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우리안의 대운하



– 386에게 보내는 편지

이명박 씨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광우병 소 문제가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미 그를 ‘명바기’라 부르며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고 희화화했다. 아이들 몇을 붙들고 왜 그리 이명박이 싫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들의 표현은 다양했지만 ‘논리 이전의 혐오’라는 점에선 일치했다. 나는 아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는 가지지 못한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지금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은 93년생인데, 93년은 이른바 문민정부가 출발한 해다. 아이들은 민주화 이후에 나고 자란 첫 세대인 것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이른바 386들이다. 그들은 아이들과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군사 파시즘 치하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민주주의의 실제에 대해선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배우거나 익힐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비민주적인, 전근대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습속을 익히며 자라야 했다. 그럼에도 군사 파시즘의 폭압이 20대의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의 비민주적인 습속이 그들이 일사불란한 대열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습속은 군사 파시즘이 물러난 이후 그들을 무력하게 했다.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이 인민들에 의해 붕괴하자 그들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그 붕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했고 낙심과 자괴감에 빠졌다. 그들은 일제히 역사를 접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90년대 이후, 30대가 된 그들은 두 가지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들은 정치적 민주화에 대해선 여전히 단호하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해선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군사 파시즘과 싸워 물리쳤던 추억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도  민주화 이후 도래한 거대한 자본화의 흐름엔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지적이고 정의 지향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낳고 키운 아이들이 바로 촛불을 든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역시 두 가지 모습을 가진다. 그들은 한국의 다른 모든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주체적인 개인이며, 권리의식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딱할 만큼 소비문화에 물들어 있고 삶에서 돈과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자본의 감성을 보인다.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의 중학생 딸(고아성이 연기한)은 그 전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 아이는 유행에 처진 핸드폰을 아빠나 쓰라며 던져버리지만 동시에 부당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놀랍도록 주체적이다.

그 아이들이 오늘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싸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보며 한국 사회의 희망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감동적인 광경임에 틀림없지만 현재로선 희망은 딱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절망이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휴대폰이나 운동화 엠피쓰리 따위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10대 마케팅’을 벌이는 자들에게 저주를!) 사회는 지구상에 없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장래희망이 없거나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연예인(은 아이들에게 자유롭고 안락한 삶의 전형이다)인 사회도 지구상에 없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자정이 넘도록 학원을 돌며 경쟁 기계로 키워지는 사회도 지구상에 없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이명박이 없는,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는 좀 더 사악해진 사회에서 충직한 자본의 신민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측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가진 절반의 절망은 전적으로 후천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며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다시한번 386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물론 그들 상당수는 이명박을 싫어하고 대운하를 반대하며 광우병 소에 분노하며 촛불을 든 아이들을 폄훼하는 조중동을 욕한다. 그러나 이명박을 싫어하고 대운하를 반대하며 광우병 소에 분노하고 조중동을 욕하면 정말 이명박을 반대하는 걸까?

아이들이 분노하는 0교시 문제니 고교서열화니 학교자율화니 하는 문제들을 보자. 그 문제들은 이명박이 시작한 게 아니다. 민주화 이후 좀 더 직접적으로는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돌입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 문제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기초를 쌓았고 이명박 정권에서 ‘노골화’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노골화한 부분을 떼어내 반대하는 것으로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골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가치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오늘 좋든 싫든 제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대열에 참여시키고 있다면 ‘이명박의 노골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명박 지지자’일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한다고 해서 이명박과 다르다고 생각할 건 없다. 미국산쇠고기 문제는 광우병이 염려되는 쇠고기를 국민에게 먹이려 한다는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 그리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한 입장의 문제다. 미국산쇠고기 문제는 돈이 제일의 가치이고 경제적 효율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에서 나온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른 농축산물 수입 문제에 FTA에 이랜드 노동자 문제에 KTX 여성노동자 문제에 삼성노조운동 문제에 무심한 사람이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한다고 해서 이명박과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막말로 이명박 씨가 지금 야당 대표였다면 미국산 쇠고기를 찬성했을까?

경부대운하를 반대한다고 해서 다르다는 생각도 하지 말자. 오늘 한국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대개 대운하를 반대한다. 그러나 경부대운하를 반대하는 그들 대부분은 이미 제 안에 경부 대운하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파괴적인 대운하를 건설하고 있다. 밤늦은 시간 한국의 도시마다 길게 늘어선 학원 버스들, 생기를 잃은 낯빛으로 그 버스에 실려 가는 아이들. 그게 대운하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그 대열에 제 아이를 ‘아이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실어 보내는 사람이 경부대운하를 반대한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는 지금 가치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돈의 가치관과 사람의 가치관. 돈과 경제적 효율을 우선하는 가치관과 느리더라도 사람과 자연을 우선하는 가치관, 국가의 총경제(는 실은 지배계급의 경제다)를 중요시하는 가치관과 인민들의 경제를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전쟁이다. 돈의 가치관의 정점에 이명박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정점의 추한 외양에 거부감을 갖는다고 해서 우리가 사람의 가치관을 가지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대열에 불편한 시늉으로라도 결국 동참하면서 이명박의 좀 더 노골적인 교육정책엔 분노하는 모습, 제 안에 더 큰 대운하를 뚫어놓고선 이명박의 대운하는 반대하는 가련한 모습이 다라면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은 없다.

한 호흡 멈추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자. 올바르기 때문에 정의를 좇기 위해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자는 게 아니다. 진정 더 잘살기 위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생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따위 거짓말일랑 하지 말자. 다 내 욕망을 아이를 통해 구현하려는 것 아닌가? 행복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신통한 아이들, 삼성이니 에스케이니 하는 장사꾼들의 붉은 깃발과 국가주의적 선동에 태극기를 두르고 광장을 채우던 20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사회현실을 고민하고 스스로 학습하고 연대하며 싸우던 부모 세대의 청년시절의 모습을 빼다 박은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아이들, 프레시안 / 출처 : http://www.gyuha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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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18대 국회

오늘 한나라당 이혜훈의원이 18대 국회 시작과 함께 수십억 주택을 소유한 강남부자들 종부세 면제와  종부세 세대합산을 인별합산으로 전환하는 법안(집투기꾼들 세금 감면, 부동산 투기 부추기는 법안)을 새벽부터 밤을 새가면서 1호로 발의 접수시켰다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는 작태라 아니할 수가 없다. 폭등하는 물가로 서민들은 민생고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지난 몇년간 집값이 폭등하여 수억에서 수십억 재산이 늘어난 2%강남부자와 다주택 투기꾼의 종부세 감면이라?..


이런 부자감세법안은 국민의 눈치를 봐가면서 발의를 해도 눈총을 사기 마련인데..이혜훈의원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1호로 접수시키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다른 의원과 실랑이를 벌이고..조정이 안되어 급기야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이혜훈의원 그 자신의 지역구가 서초구라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말의 의식과 개념이 있다면 이런 경솔한 행동을 할 수가 없는것이다. 지금의 대다수 국민은 자신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 연일 미국산 쇠고기에 저항하는 한편,


폭등하는 물가에 신음하고, mb정부의 로드맵인 공기업 민영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국민정서나 민심과는 동떨어진, 아니 대다수 국민의 공분을 불러 일으킬 강남부자들 감세법안을 저리 요란스럽게 접수시킨 이유가 뭘까? 서초구에서 국회의원 선수를 더 늘리기 위해서? 


아무튼 각설하고 이혜훈의원의 법안을 한번 들여다 보면 온통 강남부자에게 특혜가 돌아가는 것들뿐이다. 우선 1주택자에 한해서 그 보유자가 10억이던 수십억이던간에 무조건 종부세 면제해주겠다는 것인데..이렇게 강남권 아파트에 한해서 종부세를 면제해주면 강남집값은 그야말로 폭등하기 쉽상이다. 종부세 면제로 보유세 부담이 줄어드니 투기수요가 폭증하여 강남집값 폭등으로 이어지고..


또 한가지 집투기꾼의 세금인 종부세 세대합산을 인별합산으로 전환하면 투기꾼들이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가 되어 막대한 세금감면을 받고, 이는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가 다시 재연되는 상황이 도래하는데, 경제학자 출신인 이혜훈의원이 이런 사실을 모를리가 없을 터인데, 이런 분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법안을 발의하다니..정말 개념이 있기나 한 건지..


더욱 더 실망스런운 것은 이 2가지 법안과 함께 지방세법 개정안도 발의를 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지금의 종부세는 국세로 걷어서 부동산 교부세라는 이름으로 전국 시도에 골고루 배분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강남에서 걷은 종부세에서 50%는 다시 강남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지방간 균형발전을 위해서 복지수요가 많고 더 못사는 지역에 더 많이 교부하는 종부세를 다시 강남으로 가져가 강남만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이 아니던가? 아무리 강남 국회의원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혜훈의원의 강남부자와 집투기꾼 특혜법안이 강남집값을 폭등시키고, 지금도 불안한 주택시장을 다시 부동산 투기로 몰아넣고,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키는 망국적인 법안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이 법안이 재경위에 상정되어서 국회과반을 점한 한나라당과 이들과 별 다를바 없는 친박연대, 그리고 이회창당이 서로 뒤질세라 작당을 하여 어떤 결과를 내놓을 지 국민은 반드시 지켜 볼 것이다.

[시민편집인칼럼] 김형태/변호사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00933

*18대 국회의 ‘법안 1호’가 종부세법 개정안이라는 소식이 들리더니
미디어다음 아고라에 이런 글이 떴다.
이들이 가히 천진하리만큼 용감하고 무식하게 제 기반을 충실히 드러내니,
우리 아이들조차 광장에서 촛불을 들게 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단해, 정말..

빗소리, 생체시계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4시.
타닥. 타닥.
그 소리가, 견고한 것에 스며들려는 부드러운 것들의 부대낌의 몸짓인양 애처로이 들렸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결과로 사무실에서 졸음과 치열한 싸움을 하는 중이다.
점심을 사주겠다는 이가 있어 좋아라 따라갔더니 우삼겹에 김치말이 국수를 한 대접 먹은 것도 졸음의 원인이 되었다.


16시간 금식을 하면 생체시계가 바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행기를 장시간 탈 때 이를 이용하면 시차를 견디기가 쉽다고 했다.


생체시계가.. 너무 불안정해졌다.
생체시계가 바뀐다는 것이 다시 셋팅이 되면서 (피시에 포맷을 감행한 것처럼) 초기상태로 돌아가 정상화되는 거라면, 16시간 금식쯤이야.. 아무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시장 풍경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내가 살고 있는 집 옆에는 자그마한 재래 시장이 있다.
출퇴근시엔 꼭 여기를 통과해 지나가는데,
거기엔 늘상 점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쁨을 받고 있는 늙은 개가 있다.
누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눈을 지긋이 감고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을 즐기는 즐기는 녀석의 말년이 나쁘진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며칠 전엔 이런 중요한 임무를 홀로 수행하고 있었다.
사진기를 꺼내 들이댔더니 힐끗 쳐다보다 다시 쪼르르 제 주인의 품안으로 걸어가버렸다.

(문의가 많아 덧붙임: 강아지가 재고가 아니며, 옆에 있는 물품의 판촉을 수행중)

이사

잡동사니 살림이 늘어나 호스팅 하드용량이 100% 차고 나서야 벼르던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텍스트큐브의 백업시스템이 아주 좋아서 몇 번 클릭으로 완벽한 포장이사가 되었습니다.


* Dance for Rain은 아시다시피 비를 바라는 인디언의 춤에서 따왔습니다.


Although Native American tribes Dance for many reasons, in the south-western deserts where rain is rare and precious, Pueblo people(푸에블로족, 인디언 부락) often say ‘we dance for rain’ as without rain, the ‘Three sisters’-corn, squash and beans-will die and the people will not be fed.
-1000 Symbols; What shapes mean in art &myth

* Feedburner가 제공하는 RSS 주소는 종전과 같이 http://feeds.feedburner.com/kalos250 입니다.

순간들

언니의 수술 경과를 기다리며 드는 생각.
내가 툴툴거리며 살고 있던 매순간에, (자연재해와 분쟁과 질병이 끊이지 않는)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염원으로 절박하고 안타까운 순간들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일까.

환절기

목에 5~6센티의 상처를 남길 수술을 앞두고 있는 언니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서랍안에 잠자고 있던 반지 하나를 들고 가 십자가 목걸이로 바꾸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깎듯하기 그지 없는 판매원은  “일단 들어온 제품은 재판매를 위해 녹여집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라고 너무나 예의 바르게 물어와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또 바꾸려는 하는 것들이 있다.  
카메라 렌즈를 31미리에서 21미리로,
13.3인치 와이드 소니 바이오를 보다 작은 놈으로 바꿀 작정이고,
보다 중요한, 그래서 아직 고민중인 대상이 있다.
모두다… 가볍게 살고픈 욕심인 것인데,
마지막 것은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겁고,  
혼자 결정해야하는 일이 조금 쓸쓸해지기도 한다.

오늘, 낙천주의자 되다

어제 타인의 삶을 보고난 후 이어 본 영화 두 편

여배우가 궁금해져서 찾아본 영화,
페넬로피 (Penelop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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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크 파랜스키
출연배우 : 크리스티나 리치, 제임스 맥어보이


슈렉류인가, 아님 가위손류인가 했더니, 조금씩 핀트가 다르다.
집안에 내려온 저주로 돼지코를 가지게 된 주인공이 용감하게 세상밖으로 나아가
다른 누구-왕자-가 아닌 스스로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저주를 풀고 사랑을 찾는 이야기.
크리스티나 리치라는 이름의 여배우는 돼지코를 붙이고도 너무 예뻤다는 것과, 별다른 반전없는 해피엔딩었단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나름 유쾌하고 예쁜 동화.


이 영화를 보난 난 직후에 메신저로 안부를 물어온 후배는, 늘어나는 체중이 컴플렉스가 되어가서 홈쇼핑으로 운동기구를 주문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운동을 시작함을 축하해 주며, ‘육체의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운동량이 적었던 탓이니, 임산부가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보이듯, 그렇게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는데, 그말이 위안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녀가 오프라인으로 사라진 후, 영화의 잔상을 떠올려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자본과 결탁한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저주(정말 저주가 아니겠는가)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지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인한 자기애의 결핍, 열등감이 세상밖으로 나아가 행복을 일구어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스스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므로써 풀 수 있을 이 저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어 본 영화는

페이지 터너 (La Tourneuse De Pages, 20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독 드니 데르쿠르
출연 캐서린 프로트, 데보라 프랑소와, 파스칼 그레고리, 사비에 드 길본 더보기

역시 심리묘사가 뛰어난, 여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래, 복수를 하려면.. 저 정도 해줘야지, 중얼거리다 내 안의 이 살벌한 폭력성에 깜짝!


오늘은 오후가 훨 넘어서 잠깐 뒷산에 산책이나.. 하고 나섰던 게 길을 잘못 들어서 과천으로 내려와 버렸다.
목에는 나침반을, 손에는 프린트한 지도도 들고 있었는데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과천코스는 괜찮은 풍경을 선사했고, 덕분에 오랫만에 제대로된 산행을 한 셈이 되었다.
 
아침엔 화장실 전구가 퍽, 하고 나가  버렸었다.
전구를 가는 일은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동그란 전등갓이 단단히 조여 있어서 절대로 돌아가질 않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해야하는데, 화장실이 작아 문을 안닫을 수도 없어 생각해낸 것이 향초.
붉은 색 동그란 향초를 변기 뒤에 올려 놓으니 꽤 분위기가 있다.
뭐.. 분위기가 있어봤자 모하겠냐마는… 난감모드를 전환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는 중.

이 얼마나 낙천적인 삶의 자세란 말인가.
어쩌면 집에 돌아와 신라면과 함께 홀짝 홀짝 마셔댄 맥주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위험한 정부의 살인적인 행보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면 미친소의 등장도 고맙겠다. 

* 그런데… 잊어먹지 말라고 벽에 걸어둔 칠판에 적힌 “오늘의 할 일” 4가지 중 하나밖에 하지 못했군. -,.-

영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타인의 취향>과는 또다른 “타인”을 이야기하는 영화.
섬세하게 조직된 모든 영화적 구성요소들이, 가볍지 않은 메시지와 함께 깊은 울림을 전한다.    

“타인의 삶”이 또한 내 것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대사

“이 책 누구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아니오. 나를 위한 것입니다.”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울리쉬 뮤흐 : 비즐러 역, 마티나 게덱 : 크리스타 역, 세바스티안 코치 : 드라이만 역

시끄러운 세상

광우병과 이명박 탄핵 청원에 대한 이야기로 온나라가 소란스럽고,
휴일낮 열어놓은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공기로, 내 사는 동네도 조용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시끄러운 세상.
크고 작은, 기쁘거나 슬픈, 부드럽거나 폭력적인, 사랑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즐거웁거나 불쾌하거나, 쓰거나 단, 여리거나 강한, 아름답거나 추한, 그 모든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세상 풍경들..
 
할 일을 제끼고 길을 나서려, 관악산 지도를 프린트해놓고 밍기적 거리다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밀린 일을 해치워야겠다.


이번엔 나 자신을 위한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해봐야겠어, 하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이 책을 발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2810


그림이 이뻐 보였고, 한 때 내 좌절한 꿈이었던 건축과 현재의 보류되고 있는 꿈인 여행의 냄새가 있었으니,
별 내용은 없어 보여도 충분한 매력이 있어보였다.


그러다… 어제 밤늦게 동네 던킨에서 갈아온 커피를 만들어 마시다가… 이런 기사를 보곤 심장이 까끌해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4141755485&code=970207


커피를 마시는 일도, 여행을 하는 일도 (적어도 제대로 그 맛과 향기를 느끼려 한다면)
이 복잡하고 아리송한, 시끄러운 세상 속에선 만만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