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deserve it!

You deserve it!
대체로 심플한 미국의 상품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한 문장이 전하는 메세지는 참으로 명쾌하고 강력하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입고 있는 옷, 쓰고 있는 화장품, 당신이 걸고 있는 보석이나 핸드백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것.

실수

문득 징징거림 많은 이 블로그가 좀 창피해져 지난 포스팅을 둘러보며 세어보다 아차 하는 실수를 발견했다. 몇 번 댓글을 달아주신 분을 아는 후배로 착각해 답변글을 달아놓았던 것. 남우선배 죄송해요. 아 너무 정신이 없다. 좀 전에도 뭔 말을 하다가 내가 이 말을 그 좀 전에도 하지 않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까마귀 몇 마리를 보긴 하였지만 까마귀고기를 먹은 일은 없는데. -,.-

이성복, 숨길 수 없는 노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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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노래2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 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이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 덧붙임 : 사랑이 채우지 못하고, 서러움도 채울 수 없게 된 부재는, 그렇게 ‘견딜 수 없게 된’ 부재는
시간에 마모되듯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지워갈 것이라는 생각.

* 덧붙임2 :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을 알라딘에서 주문해놓고 깜빡해버린 탓에 샘터서림에서 또 사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이없는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누구 줄 사람이 없을까를 고민하는데, 이 책을 함께 읽고 “공감”해줄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권유하고 싶은 사람이 꼭 하나 있지만, 아마도 화를 낼 것이다. 비누를 선물하면 “내가 세수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 하고 화내는 사람처럼.
그 몇 개의 공감의 부재가, 잠깐 쓸쓸해지기도…

몇몇 블로그들을 기웃거리다 읽고 싶은 SF 소설을 발견했는데, 한국서 주문하는 책이 두 배는 비싼 데다 한국판이 또 두 권으로 나와 몇배가 비싸 버리는 통에, 아마존에서 주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The Book of Skulls – Robert Silverberg / Contact – Carl Sagan
아, 물론 내 영어실력을 생각하면 이 만만찮은 SF소설을 원서로 읽는 건 어이 없는 일임에 틀림없으나, 내 경제적 사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만 것이다. 과연 이 책들을 얼마만에 끝낼 수 있을 건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

중앙역







중앙역이라는 브라질 영화가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따뜻한 소통이 있었던 영화.
우리로 치면 청량리역이나 서울역쯤이될 엘에이 유니온 역은
황혼의 인생, 지친 여행자의 모습들이 나른한 햇살과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면서,  
바로 그 중앙역을 생각나게 했다.
조만간 좀 장거리의 기차여행을 해보리라 다짐.

마지막 사진의 그녀는 화가라 했다.
얼마전 고래양에게서 들은 오리를 그리는 화가친구가 생각나면서,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쓴 이 처자는 무슨 그림을 그릴까가 궁금해졌다.

With a bottle of Miller

Longbeach Acuarium

이제야, 비로소, 나는 바닥에 도달한 거 같아요.
지금 내 발바닥이 사뿐히 딛고 있는 것이 바닥임을 알겠어요.
조금씩 추락하고 있을 때의 불안과 현기증을 생각하면,
더 내려갈 깊이가 없다는 건 조금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군요.
많이도 버둥대고 숨가빠했던 시간 동안 질끈 감았던 눈도 조금 열려
시야가 조금 넓어진 듯도 해요.
그래서 비로소 바닥이 보이는지도 모르겠지요.
이제 이 바닥을 딛고 힘껏 오를 일만 남았군요.

그렇지만 지금은, 깊은 바다 물고기처럼,
소리없이 미동도 없이 바닥에 웅크려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어요.
내가 혹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오래 오래, 너무 오래 있거들랑,
어느날 문득 우연히도 내 지난 날의 낡은 미소가 당신의 기억 속에 떠오르거든,
잠깐 모닝콜을 부탁해도 될까요?

눈물

나날이 체험하는 감정의 성분속에 신파성이 부쩍 증가하면서 눈물이 늘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도 속절없이 울고, 이런 저런 슬픈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버리니
이젠 체액을 방출하기 위해 뇌속에서 슬픔의 핑계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게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얼마전 얼마 안되는 양의 술을 마시고 내방안의 기둥에 머리 한 쪽을 세게 쿵 박아버렸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뇌검사를 받아볼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눈물이란 건 참 신기하다.
기분학적인, 심리학적인 원인으로 인해 육체적인 물리학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인풋되어 물, 이라는 물질이 계속 계속 아웃풋될 수 있다는 것,
그러고도 담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며 얼굴이 오히려 퉁퉁 불어난다는 건, 정말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디오스타를 보다.


오래오래 기다리던 영화, 라디오스타를 봤다.
과연 “안성기의 관록, 박중훈의 내공, 이준익의 저력(박평식)” 이 반짝 반짝 빛을 내는 영화,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많이 미안한 영화다.
나이의 충격을 비롯한 몇 가지 주관적 정세로 인해 조금 치쳐버린 마음에
따뜻하고 달디단 코코아처럼 스며들어 닭의 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개봉 당시에 이준익 감독의 인간적인 매력을 라군에게서 들었던 터라, 
영화에 대한 매혹은 감독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그가 보여주는 생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좋다.
멋지다, 이 남자!

또 우린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면 두드러기가 나요. 웃풍이 확 좀 불어줘야, 쏴 해서, 긴장이 싹, 닭살이 싹, 돋으면서. (웃음) 그런 거 아냐? 인생이? 등따시고 배부르면 그땐 곪는 거야, 신김치밖에 더 돼, 그게?

우린 당수없어. 다 아나키스트야. 개별적인 존재들의 거대한 방향성은 존재하지. 근데 그것이 뭐 어떤 목표지향형은 아니야. 주어진 환경지향이지.

괜찮아. 야, 나이 먹은 것은 훈장이야.

글쎄. 나는 뭐 열등한 게 자랑이거든. (웃음) 열등한 게 불안하지 않아. 그게 행복해. 왜, 메울 게 있잖아. 그게 에너지고. 콤플렉스가 나에겐 큰 에너지기 때문에 이제 그게 서서히 없어져서 불안해. 콤플렉스를 더 만들어야 돼, 빚이 콤플렉스였는데 빚도 없고. 옛날엔 공부를 못해서 아는 게 없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영화 찍다보니까 사극 같은 거 하나 찍으려면,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래야 아귀를 맞추지. 거짓말도 앞뒤가 맞아야 하지. 그러다보니까 이제 콤플렉스를 더 찾아내야 돼. 나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 나의 에너지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콤플렉스나 열등의식으로 불안한 게 아니라 그게 있으면 든든해. 그게 없어지면 불안해. 안 그러냐? 나만 그런가?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왜 싫어하냐. 위선 부리면서 위선 아니라고 거짓말하니까 싫어하지.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좋아해, 난. 이해가 되냐? 난 위선자 좋아한다니까. 위선자라고 말하는 사람. 거짓말쟁이가 싫어, 난. 말이 안 되나?

나 잘 져. 이기면 상대방한테 미안하잖아.

                                                                — 씨네21,. 영화감옥 이준익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