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신영복 선생님 정년 퇴임식

사진: 김달영

* 화려했던 신영복 선생님의 정년퇴임식/기념콘서트.
오랫만의 단체사진
가까이서 본 강금실씨는 정말로 단아하고 곱더라.
멀리 성공회대까지 같이 갔다가 내 친구 두 아가들 함께 쫒아다니느라 고생하고 콘서트도 제대로 못보고 사진 한장 같이 찍지 못한 푸른 고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과 아쉬움을…

비행, 연두색 글쓰기, 낯선 이국어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을 경유해서 엘에이로 가고 있는 비행기 안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국어, 영어와 일어 3개국어를 유차하게 구사하는 승무원들은 대개 내게 일어로 말을 시작하거나 잠깐의 탐색끝에 익스큐즈미,라고 한다. 내가 일본 사람처럼 보이나보다.

혼자 비행기여행하는 게 조금 익숙해져 편안해진 내 손엔 연두색 일색인 책이 한권 들려져 있다. 푸른 고원이 선내에서 읽으라고 손에 쥐어준 책은 아쉽게도 하드카바여서 짐으로 부쳐졌다. 놋북과 카메라를 휴대해야하는 여행때는 책 하나의 무게도 무척이나 중요해져서 책을 선택할 때 주방용 저울로 무게까지 달아본다. 얼마 전 황군은 내가 손힘을 기르면 생활이 한결 심플해질 거 같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차라리>라는 단어는 존재와 무 사이에서 두 번쯤 왕복운동을 하는 기묘한 단어이다. 그것은 한번 존재를 빠져나가 무가 되었다가 다시 존재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미 존재의 맥락이 바뀌어 버린  뒤이다. 돌아왔을 때, 무가 존재로 완전히 치환될 자리는 없다. 돌아온 무는 존재의 문지방에 어정쩡한 꼴로 엉덩이만 걸치고 있다…. <오히려> 이 말 역시 존재와 무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존재 쪽에서 멈춘다. …      —  김정란 평론집, <연두색 글쓰기> 중에서

가벼움을 미덕으로 선택된 이 책에서 ‘차라리’ 와 ‘오히려’ 두 단어에 짧은 생각들이 꼬물거려 놋북을 폈다. 엘에이가 또 하나의 작은 한국이긴 해도 이국어를 듣는 일도, 못하는 영어로 어눌한 발음을 해야하는 일도 잦을 것인데, ‘차라리’ 와 ‘오히려’, 이런 걸 영어론 뭐라 해야하나가 몹시도 궁금해진 것이다.

이륙전에 통화를 하게 된 R군은 내게 생일인사인가, 잘 가라는 인사인가를 날린 후에 “낯선 곳에서 뜨거운 연애나 한 번 해보슈” 라는 농담을 날렸는데, 그 말을 듣자 탑승을 기다리면서 보았던, 미국인과 남미인쯤으로 보이던 젊은 연인들이 떠올랐다.
어디 말인지 알 수 없는 무슨 감탄사 같은 한 단어를 남자가 여러 번 발음하며 가르쳐주는 모습이 무척이나 친밀하고 애틋한 보였으며, 그를 보며 언어를 배우는 관계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모락모락 생겼던 것.   
그리하여 “그럼 낯선 이국어를 구사하는 남자나 한 번 꼬드겨 볼까나… ” 라고 반응하는 내게 R군은 낄낄대며 말했다. “아직 정신을 못차렸어.’돈 많은 남자나’…, 이렇게 나와야지”.

역시 영어로 표현하기가 실로 어려울 기묘한 단어들로 가득한 책을 잠시 덥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일본어를 구사하는 새파란 청년을 흘깃 보는데, 그는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다…. -,.-
밥 먹을 시간이다.
기내식을 운반하는 승무원 언니들이 참 예쁘다.
 
비빔밥에 미역국이 나왔다. 와인도 한 잔 마셨다. 바야흐로 생일이다. 시차 덕분에 출발할 때도 생일, 도착해도 여전히 생일. 올해는 생일이 길다. 생일을 한국, 일본(한두 시간이나마), 엘에이에서 보낸다. 내가 뭐 패리스 힐튼도 아닌데. ㅋㅋ

아직도 비행시간이 길다.
보다 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마저 봐야겠다.

재미있게 삽시다!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 정신없는 하루였다.
발밑의 불 정도를 끈 후에 전화가 왔다.
나간지 몇 달은 된 일산 인라인 동호회에서 세 번 정도 안면이 있는 후배. 공연소식을 알리는 웹페이지를 만들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엠에센으로 말을 걸어온 갑군은 또 노동력 착취 당하러 나가야한다는 내 말에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지” 라며, 짐짓 나를 위해주는 말을 던졌다.

요청 받은 일을 들어보니 인디밴드들의 심장병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깔루아커피를 마시면서 공연준비의 고충과 인디밴드들의 생활고를 듣다가, 그를 찾아온 그의 학교동아리 후배 둘을 만났다.
틈틈히 일어날 기회를 엿보던 나는, 온통 아파트와 생활고(몇억대 아파트를 가져도 생활고를 겪는건 마찬가지인 모양 -,.-)밖에 없는 그들의 대화에 지루한 표정을 숨기려 노력하다, 사진동아리 인연이라는 그들이 점차 안쓰러워지고 있었다.

생활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다 그렇지요, 라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그렇더라도… 사진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한 때 애정을 품은 대상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누었던 이들이 수년 후에 만나 고작(!) 부동산 이야기나 나누는 것은… 쓸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때 흥겹거나 빛나던 것들을 반납하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단조로운 일상과 재미없는 대화 속 어디메쯤에 행복이란 게 있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헝가리의 이색 도서관

`전직 은행강도 대출해 주세요` [중앙일보]
– 헝가리에 이색 도서관

책 대신 사람 빌려줘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경험해보고 싶다면 헝가리의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에 가면 된다고 독일 dpa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이 도서관은 매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문화 축제인 ‘시게트 페스티벌’ 행사의 한 프로그램이다. 대출을 신청하면 그에 해당하는 특성.직종의 인물을 한 시간 동안 빌려주는 방식이다.

이 도서관의 ‘소장 목록’은 레즈비언, 전직 은행강도, 집시(스스로는 ‘로마’라 부름), 여성운동가, 유대교 랍비 등이다. 유럽연합 공무원 등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외 계층이거나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도서관 설립자인 로테문드 안테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며 “우리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선 자신들이 빌려주는 사람을 ‘책’이라고 부른다. ‘독자’들이 다른 인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책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운영 5년째인 올해의 경우 범법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전직 은행강도가 ‘최다 대출 도서’가 됐다. 매년 시게트 페스티벌을 찾는 40여만 명의 방문객 중 절반 정도는 헝가리인이 아닌 외국인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서관 측에서 필요할 경우 ‘사전(통역자)’도 빌려주기 때문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고, 시인들은 노래했었다.
일시적인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긴 해도, 그 낭만적 은유를 현실화한 헝가리 행사가 재밌고,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려는 설립목적도 의미있어 보인다.
이러한 일들이 여기, 우리 가운데 이뤄진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책들을 대출하고 싶어질 것이며, 과연 누가 나를 대출해갈까?
그리고…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살아있는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은 과연 ‘엄격하게’ 지켜질 수 있는 걸까. 어떤 짧은 독서-만남도, 살아있는 책-인생엔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일 터인데 말이다. 미미하거나 혹은 치명적이거나.  

쐬주, 김소진

아아, 쐬주병의 비어버린 밑바닥을 맨정신으로 보는 일만큼 쓸쓸하고 또 소름끼치도록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밑바닥을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일만큼 비겁한 일도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쐬주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연약한 비명을 질러야하는 사내의 혀를 마비시킴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단련시킨다.
그래서 비명 대신에 일순간이나마 함성을 지르게끔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사내의 가슴을 통과한 쐬주는 본디 그대로의 투명한 빛깔로 남모르게 재생되기도 한다. 그게 거시기 두 쪽만 달랑 찬 사내들에게 내일을 견디는 힘이 돼주는 유일한 밑천임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속삭임이 있다. 미치는 것보다는 취하는게 백 번 낫다고. 나을 것도 없지만… 혹 덧없는 사랑 때문에 혹 권태 때문에 혹 허영 때문에 속세를 저주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쐬주만한 친구도 더 이상 없을 성 싶었다.
                                          – 김소진 소설집,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 >중에서  

* 오래된 노트들을 꺼내들었다. 다 채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끌고다닌 노트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 안의 메모들은 얼마나 체계없이 산만하고 잡다하던지.  
그들에게 폐휴지로 재활용 되는 기회를 하사하고자 정리를 결심하고서 하나 하나 넘겨보는데, 어떤 것들은 무지 반갑거나 그립고, 어떤 것들은 유치하기도 하며 어렵고 낯설기도 하다.

김소진. 내가 그의 소설을 발견하고 한참 그에 빠져 있을 무렵 그의 부고를 들었다. 생을 마감한 나이나 시기, 내게 있어서 그 존재의 비중 같은 면에서 가수 김광석의 죽음과 유사한 슬픔이 나를 통과해갔다.
그 즈음 나는 술을 (지금과 비교해서) 꽤 많이 마셨는데, 소주잔을 들고선 ‘내가 들은 소주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바로 이거야’ 하면서 ‘비명을 질러야할 때 함성을 지르게 하는 게 소주라잖아’ 며 그의 글을 읊어대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소주를 마셔본지도 꽤 되었다. 비명을 질러야할 일이 더는 없어지거나 충분히 단련되어서 이러한 소주의 힘 혹은 은총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은 물론 아닌데…  아마 좀 비겁해져서일 것이다. 소주를 마시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건강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 비어버린 밑바닥, 나의 밑바닥을 맞닥뜨릴 수 있는(혹은 내 안의 비명에 귀기울일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포장마차의 불빛과 산낙지와 소주 한 잔. 뭐 그런 게 생각나는 밤이다.  

추상충동

온통 지형이 사막이었고 나일강의 잦은 범람으로 자연과 적대적이던 이집트 사회에선 추상충동이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중권씨의 말을 들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세계를 점차 단순화시켜 보고 싶어하는 욕망 역시, 인생의 지형으로서의 세계가 (나와 친화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점차 적대적이 되어감에 따른 추상충동이 아닐까 하는…. 쓰잘데 없는 생각.

보름달

늦은 밤 귀가길 오피스텔앞 포장마차를 지나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주머니가 산낙지를 도마위에 철썩 올려놓자, 새하얀 낙지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의인화된 캐릭터 마냥 도마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발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경쾌한지(실은 필사적이었을 것인데), 마치 유캔 댄스 프로에 출연한 댄서의 화려한 퀵스텝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정신없이 구경하다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쳐 멋적게 웃고 돌아서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내가 쓰윽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게 산낙지의 경험은 그냥 한 번 어렵게 “성공”을 해본 정도에 불과한데 말이다.
희한하구만.. 하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열어보는데,
문자가 하나 와 있다.
“교교하기 그지없는” 보름달의 출현을 알리는 내용이다.
아하!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
그러니까… 교교한 보름달빛의 기운이 내 안의 있는 야생성을 한껏 북돋은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흐흐
왠지 그 팔팔한 산낙지를 먹으면, 이 무더위에 천근만근 쳐진 몸이 팔팔하게 살아나 훨훨 날 것만 같은….  

컴퓨터의 부활

이 위력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하루 한 두번씩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어젠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작에 백업을 해두고 포맷을 하려 맘을 먹었으나 게으른 몸이 이성의 권고를 무시하여 방치를 해온 것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불가능해진 포맷은 제껴두고 무작정 케이스를 열었다.
언제 쌓였는지 신기하기만한 먼지들을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긁어내고
실로 무력해보이는 몇 개의 팬들과 파워 서플라이를 바꿔줘야하나 하고 잠시 째려보다가
문득 오래 전의 경험이 뇌리를 스치면서 두 개의 램을 뽑아 힘차게 다시 꽂아주었다.
(그 오래 전 그 때에 이런 짓을 하면서 투덜거리던 것도 생각났다. 여자들 보고 컴터에 무능하다고 한심히 여기는데, 램 하나 꽂는 것도 이렇게 힘이 필요한 걸 어쩌란 말이야.. 하고.)
그리곤 반대편의 뚜껑도 화알짝 열어둔 채 그 앞에 선풍기를 들이대고 전원을 켰더니.. 아 기특하게도 컴터가 살아났다. 휴~ 

컴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컴터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끔씩 조각모음을 해줄 때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해줄 때도 그렇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맷을 확 해버리면 멀쩡해지는 걸 볼 때도 그렇다.
여름잠을 자버리고 싶은 요즘엔 리셋 기능까지 질투가 나고,
오늘은… 내 안의 뚜껑을 확 열고 선풍기를 들이대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린다.
(내 머리와 가슴과 심장과… 여러 곳의 쿨러가 제 기능을 못해 과부하가 된 것만 같아서… )
마구 혹사시킬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

아무튼… 오늘 일기의 목적은 이거다.
다음에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나면 오늘의 일을 기억할 것.
그러니까.. 점차 버거워지는, 그럼에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나의 메모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희경이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라지는게 맞는 거래. 우리가 느끼는 세월의 빠르기는 기억의 양에 비례한다는 거야. 그러니 나이가 들면 기억하는 양이 적어져서 세월이 빨리간다고 느낀다는 거지.”
맞아 맞아 손뼉치던 우린 그날, 친구 신랑이 사준 오리고기를 배터지게 먹고선 스무살 때 사소한 얘기들을 꺼내놓으며 오리고기의 “회춘” 효능을 감탄했었지…


* 함께 “회춘” 했던 친구 희경이와 진이…

링클프리의 심장을 꿈꾸며

내 몸을 치료했던 Nerve Specialist는 치료를 끝내며 이런 저런 당부끝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축되었던 심장을 판판히 펴놓았으니 한 두달간만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하는 일을 피하면 다시 수축되지 않는 심장을 갖게 될 거라구요.
두 달간.. 짧을 수도 있지만 길 수도 있는 시간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엠군 왈, “링클프리가 되면 되잖아”  

링클프리의 심장.. 괜찮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름이 없도록 형상기억처리된 것이 아니고, 주름이 아예 지지 않는 것도 아닌(굴곡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름을 허용하되 주름을 안에서 녹여내어 다시 주름에서 자유로워지는 심장.

세상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도 링클프리가 되어
어떤 양지와 음지도 영속적이지 않고,
어떤 삶의 시련도 쓱싹쓱싹 비비다보면 훌훌 펴져 다시 뽀송한 아침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부지런해지는 스팸글의 공격에 자극받아, 드디어 삼년 반 동안의 http://kalos250.com 시절을 마감하고 블로그란 걸 시작합니다. 이전의 칙칙한 분위기를 버리고 가볍게 나름 화사한 노란빛으로 집단장했습니다.
언젠가 적었듯이 내게 노란빛은 언제나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때로는 황금빛 밀밭을 서성이는 어린왕자처럼,
때로는 해질녘 동네 놀이터에 남겨진 아이처럼,
내 안의 나와, 내 안의 당신과, 혹은 당신 안의 내가 즐거이 혹은 아무렇게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