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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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심중에 자리하고 있던 문제와 관련되어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띈 김영민의 <공부론>
하던 일을 일단락 마무리해놓고 잠깐 들춰보려 했던 것이, 화장실도 안가고 그 자리에서 반 이상을 훌쩍 넘겨버리다, 허기가 심하게 느껴져서야 도서관을 나왔다.  
저자의 여전히 매력적인 문체는 그가 양식(typus)과는 구별되는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 바처럼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느낌이고, 그 안에 담긴 선명한 사유는 나의 처지와 고민과 만나 폴폴 날아와 내게로 앉는 것 같다.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 는 것이 책의 부제이자 인문학 공부의 이치.

‘호의와 싸우는 유례없는 연대의 길'(동무)을 말했듯이, 다시 ‘알면서 모른 체하기'(공부)라는 오해많은 권면勸勉을 합니다. 그것은 당기되 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아는 것을 버텨 내며 그 온축(蘊蓄)의 숙성을 기다리는 것이고, 명중이라는 획지이추(劃地而趨)를 굳이 힘겹게 에둘러 시중(時中)을 찾아가는 것이며, 일상(日常)과 비상(非常)을, 체계와 개인을 동시에 지양하며 그 위태로운 사잇길을 걷고 또 걷는 것입니다. – 서문

그 공부의 권면은 생각보다 살뜰하다.

자기생각의 악순환 속에서 경화하는 짓은 그 모든 공부의 지옥인데, 그 지옥을 뚫는 길은 타자의 지평을 얻는 길 뿐이다. … 공부하지 않는 이들, 자기 생각과 경력의 오연(傲然) 속에 자의식의 깃발을 꽂은 이들, 싸워도 영영 죽지 않는 이들, 그리고 타자의 세계를 오직 자기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의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자기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 있는 관념의 덩어리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cognition)은 재인식(recognition)의 동화체계 속으로 내재화시키는 짓이며, 이때 타자는 자신의 거울방에 다만 그림자를 남길 뿐인 풍경이다.

문제는, 관념과 그림자의 거울방을 깨고 나가서 실전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묻는 일이다.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자기체계의 안정화가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에 기민하도록 탄력있는 긴장의 상태로 스스로를 부단히 조율해가는 일이다.

공부가 변화의 비용이고 그것이 결국은 몸의 주체적 응답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면, 공부란 삶의 양식을 통한 충실성 속에 응결한 슬기와 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거나 이드거니 걸으면서 현명한 인간, 혹은 공부하(려)는 인간은 물 속에 물을 담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든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

변화를 위하여, 슬기와 근기를 끌어 모아, 공부를 해야겠다.
언젠가는 깊이 잠들어도 편안히 호흡할 수 있다가 마침내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는 일을 꿈꾸며.


* 원어데이-하루 동안만 한 가지 상품을 대따 싸게 파는 쇼핑몰-에서 주문한 크리스마스 특집 <나초와  친구들>이 배달되어 왔다. 커다란 나쵸 4봉지에 치즈소스와 할라피뇨 홀빈캔 등이 푸짐하다.  
연말까지 오픈하기로 한 사이트를 얼릉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나쵸와 친구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대체로 구입하는 책들보다 빨리 읽게 되는 건 반납예정일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데드라인이 있는 것이다.
온 생애가 대체로 벼락치기였던 내게 데드라인이 없는(실은 없다고 오인했던) 일들은 죄다 뒤로 연기되었고, 그로 인해 사는 일이 꽤 번잡하고 버겁고 수고스러워졌다.
하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살아가야 하고…
데드라인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며,
한 해를 보내고 오는 새해도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나쵸와 친구들과 함께.

맥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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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떠나게 된 동네 주민의 호출로 망년회 겸 한 잔.. 이 아닌 20병.
마침 홈플러스에서 세일을 해서(수입맥주 무조건 5병에 만원.)평소에 가격 때문에 잘 못마시던 애들을 신나게 골라 담아 매서운 바람을 뚫고 사가지고 와서 신나게 마셨다.  
내 입맛을 제일 당기는 건 역시 에딩거. 오래 전 인사동에서 좋은 벗과 비싼 가격에 놀라며 천천히(비싸니까 당연히ㅎ) 음미하며 마셨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울라너도 굿. 다 나갔는지 기네스가 빠져서 약간 아쉬움.  
22일까지라니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내가 거의 가는 일이 거의 없는 장소가 대형마트라, 어쩌다 일년에 한 두번쯤 따라가게 되면 그 왁자지껄하고 풍성한 먹거리들이 좀 낯설다. 세상에 먹을 것들이 이리 많다니! 끼워팔고 묶어파는 그 저렴한 가격에 슬쩍 눈이 가는 아줌마”적” 본능(진정한 아줌마의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여)이 감지되기도 하는 걸 보면, 차 없고 게을러 이런 곳에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게 다행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맛난 맥주나 와인 같은 걸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단 걸 생각하면 그게 조금 아쉽긴 하다.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게 맛난 술을 직접 담가 멋나게 마시는 걸… 해볼 수 있을까. -,.-

잉크와 이름

오랫만의 공원 산책길.
너무 오랫만이었나, 어느새 나무들이 나뭇잎을 다 떨구고 가리워졌던 배경이 훤해졌다.  
차분히 넓어진 느낌이 다정하고 넉넉해보였다. 황량하거나 쓸쓸해보이진 않았다.
오랫만에 시와의 <소요>를 들으며 걷다가 생각했다. 이름 정말 잘 지었군.

연말을 맞아 사용빈도가 떨어지는 펜 세 개와 잉크 세 병을 분양했다. 저가펜이지만 한정판으로 나왔던 라임색상과 까페의 기념각인이 있던 것을 포함해 모두 쉽게 새주인을 찾았다. 꽤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이걸로 화이트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펜 하나를 영입하고 맘 잘 통하는 지인들과 술 한잔 할 정도의 차액이 남았다.

펜까페에서는 중고매매가 활발하다. 안쓰는 걸 팔고 필요한 걸 사는 차원을 넘어 서로 바꿔쓰고 돌려쓰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이들이 꽤 많다
이런 영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린 쓰지 않는 걸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바꿔 쓰고 돌려 쓰는 게 이 무시무시한 자본주의의 욕망에 대한 소박하고 소심한 저항일 수 있으니.
어쨌거나 각종 장난감이 너무 많아졌고 우리의 장난감에 대한 욕망이 너무 디테일해졌다.

내보낸 잉크는 까렌다쉬 아마존, 제이허빈의 인디언 오렌지, 세일러 극흑이다. 다들 제 이름에 딱 어울리는 색을 가졌다. 앞의 두 개는 너무 화사해서 사용빈도가 적었다. 정말 깜깜한 극흑은 종이 뒤에 잘 비치지 않아 다이어리에 쓰기 좋아서 반 이상 썼는데, 어느 순간 그 먹먹한 색과 점성 강한 쫀쫀함이 재미없어져 흐름 좋은 오로라로 바꿨다.

잉크를 세 병 내보내고 나니 새로운 잉크들이 눈에 띈다.
농담이 멋지고 잉크병이 호사로운 몽블랑의 미드나잇 블루를 써보고 싶었는데 잉크치곤 너무 비싼 데다 잉크 보존 성분이 있어 만년필엔 안좋다는 얘기가 들린다. 방부제가 몸에 안좋듯이. 세일러의 시즌잉크들도 색상이 예쁜데, 일본 잉크들은 착색이 잘 된다는 우려가 있다. 세필에 최적화를 위해 잉크입자를 작게 설계한단다. 역시 일본답다는 생각이다.
 
파이롯트의 이로시주크 잉크색은 정말 환상적이다. 월야나 부유시(홍시) 같은 색들이 잠깐 눈에 띄였다가 럭셔리한 가격과 사용 가능성이 낮아 포기된다. 내가 쓰고 있는 프랑스 제이허빈의 “달빛 그림자”와 이 일본 제품 “월야”가 전혀 다른 색이라는 게 재밌다.  
아래가 이로시주크 잉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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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stpen)

이로시주크란 단어는 색채물방울이라는 뜻이란다. 색상이 죄다 우수하기도 하지만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유사성을 근거로 하는 것이긴 하나, 더할 수 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색상에다가 월야니 산포도니 솔잎에 맺힌 물방울 같은, 낭만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이름을 붙이는 이 마케팅의 힘이란…  참 대단타.

“텅 빈 무정형”, “밑 빠진 총체성”이라 할 지라도… 이름이란, 어쨌든 “항구적으로 그리고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단 하나뿐인 개인을 지시할 수 있는 사회적 신원 확인의 표지”(Louis Marin)인 것이므로…
이름이란 중요한 것이다. 또한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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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처럼, 매 호흡이 의지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 일…

냉장고에 김치가 가득

대학 때 단짝이던 친구가 신랑과 함께 김치를 종류별로 싸들고 나타났다. 유난히 김치가 풍족한 겨울이다. 기껏해야 종갓집 김치, 농협 김치 정도를 먹던 내 혀가 호사중이고 밥먹는 게 늘었다. 냉장고에 가득한 김치가 뿌듯하기 그지없고, 김치에 딸려온 나물이며 된장국, 달래장까지 맛을 보고 나니 온 몸 가득 기분좋은 포만감이…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건재할 은행에서 승진가도를 달리던 친구 신랑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는 얘길 들었다. 일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살다보니 재미가 없어졌다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그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로 판단할 때 매우 의외의 결정이어서 그의 용기에 (더불어 그것을 지지해준 친구의 용기에도) 찬사를 표하고 축하도 해주었다. 대낮에 페퍼그릴 햄버거를 먹으며 맥주로 건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뭐냐 물었더니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내 기타를 뚱땅거렸다. 정치적 성향도 그렇고 삶에 대한 가치관도 참 보수적이던 사람인데… 친구랑 참 많이 닮아간다는 느낌이다. 표정도 눈빛도 얼굴 생김까지도.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 대한 시선이 더욱 애틋해지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걸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커플. 좋은 파트너를 만나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건 참…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보았다. 우리 시대의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스승으로서, 온 삶을 통해 당신이 보여준 그 진정성과 치열함이 없었다면, 이 땅의 지식인, 스승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은 훨씬 어둡고 쓸쓸하고 희미했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관성

내가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하던 걸 모르지 않던 그가, 그리 “갑자기” 자전거를 사게 된 이유가 뭐냐고 물었고, 내가 머뭇거리며 “자전거를 타게 되면, 뭐든 다른 일에도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하자 풋, 파열음이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대해 “철없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추궁하자, “신선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를 두 손 놓고도 탈 수 있다는 그다. 

어떤 중요한 결정들을 할 때, 내가 “낭만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천성, 혹은 습성이라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미래의 어떤 선택의 순간들을 위해 이 조언을 저장해둔다.
부디 필요한 순간 기억에서 호출되어 그 선택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얹어줄 수 있기를, 그 결정들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 Oscar Peterson on piano, Ray Brown & Niels Pedersen both on double bass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1977)

아래 포스팅에 걸어놓았던 Oscar Peterson Trio, You look good to me의 1977년 버전을 올려놓는다.
64년 버전의 맑고 섬세한,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이라 할 수 있을 피아노 연주도 좋지만 (담담하고 따뜻하게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Ray Brown의 콘트라 베이스도 참 좋다.), 77년 오스카 피터슨의 경쾌하고 현란한 피아노 연주는 어떤 경지에서만 획득될 수 있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64년의 연주와 비교해 들어보면, 이렇게 경쾌하고 자유로워지기까지 건반 위에서 그의 손들이 만들어냈을 숱한 터치와 시간들의 두께가 느껴진다.  
 
내 삶의 문제는 아무래도 어떠한 것에도 관성이 생기지 않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말했다.  
현란하고 자유로운 연주는 못되더라도, 두 손 놓고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조금만 관성이 생겨줬으면 좋으련만.
최소한 어떤 일에는.

날씨가 추워졌다.
자전거 타기는 어려워졌지만,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찬 공기가 나쁘진 않다. 아직은.

박카스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갑작스레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며 정신이 멍해졌다.
함께 있던 이가 맥주 한 잔 하자는 걸 완곡히 거절하고 약국에 들러 상비약과 함께 박카스 한 병을 사서 나오는데,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라는 CF 카피가 떠올라 머쓱한 웃음이 났다.
박카스란 것이, 원기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원기를 쥐어짜서 한꺼번에 몰아주는 것이라 했던가.
이래저래 몸엔 별로 안좋다지만, 갑작스런 피로의 간편한 응급처치용으론 그만한 걸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쵸코파이와 같은, 딱 그 만큼의 정감어린 무언가가 박카스엔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박카스 CF로는, 막차 버스 운전사가 종점에 이르러 잠든 학생을 깨우고 박카스를 건네며 “학생, 공부 하느라 힘들지?” 라고 말하는 것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학생, 술 쳐먹느라 힘들지?” 라는 변형 버전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카스의 힘으로 무사히 집으로 귀환하여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나서 냉장고에 남은 카프리 한 병까지 홀짝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얄님의 블로그를 봤다. 눈과 마음을 가지런하게 해주는 이미지와 글을 따라가다, “ 오직 그리고 쓰는 일에 집중하려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고, 삶을 더 간편하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는 대목에 이르니, 순간 내 피로의 원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박카스로도 회복이 안되는 피로를 줄이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
생존의 방식, 삶의 모양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하는 전화들이 있으므로 따라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산만해지고 방만해진 일상으로 인하여 몸과 신경세포 곳곳에 누적된 피로를 줄이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러한 작정이 필요하다는 생각.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얄님에게 마음을 모아 건투를 보내고, 나 자신에게도 건투를 보냈다.

첫눈

블로그 좌측에 달아놓은 날씨 위젯을 보고 첫눈(내게는)이 오는 걸 알아차렸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빼꼼 내다보니, 아주 소박하게, 방만하게 날리는 눈발이 포착된다.
첫눈이 온갖 처음인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첫사랑, 첫 산행, 첫 일출, 첫 여행, 첫 비행기, 첫 카메라, 첫 자전거… 첫 이별, 첫 죽음… 처음이 될 또다른 어떤 끝을.

또 혼잣말이다.

뱉을 수록 공허해지는 말이 많아졌다. 혼잣말도 늘었다.
성능이 현저히 약해진 핸디 청소기를 분해해 종이가 걸린 걸 빼내면서 “막혀 있었구나. 말을 하지… 참 너 말을 못하지” 중얼거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와 함께 일본식 우동집에서 먹은 튀김류의 음식이 체해, 내려가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걸려 있다.  청소기처럼 분해해 꺼낼 수 없으니, 나의 둔함과 어리석음을 탓할 뿐이다. 기름진 음식을 조심하라는 친절한 동네 의사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내게 안맞는 음식을 조심해야해. 다짐해 둔다. 그 음식점을 나오면서 들었던 아르바이트 제안은 잊기로 한다.

몇 가지 일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처럼 내 안에 턱 걸려 있음을 느낀다.
소화시키지도, 게워내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가는 것이… 이 상태에 갇혀버릴까 조금 두렵다.
내가 만든 쇼생크.

내일 아침엔 시원한 김칫국을 끓여 부대낀 속을 달래놓고, 탈출을 모색해봐야겠다.      
     

생애 첫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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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자전거.
갑자기 불끈 용기가 생겨 질러 버렸고, 시승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해죽해죽 웃음이 나왔다.
나의 지름에 든든한 빽이 되어준 이들에게 감사.  
배울 수 있을 때, 달릴 수 있을 때,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페달을 밟아주겠다.  

청바지 무릎팍에 구멍을 냈고, 넘어질 때 접혀진 팔이 조금 아리지만
도전은 역시 아름다운… 지는 모르겠으나 보람차고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듯. 
(지금이 자전거나 장만하고 좋아할 때가 아니야, 라는 말을 듣게 된 상황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