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 사진전

주명덕 사진전 (2009-06-13~2009-07-25 장소 한미사진미술관)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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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미’의 생명력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Rose>의 사진들은, 박선생님 표현대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이었다.
특유의 어둡고 낮은 콘트라스트의 프린트는.. 우아하고 섬세하며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가 기억하는 주선생님의 이미지와 유사했으므로, 장미의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워보였다.
눈에 띄었던 건 장미 꽃잎이 마르면서 선명히 드러나는 실핏줄같은 선들.
그것은 장미의 육체성 같은 걸 느끼게 해주었고, 꽃을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나 대상이라기 보다는(예를 들면 팜프 파탈의 존재같은…) 신체를 가진 삶과 죽음의 엄연한 주체로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감상과 해석은 자유로운 것이므로 내 맘대로 얘기해보자면)
이 칠순의 작가는, 시들어가서 소멸되어가는 장미를 찍으면서, 그 대상에 자신과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름다움으로 충만해있는 장미의, 그 소멸의 과정을 추체험, 유사체험해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을 넘은 ‘관조’를 자신만의 “심미적” 방식으로 실천해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내멋대로의 생각. (넘 내멋대로인가… -,.- )



* 그곳에서 오랫만에 만난 명주씨는 뱃속에 쌍둥이가 4개월째라 했다. 그 곁에서 힘들어하는 아내를 어찌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금수씨의 모습은 십년이 지나도 한결 같아 보였고 보기 좋았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이선생님은 뵙지 못해 아쉬웠는데, 뜻밖에도 주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네오셨다.
두어번 뵈었고 그로부터 10년인데, 과연 나를 어떻게 기억하실까 궁금했으나 물론 여쭤보진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기억된다는 것은 기분이 괜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나도 어쨌거나.. 좋은 전시를 정말 오랫만에 보았다. 게으른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주저하던 나를 델꼬 가준 분께 감사!

그녀의 생일파티

6월 10일, 후배 H양은 시청 언저리에서 쵸코파이 케익을 놓고 생일축하를 받았다.  
작년 6월 10일에는 아예 아스팔트 위에다 초코파이로 쌓은 케익에 초를 꽂고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생일축하를 해댔었다.
내년 그녀의 생일엔 쾌적한 곳에서 우아한 케익을 놓고 생일초를 밝힐 수 있을까?
 (사실 그녀의 생일은 6월 6일인데. 꼭 이런 날 축하파티를 해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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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깃발들 뒤로, PRESIDENT 호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기억나는 발랄한 이름, 반쥐원정대.. )

비가 온다


몸과 마음이 자주 등 돌리네 / 동명이인

가벼운 빗속에 집을 나서는데 이 시가 입속에서 웅얼거렸다.
공기는 상쾌하고 콘트라스트가 낮아진 도시는 눈에 편안한데,
몸은 무겁게 가라앉고 뼈마디가 저린단 말이지.
“비 온다고 또 좋아라 삘삘거리고 돌아다니지 말라”던 어릴 적 친구의 편지귀절이 생각나고,
비만 오면 세상이 다정해 보이던 느낌이 생생한데,
몸과 마음이, 정말 따로 따로다.
그래도… 좋네.
도시에서 먼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
비록 불순물이 많아 순도는 너무 떨어지지만 말이다.

삼십대
                           김경미

몸과 마음이 자주 등 돌리네
동명이인
그 얌전한 사람에 들어가면
행간없이 한 벌
다정할수 있을까

몸이 마음에 아무 연락안하고
어디에 갈 수 있나
검정 맹인 같은 색안경 끼고,
물소리 내는 세월에 닿아
지워지지 않을 몸 없으니
살았을때 마음껏 몸일수 있어야 하나
생각도 데려가지 않아야 하나

신문지 같이 면 많은 마음 밤새도록 안자고
밤참 라면보다 더욱 꼬부라진 아픔들
사색에 더 까맣게 질려야 하나

혼자 마구 가면 몸은 육신이 있으므로
못따라오나

도대체 어디서 한번 후련할까
삶이 둘 다 못보고 지나가면
어둔강 밤새걷다
어깨 끌어안고 함께 울까.

조세희, 침묵의 뿌리 / T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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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사진작품으로 감동을 받고 사진의 힘을 느껴본 건 조세희씨의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였다고, 지난 밤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생각이 났다.
노순택씨의 인터뷰를 읽다 그가 이 책을 언급한 걸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보고 싶어져 책을 찾아보니 언제 집을 나갔는지 없다.
이래저래 이사 다니고 나갔다오고 하면서 맡겨놨거나 빌려줬던 책들에 끼어 있을 것이다.
읽을 책도 쌓였는데, 가끔씩 생각나는 책들이 눈에 안보이면 아쉽기 그지없다. 욕심이지 하면서도 그런다.
좀전에는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의 한 귀절이 너무나 읽고 싶어져서 찾았는데 안보여 어찌나 아쉽던지.

십년도 더  전에 피씨통신 동호회에 이 책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감상을 썼던 적이 있고 더불어숲 게시판에도 광고를 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이 정말 좋고 많이 읽혀졌으면 싶어 이런저런 어설픈 방법으로 많이도 광고하고 다녔는데 말이다.


<침묵의 뿌리>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카메라라곤 자동카메라 한 번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관심도 없던 대학 1학년 때였다.
몸도 마음도 가난했고 끝모를 갈증에 목말라했던 그 봄에, 문득 혼자 있고 싶어 어두컴컴한 도서관 서고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책… 흰 색 표지에 작은 프레임으로 담긴 흑백사진 속에는 서늘한 눈매를 가진 소녀가 쉽게 잊혀지지 않을, 애잔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마치 슬픈 선언처럼.
그리고 조세희라는 이름… 고등학교 시절에 멋모르고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강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책머리에 적힌 작가의 말.
「지난 70년대에 나는 어떤 이의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책 한 권을 써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 책이다. 그때 나는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바로 10년 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또 한 권의 책을 묶어낸다.
이번 책에는 사진이 들어있다. ‘슬프고도 겁에 질린 시대에 적합한’ 것이 사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인화를 끝내 공장으로 넘긴 다음에 접한 이 말에 나의 서툰 작업을 연결지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은 작가의 글 몇 편과 사진들로 구성되어있다. 사진에는 1985년 강원도 정선읍 사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외에 서울과 보길도, 부산, 가평군과 인도, 유럽도 들어 있으며, 뒷부분에는 사진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사북의 현장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글들이 있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땐 나도 새로 산 두툼한 법전을 아직(!) 들고 있을 때였으므로, 법전을 ‘참 근사하다 감탄하며 시간이 있을 때 무심코 집어든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정말 근사해 그 부분의 말들을 읽을 때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떠올리고, 몇 해 전부터 보기 힘들어진 민들레꽃씨의 예쁜 비행 모습을 갑자기 대하게 되는 착각에 빠진다. 이른바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을 국민에게 약속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인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닌다.”는 문장은 큰 감동을 주는 부분 가운데에서도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장이 주는 감동은 적어도 이 땅에서는 삶의 비극성을 역설하는 슬픈 감동이다.


화창한 봄날, 어두운 서고 속에 쳐박혀 (필시 수업을 제끼고) 본 흑백의 사진들은 강렬하고 서늘했다.
「어느날 사진 162(사진의 일련번호임)의 젊은이가 와 사진 161을 보았다. 젊은이는 입술 꼭 문 채 사진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사진을 보는 순간 몇 해 전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는 대목에선, 나도 목이 메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어두워진 도서관을 나오고 나서도 〈침묵의 뿌리>가 주는 감동은 한참 동안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그 감동을 언뜻 언뜻 기억 속에서만, 혹은 서점의 서가 속에서 설레며 꺼내보곤 하다. 사진과 아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얼마 전에야 책을 손에 넣었다. 첫 책의 인세로 장만한 사진기로 찍었다는 흑백의 사진들을 보는 일은, 그가 “희망을 서둘러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며 아직도 건재하게 보여주는,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드러나는 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경이로운 체험이다.
조세희 아저씨, 요즈음엔 사진은 안 찍으시나, 찍으신다면 어떤 사진을 찍으실까 문득 궁금해진다.
(1999)


일하는 분야가 웹쪽이라 시험삼아 설치했던 알라딘의 TTB(Thanks To Blogger) 광고채널을 새로 만들고 <Red House>와 <침묵의 뿌리>를 추가해넣었다. 뭐 일기장에 불과한 블로그이니 효과야 미비하나 재미있다. 기분도 뿌듯.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이 글을 보고 필 받아서 이 페이지 맨 하단에 있는 광고를 클릭해서 책을 구매하면 판매수익의 1%인가가 내 통장에 입금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웹2.0시대의 온라인 광고 시스템!
구글의 애드센스가 대표적인 것으로, 활성화되어 기존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거대 미디어의 광고를 어느 정도라도 무력화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면, 순기능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엄청난 웹의 가능성!  웹을, 그리고 나의 일을 사랑해보기로 한다. 그래야한다. -,.-)

어쨌든.. 이런 책은 좀 많이 팔려주면 좋겠다. 이 땅의 너무나 소중한 이들의 “외적 위계” 뿐 아니라 우리의 세상과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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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순택, <얄읏한 공 The strAnge Ball> 중에서


사진전시장을 찾는 일이 정말 오랫만이긴 했나보다.
학고재, 란 말만 듣고 확인도 안하고 인사동엘 갔더니 그 자리엔 다른 갤러리가 들어와 있고
기억을 더듬어 소격동 본관을 찾아가느라 늦지 않아야할 약속에 십분이나 늦었다.
인사동에 약속이 있으면 학고재를 지표로 장소를 정하는 일이 많았는데 대체 언제 사라져버린 것인지.

노순택, 이란 작가의 작업은 정말 멋지고 사진은 아름답다.
사진을 보거나 읽는 재미와 감동을 이만큼 선사하는 작가의 작품을 동시대를 살면서 접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행운을 놓치고 살았다니.
그의 블로그를 북마크해두고 조금씩 아껴가며 들여다본다.
때로 혼자 웃고, 때로는 그 처연함의 무게로 가슴 안쪽이 저리다.
http://suntag.egloos.com/2393262
이런 사진은 참…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 어떤 일을 계기로 사진, 이란 것에 다시 관심을 가져보게 되었는데,
사진도 찾아보고 전시도 찾고 하던 십여 년 전과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활발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대부분 낯설고 작품도 그러하지만
대체로 새롭고 재밌다.
한편으론 이시우씨처럼 여전히 고단하고 가치있는 작업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해나가는 ,
아름다운 사람, 이란 단어를 상기시키는 작가가 있고…
잘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의 사진예술이라는 것이 제자리를 잡고 많이 발전해가는듯.
내가 사진을 참 몰랐구나 싶기도 하고, 십년이란 세월이 참 긴 것이지 싶기도 하다.  

학고재 전시
http://www.hakgojae.com/
자세한 내용
http://neolook.net/archives/pages/20090606g
<얄읏한 공 The strAnge Ball>의 작업노트
http://suntag.egloos.com/1970914

트렁크 갤러리의 전시 관련 자세한 내용이 있는 곳
http://blog.naver.com/putnaeki/100066207429

트렁크 갤러리는 공간이 재미있는데, 노순택씨 전시는 어제로 끝.
http://www.trunkgallery.com/

노순택 작가의 <비상국가> 작품들로 한 블로거가 만든 동영상
좋아하던 노래, Radiohead의 No Surprise와의 만남이 심상찮다.

* 갤러리들의 전시소개가 좀 빈약하다고 느낀다.  
  웹상에 여기저기 친절한 정보들이 많아 다행이긴 하지만.  

백무산,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백무산 시인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드린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 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쳤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과 순결한 영혼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자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 백무산씨가 고맙다 했더니, 라군이 말했다. 원래 멋진 사람이여…

We Believe, Song by 락별 From 울트라컨디션

어떤 방식으로든… 많이 기억되고 애도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꾸었던 꿈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반골 성악가들이 부른

반골 성악가들이 부른 <노무현 레퀴엠>

같은 노래로 만든 <우리반 반장 임영박>

출처: 고재열의 독설닷컴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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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거나 익숙해보였던 관계가 한순간 난해해지고 소통이 어려워진 일이 몹시도 당혹스러웠던 요즈음, 알라딘 책소개에 이런 귀절이 눈에 확 띄었다.

…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 같은 악기나 사진 찍는 기술은 좀 다룰 줄 알거나 다루고 싶어하면서도, 자기 언어는 형편없이 다루며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지나치게 거칠게 혹은 안일하게 혹은 편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만큼 거칠거나 삭막하거나 조악한 사유나 신념이나 인간관계에 스스로 시달리며 살고 있는지. 언어의 발견을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 한다면,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야말로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두 번째 사건이라 일컬을 만하다…

–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서문 중에서.

‘언어에 대한 무지’를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두 번째 사건’으로 명명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어느 정도의 통감과 반성으로 손에 들게 된 이 책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되었던 ‘욕망의 안팎에서 탐색하기’란 글쓰기 강좌의 강의록이다.
프롤로그는 “꿈”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좀 뜬금없다 싶어지는데…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ㅁ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정말? 이라는 물음표를 달고 다음 장을 넘기자, 이런 문장이 보인다.

나의 경우 인생을 살아 보면 볼수록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믿는다, 혹은 믿고 싶다, 혹은 믿어야한다, 혹은 믿을 수밖에 없다.

뭐, 나도 믿고 싶지… 하면서 다음 페이지를 보니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잠입자> 얘기가 나온다. 내가 보지 못한 영화다. 꼭 챙겨보아야겠다.
작가가 소개한 ‘고슴도치 일화’는 섬뜩했다.

 타르코프스키가 <잠입자>의 ‘금지구역’ 및 ‘비밀의 방’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결국, 세계원리와 인간본성 모두가 심연이지 미로라는 사실이다. 고슴도치 자신은 동생의 완치를 소원했지만 그의 보다 강렬한 소원은 자신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었듯이, 우리 인간이랑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다… <잠입자>의 ‘고슴도치 일화’는 우리에게 ‘내가 의식적으로 꾸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이 불일치한다면, 이것은 마치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쉽게 그 목표가 성취될 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어제 만났던 청년이 생각난다.
사랑을 위해 막강하게 부유한 집안을 뛰쳐나왔던 순수함, 으로 내 메모리에 입력되었던 그가 어제 보여주었던 갈등의 모습은 그의 무의식적 욕망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의식적 꿈이었을 사랑, 을 버리고 무의식적 욕망쪽으로 내용일치시키려는 과정인 것인가.
“이제 함께 힘든 과정을 지나온 거잖아. 그런데 왜 이제와서.. “싶어 당황스러워했던 나는,
동석했던 두 친구의 말대로, 사람을, 상황을 너무 일면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인가.

두 친구가 짐작하고 단언했던 이런 저런 속사정들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임은 사실.
그러나..  나도 그저 이만교씨처럼 믿고 싶을 뿐인거지. 꿈이 이루어진다는 걸.
때로는 그 꿈과 인간의 (구차하거나 탐욕스러울 수도 있는) 무의식적 욕망과의 견고한 간극이 그를 힘들게 할지라도….
물론 그 꿈의 이룸이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한해서이고,
무의식적(이었던) 욕망 쪽으로 이미 기울었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쨌든, 그도 행복해지려는 사나이인거고, 짧은 인연으로, 그가 행복해질 수 있는 후회없는 선택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꽤 두툼한 책이다. 이런 저런 번잡한 일들로 잠깐 펴봤을 뿐이지만 아직도 프롤로그고 아직도 꿈 타령이다.
남겨진 짧은 휴가에 해야하는,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는 길어, 마음은 조급한데 말이다.
그런데 꽤 흥미롭다. 그의 바람대로, “보다 좋은 글을 쓰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로서, 보다 강렬하게 살맛 나는 상태를 지향”할 수 있다면…

김규항,

<예수전>을 읽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들에게 율법주의는 재앙이었다. 그 세세한 율법을 다 지키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바리사이인들 덕에 인민들은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런 현실을 체념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 이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로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한다….


…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죄인’은 누구인가? 사랑과 존경마저 돈으로 사고 팔리는 이 완전한 물신의 세상에서 ‘율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적 경쟁력’이다. 경제적 경쟁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곧 죄인이다. 그들은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품위와 존경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인생과 미래에 대한 꿈도 가질 수 없다. 2,000년 전 죄인들이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듯, 그들 또한 ‘경쟁력이 있어야 재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런 현실에 체념한다. 예수가 그랬듯, 우리는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해야 한다. – 48, 49p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과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59p

– 김규항, <예수전>중에서


* 책이 참 예쁘다. 안상수 디자인 특유의 발랄한(형광빛) 노랑과 파랑이 의미심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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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가벼이 참석했던 술자리.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순진하고 건강한, 그런데 왜곡된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청년에게 (만났던 여성들은 모두 필요한 욕망만을 채우고는 떠나가 버렸다던가…), 연륜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눈빛을 지니신 어른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말이 생각난다.
“여자를 만나려면.. 영혼이 있어야돼요… ”

경제적 경쟁력이 아닌, 경제적 경쟁력으로 유지되는 품위가 아닌, “영혼“으로 만나야 한다는 그 어른의 말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젊은 사람들의 나약하거나 천박함 (정말 심한 사람이 있어서 약간의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좀 너그럽게 참았어야하는데… -,.- )과 비교되어 새삼 멋져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