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예수전>을 읽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들에게 율법주의는 재앙이었다. 그 세세한 율법을 다 지키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바리사이인들 덕에 인민들은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런 현실을 체념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 이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로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한다….


…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죄인’은 누구인가? 사랑과 존경마저 돈으로 사고 팔리는 이 완전한 물신의 세상에서 ‘율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적 경쟁력’이다. 경제적 경쟁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곧 죄인이다. 그들은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품위와 존경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인생과 미래에 대한 꿈도 가질 수 없다. 2,000년 전 죄인들이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듯, 그들 또한 ‘경쟁력이 있어야 재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런 현실에 체념한다. 예수가 그랬듯, 우리는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해야 한다. – 48, 49p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과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59p

– 김규항, <예수전>중에서


* 책이 참 예쁘다. 안상수 디자인 특유의 발랄한(형광빛) 노랑과 파랑이 의미심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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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가벼이 참석했던 술자리.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순진하고 건강한, 그런데 왜곡된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청년에게 (만났던 여성들은 모두 필요한 욕망만을 채우고는 떠나가 버렸다던가…), 연륜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눈빛을 지니신 어른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말이 생각난다.
“여자를 만나려면.. 영혼이 있어야돼요… ”

경제적 경쟁력이 아닌, 경제적 경쟁력으로 유지되는 품위가 아닌, “영혼“으로 만나야 한다는 그 어른의 말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젊은 사람들의 나약하거나 천박함 (정말 심한 사람이 있어서 약간의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좀 너그럽게 참았어야하는데… -,.- )과 비교되어 새삼 멋져보였다.

이윤엽, 용산참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용산 참사에 대한 그림 입니다.
1월20일 아침에 참옥했던 일을 짧게 서사적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요즘 자주 용산 형장에 가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는데
사람들 기억속에서 벌써 잋혀져 가고 있는것을 느낍니다.
사람이 여셧명이나 죽고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고
장례를 치루지 못한 시신이 병원에 그대로 있고
눈덩처럼 불어나는 비용으로 가난한 유족들이 또 죽어가고 있는
그런것들이 마음이 아픕니다.
잊는것은 당연한 것이나 유족들에게는 아직은 정말 아닌 것이기에
나라도 내게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윤엽)

이 작가에 대해, 김규항은 이렇게 썼다.

“…지금은 고작 ‘이명박보단 낫다’는 데서 제 정의감과 사회의식을 확인하는 비루한 시절 아닌가? 이런 시절에 이런 비현실적일 만큼 현실에 치열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건 우리의 행복이다.”

이 비루한 시절을 수식하는 말들이 좀 아프고, 날씨는 잔뜩 흐리고..

오늘, 낙천주의자 되다

어제 타인의 삶을 보고난 후 이어 본 영화 두 편

여배우가 궁금해져서 찾아본 영화,
페넬로피 (Penelop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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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크 파랜스키
출연배우 : 크리스티나 리치, 제임스 맥어보이


슈렉류인가, 아님 가위손류인가 했더니, 조금씩 핀트가 다르다.
집안에 내려온 저주로 돼지코를 가지게 된 주인공이 용감하게 세상밖으로 나아가
다른 누구-왕자-가 아닌 스스로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저주를 풀고 사랑을 찾는 이야기.
크리스티나 리치라는 이름의 여배우는 돼지코를 붙이고도 너무 예뻤다는 것과, 별다른 반전없는 해피엔딩었단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나름 유쾌하고 예쁜 동화.


이 영화를 보난 난 직후에 메신저로 안부를 물어온 후배는, 늘어나는 체중이 컴플렉스가 되어가서 홈쇼핑으로 운동기구를 주문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운동을 시작함을 축하해 주며, ‘육체의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운동량이 적었던 탓이니, 임산부가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보이듯, 그렇게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는데, 그말이 위안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녀가 오프라인으로 사라진 후, 영화의 잔상을 떠올려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자본과 결탁한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저주(정말 저주가 아니겠는가)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지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인한 자기애의 결핍, 열등감이 세상밖으로 나아가 행복을 일구어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스스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므로써 풀 수 있을 이 저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어 본 영화는

페이지 터너 (La Tourneuse De Page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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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드니 데르쿠르
출연 캐서린 프로트, 데보라 프랑소와, 파스칼 그레고리, 사비에 드 길본 더보기

역시 심리묘사가 뛰어난, 여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래, 복수를 하려면.. 저 정도 해줘야지, 중얼거리다 내 안의 이 살벌한 폭력성에 깜짝!


오늘은 오후가 훨 넘어서 잠깐 뒷산에 산책이나.. 하고 나섰던 게 길을 잘못 들어서 과천으로 내려와 버렸다.
목에는 나침반을, 손에는 프린트한 지도도 들고 있었는데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과천코스는 괜찮은 풍경을 선사했고, 덕분에 오랫만에 제대로된 산행을 한 셈이 되었다.
 
아침엔 화장실 전구가 퍽, 하고 나가  버렸었다.
전구를 가는 일은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동그란 전등갓이 단단히 조여 있어서 절대로 돌아가질 않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해야하는데, 화장실이 작아 문을 안닫을 수도 없어 생각해낸 것이 향초.
붉은 색 동그란 향초를 변기 뒤에 올려 놓으니 꽤 분위기가 있다.
뭐.. 분위기가 있어봤자 모하겠냐마는… 난감모드를 전환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는 중.

이 얼마나 낙천적인 삶의 자세란 말인가.
어쩌면 집에 돌아와 신라면과 함께 홀짝 홀짝 마셔댄 맥주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위험한 정부의 살인적인 행보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면 미친소의 등장도 고맙겠다. 

* 그런데… 잊어먹지 말라고 벽에 걸어둔 칠판에 적힌 “오늘의 할 일” 4가지 중 하나밖에 하지 못했군. -,.-

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타인의 취향>과는 또다른 “타인”을 이야기하는 영화.
섬세하게 조직된 모든 영화적 구성요소들이, 가볍지 않은 메시지와 함께 깊은 울림을 전한다.    

“타인의 삶”이 또한 내 것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대사

“이 책 누구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아니오. 나를 위한 것입니다.”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울리쉬 뮤흐 : 비즐러 역, 마티나 게덱 : 크리스타 역, 세바스티안 코치 : 드라이만 역

홍대근처 상상마당에서 전시중인 <글씨, 책에 말을 걸다>
한글 글씨체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온 캘리그라피스트 강병인씨와 북디자이너들이 만났다.
친구 부탁으로 전시 오프닝 촬영을 갔었는데, 최근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듯,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전시일정이 내일까지이니,
주말에 뭔가 색다른 게 없을까 하시는 분들, 자유롭고 멋스러운 필체가 한껏 빛을 발하고 있는 여길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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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마지막 사진) 그래서 친구인가.
가까이 각도를 달리해 들여다보니 책 표지 디자인에다 자기 생각을 숨겨놓았다.
귀엽게스리. ^^
북디자인은 정말 예술적인 영역에 닿아 있단 느낌이 드는 이럴 땐, 친구가 같이 일하자 꼬드길 때 그냥 넘어갈 걸 하는 후회가 슬쩍 슬쩍 들곤 한다.

만년필과 베토벤

강남교보에서 워터맨 만년필 둘을 시필해보고는 그 부드러움에 반해 펜쇼핑몰을 기웃거리다, 수십만원에서 백만원을 호가하는 금액에 매달려있는 “초특가, 세일” 이라는 단어를 보며, 세상엔 끝내 외면해야할 매혹이 참으로 많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다.


“카핑 베토벤”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반해서 다운받은 영화를 틀어놓고 내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다가, 지휘자별로 7개의 시디가 있다는 라군을 부러워하다가, 예스24에서 미하엘 길렌의 베토벤 전집을 주문했다.
5개의 디비디로 구성된 세트가 무려… 21,900원(70% 할인)! 으하하.


기분이 좋아 두 개를 더 주문했다.
아바도의 말러 교향곡 2번과 글렌 굴드 (1981년 녹음)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직접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디비디란 매체만으로 역사적인 공연실황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다행하고도 멋진 일인데 엄청난 할인까지!
예술의 향유에도 이렇게 가격차별이 있거늘,
세상의 여러 매혹을 향유하는 일에, 인생을 즐기는 일에 다양하고도 폭넓은 가격차별이 있어지길 꿈꿔본다.  

카핑 베토벤, 재밌다. 캐릭터도, 배우들도 매력적이고(특히 다이앤 크루거!)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도 음악에 훔뻑 빠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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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라매공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었다. 일년도 넘게 쳐박혀 있던 스케이트는 매끈한 인라인트랙에서 부드럽게 굴러갔으며 넘어지지도 않았다. 약간 쌀쌀해진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몹시도 상쾌해서, 매일매일 여기로 출근해야지, 하고 지켜지기 힘든 다짐을 했다.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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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빌빌거리는 날 위해 위층 J양이 담아준 요가 동영상에 따라온 동화같은 영화.
영화적 완성도로는 그저 그렇지만, 배종옥, 강혜정의 사랑스러운 연기에 힘입어 동명-함께 울기(관객보다 영화가 먼저 울어버리긴 하지만)에 성공하는 영화.
9살 짜리의 지능을 가진 스무살의 차상은이 보여주는 이별과 고통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의연하고 어른스러운 것이어서 오히려 전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처로 오래 징징거리는 어른들에게 각성을 주기도 할 듯.
상은이 “세상을 향해 달려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설정”으로 채택되었다는 자전거의 등장은, 자전거 타다 다쳤던 손목의 상처를 다시 들여다 보게 하기도.


건조함으로 눈이 뻑뻑해져 물기가 필요할 때 추천함.
휴~ 정말 펑펑 울었다. 이런 불가항력의 슬픔이란…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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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하며
 스물 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게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그곳, 요세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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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Lee


밤과 아침 사이,
아픔과 기쁨 사이,
절망과 희망 사이,
거기 우리가 서 있는 곳,
새벽이 동터 오는 곳.

– 신영복 서화에세이, 처음처럼 중에서.

한강,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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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노래에 담긴 지난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쓴 산문집. 보리수, 엄마야 누나야, 짝사랑, Let it be, 청춘, 혜화동,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지은이의 기억에 새겨진 22곡의 노래와 이야기를 정갈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부록으로 실린 음반에는 작가가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 10곡이 담겨 있다  출처: 알라딘)

내가 울 때 눈물을 닦아주거나, 내가 영혼을 팔았을 때 그걸 되사서 나에게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노래를 듣다 보면 일어날 힘이 생기고,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만원 지하철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어떤 종교도, 위로해줄 애인도 없을 때, 때로는 그렇게 노래 하나가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기도 한다. – 본문 49쪽에서



책을 선물 받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선물한 사람을 이렇게 생각나게 하는 책은 흔하지 않았던 거 같다.
읽으면서, 들으면서, 참 그의 취향에 딱이네,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많은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지난 수개월 동안 고래씨로부터 받은 것들이 많다.
돌아가면 어찌 갚아야할 지.


하루에 노래 하나가 안 넘는 분량을 아껴아껴 읽었다.
하나를 읽고 잠이 들면 다음날 하루 종일 그 노래가 입가에 흥얼거려졌고,
아 이 노래 가사들을 다 외우고 있었구나, 놀라기도 했다.
산울림의 ‘청춘’에 스며들어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읽고난 다음에는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
그녀처럼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으로 불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강 그녀가 만들어 불러주는 나직나직 가만가만한 노래들…
“나무는” 이란 노래엔 이런 글이 붙어 있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걸 본 다음날, 만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나 자신에게선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란 대답을 들었다.
윌셔가 빌딩앞에있는 나무그늘앞 벤치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다 얼굴에 와닿는 따스한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을 즐기던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노래들이 있어서, “그 날개에 실려 삶 위로 미끄러져가는 순간” 덕분에, 정말로 삶의 고통이 훨씬 가벼워졌다.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었다.”
고마운 책, 고마운 노래들.
아직, 30여 페이지가 남았다.
다시 책을 덮을 작정이다.
며칠 더 읽을 수 있겠다.


누구든 살아가다가 힘든 순간을 만난다. 그게 언제든, 어떤 형태든. 때로는 그로 인해 영혼의 일부 또는 전부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본질이 막 파괴되려는 바로 그 순간의 자세라고 믿는다. 그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당신을 지키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놓았다 해도 다시 잡으면 된다. 어떤 지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정수를, 그 가냘프고도 단단한 실체를 온 힘으로 느껴야 한다. 느껴내야 한다.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 순간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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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내 눈을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