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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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30일 인천공항.
그날 혼자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가는 길은 좀 쓸쓸했다가, 한 번만 더 해보면 정말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바라보는 창밖 풍경에 마냥 매료되었다가, 혼자 떠나는 이런 일을 내가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황홀히 젖었다가, 그랬었다, 그날.

벌써…. (곧)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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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뇌는 어느쪽이 활성화 되어있습니까?

http://www.slrclub.com/bbs/vx2.php?id=canon_d30_forum&page=1&sn1=&sid1=&divpage=168&sn=off&sid=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02319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가는 몰겠으나.
가까운 사람들과 결과를 비교해보면 재밌을 듯.
난 첨엔 시계반대방향이 우세하다가.. 둘 다 정신없이 바뀌더라.

정말.. 컨트롤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어떤 당면 과제에 대해 선택적으로 우뇌와 좌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펌] 이상한 밴드의 이상한 댄스 음악


(아래 글의 플레이어 스톱 버튼을 눌러 끈 후에 위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들으세요)

Tubthumping – Chumbawamba

I get knocked down
But I get up again
You’re never going to keep me down

씽씽씽

씽씽씽    —    동물원 8집

바람 씽씽씽 불어 넌 내게 오기도 전에
마지막 남은 하나의 잎마저도
넌 너무도 여워어 있구나
감추려 하지 말아 너의 향기는 알아
떨리듯 걸린 마른 잎만으로도 여전히
넌 내겐 꽃이야

널 이제 어루만져 줄 수만 있다면
그대로의 널 위해 작은 꽃병으로 남겠어
윙윙윙 소리 때론 널 떨게 하겠지
하지만 그런 바람과 상처들만으론
결코 널 떨구진 못할거야*




이 노래가 그렇듯 강력한 ‘해피드럭’이 되던 때가 있었다.
뼈가 시리게 춥고 메마르던 시절, 이 노래를 숨죽여 듣다보면, ‘떨리듯 걸린 마른 잎만으로도 여전히 넌 내겐 꽃이야”란 노랫말이 주술 같은 힘으로 스며들어, 바닥으로 꺼져들던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었다.
 어린시절 몸살날 때 엄마가 타주던 설탕물처럼. 그 아랫목의 단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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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노래를 듣다 생각이 나서 동물원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새만금락페스티발>에 공연참가를 취소했다는 공지를 접했다. 사랑하는 그룹이 “새만금개발의 정당성을 억지 주장”하기 위한 행사에 이용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팬들의 강한 요청글에 부응한 결정이었다. 역시나 동물원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선 다행한 일이다 싶다가, 한편으론 조금 욕심이 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Chumbawamba 같은 그룹이 있었으면 하는.

소금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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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염전의 소금창고가 얼마 전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그 허허로운 바람과 짠 바다내음의 흔적으로 가득한 벌판을 헤메다녔던 때가 벌써 수년이 되었으니 오래 버티었다 싶기도 했다.
골프장으로 개발된다고 하니, 그 때의 그 독특해던 풍경은 과거의 기억속의 것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정겨운 협궤열차가 그랬듯이. 정선 동강을 따라 달리던 비둘기호 기차가 그랬듯이.

협궤열차가 사라질 때는 마음이 아련해지고 아, 한숨이 나왔었다. 시장성의 잣대로 폐기처분되어 사라져가는 것들을 오래오래 배웅하며,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가 상처임을 생각했다, 고 적었었다.

지금은? 사라지는 것들에, 좀 더 의연해진 나를 발견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여전히 언제까지나 시린 생채기로 남을 테지만, 이젠 “추억의 힘”도 생각하게 된 내가 보인다.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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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하며
 스물 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게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얼굴2

아래 Justin이 찍었다는 좀 여자처럼(^^) 나온 사진…을 올렸다가 좀 민망해져서 내린다.
아무리 내 블로그라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의 시각 환경을 배려해야하므로. ㅎㅎ
내 사진이 별로 없는 내가 처음 보는, 거울로도 볼 수 없었던 각도, 앵글로 찍힌 모습은 많이 낯설다.
(정확히 말하자면 렌즈의 조리개개방수치도 낯선 것이긴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전직 스시맨이었던 일본 아저씨의 환상적인 요리와 함께 낮술 먹고 헤롱거리다 찍히는 줄도 모르고 찍힌 거라… ^^)

최근 사람들의 옆모습을 주의깊게 보게 되면서 그 표정의 다름과 다양함에 놀라고 있다.
인물 사진에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처음 카메라를 손에 잡았던 시절 즈음엔, 작은 소도시에 있는 자그만 사진관을 꿈꾸던 일도 있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나의 아름다운 사진관” 같은 간판을 걸고.  

얼굴

http://phobos.applieddevice.com/fs/fs0101attr.php?T=4 에서 해본 얼굴분석 테스트.
정면으로 얼굴 크게 크랍한 사진들을 들이대도 “얼굴을 찾을 수 없습니다” 란 에러 메세지를 내 보내더니만, 결국 이 사진에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30세 남자.
그렇잖아도 왜 여자들이 더 좋아하냐, 란 물음을 받고 있던 터라 약간 난감. 정말 남자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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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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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ustin


내 어설픈 페달질에 힘차게 달려준 첫번째 자전거.
얘와 함께 도움을 준 S형님, 친구 E와 특히 J, 산타모니카 비치 주차장에서 계속 크게 웃으며 응원을 보내준 밴 아저씨 등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추억의 서랍 한 켠에 간직하기로 한다.


“추억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지리하고 때로 고통스럽고 막막한 나날들을 견디게 할 수 있는 추억의 힘에 대해!

영광의 상처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자그만 상처들이 생겼다.
얼굴을 앞으로 박고 엎어졌는데 그나마 뼈들은 다 멀쩡하고 스크래치만 났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리 벼르던 자전거를 배웠으니, 그만한 상처쯤이야..


상처는 얼굴, 손목, 다리에 났다.
다리의 멍이야 산에 다닐때 흔히 보던 거고 바지를 입으면 안보이는 거니 잠시 따갑고 걸음걷기가 뻐근한 걸 빼곤 신경 쓸게 없었지만,
얼굴에 난 상처는 며칠 간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우려의 인사를 들어야했다.
그 나이에 자전거라니.. 어렸을 때 쌀자전거로 배웠어야 했던 게 아니냐는.. 기분좋은 타박들.


대체로 짧은 안쓰러움을 표현한 후에는 다들 길게 재밌어하는 양상이었다.
몸이 늙어서 피부재생능력이 떨어지니, 각별히 신경 써야한다는 센 우려도 여러 번 들었다. 알아, 고개를 끄덕이곤 부지런히 후시딘을 발랐다.


얼굴의 상처는 처음엔 쓰라리고 사랑니 뺄때처럼 얼얼하더니 오래가지 않아 붉으스름한 점으로만 남았다.
손목의 상처가 문제였다. 열흘이 지나도록 조금도 아물지 않고 오히려 상처가 깊어가니 통증이나 손쓰기가 불편한 건 둘째치고 조금 겁도 나서, 그러다 손목을 자르게 될 수도 있다는 친구의 장난에, 정말 그럴까, 솔깃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그러다 이주일이 훌쩍 지난  이틀전부터 갑작스레 약간씩 아물기 시작했고, 약간의 흉터는 남겠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멀쩡해질 확률이 구십구퍼센트로 보이며 다시 자전거를 타러 나갈 궁리중이다. 그러고도 또 타고 싶냐고 묻는 사람들한텐, 어렵게 배웠으니만큼 남은 생애동안 부지런히 타야겠다고 대답해줬다.


그리하여.. 내 영광의 상처들은 조금씩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직 내 몸이 이런 외상에 대해 이 정도의 복원능력을 보여준다는 건, 살아가는 동안 입을 수 있는 내 몫의 상처에 대해 의연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다행하고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아했던 건.. 처음엔 그 고통이나 크기에 있어 비슷해보이던 얼굴과 손목의 상처가 아무는 데 있어선 전혀 달랐다는 것.
내 한몸 안에서도 이러하니, 타인의 상처를 그 고통의 크기를 내가 가늠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 것인가. 과연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