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영, 숲

잊혀진 오래 전의 약속
어지러우면 눈을 감으면 안돼
나쁜 기억들이 날 삼켜버릴테니  


흩어진 냄새의 흔적
물빛 요정들의 푸른 춤 속에
흔들리는 불빛
아득한 꿈의 향기

내 맘에 슬픔이 고이고 넘쳐도
내 눈물은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거야

보랏빛 안개를 거둬
어지러이 얽혀진 나무들에
지워지는 하늘
끝이 없는 오솔길

아무리 험한 길만 찾아 걸어도
내 다리는 아픔을 느끼지 못할 거야 

(from 오소영 2집, a Tempo)

* 그거 하지 마… 라고, 순간 울컥해지려는 내게 말했다.
  그러자 저만치 다가오던 숲이 달아났다. 사뿐히, 총총.    

시디가 도착했다.






에피톤 프로젝트 – 정규 2집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10점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파스텔뮤직






Seoul Seoul Seoul10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외 노래/Beatball(비트볼뮤직)

간밤에 에피톤 프로젝트를 듣다가 주문해버린 시디 두장이 오늘 오전에 도착했다. 놀라운 알라딘 배송.
우연이었지만, 받아본 두 장 앨범의 타이틀을 보니 그 조합이 재미있다.
낯선 도시와 서울.

Seoul Seoul Seoul은 서울/홍대의 음악씬을 응원하는 기획모임으로 시작되었다는 라운드앤라운드의 대규모 컴필레이션 프로젝트. 포크, 록큰롤,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을 아우르는 27팀의 뮤지션이 그려내는 서울의 모습이 두 장의 시디에 빼곡히 담겨있다.

얘는 오늘 만나기로 한 고래동생에게 재취업 선물로 줄 생각이다.
요즈음 오래된 시디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데 재미를 붙인 모양이니 잘 들어줄 것이다.
(두 장이라 가격이 좀 세니, 고래에게 엠피쓰리로 변환해달라 해야지.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 
서울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다른 서울 경험을 지닌 그녀에겐 (아마도) 이 도시와 취업이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새로이 손잡은 이 도시 속의 일자리가 그녀에게 즐겁고 신나는 경험들을 잔뜩 안겨주기를 바라며.

에피톤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

(……)
시청역에는 유실물센타가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곳. 방안에서도 뭔가를 곧잘 잃어버리고 찾다찾다 4차원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는 게 틀림없어, 라고 중얼거리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일은 정말 고마운 일이고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유실물센타가 궁금해져 화살표를 따라가니, 2호선으로 들어가는 개찰구 앞에 문이 있다.

그 안에는 참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께 여쭤보니, 대부분의 유실물은 잃어버린 당역에서 되찾아주고, 주인을 찾지 못한 나머지만 이곳으로 들어온다 했다. 그렇게 들어오는 것이 하루 20점 정도. 그 중 현금이나 귀중품은 바로 경찰서로 가고 1/5 정도가 여기서 주인을 찾는다.

잃어버린 것들은 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상실이 두려워 내 것으로 가지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일도 없게 되겠지.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세월을 다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2000. SBS Power English)

* 먼지가 앉은 시디를 꺼내 음악을 듣다가 유실물 센타의 보관기한은 얼마일까 궁금해져 아주 오래전에 썼던 걸 찾아봤다. 그런데 기억과 달리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굳이 찾지는 않는다.
매일 매일 들어오는 물건들을 쌓아놓으려면 엄청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니 보관기간이 분명 얼마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관 기간이 지난 그 유실물들의 운명은, 보호시설에서 얼마간 있다가 새주인을 만나거나 안락사를 맞이하는 유기견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실물 보관소”라는 이름의 단어가, 음악이 던지는 이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도, 그러한 정서에 이렇듯 흠뻑 젖게 되는 일도 없겠지.  

위 앨범에서 한곡 더.

 

버스커 버스커, 벚꽃 엔딩

봄이다. 봄바람 불고 벚꽃 휘날리는.

봄바람 부는데, 어떤 문턱이나 경계가 있으리.

음악은.

(J.S. Bach- The Musical Offering Part1, Jordi Savall)
나는 M에게서 언어를 배우는 대신에 음악을 배워야만 했었다. 혹은 M을 위해서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현악기 연주를 했어야만 했었다. (……) 우리가 언어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점점 내가 아니었고 M은 점점 M에게서 멀어져갔다. 우리가 음악으로만 대화했다면 일은 다르게 진행되었을지도 몰랐다. 음악은, 그것이 무엇에 바쳐졌건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한없이 용서하면서 동시에 무시하고 능가한다. 음악은 불만과 결핍과 갈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부에서 나왔으나 동시에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을 응시한다. 혹은 인간의 너머를 응시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인간이 그것에 의해서 스스로 응시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 언어와 음악은 그렇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음악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입을 다문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점차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인간은 단지 ‘나는 음악을 듣는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나를 사로잡을 무렵, M이 나에게 말한 대로,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中

주섬주섬

길지도 않은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참 많은걸 잃었구나
잊기 싫었던 기억들을 이 길 위에
나는 참 많이도 흘렸구나

주섬주섬 빈 가방을 뒤저
너를 위한 마지막 편지를 쓴다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이렇게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두리번거리고 한 눈 팔면서
많은 기억들을 흘리는 동안
어느새 나 혼자 남았다

언젠가는 너도 이곳을 지나갈까
그 때까지 이 편지는 여기 남아 있을까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공들여 접은 편지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 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다시 길을 가야지

어쩌면 이제 우리가 어딘가에서
다시 한 번 마주칠 일은 없을 지도
버려도 다 버리지 못 할 너의기억
함께 가는 이 길이 외롭지 않아

반듯하게 접은 종이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놓고서
그래 그래도 난

공들여 접은 편지 위에
작은 돌 하나 올려 놓고서
안녕 이제 난 다시 길을 가야지

– 정재일, 주섬주섬

저처럼 울고, 저처럼 앓으면서 보냈던 한 시절의 어린 나의 기억들과
또 한 시절 당신이 내 길 위에 흘렸던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할” 숱한 기억들과
내가 잃기 싫었으나 잃어버린, 혹은 떠나보낸 그 많은 기억들을 호출해, 주섬주섬 챙겨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의 “Mourning Diary”를 쓰고
그 위에 “작은 돌 하나” 얹어 놓으면
안녕하고 다시 떠나는 길이, 혼자 남은 여행길이 덜 외로워지나?
그렇게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일까?

(저 아이는 어떻게 저런 먹먹한 눈빛과 표정들을 지을 수 있는 건지 놀랍다.
저 아련하고 눈물겨운 영상속에 “눈물꽃”으로 알게 된 정재일의 목소리 또한 잘 스며들어 녹아있는 느낌.
시와의 트윗을 통해 보고 찾아보니 2009년 개봉을 한 영화구나.
이런 영화를, 함께 먹먹해져서, 눈물이 나서, 제대로 볼 수 있을런지.)  

고개를 들어봐…

…….

“우리모두는 혼자”니까,

그러니 우리는 더 서로 사랑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요없이 끊임없이 말을건다

그렇게 따스하게 손을 건네는데,

성의있게 응답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from <시와 무지개>

Mediterranean Sundance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마음이 계속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일-을 한다.
빠꼬 데 루치아, 알 디 메올라, 존 맥러플린의 기타 트리오는 정말 전설적이지만,
휘청거리는 마음을 다잡기엔…
오히려 마음의 센서빌리티가 높아졌다.
지진 강도 4.0정도의 흔들림.
그 진앙이 어디메쯤인지는 명확히 감지되지 않는다.  

인생역전과 재기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⑤ 로또 를 재밌게 읽었다.

특히 매주 십만원어치씩 20주 동안 복권을 사면서 현대 과학과 포천쿠키를 대결시킨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실험정신은 호 대단타.
생각해보니 이번 주에 복권을 하나 사봐야지 했는데 잊어버렸다.
다행히!도 집근처에 복권 파는 데가 없어, 사려고 맘 먹었다가도 늘 잊어먹는다.
유난히 추었던 지난 겨울엔 안잊어먹고 두어 번 복권을 샀다.
좋은 꿈을 꾸었던 한 번은 숫자6개가 모두 나왔는데 아쉽게도 두 줄에 걸쳐서 나왔다. 그리하여 당청금 만원!
남들이 별 거 아니라 했지만,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행운의 여신의 미소와 접촉해있던 공기 입자 중 하나 정도가 내게로 흘러와 닿은 느낌이랄까. ^^
칼럼의 마지막 문장, “그들이 제 월급으로 편한 집에서 안락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은 로또보다 낮기에, 그들은 가장 높은 확률인 로또에 매주 1만원을 걸고 있는 걸 게다.”는 역시 씁쓸한 결론.
안락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814만5060분의 1″보다 낮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다. 우리가.  
그러니 뭐 우리가 안락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들 그리 슬퍼하거나 분노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필요가 없는 건 삶이 원래 속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속임을 당했다 하여 분노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인 걸 인정하고 속지 않으면 된다는, 대략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면 지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피씨 통신 시절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 토요일에, Gerry Mulligan과 Chet Baker의 1974년 카네기홀 실황 앨범을 듣는다.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으로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쳇 베이커에겐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재기의 무대였단다. 옛 동료 제리 멀리건과의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88년 유럽 투어중 마약 복용후에 끝내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으니, “재기”라는 면에선 실패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으나… 재기니 성공이니 마약, 파멸 같은 단어들만으로 이 뛰어난 재즈 뮤지션의 인생을 형용할 수 있을까.
그가 마약에 찌든 육체로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고 슬퍼하고 분노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뮤지션으로서 그의 정신은 추구하는 음악의 정수를 향하여 뚜벅 뚜벅 나아가고 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쨌거나 어려운 인생이다. 인생역전도, 과거의 영광으로의 재기도.
그냥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일조차.

Somewhere over the rainbow, sarah Vaughan/ Eva Cassidy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노랫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무지개 너머를 꿈꾸는 앳된 소녀 같은 Sarah Vaughan. 댓글을 흩어보니 34살이었단다. 정말일까.
암스트롱인가가(기억이 가물) 이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격찬했다는 Eva Cassidy(아래)가 33살에 암으로 죽었으니 위 영상 속의 Sarah Vaughan보다 더 젊었을 텐데, 많이 아팠던 걸까,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
맘이 짠하다. 엘피판 자켓 속의 앳된 모습만 봤던 지라 좀 낯설기도 하다.
김광석도, 소설가 김소진도, 예수도, 부처도, 또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정말 마감!)한 나이 서른 셋.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았다면…. -,.-;;
 
같은 노래, 다른 삶, 다른 음색. 노래란 참…
노래야말로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의 인생과 가장 가까운, 가장 닮아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
전파사에서 헤드폰 앰프에 달린 어댑터를 고쳐가지고 왔다. 선물받았을 때 워낙 한 귀퉁이가 깨어져있던 거라 테이프로 칭칭 감고 썼었는데, 카메라 가방을 위에 턱 올려놓는 바람에 한쪽이 산산조각이 났다. 나름 영국에서 물 건너온 거라 어찌해야하나 물었더니, 전파사 아저씨가 금속으로된 코를 떼어내고 전선을 맞바로 220V용 플러그로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끝 (오천원!). 집으로 돌아와 다시 테이프로 칭칭. 보기엔 안쓰럽지만 연결하니 훨 편해졌다. 역시 가난한 자취생에게는 헤드폰이 진리.
음악이 좋으니 일에 집중이 안된다. 할 일이 쌓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