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놀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하다.
조카녀석이 그리 원하던 귀신놀이도 할 수 있겠다.

머리를 길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언니가 넌 지겹지도 않니? 라고 할 만큼, 늘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하고 살았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날 때면, 언니는 또 잘랐어? 하면서 선머슴 같이 이쁜 기는 하나도 찾을 수 없다 했고 나중엔 조카도 이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시로서 그 타박에 가세했다.
머리숱이 많아 길어지면 포비 같아진다고 항변을 하면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길래, 머리카락이 무거우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 몇 달 살면서 방치해두니 머리가 치렁치렁 해졌는데,
머리 감는데 비누랑 물이 많이 소비되는 것과 머리 말리는데 드라이도 해줘야 한다는 환경오염과 자원낭비에 대한 생각을 제껴둔다면, 이처럼 편한 헤어스타일이 없다는 걸 알았다.
비용과 시간 절약은 물론이거니와 때로 질끈 동여매거나 모자를 눌러쓰는 외에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부드러운 촉감은,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살아있음의 축복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언닌 앞머리가 긴 게 안어울린다고(아마 눈썰미 있는 동생의 눈이 맞을 테지만) 미용실에 가자는 동생의 권고를 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자라나는 것을 자꾸 잘라버린다고 집착을 끊는 게 아닐지도 몰라.
자라나기 마련인 것은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게 거기서 더 자유로워지는 일일 수도 있겠어, 라고.

한강,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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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노래에 담긴 지난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쓴 산문집. 보리수, 엄마야 누나야, 짝사랑, Let it be, 청춘, 혜화동,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지은이의 기억에 새겨진 22곡의 노래와 이야기를 정갈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부록으로 실린 음반에는 작가가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 10곡이 담겨 있다  출처: 알라딘)

내가 울 때 눈물을 닦아주거나, 내가 영혼을 팔았을 때 그걸 되사서 나에게 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노래를 듣다 보면 일어날 힘이 생기고, 온몸이 터져나갈 듯한 만원 지하철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어떤 종교도, 위로해줄 애인도 없을 때, 때로는 그렇게 노래 하나가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기도 한다. – 본문 49쪽에서



책을 선물 받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선물한 사람을 이렇게 생각나게 하는 책은 흔하지 않았던 거 같다.
읽으면서, 들으면서, 참 그의 취향에 딱이네,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많은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지난 수개월 동안 고래씨로부터 받은 것들이 많다.
돌아가면 어찌 갚아야할 지.


하루에 노래 하나가 안 넘는 분량을 아껴아껴 읽었다.
하나를 읽고 잠이 들면 다음날 하루 종일 그 노래가 입가에 흥얼거려졌고,
아 이 노래 가사들을 다 외우고 있었구나, 놀라기도 했다.
산울림의 ‘청춘’에 스며들어 있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읽고난 다음에는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
그녀처럼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으로 불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강 그녀가 만들어 불러주는 나직나직 가만가만한 노래들…
“나무는” 이란 노래엔 이런 글이 붙어 있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걸 본 다음날, 만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나 자신에게선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란 대답을 들었다.
윌셔가 빌딩앞에있는 나무그늘앞 벤치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다 얼굴에 와닿는 따스한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을 즐기던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노래들이 있어서, “그 날개에 실려 삶 위로 미끄러져가는 순간” 덕분에, 정말로 삶의 고통이 훨씬 가벼워졌다. “거짓말처럼 일상을 버텨주었다.”
고마운 책, 고마운 노래들.
아직, 30여 페이지가 남았다.
다시 책을 덮을 작정이다.
며칠 더 읽을 수 있겠다.


누구든 살아가다가 힘든 순간을 만난다. 그게 언제든, 어떤 형태든. 때로는 그로 인해 영혼의 일부 또는 전부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본질이 막 파괴되려는 바로 그 순간의 자세라고 믿는다. 그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당신을 지키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놓았다 해도 다시 잡으면 된다. 어떤 지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정수를, 그 가냘프고도 단단한 실체를 온 힘으로 느껴야 한다. 느껴내야 한다.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 순간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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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내 눈을 봐요)

사랑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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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은 치매와 중풍을 죽음보다 더 피하고 싶은 질병으로 꼽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은 인간의 본원적 두려움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가족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도 상대가 자신에게 좋았던 사람인지 아닌지는 본능적으로 안다고 합니다. 생존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지적인 총명함이 아닌 몸에 새겨진 정서에 대한 기억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약한 인간을 고려한 절대자의 섬세한 은총일지도 모릅니다.

그 은총의 한 형태를 세상 언어로는 ‘사랑’이라고 하겠지요…. ^^
 
–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 중

* 세상에서 제일 어여쁜 울 조카.
용인형을 좋아라 품고 다니더니 이모 이름을 본따 “하룡”이라고 이름지었다.
내게 그렇듯 이 녀석에게도 이 못난 이모가 몸에 각인된 ‘사랑’일 수 있을까.

Natural History Museum of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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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가는 걸 병적으로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유년의 나는 古都의 한쪽 외곽에서 반대쪽 외곽으로, 자전거에 얹혀, 그 때의 그 박물관에 가 보곤 한다. 비포장도로를 힘차게 달리면, 이미 지나 온 길들을 뽀얀 먼지로 메우는 내가 있고, 굵직한 돌 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내가 있다. 무르팍에서부터 흐르는 선홍빛 피는 정강이를 타고 내려가고 흰 양말을 적시고, 황톳길에 방울방울 떨어지고…. 첨성대를 지나, 계림을 지나 안압지를 지나치면 그곳에 박물관이 있었다. 그곳엔 강화유리 안에 갇힌 오래된 사물들에게 온몸의 감각과 신경들을 빼앗겨 석고처럼 딱딱하게 서 있는 무수한 내가 있다. 어리디 어린 내가 폐가 아릴 정도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넘어져 피가 범벅이 되면서까지 찾아가서 얻으려 했던 것은 그 사물들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사물들 앞에서만이 얻을 수 있었던 그 온몸의 긴장감, 그 신체적 반응이었던 거 같다. 알 수 없는 막무가내의 운동들, 귀와 눈의 현기증, 그 오래된 사물들의 수다스러움에 어리디어린 나는 숨이 막힐 것도 같고, 귀플 찢어버리고 싶기도 하고, 뭐 그런 이상한 반응을 하며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는 거다. ….

…. 나는 애타게, 간절히, 소원을 빌어본다. 너의 공간이 내 상상과 아주 다르게 건조하기를, 아니 나를 초대하겠다는 너의 그 집요한 욕심이 아주 증발되기를, 세상 어디에도 나는 초대받지 않기를, 세상 어디에도 내 이름이 남지 않게 되기를, 세상 만사가, 만물이, 삶이든, 삶 아닌 것이든, 고통이며 욕망이며 사랑이며, 갖은 사무치는 것들로부터 너무 가깝지 않아서,
가볍게 지나쳐가기를,
나의 인생이, 그리고 너의 인생이.

김소연 시집 <극에 달하다> 중에서

김규항, 품위전쟁


품위 전쟁                    김규항
                 
영화 만드는 박찬욱 씨가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참 이 사람 저 사람 그 글을 화제로 올리기에 부러 찾아 읽었었다. 기억에 기대어 내용을 적어보면 이렇다. 박찬욱 씨가 젊은 상류계급 인사들의 무슨 모임에 불려갔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하더란다. 그런데 그게 겉치레로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인간적인 호감을 뿌리치기가 어렵더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그로선 거부감이 들지도 느끼하지도 않는 ‘새로운 반동들’(이건 내 표현)이 적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부르주아 1세대는 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디 어느 모로 보나 착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제 집에서 소를 훔쳐 도망 나온 사람이었으며 동족이 죽어나가는 전장을 쫓아다니며 탄피를 팔아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에 대한 타고난 탐욕과 하한선이 없는 듯한 인격을 한껏 발휘하여 개발독재 시기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험한 외양까지 바꾸어낼 순 없었다. 그들은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 앞에 조아리게 했지만 조아린 사람들은 내심 그들에게 침을 뱉고 있었다.
양반이 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이던 상놈처럼, 그들은 돈으로 제 가계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집안 좋고 머리 좋은 배우자와 짝을 지워 좀 더 우량한 아이를 만들어내고 정히 엇나가는 아이는 미국대학에 기부입학이라도 시켜 통속적인 외양을 확보하기를 수십 년, 드디어 그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을 얻게 되었다. 이른바 재벌 3세, 혹은 4세로 불리는 그 아이들은 대개(물론 전부는 아니다) 인물 좋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예의바르고 착하다.
물론 그건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그들의 진짜 인격은 아니다.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라는 말의 실체는 ‘이젠 부자가 착함까지 사들였다’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부를 일구고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의 시궁창을 천하게 구르던 제 할아버지와는 달리 일 년 내내 착한 얼굴을 하면서도 제 부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착한 것이다. 단언컨대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제 부에 결정적인 위협을 받을 때 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고래가그랬어 편집장 조중사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산 중턱에 있는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성북구의 한 가난한 동네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한잔할라 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인다고 했다. 조중사가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은 많은지..”
개혁파든 극우파든 신자유주의 광신도들의 지배가 지속되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겨워지는 현실 또한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싸우고 있고 또 싸워야 한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품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인가? 아니다. 가난은 불편하고 때론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적어도 부유보다는 정당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이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품위마저 사들인 부자들은 세상에서 가난의 품위라는 것을 도려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바야흐로 품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 전쟁에서 질 때, 그래서 아이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제 아비 어미를 수치스러워하게 될 때 우리 삶도 끝장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학력고사를 본 다음날부터 과외를 시작했다. 그 땐 몰래바이트란 이름이었다. 티비 뉴스에선 수영장 같은 데서 땀흘리며 값진 체험을 쌓고 적은 돈을 벌어 배낭 여행에 보탠다는 바람직한 대학생들의 이야기와
과외로 쉽게 돈을 벌려는 안이한 대학생들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진짜 가난한 학생들의 경우에 선택은 별로 없었다.
(물론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멋진 학생들도 있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과외로 꽤 오랫동안 만나봤던 강남의 학생들이 그러했다.
“인물 좋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예의바르고 착” 했다.
애들이랑 잘 친해지는 편이어서 학생들이 많이 따랐는데,
그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촌스럽고 멍청하고 무서운 강북애들” 하며 사나운 표현을 쓸 때는 깜짝  깜짝 놀랐다.
 “야, 선생님도 강북출신이야.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거에 강남이나 강북이냐는 중요하지가 않아요… ” 하면 눈이 동그래지던 아이들.


“가난이 정당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 임을 설파하는 김규항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 간결하면서 힘이 있다.  
“아이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제 아비 어미를 수치스러워하게 될 때 우리 삶도 끝장”이라는 강도높은 표현에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품위가 오로지 그가 지닌 물질적인 것과 동일시되는 오늘날, 가난의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러기에 얼마나 귀한 일일 것인지.
그 지긋지긋하던 과외선생시절이나 지금이나 가난하기는 많이 다르지 않음에도, 여전히 그런 “품위”와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인지.

나이를 먹는 일…

며칠 전 내 손금을 본 누군가가 내가 오래 살겠다는 말을 했다.
일곱살 때 병을 가지고 놀다 깨지는 바람에 손바닥에 상처가 깊었는데,
그게 명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근거로 내 명이 짧을 거라 의심치 않았던 난, 당혹스러웠고
그런 내 반응을 의아해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노후대책 같은 것도 필요하잖아요…


나이를 먹는 일이, 우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좀 여유로왔음 좋겠다.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만, 나에 갇히지 않을 만큼만.

Koroneburg Festival

루푸스

아무래도 그들이랑 일 안해야겠어.
>왜
어… 좀 안맞잖아.
>미국 살다보면 그렇게 돼. 니가 좀 순진한 거구. 그 사람들도 중간쯤 되는 사람들일 뿐이야.
다른 사람들 얘기하는 거 보면 좀 무섭던데. 나랑 절대 안 친해질 사람들인 걸.
>앞일이야 모르는 거고.
나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나랑 안 친해질 사람을 왜 못 알아보겠어. 궁시렁 궁시렁.

아무리 뭐래도… 난 그런 사람들이 싫은 걸.
자기 가진 것들-학연, 지연, 물질적인 풍요 등-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사람.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 주장하는 사람. 그래서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이해와 연민이 결여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면,
그들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이 피부 속에서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
그게 결국 내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루푸스병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조금씩 닳아지고, 어쩌면 닮아가고 있겠지만..

* 루푸스 : 정상적으로 암이나 세균과 같은 외부의 침입 인자 등에 맞서서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하는 면역계통이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조직이나 세포를 외부의 침입 인자 등과 구분하지 못하고 공격하여 손상을 입히게 되는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면역질환 – 출처: 네이버

김은정, 해변의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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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엘레지

                           김은정
           
  바닷가에 앉는다
  어제의 내일이었지 지난날의 미래였지 오늘
  햇살의 기울기가 낮게 저 건너 산을 끌고 간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희망 아닌가

  바람의 무게로 날리는 추억이 아직도 괭이질을 해대는 가슴 속은 차르르르 파도의 탄력을 붙잡는 갯바위의 손으로 가득하다 이미 각오한 대로 하오의 시계바늘에 긁혀 진한 생피를 쏟는다 젊음의 반을 넘어가고 있는 해의 눈동자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한 쪽이 아프면 다른 한 쪽의 아픔은 잠시 생각을 바꾸어 쉰다 세상의 소금끼에 겉절은 일상이 인색하게 몸을 비틀며 구부린다 다정히 데리고 온 것도 데리고 갈 것도 없는 삶의 벌판을 그래도 모서리를 문질러 많이 부드러워졌다 서글픈 울음소리 알알이 당겨가는 그물 같은 하늘이 서쪽으로 쏟아지고 기억의 비탈에 다소곳이 붙은 소라고동 속으로 물결은 조심스럽다 일렁이는 파도의 그늘 아래 수궁가를 부르는 물새 까치발선 눈시울 그렁그렁 저물 무렵의 해가 한지 자락처럼 얇게 젖는다

  오래오래 무겁게 들고 있던 마음을 겨우 내려 놓으면
  도도한 능선이 나의 가슴 안으로 걸어 들어와
  발 끝으로 천천히 세상을 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부시게 슬픈 날.
  빗금 간 토기 같은 삶들은 먼데 시선을 둔다
  언제나 저쪽으로 괴는 눈길을 둔다
  햇살이 시간을 노저어 가는 저 건너까지
  저 너머 너머까지

배탈

한동안 몸이 게을러져 가난한 밥상으로 연명하다가
점심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와 타이음식을 먹고, 저녁엔 동생이 정성스레 끓여다준 미역국과 반찬들을 먹었더니, 과식을 한 모양이다. 간만에 배탈이 나 속이 가라앉질 않는다.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잠시,
난 배불리 먹고 살 팔자는 아닌가벼, 그런 팔자가 아닌 게 육체의 안녕을 위해 오히려 다행한 일이지.. 라는 생각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