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아, 너무 어여쁘지 아니한가요.
팔락거리는 날개 같은 몸짓, 힘찬 도약, 맑디 맑은 웃음과 눈물과 한숨까지.
덩달아 휴~ 한숨이 나오다 눈물겨워지고마는 열여섯 인생의 아름다움이..
(오른쪽 상단의 BGM 플레이어에서 스톱버튼을 클릭하고 보세요..)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Yo La Tengo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C
ome along with me to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Dream a little dream in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You’ll soon forget that there’s any other place
Tonight, my love, we’ll share a sweet embrace

And if you care to stay in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We could hide away in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I always knew that I’d find someone like you
So welcome to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And if you care to stay in our little corner of the world
We could hide away in our little corner of the world
We always knew that we’d find someone like you
So welcome to our little corner of the world


Yo La Tengo
스페인어로 “바로 그거야!” 내지 “아주 좋아!”쯤 되는 뜻이라고 함
그룹이름도, 목소리도, 노래 자체도 (60년대 불려진 올드팝이 원곡이라곤 하지만)
어찌나 인디스러운 정겨움을 풍기는지.
그대안의 Little Corner Of The World를 잃지 않기를.
언제까지나 꿈꿀 수 있기를.

따끔한 충고

배려도 과잉, 비겁도 과잉, 자책도 과잉, 다 진실이 아님, 다 분식임
그런걸로 화장하지 말고
에스떼 로데 머 요런 걸로다가….  랑콤이나…  R

확실히 맘에 안들었던 게 많았던 모양.
짤리기 전에 조심해야함.
우짜든. 고맙네.

Death Valley

Death Valley.
골드러쉬 시기 금을 찾아 황금의 땅 서부 캘리포니아로 향했던 사람들이
높은 기온과 물부족 속에서 좌절하며 죽어갔던 죽음의 계곡.

한밤중 도착했을 때 사막은 잠들어 있었다.
한낮의 열기를 순식간에 잠재운 사막의 밤기운 속에 선명하게 빛나던 별들과 달빛을 기억한다.
귓가를 스쳐가던 사막의 밤바람은 건조한 기후 탓인지 서늘하면서도 차지 않았고,
실크처럼 휘감겨오다 스르르 풀려나가는 듯한 신비로운 감촉이 있었다.
계속 말을 시켜오는 일행이 없었더라면 오래도록 눈을 감고 그렇게 앉아 새벽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점차 희미해지는 황금에의 꿈과 확연해져가는 절망 속에서 새벽을 맞았던 그들의 눈에, 이 모래 언덕의 황금빛은 차라리 신기루가 아니였을까.

황폐한 불모지 너머 역시나 신기루 같았던 만년설. 차마 놓아버릴 수 없는, 그러나 너무 먼곳에 있는 마지막 희망처럼.

대부분의 땅이 해수면보다 낮은 이곳에서 모든 물이 고갈된 후 겨우 찾은 냇물은 소금물이었고, 그렇게 그들의 2/3이상이 이 계곡에서 죽어가게 되었다 한다.  
이름하여 BadWater.

굴곡 많은 인생의 단면을 보는 것도 같았고, 온통 뒤죽박죽 알 수 없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같았던 낯선 지형.

이건 꼭… 스타워즈의 한 장면이었다. 적기의 추격을 받으며 지그재그를 그리며 저 속으로 날아가던 장면이.. 어느 씬이었더라.


사정상 땅 깊숙이 들어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길게 남아 이제야 사진을 꺼냈다.
내겐 사람도 풍경도 친해지는 일이 시간이 좀 걸려서 여럿과 함께 한 여행은 그 함께 함 자체가 목적이 아닐 경우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데쓰 밸리는 황금-부의 지름길을 쫒던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선택했던 지름길이었고, 결국 많은 인생의 지름길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 길을 지나는 동안 내내 입안에서, 귓속에서, 바람의 알갱이들이 서걱댔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기억처럼.
그 시절, 죽음에까지 이르도록 버릴 수 없었던 욕망이 그랬을까.

최영미, 대청소

최영미 – 대청소

대청소

봄이 오면
손톱을 깍아야지
깍아도 깍아도 또 자라나는 기억
썩은 살덩이 밀어내
봄바람에 날려 보내야지

내 청춘의 푸른 잔대, 어지러이 밟힌 자리에
먼지처럼 일어나는 손거스러미도
뿌리째 잘라 없애야지
매끄럽게 다듬어진 마디마디
말갛게 돋아나는 장미빛 투명으로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리라

그림자 더 짧아지고
해자락 늘어지게 하품하는, 봄이 오면
벌떡 일어나 머리 감고 손톱을 깍아야지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아
쓸어버려야 해, 훌훌
봄볕에 겨워 미친 척 일어나지 못하게
묻어버려야 해, 영영

봄이 오면, 그래
죽은 것들을 모아 새롭게 장사지내야지
비석을 다시 일으키고 꽃도 한줌 뿌리리라
다시 잠들기 전에
꿈꾸기 전에

* 대청소가 필요한 계절.
  죽은 것들을 모아 정성스레 장사지내면
 썩은 살덩이 거름 삼아
  파릇한 새싹 하나 움틀 수 있을까.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 | 원제 La Grammaire Est Une Chanson Douce (2001)

나는 1년에 딱 한 번 우리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해준다.
내겐 일종의 의식인데, 내 국어 점수는 얼마나 되는지 한 번씩 평가받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20점 만점에 8점 이상 받아본 적이 없다.
샤토브리앙에 대한 리뷰를 쓰라는 딸아이의 숙제도 있었는데,
나는 그 리뷰를 쓰면서 “시간에는 세 가지 얼굴이 있다”는 문장을 썼다.
선생님은 그 문장에 빨간 밑줄을 긋고 그 옆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부적절한 표현. 시간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이번 숙제는 문장 구조를 분석하라는 것이지, 자기 느낌을 얘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얘기하지 않고 어찌 언어를 말할 수 있는지, 정말 통탄스럽다.
-저자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내 아내가 ‘당신을 사랑해’라는 나의 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네. ‘이십 년도 전부터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새로운 말을 찾아내 봐. 안 그러면 당신을 떠나겠어.’ 아내가 그렇게 말했다니까.”
“별것 아니네요.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내 사랑은 늘 경계태세야.'”
“내 아내는 군대 얘기라면 치를 떤다구.”
“‘난 당신을 푹 눌러쓰고 있어’는요?”
“무슨 말이요?”
“당신에 대한 나의 열정은 커다란 모자 같아서, 그 모자를 눌러쓰면 당신 밖에 안 보인다는…”
“시험 삼아 써 보지. 효과가 없으면 도로 물릴 거요.” – 본문 45쪽에서

* 책 소개를 보고 옛날 일이 생각났다. 나름 고심해서 전화로 애정표현을 해온 이에게 난 어쩜 그렇게 상투적이냐고, 좀 창의적으로 할 수 없냐고 타박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못됐다. -,.-)
재밌어 보이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여러가지 핑계가 있지만,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노래보다 아름다운” 언어가 선사하는 즐거움에 오래 푹 빠져보고 싶은 생각이 종종 간절해지는 게 사실이다.

저자도 흥미롭다

에릭 오르세나 (Erik Orsenna) –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오르세나는 필명이고 본명은 에릭 아르누로이다.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전공을 바꿔 런던 정경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11년 동안 파리1대학과 고등사범학교에서 국제 금융과 개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81년 국제협력부의 고문으로 사회당 정부와 인연을 맺은 뒤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 겸 연설문 초안 대필자, 최고행정재판소 심의관, 국립 고등조경학교 학장, 국제해양센터 원장 등 주요 공직을 두루 거쳤다. 그가 발표한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들은 이러한 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집필되었다. 1998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의 회원으로 지명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1978년 로제 니미에상을 수상한 <로잔에서 산 것과 같은 삶>(1977), 1988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식민지 박람>(1988)를 비롯해 <로욜라의 블루스>(1974), <어떤 프랑스 희극>(1980), <큰 사랑>(1993), <아홉 대의 기타로 엮은 세계사>(1996), <오랫동안>(1998), <행복한 남자 앙드레 르 노트르(1613~1700)의 초상>(2000), <문법은 감미로운 노래>(2001), <마담 바>(2003) 등이 있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 좀 다른 얘기
일하는 방식이 대체로 벼락치기인데다 웹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걸 귀찮아 하는 나는, 시안을 만들고 컨펌을 받는 과정은 대체로 생략하고 최대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탐색한 다음 막판에 짜잔~ 하고 보여주는데, 솔직히 클라이언트의 단순 변심으로 인한 메뉴 수정 등이 없으면 웬만하면 큰 수정없이 통과된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된다면 거의가 이미지. 사이트를 보기 좋게 꾸미는 장식적 기능외에도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고 각 메뉴를 차별성 있게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느라 쓰는 디자인적인 요소인 이미지가 종종 귀찮은 수정을 요한다. (사실 회사의 아이덴티티니, 메뉴 같은 것도 다 뻔해서 그 사이트를 조금이라도 더 유니크하게 만들려는 나의 노력은 이런 식으로 수포가 된다. 또 그 뻔한 이미지들을 계속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

예를 들면 이렇다.
http://www.millerbarondess.com/
이 사이트에서 Selected Clients라는 메뉴에 푸른 잔디밭에 편안한 의자가 있는 사진을 넣었더니, 그것과 클라이언트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사무실 미팅룸으로 바꿨다.
그리고 Practice Area에 들어갔던, 색감과 질감이 조화로운 멋진 디스켓 사진도 좀 더 상투적인 이미지로 바꾸어야했다.
이럴 때 난 통탄한다.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상투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인간이 자랑하던 은유적 사유의 능력이 이다지도 퇴화해버린 거야? 하고. 이것도 좀 못된 판단인가.

타로카드

페인팅을 전공하는 그녀가 타로카드점을 봐주었다.
들뢰즈를 좋아하고 김지하를 안타까워하고(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참 놀라운 일이다.), “엘에이까지 와서” 진중권과 이정우란 이름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을 신나라 하던 그녀가 들려주는 타로카드의 점괘는 그 표현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풍부해서, 잠깐, 하며 들른 까페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타로카드가 말하는 나는, sword패가 지배적인 사람이다.
완벽주의자에 비타협적이고 어떤 유형의 사람들(예를 들면 재물을 과시하는 사람들)에 “풋! 하고 웃어버리는” 내면의 냉소적인 경향이 있어 그것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단다.
그것이 혹 컴플렉스의 표출이 아닌가 물었더니, 단지 가치관의 반영일 뿐이며 앞으로 어떤 계기들을 통해 바뀌면서 삶이 좀 더 수월해질 거라 했다.
가치판단 없이 편안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보여준 카드엔 sword가 많이 보였는데, 그중 눈에 뛴 것은 하트에 너댓개의 검이 관통하고 있는 카드. 그녀는 이것은 나의 자존심이 인내하고 있는 형국을 보여주는 것이며, 인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많이 깨뜨려져야 한다고 했다)

학교나 스승을 통해서 배우는 타입이 아니며, 모든 배움, 지혜나 에너지는 몸으로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고 해야 스스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다행으로 생각한 건 내가 겪었던 고통이나 상처가 단지 상실이 아니며 내 안의 에너지로 축적된다는 사실,
암담한 것은 앞으로도 그러한 과정을 많이 겪어야 타고난 에너지의 부족을 메울 수 있다는 것 (많이 겪었는데~ 했더니 이제까지 겪은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란다. -,.- )
그러한 고난의 계기를 통해 체득된 에너지는 억눌려 있던 열정을 드러나게 하고 어느 순간에 “수도꼭지가 확 터지는 듯한”(이 표현이 맘에 들었다.^^) 멀티플한 성취로 승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일상은 고독한 편이지만 절대 혼자 외로움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고 건강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바닥을 치는 점쾌는 아니니,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고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걸 신나게 즐기며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꽤 긍정적이고, 많은 에너지를 탕진하게 될 미국 생활도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익하리라는 것.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겪고 있거나 닥쳐올 어려움이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내게 있어서 고통이란 뭔가 성취를 이루어내는 생산적인 것이므로 궁극적으론 내게 좋은 것임을 기억할 것.

생각해봐야 할 문제적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애정을 가질 대상을 발견하면 분석하고 이해하게 된 뒤에는 마음을 확 주거나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고 거기서 그만 두어버린다는 것.
(감정보다 먼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기본적으로 이성적이라 했나, 분석적이라 했나 그랬다.)

재밌는 것은 나보다 한참 어린 그녀가,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많다는 것을 내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는 것. 내가 그런 사람들도 많이 겪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강해질 것이니 편하게 마음 먹으라는 조언의 연장. 지금까진 내 주위에 아픈 비판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야그도..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란 얘기.

꽤 오래 나눈 대화를 기록해두려했더니 옮길 수 있는 양이 많지가 않다.
타로카드 점괘를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그에 의존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선 반성의 계기도 마련해주었고(내가 이제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나 자신을 대상화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 안을 함께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눈 일은 꽤 많은 평안을 선사했다.
심리치료의 효과도 이런 것이 아닐까.

타로카드점 외에도 그녀의 예술관, 예술적 취향과 선택의 고민, 몇몇 작가들에 대한 소박한 비판의 공유, 화가인 그녀의 아버지와 지혜로운 어머니 이야기, 광고일을 하는 동생, 할머니 이야기들이 모두 다채롭고 재밌었다.

돌아오면서 든 생각.
한동안 나를 비춰볼 수 있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많이 부족했구나.
유배자인 듯 행세하며 닫아놓았던 마음의 빗장이 좀 느슨해지는 느낌.

애도과정

정상적인 애도과정(심리학자 퀴블러 로스)  –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
고독(solitary) 그리고 연대(solidary) – 알베르 까뮈, 두 단어의 유사성!

피난처

피난처. BGM으로 젤 앞에 걸어둔 델리스타이스의 노래다.

얘야 춥거든 한시도 지체말고
언제든지 이곳으로 돌아오겠니
얘야 지쳤거든 걱정일랑 아예말고
내집인양 양말벗고 편안하게 쉬렴
따뜻한 아랫목엔 포근한 이불
그리고 널 위해 준비해 놓은 향기로운 차 한 잔
얘야 힘들거든 체면일랑 접어두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어보렴

 
담백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런 피난처에 대한 갈망이 모락모락 생겨나는데,
자꾸 듣다보니, “춥거든”이 자꾸 “죽거든”으로 들린다.
나만 그런가..

The Queen 과 Inconvenient Truth

바야흐로 환절기.
잠시 몸과 마음을 앓느라 제껴둔 시간에 인물을 앞세운 영화 두 편을 봤다.
The Queen 과 Inconvenient Truth


The Queen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주연: 헬렌 미렌, 마이클 쉰)

The Queen은 좀 색다른 혹은 뜬금없는 영화다. 이 시대 왕실의 존재만큼이나 그러하다.
예상과는 달리 제법 비중있을 이슈들을 비껴가면서 왕실의 품위에 집착하는 고집스런 여왕의 개인적인 면모를 소박하게-그러나 우아하게 보여준다. 토니 블레어의 등장도 재밌는데, 그가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왕(헬렌 미렌)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고 영상으로 보는 다이애너비-people’s princess-는 참으로 아름답다.


Inconvenient Truth (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  배우: 엘 고어 )

만약 엘 고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대체로 엘 고어의 강연을 충실하게 담고 있다.
그의 강연은 명쾌하고 자상하고 재밌으며 설득력 있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세계자원의 40%를 소비한다는 미국은 역시 에너지 소비도 엄청나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0%란다.
미국이란 나라는 어쩌면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반성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뒷부분에 등장하는 미국인의 애국심을 내세운 호소 중엔 다소 거슬리는 부분도 있지만,
뛰어난 강연자이며 정치가임에는 틀림없는 듯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지구생존을 위한 메세지만으로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게 무겁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봐야만 하는 영화. 그것이 존재이유인 영화.

엘 고어. 잘 생겼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이라 했던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올랐다니, 그의 영향력에서 뭔가 기대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http://www.climatecrisis.net

씨네21 기사를 덧붙인다.
사진을 올리려다 찾았는데, 영화를 생생하게 잘 그려냈다.  영화볼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왕년의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 앨 고어입니다.” 연단에 선 남자가 자신을 소개하자 청중은 왁자한 웃음을 터뜨린다. “저로선 그 사실이 특별히 우습진 않습니다만.” 시치미 뗀 앨 고어의 응수에 간지럼 을 탄 폭소는 더욱 커진다. 즐거운 서두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연이 고발하는 지구의 위급한 상황은 객석의 웃음기를 거둔다.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든 민주당 후보 앨 고어는, 정치 밖에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한 실상을 절감하고 연구한 고어는 1천회 이상 순회강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비보’를 알렸다. 고어의 설득력 넘치는 슬라이드 강연에 매료된 환경운동가 겸 제작자 로리 데이비드는 이를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결심을 다졌다. 데이비드의 손짓에 <펄프 픽션>과 <킬 빌>의 로렌스 벤더, ‘갓밀크’(Got Milk) 광고의 스콧 Z. 번스 등 ‘선수’들이 제작진에 합류했다. <불편한 진실>은 콘서트 실황을 제외한 미국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 중 역대 흥행 3위에 올랐다. 대선 당시 ‘지루한 앨’로 불렸던 고어는 일약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표지 모델로 발탁됐다.

TV시리즈 <24> <NYPD 블루> <앨리아스>를 연출한 경력이 있는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은 <불편한 진실>을 교육방송 동영상 강의처럼 찍고 편집했다. <불편한 진실>의 객석은 강의실 청중의 자리가 되고 스크린은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의 영사막이 된다. 강연을 중계하는 틈틈이 감독은 앨 고어의 ‘진실’도 삽입한다. 고어의 수심어린 옆얼굴과 낡은 사진의 몽타주 위로 개인사를 반추하는 전 부통령의 보이스 오버가 흐른다. 고어의 누나는 폐암으로 요절했고 아버지는 평생 지은 담배 농사를 접었다.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여섯살배기 아들은 고어에게 “지상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자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은 진정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무능하거나 유능해질 의사가 없었다. 이것이 고어가 광야에서 외치게 된 사연이다. 고어의 자전적 회고는 선거 캠페인 필름을 연상시켜 다소 부담스럽다. 지구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선 고어의 고독한 실루엣은 과도하게 비장하다. 그러나 이는 길게 불평할 문제는 못 된다. 앨 고어가 누구냐는 물음은 <불편한 진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유가 보탬이 안 되는 사태가 있다. 지구는 신음하고 있다, 고 애절히 말해봤자 우리의 마음은 쉽게 동하지 않는다. 앨 고어는 학자적인 태도로 확고부동한 사실과 수치를 줄줄이 지목한다. 역사상 지구가 가장 더웠던 10년은 모두 지난 14년간 찾아왔고 2005년은 그중 제일 더웠다. 자연의 장기지속적 변화를 감안해도 상궤를 한참 벗어난 적신호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녹아 사라지고 있으며 알프스, 페루, 파타고니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혹서로 3만5천명의 인명을 잃은 반면, 인도 뭄바이는 37인치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데워진 해수는 태풍의 덩치도 키운다.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는 멕시코만의 더운물을 만나 괴력을 더했다. 2004년 일본은 10차례 태풍을 치렀고 허리케인의 ‘허’자도 모르던 브라질마저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 이처럼 가히 묵시록적인 연쇄 재해의 주요 원인은 과다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빚어진 온실 효과다. 인구 20억명을 돌파하는 데에 1천 세대를 소모한 인류는 2차대전 이후 단시간 내에 65억명으로 급증했고, 웃자란 기술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에너지를 유례없는 속도로 연소했다. 문명은 지구를 착취했으나 그 보복에 대한 방책은 세우지 못한 것이다. 기상이변은 사회와 생태계의 붕괴로 번질 것이라고 고어는 설명한다. 줄어드는 빙하는, 빙하 녹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세계 인구 40%의 갈증으로 이어지고 전염병 매개체가 사는 땅을 넓힌다. 10년 주기로 9%씩 북극이 녹는다고 가정할 때 네덜란드, 상하이, 플로리다는 오래지 않아 완전히 침수된다. 역시 물밑으로 수장될 세계무역센터 기념비를 맨해튼 지도에서 가리키며 고어는 적절히 반문한다. “우리는 정말 테러 이외의 위협은 방관해도 될까요?”

앨 고어의 강연 솜씨는- 어쩌다 선거에서 졌는지 의아할 만큼- 탁월하다. 명쾌하고 알기 쉬우며, 영상자료와 통계를 적재적소에 끌어들인다. <심슨 가족>의 매트 그뢰닝이 제작한 <퓨처라마>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토막 3D애니메이션도 삽화 구실을 한다. <불편한 진실>은 그래프가 얼마나 무서운 이미지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연평균 기온을 짚은 꺾은선 그래프가 이산화탄소 함량의 그래프와 베낀 듯이 나란한 선을 그리는 화면은 충격적이다. 그런가 하면 <불편한 진실>의 가장 강력한 감정적 호소는 조야한 3D애니메이션 예화에서 튀어나온다. 얼음대륙이 녹아 사라지면서 발 디딜 땅을 잃은 북극곰 한 마리가 하염없이 헤엄친다. 간신히 뗏목만한 빙하를 발견하는 흰 곰. 그러나 앞발을 얹자마자 얼음은 두 동강, 네 동강으로 조각난다. 실망한 곰은 다시 탈진한 팔다리를 젓지만 바다가 너무 넓다.

물론 우리는 앨 고어가 미국 부통령으로 재직한 1990년대의 8년 동안 어떤 변화를 창조했냐고 온당히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앨 고어는 당시 정책의 공과를 해명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고 미국인의 부끄러움과 정의감에 직접 호소한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면서 무지막지한 에너지 소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려 30%를 차지하는 미국은 2001년 자국 산업보호를 명분으로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가간 이행협약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앨 고어는 본인이 목격한 ‘내부 메모’를 증거로 들어 지구온난화 위기를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 아닌 토론 가능한 하나의 견해로 격하하려는 에너지 산업과 미국 정부의 전략이 미디어의 눈을 멀게 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불편한 진실>은 한장의 팸플릿 같은 영화다. <불편한 진실>이 영화여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이유는 대량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불편한 진실>은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많이 공중파 TV로 방영되고 동영상이 보급돼야 마땅한 영화다. 메가폰이기를 자처한 영화답게 <불편한 진실>은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엔딩 크레딧 가득 무수한 실천 사항을 나열한다. “나무를 심으세요.”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환경 공약을 내건 후보에게 투표하세요.” “그런 후보가 없으면 직접 출마하세요.” 결국 개인의 어깨에 짐을 얹는 결론인가 화도 치밀지만 그보다 발등의 불을 꺼야겠다는 다급함이 앞장선다. <불편한 진실>을 보고 나와 내딛는 땅은 여느 때와 달리 갓난아이의 살처럼 연약하고 애처롭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전경은 인류 사상 가장 많이 복제되어 널리 유포된 사진이라고 한다. 다시 들여다본 그 이미지는 여전히 아름다우나 더이상 장엄하지는 않다. 지구는 창백하고 푸른 점일 뿐이다. (씨네21, 김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