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hristmas

우리가 참 많이도 먹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무더위가 아직 무성하고ㅡ
나는 푸른새벽과 김연수가 만나서 만든 <Blue Christmas>를 듣는다.
달이 휘엉청 밝은 여름날에 듣는 노래가, 읽히는 글이, 서늘하다.

김민기, 그 사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오랫만에 듣는 노래가 반갑다.

이런 깊이의 울림을, 이 시대 어느 다른 가객을 통해 들을 수 있을까?
* 이런 울림의 노래를,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거나 다행한 일인가.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세상의 다른 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이들, 큰 목소리를 무기로 자기 주장만 하는 이들은 가엽거나, 때로 내겐 버겁다.  
 
** 휘파람을 근사하게 불고 싶었다. 이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저 소리처럼 멋지게.
그런데 내 입술에선 도무지 그 소리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어른이 되면 누구라도 휘파람을 불 수 있게 된다고. 나는 정말로 그 말을 믿었고, 그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어른의 거짓말이 되었다. 

Charlie Haden & Gonzalo Rubalcaba – Nocturnal

생각의 여름, 안녕

기억이 나도 그리워하지는 말자
그리워져도 뒤돌아보지는 말자
뒤돌아서도 걸음 내딛지는 말자
그대 이만 가시길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여, 안녕

*가지 않는 그대가 있다.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 있다. 
그렇게 끝내 완료되지 않는 ‘안녕’이 있음을 알 만큼은 살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득 의아해한다.
이 풋풋하고 고운 청년은 그걸 어떻게 알지? 하고.

Lucia with 에피톤 프로젝트,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 가요

꽃처럼 싱그럽고 어여쁜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며칠 전 이화이모님의 포스팅이 생각났다.

Lisa Hannigan, Little Bird

보고 있으려니… 아, 숨이 차다.

활엽수

날이 많이 풀렸지만 나는 아직 영혼의 수축을 겪고 있다.

쪼그라드는 영혼의 비명을 외면하기 어려우니
토닥이는 내 안의 말들이 소란스럽다.  
툭, 털어버리고싶은 욕망…

그대 한 그루 활엽수여 그 둥근 입새같은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오

뽀족한 아픔들이 돋아나네 뽀족한 아픔들이 자라나네 그대여 더 늦기 전에

생각의 여름, 골목바람

생각의 여름. ‘생각의 봄’을 치칭하는 사춘기(思春期)의 다음 시기를 가르킨다 한다.

여름볕,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로서는 그 이름이 좀 더 반갑다.
코스모스 사운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던 직장동료가 소개해주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듣던 음악만 줄창 들었다가

진짜 오랫만의 업데이트. 좋다.

아래는 코스모스 사운드의 최윤석과 함께.  

Merry Christmas!

김창완, 너를 업던 기억

김창완 밴드, 너를 업던 기억

이다지도 낭만적인 김창완 아저씨.

내 스무살 때의 이상형이 김창완 아저씨였으니,
내 젊은 날의 연애 경험이 그리도 빈약한 거에 이 아저씨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 (나쁘다. -,.-)
그래도 아저씨의 (아직도!) 이 섬세한 감성과 낭만을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영화속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감성을 가진 중년의 아저씨를 발견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말이다.  

김창완 밴드, 앞집에 이사온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