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신, 그림같은 신화

그날, 봄비가 몹시 내리고 마음이 한없이 웅성거리던 날, 맥주를 마시다가 시인은 거품을 응시했다. 우리는 모두 거품에서 태어난 거라고, 생명은 여기에서 시작된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거품에서 태어났지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쓸쓸한 건가 봐요, 삶도 아름다움도 사랑도 헛되고 헛된 건가 봐요, 내가 막 그렇게 덧붙이려는 순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품을 존중해야 해. 아아. 웅성거리던 마음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한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기쁜 탄식을 내뱉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시각의 차이라니. 그것으로 인해 이렇게 달라지는 세상이라니. 우리는 모두 거품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거품과 함께 거룩한 것이다.
– 황경신, 그림같은 신화

                                                                       
대림역에서 그 유명하다는 원조 마늘치킨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맥주를 홀짝거리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이 구절을 읽었다. (요즘엔 전철안에서만 책을 읽는다. 전철을 오래 타야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할까보다.) 그림이 많은, 카스테라처럼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다음부턴 맥주를 거품이 많이 나게 콸콸 따라 마셔야겠다고.

Once

전철안에서 늘 듣던 “Once” 인데, 이렇게 영상을 마주하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확실히 영상 이미지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무장해제시키며 파고드는 힘이 있는듯.
글렌 핸사드, 마케타 잉글로바가 음악과 삶속에서(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까지!) 서로에게 그렇듯이, 덕만공주와 미실 곁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네 인생엔 누구에게나 (늘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씩은) 이렇듯 뜨겁고 힘찬 응원이, 그런 응원을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  

When your mind is made up, there’s no point trying to change….

이우일, 옥수수빵파랑

사용자 삽입 이미지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을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힌다. 그리고 묻는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 이우일, 옥수수빵파랑  중에서



이 책은 그러니까. “무엇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대한 이우일의 대답, Favorite Things 리스트이다.

알라딘 중고 코너에서 발견해서 저렴하게 구입했는데, 마치 바에서 맥주 한 잔 마시다가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사람으로부터 두런두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일처럼, 그렇게 상큼하고 기분좋게 읽힌다. (오래 전 실제로 홍대의 자그만 지하 바에서 이우일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땐 물론 말도 못붙여봤지만.)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휴~ 한숨 나오는 참에 집어들면 마음이 한스텝쯤은 밝아지는 책.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거나, 친해질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이보다 쉽고 명확한 것이 또 있을까.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종이에 연필로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행복해질 테니까.

                                                       – 서문중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 친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작가의 말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more


소설을 읽고,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영향을 끼쳤다는 노래들을 들으며
(http://www.mixpod.com/playlist/28671224),
소설을 쓰는 동안 받았다는 영향들의 리스트를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마지막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감을 잡게 된 “불꽃”의 의미를 되새겨보니,
이러한 소설쓰기의 방식, 독자와의 소통방식까지도 소설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구나, 라는 생각.

오랫만에 듣게 된 Damien Rice의 목소리는 소설의 분위기, 저 표지의 사진과도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이한철과 The Box Bus Riders

기사는 요기
저런 노래를 부르며, 저런 표정으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
여행이, 링거와 같다는 말에 전폭 동감.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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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시간을 나름 즐겨보고자 오랫만에 잡은 연애소설.
특이하게 사진엽서 몇 장과 함게 BGM시디가 딸려왔는데, (음악이) 꽤 괜찮다.
부와 미모를 지닌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현실의 시스템에 대해 작가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기”라는 전략을 제시한다.
그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주고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그것들을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온 바로 우리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라 부끄럽게 고백하는 작가의 이 믿음을 의심할 생각은 없지만, 이 견고한 세계가 과연 상상력에 불과한 걸까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그러나 이 문제가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개입하고 스며드는 방식들을 고려한다면, 그 나름의 ‘개인적인’ 해법도 나름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
이 야만적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키가, 부와 미를 쥐고 있는 극소수가 아닌 우리 잘나지 않은 절대다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쨌거나 변화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즐거운 상상,  발상의 전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소설의 흐름은 조금 심심하다.
주제의식이 앞서서인가, 기대했던 만큼의 기발함, 소설적인 재미는 덜하다는 느낌.
여주인공은 너무 추상적인 존재로, 그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고,
아름답다는 판단에 대한 주관적인 요소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쉽다.
여성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들어있으며, 아름다움의 판단엔 또한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논리와 관점과 요소들, 주관적인 정서들이 개입되는가를 간과했다는 생각.
단순히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어쨌거나 내게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 여성을 사랑하기까지, 또 사랑하면서 생겨나는 내면의 변화와 소통의 과정이 촘촘하지 않은 것도 소설이 다소 공허한 느낌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

전체적으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환타지의 느낌이 드는 건, 부와 미에 대한 작가의 전략이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

(BGM: Mushroom,  그런, 그녀)

Swallow, 어디에도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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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곳


살아있나 이렇게 여기 서있나
찾을 수 없는 곳 이곳인가
오늘 온 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녔어
어디에도 없는곳
오 나의 사랑은 왜 자꾸만 커가는 걸까

돌아갈 수 없는 걸 왜 모르나
아마 말하고 싶어서 찾아 온거야 어디에도 없다고
바람을 나르는 소년처럼 구름을 타고서 찾아왔어
이렇게 널 위해 찾아왔어
이렇게 널 위해 찾아왔어

– Swallow 2집 <Aresco> 중에서

 
간밤에 들은 노래가 웅웅 귓가에 울리는 월요일.
8월이면, 아무 이유 없이도 눈물이 난다는 걸, 문득 떠올린다.
새벽에 태어났다는 친구는 새벽이 좋다했었나.
시간이나 계절을 느끼는 정서에 깊숙이 관여하는,
상처 혹은 무늬처럼 새겨진 신체적 경험이나 기억들.  

사리토우 마리코, 광합성

광합성          — 사리토우 마리코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모든 책을 다 팔아버렸다. 헌책방 할아버지가 내 방에 와 내가 십 년 동안 간직하며 이사할 때마다 질질 끌어온 글자의 떼를 모조리 데리고 가셨다. 잘 가요, 내 책들아. 그것은 무척 무거웠다. <책이란 참 무겁군요> 내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럼요. 아무래도 원래가 나무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책 한 권 안 가지고 여기에 왔다.

일본말로 나무는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 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박았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 하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 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한국에 유학 가기로 했어요. 이 년이나 지나야 돌아올 거예요>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할아버지는 책에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 무렵에 나는 살아 있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꾸린 책을 헌 트럭에 싣고 나갔다. <잘 가시오,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면서.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책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전에도 책을 사러 내 방에 왔을 때 한 사회심리학 책을 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요 삼 년 전만 해도 잘 팔렸는데 요즘은 통 안 나가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안 팔기로 할게요. 사실은 저도 아직 안 읽어봤거든요> <그게 좋을 거예요. 한번 읽어보시면 아주 좋을거예요>
그래도 끝내 그 책은 읽지 않은 채 나는 떠나게 됐지만.

여기 와서 나는 또 많은 책을 샀다. 나무 밑에서 책을 읽으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볕 모양대로 생각이 흩어져 간다. 한 권의 책은 많은 나뭇잎들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말을 잃어버릴 때야 침묵은 어느 나라 말도 아니며 어느 나라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한 券의 말이 한 그루 나무의 삶과 어울릴 줄 안다면 어느 나라 말이라도 좋다.
말이 한 그루 나무의 내력을 지켜줄 줄 알고 그 나무를 키웠던 지하수 한 방울 한 방울까지도 엎지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삼켜줄 줄 안다면.

다른 나무들이 다 벌거벗게 된 다음에도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는 가로수 한 그루. 그것은 끝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과 같다. 또는 눈뜬 사람들 속에서 홀로 暝目하는 사람 같다. 나무들이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어 보이던 그 유월에는 다른 어느 나무와도 다름이 없게 보였던 그 나무. 그리고 다음날 내가 본 것은 그 나뭇잎사귀 사이사이에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는 참새들. 설레는 가슴처럼 들끓으며 서 있는 가로수 단 한 그루. 마치 말이 되기도 전에 사상을 달래는 꿈과 같이.

* 시의 생존을 위하여 시집을 달마다 한두 권씩 꼭 사보기로 했었다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시집이 생각났었다.
(시집을 사본 것도,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것도 얼마나 오랜만인지.)
사리토우 마리코의 <입국>.
민음사에서 나왔던 이 시집은 오래전에 품절이고, 내 방안에서도 찾지를 못하고 있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이 시를 찾았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이 먼저인 생활에서 시, 라 하니 책꽂이부터 뒤져지는구나 싶어 슬쩍 나 혼자 재밌다.
찾으면 반가울 거 같은데, 방안에서도 검색엔진을 돌려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얄팍하고 심플한 시집 앞날개에 있던 시인의 사진이 생각난다.
긴 생머리에 약간 정면을 벗어난 갸름하고 하얀 얼굴이 시와 어울려 독특한 인상으로 남았다.
시집 뒷면의 어느 평론가의 글에는 정확지는 않지만 “낯선 모국어의 아름다움”이란 구절이 들어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에서 고고학 전공을 하다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채광석, 김진경, 하종오, 양성우, 박노해 등등의 평론과 시를 발표하며 시를 쓰다가 1991년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가 쓴 군더더기 없는 나의 모국어로된 시어들이 발하는 아름다움이 참으로 그러했다.

** 저녁에 집 근처에 들른 친구와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고 들어와선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빗줄기가 창문을 툭툭 치는 소리가 계속 들리니 일어나 창문을 닫아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잠이 깨지 않았고 낯선 곳을 여럿이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오래된 독특한 모양의 돌들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고적한 마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이제 떠나야 하는데 내가 창문을 닫고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고, 한 친구가 남아 함께 큰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나를 위해 앞장을 서서 낯선 곳을 헤쳐가는 그가 참 고맙다고 생각하며 뒤를 따르다가 잠이 깨니 어스름한 새벽. 빗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얼른 베란다로 나가보니 다행히 열린 창문으로 들이친 비의 흔적은 크지 않았고 미처 걷지 않은 빨래 몇 조각들은 아직 뽀송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사무실에 나가 하던 일의 마무리를 하기로 했었지, 참.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고 피씨를 끄고 잠시만 더 침대에 누워 있다 일어나야지 마음 먹는다.
창문에 부딪는 빗소리가 참 리드미컬하다.
뚜욱 뚝욱 뚝뚝뚝. 왜 저런 리듬이 생기는 걸까 싶은데 또 금방 바뀌고 치익, 차소리가 끼어든다.
소란스럽다.

나도 광합성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처음 생각했던 건 언제였을까.

김용석, 읽은 척 메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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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순전히 어느 블로그에서 본, 이 구절 때문에 손에 넣게 되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인해 한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이야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해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까지 챙기는 이 인간적인 휴머니즘!은 꽤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읽은 척의 세부 스킬까지 상세하게 설명해놓고는 꼭 덧붙이는 아래와 같은 말도 그렇다.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이야기로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 친구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했던 “얘는 휴머니스트에요” 라는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휴머니스트” 인 척하는 사람이거나.

책은 구절구절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다.
너무 심란해서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만큼, 한 두번 이상은 꼭 포복절도하게 될 만큼, 기발하고 섹시하게 재미있다.
고전에 대한, 발랄하면서 풍부한 해석과 오독을 피하는 날카로운 스킬의 제시엔 깊은 애정이 스며났고, 어려운 얘기를 놀랍도록 쉽게 풀어내는 기발함이 있었고, 시크릿이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같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언급은 속시원한 데가 있었다.(인간의 욕망은 나같은 인간을 대상으로도 늘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라는 것에 대한 부연 설명- 만약 필자가 이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전지현은 나의 이상형이고, 조만간 전지현은 나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으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필자야 <시크릿>은 진짜 위대한 책이라고 인정하고 지난날의 비판을 반성하면 그만이지만, 전지현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데 읽으면서 쉽게 가지게 된 혐의는, 제목과는 달리 “읽은 척 매뉴얼”이 아니라 “제대로 읽기 위한 매뉴얼”이 아닐까 하는 것인데, 과연 맨 뒷장 저자의 말엔 뻔뻔하게도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해서”가 집필이유라고 고백한다. “가장 완벽한 읽은 척은 실제로 그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책이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이란 구절.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삶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이다”

바람이 불고,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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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1575827.mp3조경옥, <잘 지내시나요>
지난 주말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바람이 분다>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 공연 제목에 너무나 어울리게, 아프게 지나온 어느 먼 곳으로터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처럼 흐르던 노래.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디에서든 잘 지내시나요…”


김창남 교수님 사모님이시라 잖아. 옆에서 후배들이 속삭여줬다. 그렇구나.
우리가 좋아라하는 멋진 김창남 교수님 사모님이시란 말이지.. 역시..



어큐스틱 기타의 정재일이란 이름이 눈에 뛴다. 아 <눈물꽃>의 정재일. 그러고보니 눈물꽃의 감수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귀에 익숙한 노래들은 죄다 이십년 쯤 전에 내 십팔 번이었던 노래들이고,
날개만 있다면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 잠시 연습을 하다 코드가 어렵고 음이 높아 좌절했던 곡이고,
눈물나게 가여운 그 시대의 곱고 아름다운 위로 같은 노래들이고…  


“프로듀서 김혜능의 재즈적인 감각과 팝적인 감수성이 덧입혀지면서 전혀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했다.”는 노래들도,
처음 듣는 노래들마저도 가슴에 와 닿아 만들어내는 무늬들은 한결 같다.
그 시절 언제고 들을 때마다 가슴 먹먹하게 젖어들던,
지금도 아련함에 가슴이 쏴아 해지고 휴~ 한숨이 나오게 만드는 이 목소리.
 
음반 구입은 여기서

http://www.puljib.com/bluealbum/?S_Type1=album&S_Type2=09&table=greenmusic&Mode=View&B_SEQ=405



그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념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일, 이라고 유시민씨는 말했다.
너그럽고 관대하자던 권해효는 그날 더 많이 멋졌고(노래마저 멋지고), 삭발한 머리에 단정한 정장을 입고 나와 선그라스를 벗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던 신해철의 모습도 인상에 남았다.

그의 말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요? 이명박이요? 한나라당이요? 조선일보요? 저예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노래 한 자락 올리러 나왔어요.”
부럽다, 노래하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그것도 이리 근사하게.

안치환이 나오자 열렬한 팬인 지숙이 “정말 멋지지 않아요?” 라고 말했고, “응. 그러네” 라고 대답해줬다.
새 음반도 한 번 사줘야겠다고 했다.
“좌우의 날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요구합니다. 정말로 인간이라면, 인간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중가수의 존재감은 우리사회에서 가볍지 않을 것이다.


* 서울의 바람과 공기는 후덥지근, 갑갑하기만 하고
어디 먼 세상의 바람을 탐하던 나, (몸에 산소도 부족하다는데) 몽골이나 중국 어디 오지의 바람을 잠시 꿈꿔보다가
‘바람이야.. 뭐, 불어오는 곳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 라며 마음을 달랬다.
지금은.. 여러모로 너무 사치스런 일이긴 하다. 오지여행이라니.
여기 이 땅도 온통 오지, 같은데 말이다.  

점심 시간. 다들 밥먹으러 나가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스피커 볼륨을 높여 조경옥의 노래를 듣는다.
이 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