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봉포항

일년여 만의 바다였다.
가능하면 멀리, 좀 더 크고 긴 걸음 하고 싶었으나 고작 일박 이일의 속초다.
게다가 계속 전화와 카톡으로 연락을 해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기어이 아침 일찍 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쨍한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풍광과 상쾌한 공기에 절로 호흡이 깊어지고 근래 다시 시작된 두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새로 개통되었다는 미시령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겨우 2시간 10분인데
이리 몸은 둔해지고 나의 생은… 총체적으로 낡고 쇠해가고 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흡입한 바람의 약발도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빠작거렸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낯섬”이 거의 사라진 시공간도 문제였을 테지만, 내 폐의 흡입력, 무디어진 감각세포도 큰 원인일 것이다.
이제는, 다른 여행을 모색해야할 때인가 싶기도 하였다.

돌아와 뱅쇼님의 블로그에서 “네덜란드 조력자살 허용 검토” 소식을 보았다.
거기에도 언급된 스위스행은 작년 여름, 영국 할머니의 뉴스를 접하면서부터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터였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아”,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게 싫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간호사 출신의 75세 질 패러우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지막 여행의 경비는 벌어놔야 해’ 라는 중요한 명분과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유독 노동의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난 한 해 동안, 팍팍한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일종의 노동가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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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_id=201508101711251

다시 찾아 본 할머니의 사진 속 미소가 편안하게 아름답다.
나의 마지막 여행도 그랬으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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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164p

스탠다드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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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드”가 거꾸로 찍혀있는 이 역설!적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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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오기 전에 내가 살던 와우산이 저기 보이니 반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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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는 건 음식이 아니라 애정임을 온 몸으로 가르쳐준 아이.
내 전 생애를 통해 나와 가장 스킨십이 많았던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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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새벽에 잠이 깼다. 지난 밤 간만의 와인을 마시고 돌아와 그대로 뻗어버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숙취로 몽롱한 기운에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나는. 당신이 알고 싶어 졌어요. 나는 용기를 내볼께요. 당신은 힘을 내요.”

달달하기 그지없던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서 강우가 태양에게 건넨 대사다.
이 대사를, 뜬금없이 나자신에게 하고 싶어졌다.
물론 용기를 내는 것도, 힘을 내는 것도 내 몫이다.
좀 유치해졌다면, 드라마의 후유증임에 틀림없다.

황금의 제국에 이어 이걸 참 열심히 봤다.
초기엔 자꾸 들러붙는 귀신들의 사연들을 밀쳐내지 못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던 찌질한 태양에 자꾸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찔끔거렸고,
후반부엔 주군 소지섭의 존재를 떠나서도(물론 이게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긴 하지만) 쫌 멋있어지는 태양에게 마구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캔디이면서 캔디가 아니라 우기는” 드라마, 라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는데, 과연 엔딩에선 작가가 그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하는게 역력해보이기도 했다.
주인공들 뿐 아니라 조연들,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모두 응원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도 작가의 의도일 테지.

어쨌든 귀신 나오는 호러물이 아닌 건 분명하고(난 무서운 영화를 못본다. 귀신을 귀엽게 볼 수 있도록 해준 이 드라마는 그런 면에선 아주 교육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환타지라기보단 그저 아주 예쁜 동화 같은 드라마에 이리 몰입이 되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암튼, 드라마는 이제 그만.

오늘도 날씨가 꽤 후덥지근 하겠다.
그렇더라도, 우리 모두 굿모닝!

지리산

기상변화가 많은 나날들이다. 내게도, 그리고 여기의 우리 무두에게도.
이 날들을 통과함으로 인해 보다 단단한 근육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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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만에 찾아서였을까.
산은 그대로일 터인데, 풍경은 많이 변해 있었다.

화려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는 건 쑥부쟁이니 구절초 같은 꽃들이 아니었다.
등산객들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빼곡하게 장식한 라푸마와 노스페이스 등의 고가 의류와 배낭, 번쩍이는 스틱들은 나의 기억 속에 입력된 지리산 풍경과 너무나 틀린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변함없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엘리시움에 침투한 지구인처럼 보였을지도.

그렇게 차려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의 높은 데시벨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몹시도 시끄러운 풍경은, 산 속에서 눈 크게 열고 조용히 귀기울이던 경험을 아득한 기억으로 호출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나누던, 조용히, 가만가만 건네는 인사도 실종된 지 오래. 하산 직전에 만났던 단 한 팀의 사람들이 건넨 인사는 멸종직전 천연기념동물의 그것처럼 반갑고 귀해 보였다.

어쩌면 당분간은 이런 류의 “등산”이란 건 안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는 산보다 들을, 사람 사는 마을을 걸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인지도.

다행히도 반나절쯤 걸었던 둘레길은 호젓했다. 꽤 깊은 숲길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내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희안하게 저 아래 마을에서 개짓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제주도 올레길이 갖지 못한 걸 지리산 둘레길은 갖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좋았다.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짧은 여행은 절반쯤은 예상과 다르게 채워졌다.
뭐 여행이란 게, 삶이란 게 그렇게 의외성으로, 갖은 우연과 인연으로 엮어지는 것인 게지, 하면서도 남는 아쉬움과 반성과 다짐 혹은 각오가 있다. 이것이 나를 좀 더 강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 되어야겠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 다운로드 받은 앱이 유용했다.
“지리산 둘레보고”라는 것인데, 둘레길 뿐 아니라 등산로, 숙박과 음식점을 비롯한 관광정보가 꽤 튼실하게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둘레길 모든 코스와 등산로를 표시해주고 내 위치를 표시해주는 것. 길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너댓번이나 경로를 이탈했다가 얘 도움을 받아 제자리를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이 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때 돌아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경로 같은 거 신경 안쓰고 하릴 없이 걸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인적 없는 산길은 나같은 길치에겐 그리 만만치 않으므로.
지리산 가시는 분들 참고하시면 좋겠다.
https://itunes.apple.com/kr/app/jilisan-dullebogo/id569385507?mt=8

매미

창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있어 베란다에 나갔다 이 녀석을 발견한 게 엊그제던가.

(잘은 모르지만) 매미로 추정되는 녀석은 뭔 이유인지 이렇게 비장한 자세로 하루내 딱 붙어 있더니만, 그날 밤 소나기가 지나간 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요즈음 환골탈태를 하고 싶은 욕망이 스물스물하던 차여서일까.
아직까지도 이 녀석의 안부가 몹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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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동 문방구

친한 후배 녀석은 작가로 등단한다 하고, 언니네는 십년 넘게 끌고 오던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려 들떠 있고, C삼촌은 포기할 수 없는 까페의 꿈을 합정동의 “끼”라는 주점에서 펼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남은 생을 안착하려는 마음으로 이사를 하고, 또 누군가는 접어두었던 듯 보였던 결혼을 한다고 한다. 또한 몇몇 지인들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는데, 여기엔 나도 끼일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꽤 다른 풍경속을, 다른 온도로 살아보려 하는 지금은 바야흐로 환절기.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그러하듯, 그 풍경 또한 지나온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으나, 필시 그러할 테지만,
어쨌거나 환절기엔 감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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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동

아이들에겐 엄청난 매혹의 대상일 동네 문방구 풍경.
지금 나를 매혹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다 사들고 들어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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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들고 있는 동안은 정말 딴 생각이 안나게 해주었던 누가바다.
얼마 전 이사온 성산동은 내게 저 문방구의 이미지를 닮았다.
한동안 일 때문에만 누르던 셔터를 들이대고픈 매혹적인 이미지들을 예기치 않게 마주친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이 뭐 얼마나 된다고,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이미지든, 만남이란 것이 필히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라고 항변하며 오늘도 미뤄둔다.

봄.

2013. 3. 21 더블린.

2013. 3. 21 더블린.


빗방울이 그다지 차갑지 않으니, 이제 정말 봄인가보다.

* 유배를 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고개를 쳐든다.
유배를 당하려면 무슨 역모라도 꾀하여야 할 것인데, 반역을 할, 그리하여 유배를 명령해줄 왕이 없구나.
유배지를 할당받지 못하여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새?

조금 지치고, 조금 외로운 밤이다.  

컴백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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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으로 컴백.
내가 내쉰 숨들이 딱 그만큼의 무게로 고여있는 곳.
반갑고, 좋다.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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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필요한 촬영을 위해 맑은 날을 기다리기 며칠 째.

이 도시에 도착하면서부터 눈바람 몰아치더니, 좀처럼 햇빛을 보여주지 않는 인색한 하늘이 서운해진 차에,
문득 거기의 계절이 궁금해져 소식을 기웃거리다,
비를 기다리는 당신을 위해 비오는 겨울 밤바다 사진을 꺼내 걸어본다.
가는 빗줄기를 타고도 두 뺨을 아프게 공략해오던 바닷바람은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비바람과 일상적인 습기에 충분히 젖어, 몸은 무거워지고 발걸음은 너무 더디어졌다.
   

Summit Inn 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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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기너스에 등장하는 아서처럼. 단어 150개쯤은 너끈히 알고 있을 것 같던 능청스런 개.
이들의 동행이 꽤나 멋져 보였던 한 밤의 Summit I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