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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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일주일인가 이주일인가를 살았던 고양이 아가들.
처음 보는 낯선 이웃에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도, 한 때는 저렇듯 세상에 대해 불안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이었겠지…

BGM  – 루비라이트, 심바

만약에..

무릎팍 도사에게 가게 된다면 묻고 싶다.
하루가 너무 빨리 가요.
별 하는 일 없이 내일이 되고 말아요.
어떻게 하면 좋나요?

미네르바 무죄

‘미네르바’ 무죄… 검찰 표적수사 ‘판정패’
정말 모처럼만인 거 같다.
신문 1면을 보고 답답해지지 않는 것은.
서울중앙지법의 유영현 판사. 이름을 기억해줘야지, 하면서 이름을 한 번 발음해 본다.
그런데 위헌법률 심판 제청 신청은 기각했다지.
헌법.(비록 한계가 많은 것일지라도) 그 조문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이 좋아질 거 같던 시절이 잠깐 있었던 듯도 한데…
미네르바의 항소에 박수를 보내본다.

그 눈부신 시절의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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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odunes

“우리는 가끔 무덤 앞에서 운다. 무덤 앞에서 그리워한다. 그러나 정작 되돌리고 싶은 것은 무덤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대학시절의 첫사랑이 아니라 그 눈부신 시절의 생기를, 미치게 사랑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미친 열정 속에 기꺼이 빠져들 수 있었던 그 무모한 용기를 그리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백은하, 안녕 뉴욕 中에서

읽다가 좀 심심하다 싶어 방치해 놓았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귀절에 눈이 커졌다. 지난 주말에, ‘십년 전의 일기’ 같은 십년 전 흑백사진들을 꺼내보았던 내가 꼭 이러고 있었던 게 생각이 난 때문이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횡설수설 이런 얘기도 했던 것 같다.
첫사랑이 그리도 끈질기게 그리운 건, 첫사랑의 대상보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립기 때문인 것처럼.. 그래서 그 시절의 어떤 것이 내게 그리 특별한 거 같다는..

“그 눈부신 시절의 생기”(그것이 있었다면) 를 포함하여
 새삼 참 많은 것들을 지나온 듯 하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봄비가 하루종일 추적 추적.
내일은 꼭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가야겠다.

반성

눈 밑에 눈에 띄는 주름이 생겨났고, 사람들이 내 나이를 단박에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발 앞서 나이를 먹어가는 언니의 얼굴에서 보았던 똑같은 무늬의 주름은 왠지 정겨운 느낌이 들고, ‘너도 이제 네 나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 하는, 철없이 사는 동생에 대한 언니의 걱정스런 충고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 이제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나이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그런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거지? -,.-

잠깐 소생되었던 피씨는 기어이 맛이 가버렸다.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른 증상을 보여주던 녀석은 꼭 온갖 증상을 호소하는 골치 아픈 환자 같더니, 이젠 부팅에 필요한 뭔 파일을 못찾겠다는 단문만을 내보낸다.
어딘가 있으리라 생각했던 부팅시디는 나올 생각을 안하고…
그나마 노트북을 장만해 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고 마음을 추스려보는데, 간밤의 술기운으로 머리는 지끈.
술이 많이 약해졌다, 는 것도 내가 받아들여야할 일중 하나인가 싶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자꾸 자기를 설명하고 주장하려 하니 말이 많아지잖아, 라는 건 며칠 전 누구에겐가 내가 해주었던 말인데.. 어제는 문득 내가 그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들을 내뱉고나서 돌아왔을 때 맞닥뜨리는 이 쓰리고 휑한 느낌이란!
근래에 내 마음이 심히 빈곤했던 탓이겠으나 빨리 추스리고 그를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건… 정말 안쓰럽고 볼쌍 사나운 나이듦의 모습중 하나라 생각했던 것으므로.

세수를 열심히 해야겠다. 백업을 잘 해놓아야겠다. 말을 줄여야겠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내소사를 다녀와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 시스템 복원 지점.. 우리 생에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온 생에서 어떤 지점을 선택해서 그 때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는. 돌아간다면 어떤 지점을 선택할까 하다, 에고.. 쓸데없는 망상을 접는다. 그저.. 컴퓨터의 시스템 복원이나 성공했으면..  
그런데 시스템 복원이란 건.. 참 별 쓸모 없더라.

정부, 구글과 맞짱?

오늘 신문 1면에서 눈에 뜨는 기사.
정부, 유트브 인터넷 실명제 도입 거부와 관련 구글과 충돌..
대법원, 포털이 명예훼손 댓글 방치땐 배상책임 판결..

“(구글이) 한국이 인터넷 후진국이고 검열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왜 수수방관하느냐”는 한나라 나경원 의원!
맞네요, 인터넷 후진국!
네티즌 수준은 높은데, 정부가 이리 후지니…

우짜든 구글과 싸우는 건.. 춧불부대와 싸우는 거완 또 틀릴 테니 흥미롭긴 한데,
한국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구글이, 구글의 힘을 이해 못하는 후진 이 정부와 싸우려고나 할까가 관건.


원래 그런 사람, 정혜신

….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해 화가 치밀 때도 누가 나를 비난할 때도 ‘원래 그런 사람’의 잣대를 들이대면 많은 경우 상황이 정리됩니다. 상대방이 원래 그런 사람이면 포용하거나 포기하면 되고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면 배째라 정신으로 버티면 됩니다.
무책임하기도 하고 효용성이 높기도 한 심리적 화법 중 하나가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원래 그런 사람이면 포용하거나 포기하면 되고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면 배째라 정신으로 버티면 됩니다.””
정말 유용하고,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필요한 전략이다. 맘에 든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나와 이미 관계가 이미 설정되어 있는 경우엔 어쩌나?
‘나 원래 그런 사람이니 배째라’가 통하지 않고,
상대방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란 생각에 (그에 대해서건, 나자신에 대해서건) 화가 나거나 서글퍼지는 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포용이나 포기가 쉽지 않기 마련이니 말이다.
관계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내놓곤 하는 그녀가 이런 것까지 알려주면 좋을 텐데.
블로그에 물어볼까 하다, 참았다.
 
며칠 빡세게 일을 시켰더니 삐걱거리다 맛이 간 피씨를 살려내느라 하루를 소비했다.
부팅도 못하고 헤메고 있는데 광디스크가 인식이 안되어 포맷도 안되니 그냥 손놓고 있다가,
빡빡하기 그지 없는 조립품들을 분해하고 쌓인 먼지들을 제거해 다시 끼우고, 드라이버도 제거하고 재설치하기를 여러 번.
부팅이 되고, 시스템복구를 해주었더니. 휴~ 이리 멀쩡하게 되돌아왔다. 디비디 안되는 것만 빼고는.
어쨌든 웰컴.

사진 데이타가 잔뜩 있는 하드 하나가 계속 인식이 안되는 동안에는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 사진들, 백업도 전혀 안해놨는데, 다시 그 풍경에, 그 느낌으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사진을 줘야할 사람들도 많은데… 이 망할 게으름…
다행히 하드가 살아나 주었지만, 그 치열한 반성에도 불구하고 백업이 되고 주어할 사람들에게 사진이 다 가려면 여러 날이 걸릴 것이다. ㅋㅋ

나라는 인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좀… 분해, 청소, 재조립, 재설치가 되면.. 울마나 좋을까나.
그게 가능하다면 위기상황을 위해 나쁘지 않은 설치 메뉴얼을 마련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참 카메라 바디도 돌아왔다. 꽃 지기 전에 고쳐준다더니 너무 늦었다.
봄꽃이 화사하게 흐드러지다 지난 봄비에 후두둑 꽃잎을 떨궈버렸으니…
아직 1/3~ 1/2 스텝 정도 오바가 나는 거 같지만, 당장은 만족해야할 듯.
많이 좋아지긴 했으니, 조금 더 테스트해보다 무상수리기간이 끝나기 전에 성수동으로 보내봐야겠다.

바야흐로 환절기이고, 나도 이제 새 계절을 준비해야될 것 같다.

* 생각해보니, 내 환절기는 언제나 좀 늦네.

조카는 15세

조카녀석의 네이트온 대화명이 바뀌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데 난 뭐하니?”
벌써 15이란 말인가. 많이 컸다.
대견하기도 하고,
뭐 하고 살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는 철없는 이모는 부끄러울 뿐이고…..  -,.-

사실,

예술가는 꼭 불행하여야 하는가, 고흐나 베토벤 같은 예술가만 있어야하는가, 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난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뻔 했다.
삶의 고통이나 상처가 그나마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예술이니,
그도 괜찮지 아니한가 하는..
이미 현실의 예술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은지 오래지만
최소한 불행속에서 꽃피는 예술혼도,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도 언제까지나 유효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Signs

나른하고 무료한 봄날에 어울리는 산뜻하고 나긋나긋한 환타지.
젊은 날의!

얼마 전 메인보드를 교체한 후 노출이 오버가 되는 카메라를 서비스센타에 맡기고 왔다.
노출오버 상태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내가 사진에 초짜가 아님을 주장해야했다.

내가 참 많이, 어수룩해보이는 모양이다.
꽃이 다 지기 전에 고쳐주세요, 라는 주문을 남기고 왔는데,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당장 카메라 바디가 있어야할 일이 두 가지나 떠올라 망연해졌다.
흐드러진 꽃 내음에, 나른한 봄기운에, 정신이 산란해지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