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작년에 올렸던 크리스마스 캐롤을 찾아 듣는다.  
새벽송을 돌고 노래나 연극 공연도 떠들썩하게 했던 어린 시절과, 나름 청춘의 달콤함이 있던 시절을 거쳐, 근래엔 아무 상관없이 시큰둥하게 보내던-사실 아무 상관없는 게 맞지만- 크리스마스가 이번엔 좀 훈훈한 느낌으로 남는 것은, 하얀 눈 폴폴 내리던 그 밤거리 풍경과, 거기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맞았던, 기꺼이 내게 삶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그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 거리에서 내 품에 안기게 된 이 곰인형.
내내 혼자였던 푸우인형와 나란히 놓고 보니, 이 녀석의 표정도 달라보인다.
분홍색 땡땡이 리본을 떼어내고 예쁜 체크 넥타이를 만들어 매어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푸석푸석 바스라져버릴 듯한 극건성의 감성으로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아직 동심 같은 것이 남아있단 거니,
당신, 나이값 못한다고 흉보지는 마시길.    
어쨌든 오늘 하루, 시큰둥하거나 간절하거나, 조용하거나 떠들썩하거나 상관없이,  
모두들 춥지 않은, 훈훈한 시간들을 보내시길.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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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물 하나.

       

오랫만에 웹표준.

진보넷의 메타 블로그인 진보블로그에 종종 들르는데 오늘은 이런 게 올라왔다.
웹표준과 관련한 문제의식들을 보니 반가움이 들었다. 내가 직장에서 웹기획일을 하던 즈음에 가장 많이 발설했던 단어도 웹표준이었으므로.
아주 오래 전 어떤 운동 단체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컴맹에 가까운 실무자에게 내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지금 시대 컴퓨터는 책상, 종이와 연필 같은 필수품이라고(뭐 지금 생각하면 적당한 비유는 아니다만), 기계(기술도 아닌)에 대한 혐오를 표방하며 제껴둘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데이타를 넘겨받고 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태에서 보상은 극히 미미한 데다 요구받는 일은 많다보니 그러한 기술과 엔지니어에 대한 경시가 약간의 짜증이 났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큰 안타까움이 있었다. 문화라는 것을 매개로 대중사업을 펼쳐야하는 이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그 실무자가 아는 후배였기에 조심스레 건넸던 조언이긴 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고, 컴퓨터가 단지 비인간적인 하드웨어-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으며, 그에 기반한 각종 기기들, 소프트웨어와 결합한 웹은 최근에 이슈가 된 여러 사건들에서 명확히 드러났듯이 진보진영의 가장 강력한 매체가 되었다.
이번 서울시장선거에서 있었던 디도스 공격과 이를 간파해내고 이슈화한 과정을 보면, 기술문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와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뭐 초기웹이 지녔던 진보적인 기본정신을 생각해본다면 그 연관성을 순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 기술의 시작을, 여전한 기반을, 그 무시무시한 동력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진보 블로그를 기웃리다보면 올라오는 콘텐츠들의 폭넓음과  깊이에 좀 놀란다. 사이트는 투박하지만 다방면의 심오한 (즉 어려운!) 이론들과 삶의 현장의 질퍽하거나 발랄하거나 진솔한 이야기들이 격의없이 올라와 있다.
그러한 전방위적 콘텐츠들과 함께 시스템 운영자의 디테일하고 감각적인(전개되는 당대의 기술에 대한 감각을 나름 긴장감 있게 유지한다는 면에서) 문제의식이 슬쩍 드러나면 – 잘 모르는 게으른 구경꾼으로 보기에는 – 아직은 소박하지만 뭔가 파워풀한 가능성을 가진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생겨난다. 그러기를 기대한다.  
그나저나… 나의 감각은 점차 둔해지고 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학습을 통해 유지되는 감각인데, 워낙 게으른 데다  천성적 아날로그적 습성은 그러한 긴장을 유지하길 거부하고, 직장을 나온 이후로는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한계도 작용하다보니 점점 더 새로운 트랜드에서 멀어진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비해 활용도도 훨 낮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다. 한창 일할 때 좀 더 재밌고 신나거나 의미있는 일을 만났다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러지 못했고, 지금은 나의 나이나 한계를 인정하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사실 좀 딴 데 마음이 가 있긴 하다.)
그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궁리로 머리가 복잡하긴 하지만, 어쩌랴…
(헉. 요만큼 길이의 잡글을 쓰고 나서도 다시 읽어보니 오타와 어색한 문맥이 보여 몇 군데나 고쳤다. 전화를 받거나 밥을 먹으면서 딴 일을 하는 걸 – 어떤 때는 이 세 가지도 동시에 한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집중력의 급격한 저하를 슬퍼할 일이다. T.T)

개념배우

http://thewarak.com/79
오래 전,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소신있는 발언을 하고 행동하는 허리우드의 ‘개념배우’들을 보면서 왜 우리 사회엔 그러한 멋진 배우들이 없는가를 얘기하며 부러워하며 한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고, 사회가 나아졌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젠 우리에게도 이런  배우들이 종종 등장한다. 충분히 멋지고 반갑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우리가(우리 사회가) 그들을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가는 모르겠다.

* 12월도 벌써 중순. 매년 이맘때의 이 아쉽고 안타깝고 절실해지는 시간의 감각, 생의 감각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준비해놓은 히트텍 내복에 히트텍 양말에 두터운 목도리, 장갑, 심지어 새로 장만한 손난로(아이폰 보조 배터리 겸용이라 뭐 쓸만은 하다.)까지 동원하니 그럭저럭 지날 만은 한데, 추운 겨울을 이리 지내는 거에 대해, 이 야단스런 엄살에 대해 한 줄기 관통해가는 찔림이 있다.
오늘도 촬영이 있다. 하필 이러한 유난한 추위에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공연이라니.
주요관람 대상이 저소득층 자녀, 다문화가정, 장애인들인데, 공연장소에 오기가 힘들지 않겠는지.  
과연 프로그램명대로 “희망 나눔 환타지”가 될 수 있을런지.
희망나눔이 환타지임을 차갑게 깨닫게 되는 거 아냐? 라는 삐닥한 생각이….. -,.-;;


* 내 삐닥한 생각과 달리 공연은 호황이었다. 객석은 차고 넘처 사진 촬영하기가 어려울 정도.
아이들의 젊은 부모들이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을 높이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해대는 바람에 더욱 어려웠던 촬영이었다. 고로 그닥 소외 지역은 아니었단 거.
비눗방울쇼나 레이저쇼 같은 거야 내 흥미를 자극할 게 아니지만, 샌드 애니메이션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젊은 커플이 나이가 들어가는 걸 형상화한 대목에선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짠했다.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지금은 너무 귀찮아서 미룬다.
몸이 너무 무겁고 무기력해졌다. 조치가 필요하다. 

연말에.

* 렌즈 하나, 만년필 하나를 분양 보내고 이어 책들을 내보내려 하고 있다. 
새로 나온 시와의 시디를 구입하려 알라딘에 접속했다가, 가진 책들을 팔아보라는 권유 메시지에 혹한 게 시작.
할 일도 많은데 제껴놓고 다시 안 보겠다 싶은 책들을 과감히 골라내어 이중 알라딘 중고샵에서 처분 가능한 걸 등록하다보니 63권, 3박스가 넘고 매매가가 189,300원이나 된다.
남은 책들은 아주 최근의 것을 제외하면 오래 되어서 매매가 안되는 책들이거나 언젠가는 다시 보겠다 싶은 책들이고, 대체로 먼지가 조금 앉은 것들이 많다.
생각해보니 예전엔 책 사는데 매우 매우 신중하게 고민을 했더랬는데, 요즘엔 덜 고민을 한다. 그러니 다 안 읽고 내보내는 책도 좀, 아니 꽤 있다. 반성할 일이다.
알라딘 중고 이용의 단점도 이것이다. 정가에 비해 훨 저렴하다 보니 팍 꽂히는 책이 아니어도 좀 느슨한 잣대로 선택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읽는 것에 좀 소홀해진다. 기억하고 명심해둘 일이다.
어쨌거나 책장이 좀 헐거워지고 책상위와 아래에 마구 쌓아논 책들이 책장으로 옮겨지니, 내 마음도 좀 헐거워지고 가벼워졌다. 책상도 훨 넓어졌다. 부스스한 머리를 쳐냈을 때처럼 기분이 좋다. 넓은 책장을 가지고 싶은 욕심도 좀 사그라든다.
당분간 새로 책을 들이는 걸 자제하고, 이미 내 것이 되었으나 미처 읽지 못한 것들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바깥을 서성이는 걸 줄이고, 내 안의 것들을 응시하고 돌보아야겠다.


*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라는 문장에 연필로 줄을 쳤다. 책머리에, 그것도 편집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대목 말미에다가!
좀 어이없긴 하지만, 그러한 나, 또는 그녀를 가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건, 새해를 앞둔 이 시점에서 어울리는 작태인 거 같긴 하다.

*카메라 무상 AS 기간이 12월 22일인데 아직도 가지 못했다. 오는 토요일과 월요일 촬영이 있어서 아무래도 담주 화요일에나 아슬아슬하게 가야할 듯 하다. 무상 서비스 기간이 지나면  핀 점검 등에 돈이 꽤 드므로 그 전에 점검을 받아야 한다.

내 삶에도 누군가가 댓가없이 혹은 적은 댓가로 교정을 해줄 수 있는 때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오롯이 내 부담이다. 그런 지가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포커스만 헐렁해진 것이 아니다. 어긋나고 마모되고 잘못된 것들은 점차 늘어나는데, 이제는 아무리 큰 댓가를 지불해도 아예 교정 불가한 것들이 많아진다.
어쩌면 헐렁하고 어긋난 포커스를 가지고 망연해하거나 한탄할 게 아니라, 그에 기반한 새로운 미학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술 마시고 들어와.

술을 마시고, 그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들어온 날.

내가 쏟아내고 온 말들의 양과 내가 마신 술의 양을 가늠해보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은,
내 안에 들어온 알콜은 휘발되거나 흡수되어 배출되지만,
내가 뱉아놓은 말들은 휘발되지도 배출되지도 않는다는 진실.
어제 몸이 찌부등하여 반신욕을 하면서 읽기 시작한, 술김에 흘리기도 한, 희랍어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대 희랍어는 수동태와 능동태 말고 제 2의 태, 중간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 태는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표현한단다.
“….. 예를 들어 ‘사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을 사서 결국 내가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중간태를 쓰면, 무엇인가를 사랑해서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라는 희랍어가, 이런 매혹적인 언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감탄을 자아낸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 중간태가 없다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다행이란 말의 반대말은 불행인가? 라는 생각에 잠시 주춤. 그런데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우리가 쓰는 언어가 희랍어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과묵한 사람이 되었을 게다.  
그러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태를 맞닥뜨렸을 지도 모른다.
중간태 같은 것도 없고, -“놀랍도록 정교하고 면밀한 규칙 덕분에” 간명한 문장으로 압축된 의미를 갖는 희랍어의 경우와 달리- 너무 많은 말로 소통을 하면서 사는 우리는, 나는, 얼마나 불완전하게, 얼마나 많은 말들을 지껄이며 살고 있는 것인지.
* 방에 들어와 옷도 안갈아입고 씻지도 않은채 엎어져 몇 시간을 자다가 일어났는데, 스탠드와 모니터가 켜져있고 저장도 되지 않은 글자들이 저리 나열되어 있다. 참 술 마시고 그 시간에 들어와서는 저리 오타도 없이… 피식 웃음 나온다.
어젯밤엔 C삼촌이 만들던 책이 나와서 한 턱 낸다고 모여 거하게 먹은 자리.
그러한 일들이, 서로서로에게 신나게 ‘한 턱 내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주문을 외우며 잔을 부딪혔던 일이 떠오른다.
술자리가 망년회가 되면서 길어졌었지.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망년회 시즌이구나.
거하게 먹은 선어회와 노가리와 생선구이로 뱃속이 아직도 든든.
두어 끼는 안먹어도 배 안고프겠다.    
* 어느 블로그이웃의 주소를 다시 클릭해본다.
얼마 전 올라온 포스팅의 낌새가 꽤나 어두워보여 뭔가 댓글을 남기려다 말았는데, 다음에 가 보니 모두 날아가버리고 없다. 몇 번 내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 알게된, 내게는 순전히 그 블로그 주소상에만 존재하는 사람인지라, 그 전부의 흔적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등록된 포스트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남은 텅 빈 여백이 좀 스산해보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전거 타고 달린 길들과 살아가는 삶의 길의 풍경들을 기록해오던 걸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지는 건 어떤 때인가? 라는 의문이, (나중에 맘 바뀌면 살릴 수 있게) 백업은 해놓았을까? 혹 비공개로만 해놓은 걸까? 로 이어지는 건 확실히 직업탓이지만, 그만은 아닌… 산책가던 길에 늘상 기웃거리던 집 하나가 한순간 사라져버린 걸 보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 올해 첫눈을 아직 보지 못했다. 어젯밤만 해도 꼭 눈이 올 것 같았는데, 아직도 깜깜 무소식.
눈이 오기 전에, 땅이 얼기 전에, 카메라 AS나 받으러 가야겠다.
무상 서비스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음 촬영날이 오기 전에.  

으아… 오늘도 잠이 안와.

불면의 시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 철학, 혹은 예술 등의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 뭔가 주워들었을 법도 한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없이 빠작거리는 사소한 생각들, 기억들, 생각을 멈추고 어서 자야한다는, 내일에 대한 강박.  
며칠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잠이 덜 깬 채로 멍하다가 밤에 일찍 반신욕을 하고서 잠이 설핏 들었는데, 한시간 만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내일 일에 대한 간단한 뭔가를 묻는 전화였다. 그리고선 말똥말똥.
정신없이 빡빡했던 일정이 끝나고 몸이 좀 편해져서 그런가. 이제 달콤한 잠은, 고달픈 일과에 대한 보상으로만 주어지려 하는 것일까.
그 며칠간 잠을 청하며 이불 속에서 한두 시간을 뒤척거리다 영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면, 물을 끓여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우유 등을 데워 마시며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읽었다.
글씨가 깨알같던 1998년 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에 수록된 것이다. (사실 이런 책은 내 책장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아 처분되었기 때문) 게다가 이런 제목이면 수면을 부르기에 적절할 수 있었을 텐데.
페이지수가 많지 않지만 행간이 길었던 이 텍스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미래가 지니는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에게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간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門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내일, 아니 오늘 일요일은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이 있다. 여러 시간 긴장이 필요한 일이 끝나면 맥주나 한 잔 마시고 혼곤한 잠을 청해봐야겠다.  

프로젝트의 현실이라…

http://raimine.egloos.com/1030738   – via @goodgle

이런 유머(라고도 말하기엔 너무 리얼하지만)에 이리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참 슬픈 일이로세.  
그런데 이렇게 적당히 자조하고 처지를 공감하면서 느끼는 묘한 쾌감과 나름의 승화가 있다는 거! 흐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몇몇 젊은 이들은 말하자면 이런 “프로젝트”의 맛을 모른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보자면 사회에서 “일”을 해도 수년은 해봤을 나이지만, 어떤 특별한 환경속에서 제대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고로,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툴툴댄다. 힘들어 죽겠다는 그 하소연을 듣다보면 그 사소함에 좀 놀라고, 어느 부분에서 힘든 건지 이해를 못해 대화는 두리뭉실, 헐거워해진다. 그들 삶의 맥락으로 보자면 안쓰럽기도 하고 연민도 갈 수 있는 일이지만, 공감의 포인트와 타이밍을 찾는 일이 또 쉽지가 않다.
그럴 때 체감한다. 저러한 프로젝트의 현실이 우리를 얼마나 단련시켜온 것인지.
그렇게 단련되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라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 물론 이 땅의 안타까운 현실의 일면인 건 맞지만,
이럴 때 나는 내가 일찍부터, 그리고 지금 이 정도 단련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라 느낀다.
물론 아주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본다면, 평생 그렇게 단련될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한 부러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뭐 어쩌다가는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요즘처럼 벌여놓은 일이 많아 정신이 혼미해지고 육체의 한계를 자꾸 느끼게 되는 때에는.
(어젯밤엔 야심한 시각에 술먹고 전화한 모군의 공로도 한 몫!)
피곤하면 이명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더니 같이 일하던 녀석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온 증상과 똑같다고 겁을 준다. 처방은 멍멍이탕. 뭐든 잘 먹긴 하지만 멍멍이탕은 흐미~

* 떠오르는 그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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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런스 S. 라우리,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 1930

 … 영국 랭커셔 태생 화가 로렌스 S. 라우리(1887~1976)는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죽자 라우리는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어머니가 잠든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 화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한장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우리는 1910년 한 부동산회사의 임대료 징수원으로 취직해 42년 동안 장기근속하며 미술 활동을 병행했다. 라우리가 30대에 발견해 말년까지 꾸준히 천착한 화재(畵材)는 평생 살았던 20세기 잉글랜드 북부 공업 도시였다. 그는 본인과 이웃의 생활을 통해 노동이 무엇인지 익히 아는 화가였다.

   – 김혜리 그림산문집, <그림과 그림자> 중에서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자신이 ‘주말 화가’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우려한 그가 친구들에게도 따로 자기직장이 있음을 비밀로 했다는 것. 생계를 위해 불평도 하지 않고 장기근속을 하면서 도시와 그 속의 노동계급을 “연민”없이 묵묵히 그려낸 그에게는 뭔가 “강건”해보이는 짠한 매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민같은 것이 일렁이게도 만든다.
확실한 건 “구구절절 불평”도 하고 떠들썩하게 처지를 공감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며 위안도 얻는 우리는, 저러한 고독한 예술가는 될 수 없다는 거.  

우울한 하루.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우울했던 하루.

이런 저런 자책과 반성이 엊그제 강남을 강타했다는 하루살이떼마냥 머릿속을 윙윙거리고
가슴엔 찬 바람이 쌩쌩거리더니,
상비약을 사러 약국엘 들렀다 오는 길에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발열기능이 있다는 내복과 양말 두 컬레, 포근한 겨울잠옷.
이그. 겨울이 뭐 얼마나 길다고, 찬바람 얼마나 맞을 거라고 엄살은…
참 오랫만에 동물원의 <씽씽씽>을 듣는다.
올 겨울 그리 많이 춥지 않기를. 혹 추운날 오더라도 우리의 온기 많이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를.  

월요일

다시 월요일, 그리고

시월의 마지막 날이로구나…
휴.

인디언달력에 의하면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지.
너의 반짝임도, 사라지지 않았다구! 

투표하는 날

오늘은 매우 바쁜 날.
잡혀 있는 일정만 3~4가지. 그 중 하나가 투표다.
나의 투표도 그 이름도 거창한 “협찬”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르바이트”에 훨씬 우월한.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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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3603 

날이 추워지고 일이 분주하니 몸이 매우 피곤할 때 퍼뜩 자기 연민이 슬쩍, 쏴아, 하고 나를 통과해 간다.
순간이지만 그 느낌이 매우 강렬해서 잠시 온 몸이 얼얼하다.
그런데 왜 그 연민은 나를 쓰다듬거나 보듬어주는 쪽이 아니라 휘릭 내던져버리고 싶은 쪽으로 향할까?

자기연민이라는 거의 속성이 원래 그러한 걸까?  

아침부터 투표율이 높단다. 오랫만의 즐거운 소식을 기대한다.
어젯밤엔 뭔가의 교정을 보러 갔다가 (서울시장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란이 있어 투표결과를 기다려 인쇄가 들어가야한단 말을 듣고) 선거 결과를 장담하고 왔으니, 그대로 잘 되어야할 것이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지난 선거에 위력을 발휘한 강남 아줌마들이 투표를 통해 자자손손 미래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출산을 늘리기로 담합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고 사랑도 더 하고 그러다가 그 탐욕스럽고 날선 이기적인 욕망도 좀 부드러워지고, 그래서 세상도 쬐금 나아지고 그러는 게 아닐까?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