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a bottle of Miller

Longbeach Acuarium

이제야, 비로소, 나는 바닥에 도달한 거 같아요.
지금 내 발바닥이 사뿐히 딛고 있는 것이 바닥임을 알겠어요.
조금씩 추락하고 있을 때의 불안과 현기증을 생각하면,
더 내려갈 깊이가 없다는 건 조금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군요.
많이도 버둥대고 숨가빠했던 시간 동안 질끈 감았던 눈도 조금 열려
시야가 조금 넓어진 듯도 해요.
그래서 비로소 바닥이 보이는지도 모르겠지요.
이제 이 바닥을 딛고 힘껏 오를 일만 남았군요.

그렇지만 지금은, 깊은 바다 물고기처럼,
소리없이 미동도 없이 바닥에 웅크려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어요.
내가 혹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오래 오래, 너무 오래 있거들랑,
어느날 문득 우연히도 내 지난 날의 낡은 미소가 당신의 기억 속에 떠오르거든,
잠깐 모닝콜을 부탁해도 될까요?

<Long Beach>

새,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 이름에 바쳐졌던 수많은 찬사와 노래와 의미들을 생각한다.  
새는 저기 저렇게 멀리 창공을 배경으로 날고 있을 때 아름답다.
그래서 공원 바닥이나 해변을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인간의 손에 앉아 먹이를 먹거나 새장속에 갇혀있을 때는 비둘기나 앵무새나 갈매기, 카나리아  등의 구체적 이름이 보다 적절해보인다.
(그 모두가 인간이 무작위로 붙여놓은 이름임에는 다르지 않지만)

삶이나 사랑, 인간 같은 것들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멀리 추상적인 명사로 존재할 때와,
내 안에 내 옆에 구체적 형상과 무게를 지니고 개별적인 이름으로 불리울 때,
그 의미가 전혀 다른 층위의 것이 되는 것 말이다.

카메라를 꺼내들다





오랫만에 카메라를 들고 가까운 길을 나섰다.

#1 – 한쪽 작은 갤러리에서 지역의 사진동호회 전시가 열리고 있던 코닥 랩.

#2/3 – 재패니스 타운에 있는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엔젤 아담스의 전시회가 있다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도착했는데
요란한 일본작가 전시에 묻혀 젤 구석에 위치해 있었고 작품수도 적어서 다소 실망.
그래도 이 대가의 사진을, 오리지널 아날로그로 마주해보는 건 좀 흥분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요즘 사진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즈만 무지하게 늘린 허전하고 밋밋한 사진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에,
고심해서 스파팅(인화시에 먼지 등으로 인해 하얗게 보이는 점 등을 교정하는 것)한 흔적까지 보이는 사진들은 단단하고 깊어보였다.
음 역시 사진은 이맛이야 싶다가, 사진에 대한 열정인지 뭔지를 품고 있을 무렵의 추억들-암울했던 암실이며 처분해버린 카메라며, 픽서의 지독한 휘발성 냄새와 인화지를 건져올릴 때의 뽀드득한 감촉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 생에 그런 열정을 다시 호출해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 4/5 – 진짜 내 근황사진. 오랫만에 찍힌 내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헤 아직 볼살이 탱탱하네 뭐..
주름이 좀 늘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망가지진 않았군.

당분간 사진을 좀 찍어봐야겠다. 풍경과 친해지는 일. 이 낯선 도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렇게 시작해보려 한다.

근황

그루브 몰
말하자면 한국의 명동이나 일산 등의 “로데오거리”라고 이름 붙혀진 젊은이들의 쇼핑센터쯤 되는 곳.
다른 점이라면, 대공원의 코끼리열차 같은 게 다닌다.
에버코롬비 매장의 입구엔 언제나 ‘몸이 아주 좋은’ 청년이 웃통을 벗고 청바지만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누구나 와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옥주현… 이런 애들도 얼마 전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고 한다. 특이한 고객 서비스다. 재미로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 영 그림이 안나올 것 같아 참았다.

그곳에 있는 대형 서점, 반즈 앤 노블 BARNES & NOBLES
이곳에서 에셔의 달력을 샀다. 너무 예뻐서 2007년 달력인데도 벌써 책상옆에 붙여두었다.
4층 정도 되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이곳은, 교보나 영풍 같은데 비하면 한산하기 그지없어서 구경하기는 참 좋았다.

무슨 초컬릿 포장 같아 보이는 이것들이 사실 책이다. 특이하고 이뻐서 한 권 사볼까 했으나 조금 비쌌다.
이곳엔 책이 정말 비싸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스에 운송비까지 잔뜩 붙어서 정말 만만치 않은 가격이 나온다.

임양이 내 최근의 사진이 보고 싶다해서 찾아 올린다. 사진을 많이 안찍혀봐서 그런가, 난 내 얼굴사진이 늘 낯설다.

_ 올리고 보니 근황은 아니나, 이거밖에 사진이 엄다.. -,.-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역사 전체가 폐허나 야만상태에 처해지더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신의 추락한 영혼을 구원하는 끈질긴 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처구니없게도 자꾸만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명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중에서 

샌디에고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정신을 어찌하든 추스려볼 요량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인디언의 기를 받아올 수 있다는 성지를 돌아볼 계획을 짰다가, “언닌 우릴 안좋아하나봐” 라며 서운해하는 동생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어가 기어이 함께 샌디에고행을 나섰다.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 샌디에고는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의 결과로 미국령이 된 해항도시이며 관광지.
그닥 눈길을 잡아끌거나 매료시키는 대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런 여행도 있구나 싶게, 잘 먹고 잘 쉬었다. (동생부부는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그들과의 행보는 늘 배부르고 등따숩고 럭셔리한 것이 된다.)
그래도 여행, 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심심하고 허전하니, 난 아직은, 젊은 모양, 이라고 생각하다가,
해안도로의 오르막길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안간힘으로 오르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나도 언젠가는….




이 즈음에서 나는 제주도 풍경이 몹시도 그리웠다.  

럭셔리한 호텔방에서 바라본 야경


젊은 연인들,  공중화장실앞.

아담하고 한적했던 어느 호주 작가의 전시회장. 다분히 여성적인 그림들속에서 발견한 이 작품… 토토로가 생각났다.
해변의 가로등 위를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철침이 비좁게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쇼핑센타의 간판에서도 이걸 보고 의아하여 물어보았었는데 새가 앉지 못하게 하는 장치라고 했다. 아무리 새똥이 보기 싫어도 그렇지 해변에 이런 걸 박아놓다니, 해변이야말로 새들의 고향이 아닌가.
‘참 못됐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퇴역한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꾸며서 만들어놓은 해상박물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Honor the legend”할 수는 없다며 입장대열에 빠져서, 동생부부가 전쟁의 유물과 전쟁시물레이션을 즐기는 동안 항구를 어슬렁거렸다.
(박물관시설은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이어서 동생은 신나는 얼굴로 출구를 나와 내게 기프트샵에서 산 선물을 건네주었다. 언니가 길을 잘 잃으니까.. 하며 건네준 나침반은 내게 정말 유용한 것이었으나, 전투기폭격장면이 들어있는 안의 사진은 아무리해도 떼낼 수가 없다. -,.- 한국에 두고온 내 앙징맞은 나침반이 아쉬운 중… )

* 덧붙임

평론가 이명원이 선호하는 문체라 소개했던 김윤식의 글에 여행에 대한 것이 있다.
“벗이여,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들의 들판 헤매이기를 세 번 반복하기. 바야흐로 등불이 켜지고 있는 마을을 함께 지켜보기. 아득한 울림이자 선연한 헛것 속에 함께 서 있기.”

뭐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능력은 내게 없지만,
나도 한 때 이런 “선연한 헛것” 속에서 아득하게 공명해보기는 했었지, 언젠가는 또 이런 들판 헤매이기를 해볼 수 있겠지,  하는 가벼운 자기위안과 꿈꾸기.  

에드몽


에드몽은 스페니쉬이고 카펫까는 일을 한다.  
작업실로 마련한 공간에 카펫을 깔러 나타났을 때 한손엔 연장통, 한 손엔 자그마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가 들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작업하는 데 필수용품이라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흥겹고 나른한 스페인음악은 그들의 작업스타일과도 비슷했다.
라디오 음악에 맞춰 연신 흥얼거리며, 성급함이 없이, 스스로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인 마켓이나 식당의 종업원, 블루칼라 업종의 대부분은 멕시칸을 비롯한 스페니쉬가 도맡아하는데, 주중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주말엔 성대한 파티를 열어 즐긴다고 한다.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 대개가 저축을 하지 않고 다 써버리므로 대다수 한인들에겐 한심한 민족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나, 그들의 낙천성과 유유자적한 삶의 패턴엔 삶을 향유할 줄 아는 멋스러움이 있고, 타인에 대한 스스럼없고 우호적인 태도는 아이들의 천진함을 닮았다.

뜨거웠던 울진의 2006’여름

뜨거웠던 울진의 여름, 밤바다, 회우당, 익숙한 얼굴들



파주 출판단지를 가다


“구름이 너무 예뻐서” 라는 이유를 대고 내 집까지 당도한 황군의 단호한 호출을 받고 전날의 과음으로 부시시한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공사중이던 때에 슬쩍 지나가보기만 했던 파주 출판 단지는 파란 하늘 화사한 구름 아래서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저마다 다른 다양성의 잔치로 보이는 건축물들 어디서 봐도 그 파란하늘이 스며들어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까지 보였다는 것이고, 놀라웠던 건 이리 쨍한 날씨에 찍은 내 사진 중에 흔들려 보이는 것이 발견된다는 것. 너무 오래 카메라를 놓고 있었나. 아니면 풍광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가..

온라인상으로만 알고 지내던 푸른고원님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만남과 관계에 무척이나 소극적이던 내게는 특기할만한 일입니다. 그곳 풍경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 풍경의 일부인 듯한 사람, 이라고만 적겠습니다.
조만간 카메라와 나의 손떨림을 보완해줄 트라이포드를 메고 파주에서 혹은 일산에서 다시 조금 더 긴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흐흐

오랫만에 이런 생각 새삼스레 해보았습니다.
세상엔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참 많이 남아있고, 그 길에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사람과 사물, 미지의 대상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 (얼마전 국민연금에서 보내온 고지서를 보고 가지게 된 “국민연금이 60살부터 나온다니 오래 살아야겠어” 라는 깨달음의 연장선인 듯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