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풍경 둘과 상상력

“생계독서가”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는 알라딘 MD 출신 금정연의 위트 가득한 서평을 읽다가 생각이 났다.
잠시 머물던 구로구 신도림을 떠날 때, 공무에 힘쓰시는 분들의 빈약한 상상력을 아쉬워하며 찍었던 사진이다. 

오래 전의 ‘어륀지’ 발언과 광화문 광장의 꽃밭 이름을 ‘플라워 카펫’이라 붙인 것, ‘디지털미디어시티’ 로의 역 개명을 ‘열폭’의 예로 들고 있는 저자가, ‘구로드웨이’라는 이 작명 센스에 대해서는 뭐라 말해줄지 궁금하다. 

위 사진을 찍은 장소에서 신도림역을 건너 문래역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사뭇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상상력에 박수를 치고 싶은 간판이다. 

“철은 식지만 저희 열정은 식지 않습니다.”라는 금형진공열처리 작업장. 
다시 보아도 박수를 치고 싶은 멋짐이 있다. 

다시 서울 시민이 되었다

 
장마가 길었다. 기후변화가 만든 역대급 장마라 했다. 그 지루했던 긴 비의 끝자락에 이삿짐을 쌌다. 태어나고 자란 도시, 서울로의 귀환을 위해서였다. 
 
떠나온 곳은 강이 흐르는 청정지역이었다. 이름을 대면 누구든 젊은 날의 추억 하나쯤 쉽게 소환해낼 수 있는 곳. 강을 따라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지는, 고개를 돌리면 아무렇게나 이어져 있는 산책길이 꽤 좋았던 그곳에서의 3개월은… 그러나 끔찍했다. 
 
 
한 달여 간의 입원 생활로 심신이 약해져 있던 시점에서 그런 결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집 앞까지 찾아와 집요하게 들이대던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는 꽤 컸다.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조건으로, 건강도 되찾으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일하게 해주겠다던 약속은 첫날부터 와르르 무너졌고, 근로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계약서 사인 후 진짜 오분도 안 되어)  극심한 적자 상태이니 몇 달 동안은 퇴근 시간도 없고 주말도 없고 최소한의 수면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명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오너’라는 말을 자주, 힘을 주어 말하곤 했다. 오너라는 것은 절대권력을 갖는 것이어서 직원은 오너의 철학과 비전, 속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도전 정신을 가지고) 맞추는 것이 직원된 자세이며 도리라고 했다.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거나, ‘철학과 비전’이 자신의 것과 다르거나, 그 “위계질서에 승복”하지 않으면, 혹은 재무 상황이 어려워지면 누구든 언제든 당장 해고할 수 있고 그것이 오너가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라 했다. 그렇게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줄줄이 해고되는 것을 목격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즐겁게 수다를 떨던 동료가 퇴근 시간 임박해서 해고되어 떠나가는 식이었다. 21세기에 그러시면 안 된다고, 위험한 일이라 말했다 되돌아온 말이 놀라웠다. 해고된 직원이 더 일하게 되면 불편할까 봐, 그에 대한 배려였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평생 지극히 정상적이던 혈압이 심하게 올라 약을 먹게 되었고  매일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옆의 동료에 비하면 약과였다. 타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심리상담사였던 동료는 심한 스트레스로 심각한 원형탈모에, 심장 기능 이상과 이명까지 경험한 후에 사직서를 냈다. 해고된 다른 동료는 심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의사의 권유로 항의성 문자를 오너측과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년째 해오던 프로젝트도 정리하고 송별회도 여기 저기 하고 이사를 와버린 나는…  되돌리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한 달쯤 된 시점에서 그의 제안으로 한 차례 딜이 있었다. 내 일자리를 걸고 3개월 후의 목표성과를 약속하면, 즉 3개월 후에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내겠다 약정하면 내 속도를 존중하며 업무에 관해 전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3개월 동안 최대치를 뽑아낸 다음에 해고하려는 뻔한 심산임을 모르지 않았으나 수락했다. 건강 문제로 그대로는 더 일할 수 없는 상태였고 수행업무에 대한 윤리적인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한 달도 안된 시점에서 도달해야 할 그 성과 목표치에 가까워지자 그는 돌변하였다. 3개월을 기다리면 안 되겠다 생각했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홍보영상 마무리 작업 중에 전화를 받았다. 할 얘기가 있으니 까페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까페가 다소 시끄럽다며 잠시 주저하던 그는 기다리라 하고 돌아서더니 핸드폰을 만졌다. 이어 나온, 180도 달라진 가식적인 표정과 말투로 보아,  후탈이 없게, 그리고 내 말에 꼬투리를 잡아 근거로 들이밀 수 있도록 녹음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의 특기이자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 유발 요소인 궤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실장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계속 일을 하시는 마음이 뭔지 모르겠어요. 뭐가 제일 큰 가치신지…”
“이렇게 스트레스가 엄청 많으신데 이 일을 계속할 때에 뭐가 본인에 대해서 성취를 느끼시는지… “
 
이 맥락 없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를 묻자 그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며 본색을 드러내었다. 이사비용만 부담해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리고 자신이 하려는 일은 너무나 고귀하고 위대한 일이어서, 그만한 개인의 희생쯤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기가, 교활한 그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진 나는 결국 승복하였고 그렇게 나의 청평 생활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적자가 심한 비상상황이라며 동료들을 해고하고 나의 노동력을 심하게 착취했던 그곳에서, 다른 도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업장과  또 하나의 공장을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냥 운이 나빴다고 털어버리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몸이 상했고 마음도 그러했다.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해버린 것이, 정말 ‘생살에 소금 뿌린 듯이’ 아팠다.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할 수 없었고, (그와 20년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지인도 전혀 몰랐다며 놀라와  했다) 그곳의 불합리와 비상식이, 그의 폭주가, 어떤 식으로든 저지되고 응징되어야 한다고 토로하던 우리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또한 아프고 화가 났다. 
 
장마와 이어진 폭염과 코로나 시국에 이사를 하고 모든 정리를 마쳤다 싶었을 때 몸살이 났다. 의사의 권유대로 며칠을 쉬고난 후, 몸살이 난 게 당연하다며 다독여주던 친구가 <친절한 금자씨> 얘기를 해주었다. 금자씨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라,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 복수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와 같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니… 나의 삶을 바쳐, 삶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그들을 응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적 의식 속에서 그를 응징하는 것도 대나무숲의 효용처럼 실제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내 안 어딘가의 딱딱하게 긴장된 근육을 스르르 이완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기자인 한 선배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를 응징하여 세상이 쫌이라도 좋아진다면 어떤 출혈을 감내하면서라도 시도해볼 만하겠지만, 그러기엔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그러니 나를, 내 삶을 잘 추스르는 편이 낫다고.
 
어쨌거나 그의 폭주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놔두어도 그 자체의 본질적인 ‘옳지 않음’으로 지금도 자멸의 길로 가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부조리한, 불합리한 세상일지라도 그의 폭주가 쉬이 성공할 만큼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런 세상이라면 살기가 너무 싫어지지 않겠는가. 
 
 
박완서 선생의 <박원서의 말>(p78)에는 이런 문장이 있단다.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도, 거기서 구원이 됐던 건 내가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번 써야지 하는. (…) 불행의 제일 밑바닥에서도 그것이 불행감을 조금 덜어주고 그래서 아주 뼛속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내게는 소설을 쓸 재주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헤어나기 힘든 궁지에 몰리거나 불행의 제일 밑바닥에 처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 몫의 불운을 어느 정도 소진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후욱 지나간 몸살처럼 이 후유증도 곧 사라져줄 것이다. 그 시간을 당기고 싶은 마음에 오래 방치해둔 내 블러그를 찾아 간단히 적어둔다. 여기 나의 대나무숲에. 

  

물감을 샀다

이번에 이삿짐을 싸고 정리를 하면서 다시는 뭔가를 방 안에 들여야 하는 도전이나 시작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그리 다짐했건만…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된 거였다는  핑계와 생일을 앞둔 적절한 타이밍과 어제의 꿀끌했던 상황을 결정적인 계기로 하여 새로운 지름 아이템이 도착했다. 이번엔 물감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엔 새 물감을 사야한다는 말을 못하고 굴러 다니던 튜브물감을 모아 팔레뜨에  짜서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건 아예 이렇게 팔레뜨에 끼워서 쓰게 만들어진 고체물감이란다. 

작다는 말을 듣긴 하였으나, 받아보니  진짜 조그많다. 물감 하나는 밀크 캬라멜보다도 작은 크기이고 참 이쁘게도 생겼다.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윈저앤뉴튼? 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어여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난 디자이너이므로. ㅎ

겉모습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색상도 참 이쁘다.  이걸로 무채색의 펜 크림들에 색을 입혀갈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레인다. 
물감을 써 본 게 중고등학교 시절일 테니 너무 아득한 일인데,  이걸 장만할 생각을 한 건 12색을 가지고도 엄청나게 많은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색연필이나 마카(이건 비싸기도 하더라)가 가지지 못한 미덕이다. 
마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풍부한 내면과 그 가능성처럼. 

이제 물감질을 시작해봐야겠다.  몇 해 전 스쳐갔던 더블린의 이 풍경부터. 
그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특별한 0.1프로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믿고! 

응암동을 떠나며

살고 있던 망원동이 뜨면서 너무 시끄러워져 훌쩍 이사를 감행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응암동에 와서 몇 해를 살았다.  이마트가 가까이 있어 편했고 적당한 (나름의) 맛집이 있었으며 불광천이 지척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바람 좋은 날엔 북한산 둘레길이나 서오릉 산책길도 좋았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기분이 심히 꿀꿀할 땐,  조금 떨어진 곳의 친구가 기꺼이 와 주어  벙구갈비나 스시냥의 단백질을 흡입하고 맥주를 마셨다. 맛있는 수제 맥주집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웠지만 브릭하우스의 ‘은평맥주’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마지막 천변의 까페에선 메뉴엔 크래프트 맥주라 써놓아 기대를 북돋우곤 IPA 캔맥주를 내주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천변이라 너그러이 봐줄 수 있었다. 

이사는, 일이 많다. 쓸 데 없이 품고 살아온 온갖 것들을 정리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가장 먼저 안 읽는 책들을 절반 이상 처분했다.  이사할 일을 생각하니 들어올 때에 비해 1/3 이하로 줄어든 책이 뿌듯하다.  부피도 부피지만 책은 정말 무겁다는 걸, 원래 나무였다는 걸 다시 상기한다.  이사해주시는 아저씨들에게 “힘드실까봐 책장 속의 책들을 다 정리했어요.” 라고 생색을 내야겠다. 빈 책장은 이사 들어오는 취준생을 위해 남겨놓을 것이다. 먼지 쌓인 상자 속에서 오래 된 손편지며 깜짝 놀랄 만큼 풋풋한 지인들의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그 중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들을 카톡으로 보내주니 반응이 즐겁다. 그래, 우리 모두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잡지 객원(사진)기자를 할 때 찍었던 송혜교의 고2 때 심히 풋풋한 사진도 나온다. 이러다 시간은 훌쩍 자정을 넘는다.

이사업체를 고르는 것도 일이다.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그 안에 채워 넣은 짐은 통상적인 정도를 넘으니 살림 규모가 애매해서 업체마다 견적 차이도 크다. 첫 번째 업체는 “우리는 경험 없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가지 않습니다.”라고 했고, 두 번째 업체는  “우리는 외국인을 보내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며, 세 번째 없체에선 “제가 직접 갑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세 번째 업체를 택했다. 

다음 정착할 곳은 신도림이다. 오래 전에 그 곳에 정착했던 J의 도움이 컸다. J의 말에 따르면 싱글라이프에 최적인 곳이란다. 과연 극장이며 마트, 공원, 도서관, 아트 센터, 구청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이 지척에 있다. J 뿐 아니라 H도 그곳에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조금 느슨한 네크워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늙어갈 때 느슨한 인간관계가 필요해요”

“혼자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간관계만큼이나 느슨한 인간관계가 절실해요. 느슨한 인간관계는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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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어. 

근래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아침이나 자기 전 가벼운 요가를 한다.  유튜브의 “요가소년”이나 “요가은”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준다. 
특히 자기 전에 까먹지 않고 해주면, 수면 진입이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자주 까먹는다.)

요가 마지막에는 “송장 자세”라고 불리는 걸 한다. 
편안히 누워서 몸 전체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이전의 요가 동작이 고단할 수록, 신체의 긴장이 클수록,  이 시간은 편안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수면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쾌감이다. 

실제 송장이 되는 일도, 죽음에 이르는 일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삶의 고단함과 긴장에 비례한 편안한 휴식이, 달콤한 안식이, 보상처럼 주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스텔라 아르투아~

필요한 게 있어 몇 년전 하드 디스크를 뒤적이다, 담아놓기만 했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시간이 훌훌 간다. 
밀린 일들이 많은데… 싶어 그만 닫으려는 순간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런던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들어간 조그만 펍.
피시앤칩스를 시켜놓고 맥주 한 모금 마시다 사진 한 장 박으려는데,
그 찰나에, 이것도 추억이라며 불쑥 나의 프레임 안으로, 나의 과거로 들어온 주인장 아저씨의 얼굴. 
그는 어떤 과거를 지닌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청량한 맥주 한 모금이 무척이나 아쉬운, 장염 후유증으로 맥주는 꿈도 꿀 수 없는,
미세먼지 가득한 건조한 저녁에.  

뉴스들.

매일 매일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집중해서 뭘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장자연씨 사건의 증언자로 나선 윤지오씨는 증언의 고귀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승리와 정준영 같은 뉴스는 못 보고 지나치기는 정도로 쏟아지는데 그 속에서 그들의 앳된 얼굴은 순진한 악마같다.  웬만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많은 것들을 어린 나이에 쉽게  얻었던 대가일 듯도 싶다. 정준영을 용서했던 전 여차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지만(그녀가 용서를 안 했더라면 추가적인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김학의 일당의 “성폭력” 사건 등의 일방적인 피해자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연인이었던 그를 고발하는 것은, 그를 사랑한 나 자신과도 냉정하게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롤랑 바르트는 일찌기 “사진의 시대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 그 침입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적인 것의 공개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적인 것이 있는 그대로 공개적으로 소비된다.” 고 간파했다. 그러면서 “사적인 것은 (소유권에 대한 법률에 의해 통제되는) 재산일 뿐 아니라 또한 그 이상으로, 나의 이미지가 자유로운(자유롭게 소멸할 수 있는) 장소, 양도 불가능한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 내면의 조건이다.”라고 강조한다. (밝은 방 90p.)이번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그러므로 가장 절대적으로 귀중한 장소-몸을 잔혹하게 침탈당한 것이니.. 응당한 처벌과 보상과 위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전두환과 이순자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작지 않은 충격이다. 전두환의 얼굴은 너무 안온해보여서 화가 치밀어오르고, 이순자의 얼굴은 진짜 사나운 괴물 같아 보인다. 광주 항쟁의 증언자로 새로이 나서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벌써 39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만큼의 세월이 필요했구나 싶다. 대학 새내기로 입학해 어두운 학생관에서 틀어주던 질 안좋은 “비디오” 영상을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경험이, 그 충격이 나의,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큰 변곡점이 되었는 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 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 와중에 전두환 물러가라 외치는 동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어여쁜 지…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틀림없이 더 좋아질 것이다!!

 

오랫만에 화초 몇 개를 들였다.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껏 호흡해주기를. 이들의 날숨으로 나의 들숨이 편안해지기를.

클라이언트란…

카카오톡에 나온 이모티콘. 어찌나 리얼한 지…

“화려하면서 심플하게,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느낌으로” 부터 시작해 너무나 빠짐없이 친숙해서
클라이언트들은 저 32개 멘트들을 메뉴얼에 저장했다가 경우에 따라 하나씩 꺼내놓는 것만 같다.
잘 캐치하고 잘 그렸다. 이런 건 사줘야하는데 싶지만, 늘상 이런 걸 듣고 있는 내가 쓸 일이 없이 없으니…

휴~ 일하기 시러….

박야일 개인전

얄님의 전시가 내일이다. 큰 사고를 겪고 나서 하루 11시간씩 매달려 그린 그림이라니 안 볼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 증상도 부지런히 쉰 덕에(쉬는 일도 부지런해야 할 게 있더라) 수그러지기 시작하니, 내일이든 모레든 오랜만에 인사동 나들이를 갈 수 있겠다.
인사동 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하니,
지난 추억들이 밀려들어 살짝 콧날이 시큰해진다.
얼마 전부터 자꾸 맥락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운데,
얄님의 그림 앞에서 또 눈물이 나면 어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온이도 보고 싶고 오프닝에 가는 게 좋을 것인데..
조용할 때 슬쩍 다녀오고 싶기도 하고…

낼 상태봐서 결정해야겠다.
오늘은 열심히, 부지런히 쉬고.

문상을 다녀오다

멀리, 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나름의 삶의 이력으로 통상적인 관혼상제의 네트웍에서 살짝 비껴있는 탓에,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그 형식이 잘 익숙해지지도 않는 일이다.
가족과 조용히 보내려하니 멀리서 명복을 빌어달라고 소식이 온 터라 살짝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 녀석의 심성 때문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상주의 얼굴에 드러나는 반가움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상주는 말했고, 성당 교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이 처음 보는 내게 건넨 “식장은 크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없어~” 라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와중에 다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정신없을 와중에 보내온 내용에 마음이 흔들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긴 문자를 보낸 걸 나중에 확인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죽음만큼 누구나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저마다의 삶에 이미 준비된 죽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리고 맞닥뜨리는 것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죽음을 미리 마주하고 있노라면 함께 마주한 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확인되기 마련이다. 상주의 위치에서든 문상객의 위치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