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밝았다.

어스름한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날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뭉기적거리다 8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모닝커피와 신진대사를 위해 챙겨먹는 요구르트를 먹고 나와 도착한 곳은 결코 외워지지 않는 긴 이름을 가진 동네 대중목욕탕.
휴일이라 그런가 사람은 많지 않았고, 한적한 탕 속에서 오래 전 배운 자유형과 배형과 평형의 발동작을 한가로이 되새기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히 평화로웠다.
탕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지그시 눈도 감은 채로 시름을 떨궈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얼마나 개운해 보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엄마 옆에서, 들고 온 아기인형을 목욕시킨다고 엄마 흉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태는 얼마나 예쁘던지.
변기조차 타인과 공유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새해 맞이 이벤트로 어지러운 방 안 정리를 했다.
고장난 물건은 고치거나 버리고,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물건은 중고나라에 올려 처분했다.
스피드 앵글?을 주문해 조립하여 늘어난 잡동사니들도 정리하였는데, 남자들이 ‘만나기 쉽지 않다’말하는, ‘만들기 좋아하는 여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난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접합 부분이 느슨한 상태로 설치가 되었지만, 기능엔 문제가 없으니 뭐 어떠리.
불완전한 조립에도, 이제 막 더해진 나이 한 살의 무게에도 이상스레 마음이 가볍다.
바로 앞선 선배들의 위로가 그냥 위로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나저나 물욕이 많아진 것일까, 방 안 물건이 너무 늘었다.
새해부턴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도 마음도.

며칠 전 만났던 그는 예전보다 많이 여위어 있었다. 여윈 얼굴에는 형형한 눈빛이 도드라져 보였다. 깊은 강을 건너와, 깊은 강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의 눈빛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예전보다 가벼워 보였다. 10kg 체중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가벼운 맥주에 가벼운 수다로 얼큰해져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예전에 그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의 그는 뿌리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그는 날개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뿌리를 선망하여 내 뿌리의 미약함을, 든든한 뿌리의 부재를 아쉬워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날개를 선망하는, 뿌리로 인한 무게보다, 날개로 인한 가벼움을 욕망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또한 나이듦의 자연스런 현상일까?

새해가 밝았다 하여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서랍정리도 하다 반가운 사진을 발견했다.
언제인가.. 신영복선생님과 함께 맞이했던 새해 일출 사진이다.
누가 찍었는지 분명 해가 뜨는 시점이었는데 해도 없고 어스름한 하늘에 얼굴들도 심히 어둡고 희미하다.
(내가 나왔으므로 나는 아니다.)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는 그 목소리의 톤까지 생각이 난다.
한 해 동안 공전하는 지구 위에서 태양 주위를 한 바퀴나 돌았으니, 그 먼거리를 여행하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수고한 것이냐며 대견하다 해주시던…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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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드라마 ‘도깨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전부터 좋아라 했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게 되면 대체로 카누를 선택한다. 루카스는 맛이 없다) 공유의 멋짐이나, 상큼하기 그지 없는 김고은의 어여쁨과 그 둘의 달달한 연애가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다.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며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주로 이런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주는데, 한쪽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슬픈 도깨비이고, 다른 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다. 가슴에 박힌 칼을 열쇠로 풀려나갈 도깨비의 사연이라든지, 전생에 지은 죄로 저승사자가 된 자의 이야기는, 숨막히게 전개되는 가히 초현실적인 오늘날의 사태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환타지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가 두루마리 그림을 보게 되는 씬이다. 그림 속에서 한 여인의 얼굴을 맞닥뜨린 그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과 함께 ‘닭의 똥’같은 뚝뚝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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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로써 기억은 삭제되었지만 그가 인식하는 기억과 상관없이 과거는 실재하고, 한 여인의 그림으로 인해 촉발되고 호출되어 그의 지각에서 현재화되는 순간이다.
여인의 그림은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살아 움직이고, 그는 과거로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연말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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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연말연시. 사소한 사치로 나만을 위한 트리를 밝혀본다.
트리면 나무가 있어야 하지만, 책이 원래 나무였으니.
자잘한 불빛들을 은은하게 켜놓고 있으니 한겨울 내 방안이 두 배는 훈훈해졌다.
새해엔, 감당못할 행운이나 행복, 즐거움은 없더라도-없겠지만- 이리 사소하고도 작은 불빛 같은 기쁨들이 종종 있어주기를.
내 어둡고 추운 나날들을 훈훈하게 밝혀 주기를 소망한다.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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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끼던 노란 이불이 타닥타닥 소각되던 때 부터였으니 꽤 오래 되었다. 노란 색상이 내게 애도, 그리움의 빛깔로 자리잡은 것이.
한데 노란 빛깔이 불러 일으키는 그 애도와 슬픔의 정서가 이젠 이 땅에선 너무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이미지 타이틀 백그라운드에 노란색의 코드를 입력하며 떠올렸다.
벌써 1주기가 되었다.

떠나간 이들과 온갖 떠나간 것들이 현재로 소환되는 계절.
비는 추적추적 오고
이제는 떠나보내야할 것들도 줄을 서니,
올해도 알콜 없이 연말을 보내기는 어렵겠다.
남은 2016의 날들은 막 살아야지.
처절한 반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 얄님의 블로그에서 한 귀절.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했다. “생은 각자의 생이다. 그래서 생에 대해 진지하게 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속에서부터, 유일무이한 자기 내면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논한다는 조건으로 철학해야 한다.”고. 예술이야말로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쓸 때 기본 명제로 삼을 만하다.

거듭나는 한 해를 위해! 나도 이 명제를 가슴에 품어 봐야겠다.

나는 은평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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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표를 가져간 은평갑의 박주민 의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된 9일 오후… 국회의사당에서 참관을 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다시 봐도) 유가족이 된 듯 콧날이 찡해진다.
이 아름다운 청년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한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조금 더 오래 살아, 그런 모습을, 그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이 땅에서.
(한데 이 사람 정말 동안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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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앞으로도 꽤 오래 그럴 것이다.
이 땅의 격동기를 살면서 누적된 적지 않은 경험이 낙관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그 쉽지 않은 낙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윤종신 – 배웅 with Pianist 김광민

[vc_row][vc_column width=”1/1″][vc_video link=”https://youtu.be/HR_NEwTxxQ8″][/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 width=”1/1″][vc_column_text]광장의 촛불과 함성이 끌어낸 유의미한 첫 결과를 보며 한 숨 돌리고 나서.

팬텀싱어, 라든가.
멋진 청년들이 나와 근사한 노래들을 뽑아내는 티비프로에서 성악하는 이들의 편곡으로 들은 후 여운이 남아 찾아 듣고 있다.
더욱 부드러워진 음색과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흐르는 노랫말은… 이 사람의 노랫말은 정말 잘 들려… 너무 찌질해서 진짜 같고, 아마도 진짜일 것이고, 이제는 그립기도 한 그 찌질함을 아름다운 노래에 담아놓으니, 울컥해지면서도 위로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암튼.. 하마트면 버스 차창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한 걸 용케 참았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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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국에서 JTBC ‘뉴스룸’이 보여주는 탁월함의 하나는 저들의 언어에 대한 섬세한 진단일 것이다.
앵커브리핑은 말할 것 없고, 팩트 체크나 비하인드 뉴스에서 발휘되는 명쾌한 진단은 확실히 다른 뉴스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준다.어제의 앵커브리핑에 나온, 진퇴와 퇴진, 고백과 자백, 주장의 차이를 언급한 다음과 같은 발언도 그 예.

“대통령은 ‘진퇴’라는 단어를 말했다. ‘진퇴’와 ‘퇴진’이라는 단어 사이에도 비슷해 보이지만 커다란 간극이 있다”
“‘퇴진’은 구성원 전체나 그 책임자가 물러난다는 것이지만 ‘진퇴’는 직위에서 머물러 있음과 물러남을 모두 뜻한다. 즉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

“자신은 ‘주변을 관리 못한 것 외에는 잘못이 없다’는 고백도 자백도 아닌 주장”
“역사는 뜨거운 거울로 기록할 이 거리에서 우리는 그 역사에 무엇을 고백할 것인가”

하나 그보다 놀라운 건 저들의 언어이다.
두루뭉실한 “꼼수”를 감춘 음흉한 말들, 민중은 개, 돼지라거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망언들 뿐 아니라…  듣자 마자 소름이 끼치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비선조직 관련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라는, “응징을 체감시켜 반성하게 해야한다.”라는 문장

권력을 휘둘러 폭력적으로 응징을 하는 것도 모자라… 신체에 각인된 겸험으로 내재화시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주체로 만들겠다는 저 흉포하고 사악하고 끝내 뻔뻔한 권력이라니.

탄핵안 내일 처리 무산 속보가 날아오고,  촛불 집회의 피로도 계속 쌓여가고(콜록 콜록)… 누구 말대로 최소한 “근대시민”으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구나, 오늘 여기의 삶은.

속초, 봉포항

일년여 만의 바다였다.
가능하면 멀리, 좀 더 크고 긴 걸음 하고 싶었으나 고작 일박 이일의 속초다.
게다가 계속 전화와 카톡으로 연락을 해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기어이 아침 일찍 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쨍한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풍광과 상쾌한 공기에 절로 호흡이 깊어지고 근래 다시 시작된 두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새로 개통되었다는 미시령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겨우 2시간 10분인데
이리 몸은 둔해지고 나의 생은… 총체적으로 낡고 쇠해가고 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흡입한 바람의 약발도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빠작거렸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낯섬”이 거의 사라진 시공간도 문제였을 테지만, 내 폐의 흡입력, 무디어진 감각세포도 큰 원인일 것이다.
이제는, 다른 여행을 모색해야할 때인가 싶기도 하였다.

돌아와 뱅쇼님의 블로그에서 “네덜란드 조력자살 허용 검토” 소식을 보았다.
거기에도 언급된 스위스행은 작년 여름, 영국 할머니의 뉴스를 접하면서부터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터였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아”,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게 싫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간호사 출신의 75세 질 패러우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지막 여행의 경비는 벌어놔야 해’ 라는 중요한 명분과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유독 노동의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난 한 해 동안, 팍팍한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일종의 노동가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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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_id=201508101711251

다시 찾아 본 할머니의 사진 속 미소가 편안하게 아름답다.
나의 마지막 여행도 그랬으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실로 오랫만의 블러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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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간만의 숙취로 종일 티비 드라마 보며 뒹굴뒹글 찌그러져 있었고,
지금은 “비 오는 저녁의 홀로 사무실”이다.
주말에 일하는 언니를 위로한다며 HJ가 간식거리를 잔뜩 싸들고 와 커피와 함께 한 판 수다를 떨다 갔다.
자신의 표현대로 너무 늦게 “성장통”을 통과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도 마음을 모아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예쁜 아이의 응원도 도착했다.
나를 칼국수 누나라 부른다는 아이가 보내는 하트에, 굳은 얼굴로 툴툴거리며 일하던 내 얼굴이 말랑해지고.
아이가 보내준 응원으로 충전된 즐거운 기운을, 나도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진다.
무덥고 힘들었던 시간을 우리 모두 의연히 잘 견디어 통과해 왔으므로.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 역시 그리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기에.

선유도, 2016′ 봄

[vc_row][vc_column width=”1/1″][vc_gallery type=”nivo” interval=”3″ images=”5910,5908,5909,5919″ onclick=”link_image” custom_links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vc_column_text]주말의 드라마 재방.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괜찮지 않죠?….   괜찮을 거예요. 초기니까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남자가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며, 그러나 서둘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거라고,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한다.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한 그와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본 적 있는 맑은 얼굴의 그의 아내도 그의 옆에서 저리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의 고통을 다독이며, 의연하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겠지.
이런 게 “옆에 있다”는 것의 그 묵직한 무게일 수 있겠다는 생각.
어두운 고통의 상황이든, 일상의 크고 작은 생채기를 달래는 상황이든.

밝은 에너지를 가진 H한테 끌려나가 한껏 봄바람을 맞고 왔다.
봄바람 살랑이는 선유도는 기억 속의 그것과 너무 달라 어쩐지 좀 낯설기도 하였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