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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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에서 프로이트는 어머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랑은 향수병이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나는 정말 그 말에 공감한다. 내게도 역시 사랑은 향수병이다.

                                  – 할 포스터,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서문 중에서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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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피곤했던 지라 열시부터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 시간 반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남은 와인도 홀짝이면서 가장 하기 싫어 미적거리던 일에 손을 댔음에도, 일단락을 짓고도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 다시 뜯어 고칠 때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연신 빠작빠작거리는 머릿속이 문제일 것이다. 머리통을 어찌 잠재울 수 있는지, 어찌 플러그를 뽑아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도 이럴 때가 있는지, 이럴 땐 어찌하는지, 궁금하다.  
우유를 데워 마시고 달아난 잠을 다시 불러봐야겠다.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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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너 뭔 잘못을 한 거니?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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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자전거를 끌고나가 상암까지 찍고 오다.

커브 도는 게 조금 자연스러워지니, “몸과 대화”를 하라는 자전거싸부의 말이 조금 이해가 갔다.
가려고 하는 방향,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도 따라가야 하는 것을 내 몸이 이제야 조금 이해를 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자전거 싸부가 몹시도 기뻐해주니 어깨가 으쓱.
해야할 일이 많아졌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고, 설레며 기다리는 일도 생겼다.
조금 바빠질 것 같다.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올 무렵이면 늘상 환절기 감기처럼 덮쳐오던 무력감에서 이제 좀 헤어나려는 모양이다.
 
며칠 간 티비에서 보았던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의 영상이 자꾸 어른거렸었다.

“전쟁과 같은 극단의 폭력”을 경험한 이후의”극단적 자존감 상실”속에서 심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겪고 있는 그들을 만났던 정혜신씨의 말도 자꾸 리플레이되었다.
그들에겐 죽음에 대한 긴장이 없어보였다는, 삶을 이어주는 가닥이 여러 갈래가 있다고 했을 때 그들에겐 얼마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는 말이었다.
피씨에서 자꾸 감지되는 전기를 어떻게 해소해보고자 접지용으로 샀다가 귀찮아 냅둔 전선다발을 보고도 그 영상이 다시 떠올랐고 그들의 고통에 감전된 것처럼 움찔했었다. 우리가 참.. 무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섬뜩함이 스쳤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이 참으로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렇게 봄을 맞고 있다.
배가 고프다.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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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맥주가 헤프다고 소맥을 만들어 마시다가 남기고 간 소주 한 병.

삼분의 일 가량이 남은 채로 벌써 이주일째 크지도 않은 식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너무 잘 어울려서다.  
오늘 눈에 띄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녀석 참 예쁘게도 생겼다. (나 주당 아님)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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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와우공원)
봄이다.

“꽃보다 **”, “꽃보다 ****”라는 식의 형용을 무색케 하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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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3294634.mp3

두 번째 달, 서쪽 하늘에 (from 아일랜드 OST)

오늘, 종일 날이 맑더니 노을빛이 예뻤다.  

나의 황혼도 그랬으면 좋겠다.

커피콩

조리의 과정과 결과에 있어 최소비용과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결과로 누구보다 심플하고 웰빙스러운 식생활을 영위하는 나이지만(뭐 아무렇게나 대충 먹는다는 얘기), 커피에 있어서만은 좀 사치스러운 쪽이다. 동네에 있는 까페에서 갓 볶은 커피 원두를 사가지고와서 핸드밀로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 먹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값도 저렴하고 맛있는 볶은 원두를 파는 곳을 찾았고, 힘 안들이고 손쉬운 핸드밀도 구해 나름 시스템을 갖추어, 외출할 때는 새는 일 없는 든든한 텀블러에 담아 백팩에 넣어서 들고 다니니, 사실 그 효용을 생각하면 뭐 사치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스타벅스 두세 잔 가격이면 여기 가득 담을 수 있는 볶은 원두를 산다.) 게으른 나로서는 정말 대단히 럭셔리한 쪽인 건 확실하다.
어쨌든, 그렇게 갓 볶은 커피를 사가지고 들고와서 투명한 병에 확 쏟아부을 때의 기분은 참 좋다.
일단 그 향기로움이 조그만 방안을 확 바꿔놓는 것이고, 반짝반짝 맨들맨들한 커피콩의 자태가 주는 시각적 쾌감이 있다.
이 때 커피를 갈아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드립퍼 안쪽에서 봉긋하게 솟아올라 제 신선함을 과시한다.
이 때가 커피콩의 가장 빛나는 한 때, 커피콩의 “화양연화”인 것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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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후두둑. 빗소리다.

예전에 비에 붙는 말들은 참 예뻤다. 봄비, 가랑비, 안개비, 장대비, 여우비…
어렸을 때 친구는, 아이를 낳으면 비자 돌림으로 이름을 짓겠다고 했다. (물론 실현은 어려울 듯 하지만)
그런데 오늘 그보다 친숙하게 들리는 건 방사성비, 산성비다.
비를 참 좋아하던 나로서는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웬만한 비는 참 많이도 맞고 다녀서, “키가 클 줄 알고 그러느냐?” 라는 핀잔도 꽤 들었는데. 에휴~

얼마 전 다녀온 간월도.
내게는 정말 특별했던, 한적하고 고즈넉하던 외딴 섬의 암자는 이제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이런 류의 쓸쓸한 경험은 잘 익숙해지지 않아, 자꾸 ‘아쉽다’ 는 말이 흘러 나왔다.

가장 아쉬웠던 건 수평선 아래로 우아하게 뻗어있던 운치있는 돌담 기와의 실종.
그것을 대체한 알루미늄인지 철인지로 된 지붕에 가득했던 낙서들. 
무학대사의 깨달음으로 세워진, 원효대사도 수행을 하고 갔다는 암자에 하트와 이름을 새기는 이들의 심사는 어떤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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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23 간월암

늦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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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먹으려다 좌절했잖어.
같은 빵칼로 바게뜨 썰다가 검지 손가락 똑같은 자리에 또 상처를 냈거든.

너무 바보같지?
그래도 지난 번 보단 훨 얕은 상처야. 상처보다 마음이 아팠어. 바보같아서.
그래도 빵은 맛있더라. 자전거 타다 넘어져 다치고 떡볶이 맛나게 먹었다는 녀석이 생각났지.
오늘도 이웃나라의 긴박한 뉴스를 티비로 보면서 빵을 먹었어.  
그들의 비극에 가슴이 먹먹해졌는데, 내 몸 세포는 생존본능을 더 키우고 있었나봐. 식욕이 늘었거든.
참 간사하지, 몸이란 거. 마음을 닮아가서 그러한가.
빵칼을 확 버려버릴까 하다가 냅두었어.
빵을 썰 땐 티비를 보는 것 같은 일은 안 할 것을, 내가 기억했으면 좋겠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