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문

“달이 평소보다 크게 보이는 ‘슈퍼문’, 한 달에 두 번 뜨는 ‘블루문’, 개기월식으로 인한 블러드문”을 35만 9307㎞가 떨어진 지구, 서울 은평구 건물 옥상에서 지켜보았다.
개기 월식도 신기하긴 하였으나,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점점 사위어 가던 달이 어느 순간 다시 붉은 빛으로 빛나는 걸 보는 건 보다 인상적이었다.
찾아보니 해의 장파장이 지구의 겉을 돌아 달에 도착해서 생기는 현상이란다.

가리워져 지워지고 사라진 후에 멀리 돌아온 다른 빛으로 다시 빛난다는 “블러드문”을, (그 섬뜩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우주에서 은밀하게 보내온 다정한 메시지로 수신해보는 멜랑꼴리한 밤.

슬기로운 2018년을 기원하며.

청소를 하고 칼(과도와 가죽용의 물리적인 칼)을 갈고, 결방이 안타까웠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재방을 이어 보며 새해의 소망을 품어본다.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재활이 쉽지 않은 난관이 닥쳐 오더라도 김재혁의 오른팔 같은 선택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를…

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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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살다간 한 생명체의 외피였던 가죽위에 뜨거운 기계로 “불박”을 찍는다.
저마다 다른 가죽의 특성에 꼭 맞는 온도와 시간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때면 오래 전 필름을 현상하면서 온도와 시간을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
찾아낸 조합이 또 늘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어서 찍기 전에 쪼가리 가죽으로 꼭 테스트를 해보지만
그럼에도 살짝 모자라거나 과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실패의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고, 시행착오의 축적이 대체로 정직하게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만들어진 이 무늬를, 혹은 화인을 (특히나 이런 야심한 밤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상념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살면서 나는 과연 적절히 뜨거웠는가.
뜨거워도 좋을 때에 턱없이 차갑고, 냉정을 지켜야할 때에 대책없이 달아올라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닌가.
적당한 온도로 만난 대상도 너무 빨리, 미리 이별해버리거나
떠나야할 것들을, 버려야할 것들을 껴안고 있다가 지지직 타버리고 사그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는 일도 시행착오만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식의.

지난 여름은 그리 무성하지 못하여 꽤나 서늘한 가을을, 추궁기를 지나고 있다.
몇 가지 일들이 좌절되었고, 몇 가지 오해가 생겨났으며, 그럼에도 몇 가지는 시도되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적당히 당당하게”

홍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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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사는 홍도.

달력 사진을 찍는데, 청하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다가와 포즈를 취해주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 살가운 눈길과 보드라운 스킨쉽을 허락해주다니.
홍도 같은 녀석과 동거할 수 있는 만큼만, 그 정도의 여유와 능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예뻐서 주말 내내 작업한 사이트에 출연을 시켰다. 반응이 좋다.
달력 판매는 여기서…

http://www.forestogether.org/artshop

새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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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맘에 드네… 출처 오마이뉴스 )

새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돌이켜보니 이번 선거만큼 불안이 적었던 때가 없어던 거 같다.
지금 들리는 취임사대로, 그렇게만 되면 좋을 것이다.
(어제 페북에서 본 예언에 의하면, 문재인씨가 되면 우리 자식들이 잘 살게 되고, 안철수가 되면 안철수가 잘 살게 되고, 유승민이 되면 지금 그대로 살고, 심상정씨가 되면 손주들이 잘 살고, 홍준표가 되면 모두가 망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좀 더 미래를 선택하였다.)
취임사에 나온 새대통령의 얼굴이 밝다.
뽑아 놓고 보니 참 괜찮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기를.
어쨌든 좋다. 최소한 티비를 보다가 대통령 얼굴이 나와 채널을 돌려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이게 얼마만인가…. )

다섯 달 동안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며 싸웠던 사진가 ㄴ씨에게서 오랫만에 답문자가 왔다.
우려한 대로 몸이 아파 쉬었다고 한다. 조만간 고기 먹으러 응암동 벙구갈비로 가자 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연락이 온 또 다른 예술가는 현재 작업중인 일의 클라이언트다.
나와의 관계가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삶 자체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 있다..
아티스트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한 데 묶는 게 도저히 말이 안되어 보일 만큼.

하기는..예술가라든지, 정치가라든지 그 외 어떤 카테고리로도, 저마다의 인간 삶을 카테고리화한다는 게 말이 안되기도 하지.
같은 정치가라는 타이틀로 나선 대선 후보간에 보이는 간극들은 얼마나 엄청난 것들인지 꽤 디테일하게 경험을 한 시간들이었다는 생각.
‘그네씨가 취임할 때 온국민이 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한다더니 현실화되었다’는 중계방송 멘트가 재밌네…

편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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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영 거북한 목소리로 4차 산업을 외쳐대는 후보가 여기 저기 출몰하는 이 때에, 3차 산업은(혹은 우리는 -,.- ) 이제 글렀다며 2차 산업(혹은 1차 산업)으로 가야한다던 지인(나름 IT계의 브레인이었던)의 말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 상황에, 누가 볼세라 꽁꽁 숨겨두듯 했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개비하며 슬라이드 이미지를 찾다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끄집어 내었다.
벌써 아득해진 수년 전, 동생이 부탁한 일로 겸사겸사 LA에 갔다가 1년을 살게 되면서 만났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을 가능케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 급하게 거기를 떠나올 때 고맙다는 인사나 제대로 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만나지지는 않더라고, 그 고마움은 간직하며 살아야지 하며, 그 때의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을 첫화면에 건다.
http://sidle.net/

*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게 또 쉽지 않은 법이다. 큰 사고나 상처 같은 것 뿐 아니라 작은 우연으로도, 별 거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멀어지거나 어긋나 지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런 것이다, 사는 게.

** 나를 설득하려던 그의 노력은 실패하였고, 그렇게 고민하던 일을 정리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편두통이 물러갔다. (“동명이인” 같던 몸과 마음이 이제 정말로 하나가 되려는 건가). 그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기 위해, 위대한 자기서사의 조연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호출하고 소비하는 그의 계속되는 말, 말들은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와 손을 잡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로 판명이 난다 하여도…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으로 살지,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질 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너무 칙칙하다.
술렁이는 이 땅의 각종 소식들과 남쪽 지방의 화창한 봄날 안부를 들으며…
라면이나 먹어야 겠다. MSG가 필요한 시간이다.

멀리서, 김지혜와 탕웨이

탕웨이도 이 노래를 불렀다는 걸 오늘 알았다.
하지만 내겐 역시나 손성제 <비의 비가>에서 만난 김지혜의 목소리가 훨 좋다.

수년 만에 만난 친구가 음악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해 얘기할 때, 친구를 안쓰러이 보았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그러고 있다. 어지러운 시국 탓만은 아닐 것이다.
즐겨 듣던 시디를 꺼내고, 휴대폰에 저장된 팟캐스트를 지우고 음악을 다운 받는다.
그러고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 인생에 대한 회한이 남아, 낮에 만난 H에게 전화를 걸어 “나처럼은 살지 말라” 잔소리를 한다.
나른하게 피곤했던 찬란한 봄날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형광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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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하지 않은’, “마일드”한 색감에, 뚜껑을 잃어버릴 염려없는 노크식 심플한 디자인이 딱이다 싶긴 하였으나, 한 다스는 너무 많았다. 펜 한두 자루 사기엔 배송비가 아깝기도 하였겠지만, 배송되어온 작은 박스를 개봉하고 보니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뭘, 얼마나 ‘하이라이트’할 수 있을까!

* 그가 말한 “free”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비 오는 날 술 마실 수 있는 자유?) 어쨌거나 그는 꽤 자유로워 보였다.
그의 정신은, 영혼은 이제 공간과 시간도 가로질러 더욱 자유로워지려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단단해진 사유는 그의 삶을 더더 두터웁고 풍요롭게 만드리라.

** 이제 막 검찰 조사를 마친, 평생을 왕국의 마마로 살았던 그녀의 얄팍한 삶의 두께는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어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고수해야했던, 나로서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올림머리는 그래서 꽤나 상징적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그녀는 인위적으로 공들여 부풀린 머리를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푹 꺼진 머리를 한 자신의 본모습-초라한 자아-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데 문득 궁금해지기는 한다. 그렇게 전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고수해야하는 올림머리라는 거. 매일 한 시간 이상을 지루해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2017년이 밝았다.

어스름한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날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뭉기적거리다 8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모닝커피와 신진대사를 위해 챙겨먹는 요구르트를 먹고 나와 도착한 곳은 결코 외워지지 않는 긴 이름을 가진 동네 대중목욕탕.
휴일이라 그런가 사람은 많지 않았고, 한적한 탕 속에서 오래 전 배운 자유형과 배형과 평형의 발동작을 한가로이 되새기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히 평화로웠다.
탕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지그시 눈도 감은 채로 시름을 떨궈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얼마나 개운해 보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엄마 옆에서, 들고 온 아기인형을 목욕시킨다고 엄마 흉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태는 얼마나 예쁘던지.
변기조차 타인과 공유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새해 맞이 이벤트로 어지러운 방 안 정리를 했다.
고장난 물건은 고치거나 버리고,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물건은 중고나라에 올려 처분했다.
스피드 앵글?을 주문해 조립하여 늘어난 잡동사니들도 정리하였는데, 남자들이 ‘만나기 쉽지 않다’말하는, ‘만들기 좋아하는 여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난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접합 부분이 느슨한 상태로 설치가 되었지만, 기능엔 문제가 없으니 뭐 어떠리.
불완전한 조립에도, 이제 막 더해진 나이 한 살의 무게에도 이상스레 마음이 가볍다.
바로 앞선 선배들의 위로가 그냥 위로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나저나 물욕이 많아진 것일까, 방 안 물건이 너무 늘었다.
새해부턴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도 마음도.

며칠 전 만났던 그는 예전보다 많이 여위어 있었다. 여윈 얼굴에는 형형한 눈빛이 도드라져 보였다. 깊은 강을 건너와, 깊은 강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의 눈빛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예전보다 가벼워 보였다. 10kg 체중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가벼운 맥주에 가벼운 수다로 얼큰해져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예전에 그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의 그는 뿌리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그는 날개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뿌리를 선망하여 내 뿌리의 미약함을, 든든한 뿌리의 부재를 아쉬워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날개를 선망하는, 뿌리로 인한 무게보다, 날개로 인한 가벼움을 욕망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또한 나이듦의 자연스런 현상일까?

새해가 밝았다 하여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서랍정리도 하다 반가운 사진을 발견했다.
언제인가.. 신영복선생님과 함께 맞이했던 새해 일출 사진이다.
누가 찍었는지 분명 해가 뜨는 시점이었는데 해도 없고 어스름한 하늘에 얼굴들도 심히 어둡고 희미하다.
(내가 나왔으므로 나는 아니다.)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는 그 목소리의 톤까지 생각이 난다.
한 해 동안 공전하는 지구 위에서 태양 주위를 한 바퀴나 돌았으니, 그 먼거리를 여행하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수고한 것이냐며 대견하다 해주시던…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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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드라마 ‘도깨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전부터 좋아라 했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게 되면 대체로 카누를 선택한다. 루카스는 맛이 없다) 공유의 멋짐이나, 상큼하기 그지 없는 김고은의 어여쁨과 그 둘의 달달한 연애가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다.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며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주로 이런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주는데, 한쪽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슬픈 도깨비이고, 다른 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다. 가슴에 박힌 칼을 열쇠로 풀려나갈 도깨비의 사연이라든지, 전생에 지은 죄로 저승사자가 된 자의 이야기는, 숨막히게 전개되는 가히 초현실적인 오늘날의 사태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환타지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가 두루마리 그림을 보게 되는 씬이다. 그림 속에서 한 여인의 얼굴을 맞닥뜨린 그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과 함께 ‘닭의 똥’같은 뚝뚝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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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로써 기억은 삭제되었지만 그가 인식하는 기억과 상관없이 과거는 실재하고, 한 여인의 그림으로 인해 촉발되고 호출되어 그의 지각에서 현재화되는 순간이다.
여인의 그림은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살아 움직이고, 그는 과거로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