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고민

일요일의 늦잠을 깨우고, 라면을 먹고 난 뒤의 낮잠까지 방해하는 그와의 전화 내용은 그의 짝사랑 그녀에 대한 것이었다. 
새벽에 날이 밝아지려 할 즈음에야 잠이 든 데다 오늘 끝내야할 일들을 하나도 시작하지 못한 나는,
백번은 더 들은 듯한 그녀의 이름을 듣다가 기어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내가 사실은요. 그녀에 대해서 고민을 별로 하지는 못하거든요. 사실은..”
“제 걱정을 하시는 거면 저는 걱정 안하셔도..”
“아, 이렇게 얘기하기가 좀 미안한데 그건 아니구요..”
“회사 걱정을 하시는 거라면..”
“물론 그녀나, 당신이나, 회사나 다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촛불집회거든요….”

조금 미안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휴, 어쨌거나… 걱정거리, 고민거리가 너무 많아 머릿속이 머엉하단 말이지.

2008 촛불대행진, 최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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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 [창비주간논평] 2008 촛불대행진

내일은 후시딘을 선물해야겠다.

늦은 야근을 하다 먼저 가는 동료를 배웅해주러 내려왔다가, 편의점 캔커피를 마시며 만져질 듯 보드라운 바람을 좋아라 즐기다가, 마주 앉은 동료의 지난 사랑을 들었다.
오랜 세월 기다림을 익숙하게 만들었다가 떠나버린 사랑을 말하는 그의 눈빛을 보니,
상처가 사람을 깊어지게 하고 때로는 아름답게도 한다는, 오래되어 잊혀졌던 문장의 기억이 떠오르고,
상처가 없는 것이야말로 결핍이 아닌가, 라는 문장도 떠오르고,
그 기억이, 이런 저런 심사로 뒤틀려졌던 마음을 차분하게 혹은 착하게 만드는 건 왜일까, 라는 생각으로
늦은 밤 귀가하는 마음이 골똘해졌다.

착잡한 기억 하나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 이사할 때까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친하게 지내던 동무의 아버지였고,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중학교 3학년 때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게된 결정적 계기를 안겨준 책이었다.
사람의 아들을 읽고 잔뜩 진지해진 나는 당시 대학1학년생이던 말간 얼굴의 교회선생님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져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걸, 몇 년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의 누나로부터 듣기도 했다.
(그 선생님이 군대가서 또박또박 정자로 써보낸 장문의 편지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 미안함도 있는 듯. 어린 학생의 치기어린 질문을 진심으로 받아주고 고민해주었던, 예쁜 돌의 이름을 가진 그는 어찌 살고 있을까. )
그리고 그 책의 뒤에 실린 <이 황량한 역에서>란 단편은, 지금도 구절구절을 기억할 정도로, 살아가는 일과 사람과의 만남과 인연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준 요소로 깊이 각인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그 인자하던 동무의 아버지이자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숨죽이고 밑줄 그어가며 읽던 책의 저자가 오늘날 세상에 해대는 “뻘짓”은 내게 더욱 착잡함을 안겨준다.
같은 시대를, 세월을 그들과 내가 살아왔건만, 도대체 그들을 그렇게 황당하게 만들어온 건 뭐란 말인가.

오지은, 작은 자유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오가는 길에 들려오는 소음들이 점점 더 폭력적으로 다가와 이어폰을 챙기게 되고,
이렇듯 나지막하게 스며드는 노래가, 부드러운 응시로 건네는 안부의 말들이 반갑고 소중하게 닿아온다.

이런 <작은 자유>가 당신과 나의 손안에도 있기를 또한 바라며.. 

오지은.
이런 매력을 뭐라  표현해야할 지.
노래도 음색도 분위기도 딱 나의 이상형 혹은 취향이다. ^^



작은 자유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네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니가 조금 더 행복하길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 프리 티벳 운동 때 만들었던 노래라 한다.

혐의

옛 상처를 꺼내어 마주하게 만드는 그런 무신경이.. 정말 싫어. 그게 정말 무신경이라면.

2008년의 어떤 생일파티


6월 7일.
광장에서 어떤 어둠을 밝히기 위해 켰던 초로 H양의 생일파티를 겸하다.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런 장소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고맙고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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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새를 생각하다

해가 지면 추위에 떨며 내일은 꼭 집을 지으리라 맹세하지만,
해가 뜨고 따뜻해지면 노느라 까맣게 잊고 또 석양을 맞이한다는 히말라야의 새.
오래 전 이 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꼭 내 이야기 같았다.
하루하루가 심히 속수하고 무책한.


그런데 십 몇 년 후에 다시 접하니, 이 새의 시간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어차피 튼튼한 집을 짓지 못할 바에야
간밤의 추위나 후회일랑 까맣게 잊고
평화로운 한낮의 온기와 여유를 즐기기라도 해야하는데 말이다..



뜬금없는 문자 하나가 왔다.
얼굴 본 지 몇 년은 된 후배 녀석이다.
시청으로 모이란다. 출석체크 한단다.
얼굴 보자고 사람 모으는 거 잘 하던 녀석, 여전하군.
피식 웃음이 난다.
 
오늘은 6월 10일
또 많은 촛불들이 광장에 모일 것이다.
‘우리에게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은, 살아가기 위해 희망이 필요한 것과 같다’던 말이 생각난다.
“바람 한 점마다 바뀌는 능선”일지라도, “사막같은 우상”일지라도 말이다.




짝사랑 
    – 우리 시대에 대한 弔辭         
                                                  김소연


빈 살림망을 들고 우리는 낙조 앞에 서 있었다
어망을 던져 어망을 포획하는 고깃배와 같았다.


자기 생을 낚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꺼내어
떡밥처럼 매단 것과 같았다

바람 한 점마다 능선을 바꾸는
사막 같은 우상을
이 악물고 숭배한다
그래도 우리는
한 우물 판 스승의 독설 앞에 기꺼이 무릎 꿇는
마지막 종족이기에

혁명을 꿈꾼다는 것만큼
치욕적인 짝사랑이 또 있을까

눈멂으로 눈을 설득하고
귀멂으로 귀를 설득한다
뼛속 간절함을 애써 감춘 채
생명을 잃고 목숨을 얻는다

이 시대는 어머니가 물려준 사기그릇처럼
균열로 아귀 맞춘 채 결탁하고 있어서
국을 담아도 새지 않았다
한 시대가 수장되는 풍경이
그 그릇 안에 다 있었다


 

토마스 쿡, 다시 비가 내리네

비가 많이 오고, 김치찌개에 한 잔 술 얘기를 하며 나서서는, “큰집밥상”이란 곳에서 쌈밥을 먹으며 광화문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본 동료로부터 그날의 중계방송을 전해 듣고, 다시 올라와 야근을 한다.
기획안을 내기 위해 분석해야할 사이트들을 찾아보는데, 이름부터 유의미한 많은 기관들의 사이트들이 죄다 보이지 않는다.
고작 삼개월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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