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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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rock Station

Irish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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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ook at life. You live it.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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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lbeg Lighthouse in Dublin Port


햇빛과 바람의 에너지로 삶을 이어가고 세상의 빛이 되는 세상이 있다면.   

철없이 산다는.

철없이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무 생각없는 게 아니라, 속으로 치열하게 저항하며 살아온 거죠…

라는 그의 말이, 움츠러들었던 가슴에 반갑게 꽂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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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의 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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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내 방 안의 작은 화분들이 이상하다.  
실내가 너무 건조해서인지 한참 전부터 잎이 푸르스름한 외양을 한 채로 바싹 말라 있다.
도대체 살아 있는 것인지, 죽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궁시렁대면서 바스러질 듯한 식물들에게 계속 물을 준다.

예전의 어떤 애들은 며칠 잊어먹어 축 처져 있다가도 물을 주면 순식간에 팔팔해지면서 하늘 높이 팔을 올려보여 응답을 해주었더랬는데. 도대체 아무 반응이 없는 얘네들은 무심해 보이다가 애처로워 보이다가… 어떤 때는 그 생기 없음이 꼭 나 같아 보여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녀석들의 생기를, 살아있음의 낌새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래도 감기는 다 떠나보냈다. 하긴 감기나 숙취만큼 몸의 생존력을, 자정작용을 쉬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없으리.
이번엔 그리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삼년 째 내 감기를 목격한 알렉스로부터 미리 독감주사를 맞으라는 얘길 듣고 독감주사에 대해 의사선생님에게 물었다가 들은 대답.
“보건소에 있을 때 보면 독감주사를 맞으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게 줄을 서시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찬바람 맞다가 오히려 몸살을 앓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생각해볼 만한 얘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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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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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고 있다 문득 생각났다, 이 풍경이 아스라한 유년의 느낌을 솔솔 풍기는 이유.

<엠마오 문방구>를 하던 주인집에 세들어 살던 때가 있었다. 이름은 문구점이었지만 저것과 모양은 좀 다른 뽑기 기계와, 윙하는 소리를 내는 기계에서 뽑아내던 브라질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온갖 군것질 거리가 있는 그런 문구점옆에 집이 붙어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라고 하기엔 성격이 안맞아 그리 친하지는 못했던 주인집 딸내미도 생각난다.
시대가 그러한 지라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 주제에 나름 주인집 딸의 권력을 행사한다고 내게 제 숙제를 강요하던 아이. 물론 강요한다고 해서 해준 거는 아니었지만.
하루는 내가 대신 해준 숙제가 큰 칭찬을 받았다며 기분이 좋아져 아이스크림인가를 공짜로 주었고, 그 담날엔 내가 거절하자 화를 냈다. 그리곤 삼사일 정도를 못본 체 하고 지내다 결국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 아이를 보며 속으로 좀 오만하게, “그래, 아쉬운 건 너지” 중얼거리던 기억도 난다.
그보다 더 선명한 기억 하나는 그 집 옥상에서 보던 하늘빛. 이 담장 그림에서처럼, 꼭 이런 빛깔로 저 먼곳에서 조금씩 스며들어오는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다 눈물이 나던 기억.
* 누군가의 잃은 것과 얻은 것, 에 대한, 먼 곳에서 날아온 문자를 받고서 인어공주의 목소리와 다리가 다시 생각났다.
그 때 일은 지금도 아쉬운데, 어쩌면 지금도 매일매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인어공주의 목소리와 같은 무언가를 잃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처럼 나의 총기-대충 대신 해준 숙제도 칭찬을 받던-도 조금씩 사그라져가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 대신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삶을 잃어가고, 그 “지나간 자리”엔 “기억”이 남아….  
** 일을 하며 틀어놓은 TV에서 한미 FTA에서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걸 듣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것들을 잃게될, 우리네 삶의 많은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 거래라는 생각에 오싹해진다.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던 플랭카드의 물방울 무늬가 섬뜩해보인다. -,.-;;  
***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 해야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날이 언제였던가. -..-

사진을 고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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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다니고 있는 이번 소외지역 순회공연에서는 장애인시설만 세 곳.

한두시간 머물며 공연을 촬영했을 뿐이지만 각각의 장소가 남긴 인상은 꽤 강하다.
그 중 마지막 다녀온 이곳은 규모도 그렇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한 가족같은 곳이다. 꽃미남 아카펠라 그룹 EXIT의 공연도 큰 몫을 했다. 노래중 자기 이름이 불려지자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푹 박고 들지 못하던 여학생 뿐만이 아니다. 오랫만에 안구정화했다며 환호하던 학생들의 엄마들에게서 장애인아이를 둔 어미의 비통함(말아톤인가 하는 영화의 장면으로 떠오르는)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장앤시설이든, 농산어촌, 다문화 가족이든, 일명 “소외계층”(이라 분류된 이들)을 촬영하는 일엔 사실상 조심스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 대체로 촬영은 수월했다. 아이들, 어르신들은 내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특히 장애학교 아이들은 나를 다짜고짜 껴안거나 손을 잡아끌고 친구를 인사시키기도 했다.
물론 카메라를 카메라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 교정시설은 물론이었고 장애인시설 중에서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엔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리 밝지 못했다. 카메라 자체가 좀 폭력적이긴 하지만, 나 자신도 사진찍히는 걸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보호”하는 이들이 “보호”를 이유로 촬영에 제한을 둘 경우가 더욱 그랬다. 그런 날 돌아오는 길엔 어깨에 맨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1.5배 정도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가, 아닌가 라는 것이 어떤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소외계층”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당당하고 건강한 모습은 훈훈하고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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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땅 외진 지역의 학교, 도시의 임대주택 공터에서 열린 마당극을 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 예쁘고, 꽃미남 오빠들에 열광하는 장애학생들의 얼굴은 또다른 농도가 더해진 깊이로 환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자꾸 잡았던 이들은 카메라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오히려 즐기던 장애 학생들의 어머니들.
그 당당하고 쾌활한 어머니들의 존재는 아이들을 더욱 더 사랑받고 사랑하는 아이들로 보이게 만들었음을 사진에서 다시 확인한다.
(이들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 건, 아무래도 내 능력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지만, 편견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내가 보았던 대상이 가진 그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왜곡없이 사진으로 올곧게 드러나게 한다는건… 이런 한 순간의 행사사진이 아니라 더 좋은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

황혼의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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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시간, 내 눈을 사로잡았던 황혼의 뒷모습, 황혼의 건널목.

스무살, 그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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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1893530.mp3

스무살  
               

일몰 다섯시 반
눈을 감아 좀 울고
못 믿겠지만 나는 한다고 했어

날 아는 사람들
이해한다 이해한다 말하지만
남지 않고 사라지는 말

처음에는 못견디게 서글펐지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해
아끼던 그대 모두 끝이나던 날
골목을 걷고 조금 울었고 집에는 왔어

추웠고 눈이 왔고 그댄 창문을 닫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얘기했고
저 멀리 땅끝 어딘가로 도망치듯 그댄 갔고
나는 남아 그대의 거짓이 되었고

일몰 다섯시 반
눈을 감아 좀 울고
못 믿겠지만 나는 한다고 했어

날 아는 사람들
이해한다 이해한다 말하지만
남지 않고 사라지는 말

처음에는 못견디게 서글펐지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해
아끼던 그대 모두 끝이나던 날
골목을 걷고 조금 울었고 집에는 왔어

추웠고 눈이 왔고 그댄 창문을 닫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얘기했고
저 멀리 땅끝 어딘가로 도망치듯 그댄 갔고
나는 남았고 모든건 거짓이 되었고

–  코스모스 사운드

*
일몰 시간이 빨라졌고 밤이 서늘해졌다.
계절의 변화가, 이 환절기의 공기가 던져주는 서늘한 각성이, 자꾸만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가늠하게 만든다.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이는 캐릭터라고, 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소금구이 돼지갈비에 소맥을 마시면서 C삼촌이 느리고 낮은 어조로 말했고, 나는 착한 학생인양 그 말을 들었다.
예를 들면 연애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이건 동석했던 K가 현재진행형인 지 연애담을 한바탕 풀어놓고는 전화한다고 잠시 사라진 터라 나온 얘기일 것),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그 경계가 느껴진다는 것이었으나 더 이상 친절한 설명은 없었다.
그럼에도 왠지 내가 풀어야할 숙제를 던져주는 선생님 같은 포스가 느껴져 고분고분한 학생처럼 들었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
나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던 것인지, 나는 ‘수많은 나중의 어떤 나’를 그들에게 꺼내 보이고 있었던 것인지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게으른 명절의 시간속을 모기향의 연기처럼 폴폴 피어났다가 사라진다.
조금 맵싸하다.    
**
“살갑다”라는 표현을, 나는 조카들과의 관계에서 이해했다.
그 감각은 (어머니의 죽음과 더불어) 단지 잊혀진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이해’하는 일은 처음인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훌쩍 커버려 자주 볼 수도 없고, 더 이상 자고 가라고 매달리거나 징징대지도 않는다.(뽀뽀한다고 내 얼굴에 침을 흥건히 발라 놓는 일도 물론 안한다.ㅎ)
그럼에도 아직도 만나면 내 목에 팔을 둘러 안고(숨이 막힐 때도 있다.), 옆에 있으면 내 손을 잡아 끌어 제 손바닥을 포개거나 깍지를 끼고 “살갑게” 들러 붙는다. 마치 자석처럼.
사실상 타인과의 그러한 접촉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학창시절 친구와 손 잡는 것도 서먹했던 나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녀석들의 그 보드랍고 촉촉하고 따뜻한 감촉은 머라 표현하기 어렵게 기분이 좋다.
너무 빨리 무럭무럭 자라는 통에, 가장 센 강도로 내게 세월을 일깨워주는, 그럼에도 이쁜 것들!
지금처럼만 밝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