나와 친화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점차 적대적이 되어감에 따른 추상충동이 아닐까 하는…. 쓰잘데 없는 생각.

보름달

늦은 밤 귀가길 오피스텔앞 포장마차를 지나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주머니가 산낙지를 도마위에 철썩 올려놓자, 새하얀 낙지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의인화된 캐릭터 마냥 도마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발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경쾌한지(실은 필사적이었을 것인데), 마치 유캔 댄스 프로에 출연한 댄서의 화려한 퀵스텝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정신없이 구경하다 아주머니랑 […]

송영규, 耳鳴

… 이 울고 있는 귀 이야기는 타인과 세계를 지향하고 의식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결정짓고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 자신에 대한 우화다. 많은 경우 사람은, 타인들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한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절해고도에서 조차도, 아마 나는 타인에 대한 부질없는 자긍과 근거 없는 모멸 따위의 피로한 상상을 통해서만 남은 생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수줍은 […]

컴퓨터의 부활

이 위력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하루 한 두번씩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어젠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작에 백업을 해두고 포맷을 하려 맘을 먹었으나 게으른 몸이 이성의 권고를 무시하여 방치를 해온 것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불가능해진 포맷은 제껴두고 무작정 케이스를 열었다. 언제 쌓였는지 신기하기만한 먼지들을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긁어내고 실로 무력해보이는 몇 […]

파주 출판단지를 가다

“구름이 너무 예뻐서” 라는 이유를 대고 내 집까지 당도한 황군의 단호한 호출을 받고 전날의 과음으로 부시시한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공사중이던 때에 슬쩍 지나가보기만 했던 파주 출판 단지는 파란 하늘 화사한 구름 아래서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저마다 다른 다양성의 잔치로 보이는 건축물들 어디서 봐도 그 파란하늘이 스며들어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까지 […]

링클프리의 심장을 꿈꾸며

내 몸을 치료했던 Nerve Specialist는 치료를 끝내며 이런 저런 당부끝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축되었던 심장을 판판히 펴놓았으니 한 두달간만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하는 일을 피하면 다시 수축되지 않는 심장을 갖게 될 거라구요. 두 달간.. 짧을 수도 있지만 길 수도 있는 시간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엠군 왈, “링클프리가 되면 되잖아”   링클프리의 심장.. 괜찮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