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출근길 전철 승강장을 올라오니 커다란 거울이 눈에 띄었다.
의류매장에 걸려있을 법한 다리가 길~어보이는 거울이었다. 믿음 교회였나, 그런 이름이 아래 씌여 있었다.
호감을 주어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런 거울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믿음을 줘야하는 믿음교회에서 왜곡된 상을 보여주다니! 재미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해 노순택씨는 “외면하고 싶지만, 봐야만 하는 거울” 이라고 했다.
그 글은 내게는 또 하나의, 반성을 요하는 거울이었다.
다리가 길어보이는- 착시를 이용해 단점을 가려주는 거울이 있고, 보기 싫은 상처나 흉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있으며, 내가 모르고 있던 어떤 디테일을 섬세하게 끄집어내주는 (매크로?) 거울이 있다.
보는 것으로 행복해지는 거울이 있고, 고통을 안겨주는 거울이 있으며, 자주 보고 싶으나 아껴 봐야할 것도 있고, 어떤 건 자주 보지는 않더라도 끝내 품고 가야할 거울인 것이 있다.

우리 삶에 거울을 안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많고 다양한 거울을 만나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착시효과가 진실인 줄 믿게 되거나, 내 삶이 상처투성일 뿐이라고 믿고 살면 곤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그 거울을 보는 일 자체가 나를 만들어가는, 내 삶의, 희노애락의 한 부분일 터이니 말이다.

집안 어른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 석윤이가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이모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언제 와. 태권도 하는 거 보러 가야하는데.. 뭐 이런 소소한 대화.
지인과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라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들어와서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석윤이가 전화를 했네, 했더니. 언니왈.
학교에서 주말 숙제를 내줬는데 ‘집안어른께 안부전화 드리고 그 내용을 일기장에 두 바닥 쓰기” 란다.
헉 내가 집안어른이란 말야? 까르르 웃어댔더니 언니가 준엄하게 말한다.
그럼 니 나이가 몇인데 집안어른이 아니고 뭐냐.

한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마음이 분주해 조카들을 만나지 못했다.
언니 표현으로 요즘 “반짝반짝 날리고 있다”는 우리 사랑스런 조카들을 보러 조만간 나서봐야겠다.

김용석, 읽은 척 메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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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순전히 어느 블로그에서 본, 이 구절 때문에 손에 넣게 되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인해 한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이야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해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까지 챙기는 이 인간적인 휴머니즘!은 꽤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읽은 척의 세부 스킬까지 상세하게 설명해놓고는 꼭 덧붙이는 아래와 같은 말도 그렇다.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이야기로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 친구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했던 “얘는 휴머니스트에요” 라는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휴머니스트” 인 척하는 사람이거나.

책은 구절구절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다.
너무 심란해서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배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만큼, 한 두번 이상은 꼭 포복절도하게 될 만큼, 기발하고 섹시하게 재미있다.
고전에 대한, 발랄하면서 풍부한 해석과 오독을 피하는 날카로운 스킬의 제시엔 깊은 애정이 스며났고, 어려운 얘기를 놀랍도록 쉽게 풀어내는 기발함이 있었고, 시크릿이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같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언급은 속시원한 데가 있었다.(인간의 욕망은 나같은 인간을 대상으로도 늘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라는 것에 대한 부연 설명- 만약 필자가 이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전지현은 나의 이상형이고, 조만간 전지현은 나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으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필자야 <시크릿>은 진짜 위대한 책이라고 인정하고 지난날의 비판을 반성하면 그만이지만, 전지현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데 읽으면서 쉽게 가지게 된 혐의는, 제목과는 달리 “읽은 척 매뉴얼”이 아니라 “제대로 읽기 위한 매뉴얼”이 아닐까 하는 것인데, 과연 맨 뒷장 저자의 말엔 뻔뻔하게도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해서”가 집필이유라고 고백한다. “가장 완벽한 읽은 척은 실제로 그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책이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이란 구절.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삶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이다”

바람이 불고,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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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1575827.mp3조경옥, <잘 지내시나요>
지난 주말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바람이 분다>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 공연 제목에 너무나 어울리게, 아프게 지나온 어느 먼 곳으로터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처럼 흐르던 노래.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디에서든 잘 지내시나요…”


김창남 교수님 사모님이시라 잖아. 옆에서 후배들이 속삭여줬다. 그렇구나.
우리가 좋아라하는 멋진 김창남 교수님 사모님이시란 말이지.. 역시..



어큐스틱 기타의 정재일이란 이름이 눈에 뛴다. 아 <눈물꽃>의 정재일. 그러고보니 눈물꽃의 감수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귀에 익숙한 노래들은 죄다 이십년 쯤 전에 내 십팔 번이었던 노래들이고,
날개만 있다면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 잠시 연습을 하다 코드가 어렵고 음이 높아 좌절했던 곡이고,
눈물나게 가여운 그 시대의 곱고 아름다운 위로 같은 노래들이고…  


“프로듀서 김혜능의 재즈적인 감각과 팝적인 감수성이 덧입혀지면서 전혀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했다.”는 노래들도,
처음 듣는 노래들마저도 가슴에 와 닿아 만들어내는 무늬들은 한결 같다.
그 시절 언제고 들을 때마다 가슴 먹먹하게 젖어들던,
지금도 아련함에 가슴이 쏴아 해지고 휴~ 한숨이 나오게 만드는 이 목소리.
 
음반 구입은 여기서

http://www.puljib.com/bluealbum/?S_Type1=album&S_Type2=09&table=greenmusic&Mode=View&B_SEQ=405



그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념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일, 이라고 유시민씨는 말했다.
너그럽고 관대하자던 권해효는 그날 더 많이 멋졌고(노래마저 멋지고), 삭발한 머리에 단정한 정장을 입고 나와 선그라스를 벗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던 신해철의 모습도 인상에 남았다.

그의 말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요? 이명박이요? 한나라당이요? 조선일보요? 저예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노래 한 자락 올리러 나왔어요.”
부럽다, 노래하는 사람들.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그것도 이리 근사하게.

안치환이 나오자 열렬한 팬인 지숙이 “정말 멋지지 않아요?” 라고 말했고, “응. 그러네” 라고 대답해줬다.
새 음반도 한 번 사줘야겠다고 했다.
“좌우의 날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요구합니다. 정말로 인간이라면, 인간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우측의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중가수의 존재감은 우리사회에서 가볍지 않을 것이다.


* 서울의 바람과 공기는 후덥지근, 갑갑하기만 하고
어디 먼 세상의 바람을 탐하던 나, (몸에 산소도 부족하다는데) 몽골이나 중국 어디 오지의 바람을 잠시 꿈꿔보다가
‘바람이야.. 뭐, 불어오는 곳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 라며 마음을 달랬다.
지금은.. 여러모로 너무 사치스런 일이긴 하다. 오지여행이라니.
여기 이 땅도 온통 오지, 같은데 말이다.  

점심 시간. 다들 밥먹으러 나가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스피커 볼륨을 높여 조경옥의 노래를 듣는다.
이 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진다.

근래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잠들면 자꾸 한 쪽 다리에 쥐가 난다.
제 발 저린 게 있는 모양이다.

뽐뿌

최근에 의도하지 않게 강한 뽐뿌를 주게 된 사람이 둘 있다.
한 사람은 카메라로, 또 한 사람은 블로그로.
흐믓한 건 두 사람 다 놀라울 정도의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이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당장 중고 디에셀알 카메라를 사들고 온 직장동료는 엄청난 속도로 사진의 메카니즘을 학습하며 찍어대고 있고(학습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말해줬건만 그게 그리도 신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블로그를 만들게 된 이 역시 진지한 학습의 태도와 열정으로 블로그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이것이 흐믓하고 고맙기도 한 일인 것은 두 사람 다 이 도구들이 그들의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슬며시 떠오르는 생각.
나에게 미처 개발하지 못한, 숨은 “선동”의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ㅎㅎ

당구장엘 가다

당구장엘 처음으로 가봤다.
이만큼 살았는데, 아직도 처음 해보는 일이 있다는 게 재밌다.
딱 내 눈썹 높이에까지 오는 큐를 어설프게 들고 있으니, 함께 온 추박사와 회사동료들의 지도가 자상하고, 구경하던 당구장 아저씨도 한 수 가르침을 주고 간다.
문제는 손가락 길이.
검지와 엄지로 큣대를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카메라 삼각대처럼 지지하라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공항 면세점에서 샀던 검지손가락만한 미니삼각대 마냥 제대로 지탱을 못하고 주저앉는다.
손가락이 너무 짧잖어.. 투덜거리고 있으니 돌아오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셔야죠” 라는, 너무나 합당한 말은 야속하기만 하고…
왜! 기타연주와 자전거를 비롯해서 내가 배우고 싶어하던 많은 일들은 먼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일들이냔 말이다.

그래도 자전거 배우는 거보단 쉽고,
나름 묘미가 있을 듯.
무엇보다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선 필요하다니 한수 배워둘만 하겠다. 

기억하기, 가혹한 몰염치

사진가 노순택씨가 말한다.
“이런 것도 나라인가…. 블로그 하는 숱한 사람들아, 이 ‘가혹한 몰염치’의 소식 좀 퍼날라다오….


그래서, “블로그 하는 숱한 사람들” 중 하나인 나,
그 소식 이렇게 걸어놓는다.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295
단지, 이렇게만 할 뿐이다.

송경동, 이 냉동고를 열어라
http://blog.jinbo.net/files1/43/yongsanradio/medias/200906/040116205.mp3

재즈

재즈 음악을 들으며 힘든 한 시절을 견뎌냈다는 말을 들으며, 그 일부를 넘겨받았다.
한동안 재즈를 듣게 될 것 같다.
 
 7586938397.mp3


Albert Ayler, <Deep River>
들은 대로, 독특한 주법이 절절하다.
가슴 깊숙한 곳, 아득한 슬픔의 강에서 퍼올리는 듯.
내 가슴까지 그 뻐근한 슬픔에 공명되는 듯.

과식을 했다.

과식을 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시원한 막걸리, 달콤한 케익과 와인 등이 뱃속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우왕좌왕, 왕성한 화학작용을 하고 있는 듯 속이 거북하다.
최근에 소화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일시적이었나보다.

그리고, 또다른 소화불량의 예감.
무엇에 대한 결핍인지 뚜렷하지 않은 헛헛한 감정들로 인해, 감당하지 못할 상태를 방치하게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진다.
소화를 감당하지 못해 고통스럽게 게워야하는 이런 어리석은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