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중인 H군

최근 술마시다 친해진 천진난만 H군.
몇 가지 계기로 사회문제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며 자책하더니, 누군가의 권유로 한겨레21을 정기구독하며 열공중이다.
며칠 전에는 전철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한겨레21을 열심히 보고 있는 거 있죠 ㅎㅎ 하는 문자를 날리더니,
어제는 예비군훈련중인데 한겨레21을 꺼내 읽으면 싫어할까요, 따위의 질문을 던져댄다.
내가 예비군훈련을 받아봤나..
지난 주에는 한겨레21독자로서 여기에 동참해봐라, 라고 링크를 알려주었더니, “한마디”를 뭐라고 넣을지 고민고민하며 정성껏 참여를 하고는 트위터에 올려놓고 떠들썩 자랑이다.
광석이형이 나이에 대한 무게를 얘기하며 노래했던 그 나이에, 산만한 큰 덩치를 배반하는 천진한 그 모습이,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활짝 열린 그 자세가, 때로 꽤 좋아 보인다.

바나나 다이어트

사무실 사람들이랑 우루루 몰려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바나나쉐이크가 맛있는 까페를 지나자 그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생각났다.

한의사인 제부가 하루에 하나씩 바나나를 먹으면 좋다고 했었는데.
도깨비 방망이가 집에 있는데, 바나나를 사다가 아침에 만들어 먹고 나올까.
내 말을 듣고 정보검색력이 훌륭한 막내 개발자가 말한다.
요즘 바나나값이 디게 비싼 거 아시지요?
비싸봤자 얼마나?
그게요. 일본에 바나나 다이어트가 유행을 하면서 공급이 딸려서 30% 가량 올랐대요.
아니, 일본애들은 얼마나 쳐먹었길래 그렇게 오를 수가 있어?
과격한 내 표현에 듣던 사람들이 헉, 하고, 나 또한 놀란다.
정말 말이 과격해졌다. 부드러운 것들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유행, 참 대단한 것이다.

흔들리는 여름

소중한 면면들을 잊지 않고, 당연시하지 않고, 배려하고, 신경을 쓰며, 격식과 형식의 중요성을 항시 상기할 것. 시내를 다시 만난 두 번째 새벽에 썼던 메모. 이미 나의 많은 현재가 과거와 희미하게 멀어져 있다. 언제부턴가 달라붙은 단절의 습속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남아 현재의 나를 지탱하고, 또 몇몇은 기적같은 확률로 다시 내 안과 곁에서 짙어진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나는 언젠가 반드시 후회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조금씩 아프게 배워나간다. 잊혀지고 버려지는 많은 것들만큼, 남고 짙은 그 적은 몇몇이 소중하다. 삶의 국면이 또 한 번 잔잔히 흔들리고 있다. 사람의 변화는 사람이 이끈다. 그만큼 또 사람의 지속은 사람이 유지한다. 잊지 말고, 항시 상기하기 위해, 쓴다. –  by archum21  

“소중한 면면들을 잊지 않고”, “언제부턴가 달라붙은 단절의 습속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남아 현재의 나를 지탱하고, 또 몇몇은 기적같은 확률로 다시 내안과 곁에서 짙어진다.”.. 라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발음해본다.
이 풋풋한 나이의 블로거가 “나이가 들며 조금씩 아프게 배워” 나간다며 쓴 글이 이렇듯 너무나 크게 공명하며 가슴을 울리니, 확실히 사색의 깊이는, 삶에 대한 진정성은 나이와 관계가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삶의 국면이 또 한 번 잔잔히 흔들리고 있다.” 는 문장이 잔잔히 내안에서 번지며 여운을 남긴다.
나 또한 그렇다는 걸 떠올리자, 그 흔들림에, 문득, 마음이 놓인다.
나 역시 “기적같은 확률로 다시 내 안과 곁에서 짙어”지는 관계들을 알아보고 지나치지 말고 소중히 품어가자, 마음을 먹는다.

“우리, 행복해지기로 다짐하자” 던 젊은 날 친구의 편지 끝말이 떠올라 적고보니,
“행복”이라는 말이 문득 낯설지 않아보여, 기분이 훈훈해진다.
이 여유, 오랫만에 빈둥거리며 보낸 여름날 토요일의 맥주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살다보면

살다보면…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 김수영의 시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중에서

그래.. 살다보면 있는 일이지, 하고
지난 말들을 되살려본다.

살다보면 있는 어두웠던 어느 한 때에,
애틋했던 한 친구와 나누웠던 대화가 이랬었지.

친구 : 그 터널을 빠져 나오면 내가 환하게 맞아줄께.
나 : 터널 밖에서 기다릴거야?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친구 : 아니, 터널 안에 조명을 달아 줄거야.

그 친구가 조명을 달아주었는지, 터널이 끝나고 환하게 맞아주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확실한 건, 깜깜했던 터널안도 시간이 지나면 시야가 조금은 밝아진다는 것.
세상의 터널. 그리 길지만도 않더라는 것.

용산 반년 추모대회

용산 참사 현장.
꽃다지인가는 사진가 이시우씨의 말을 빌어, 사람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 하였으니 여기가 우리의 중심이라 했고,
그 중심을 앓고 있는 유가족의 절규에 눈물이 나고 가슴이 시렸으며,
이런 세상을 살면서 비관주의자가 되지 않는 건 어떤 것인가,
낙천주의자로 남는다는 건 어떤 경지인 것인가, 라는 의문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내내 가시지 않는 미안함과 내안의 이중성에 대한 부끄러움.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이 온몸 세포 마디마디까지 느껴지는 무기력함.
이렇게 게으르고 방만하게 살고 있는 나,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피곤함을 느끼는 걸까.

용산참사반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하는데, 멀지도 않은 용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뉴스와 인터넷으로 접한 영상들은 놀라 눈물이 나올만큼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그래서 무의식중에 ‘외면하고 싶은 현실’ 쯤으로 인풋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처절한 고통을, 우리의 끔찍한 환부를 맞닥뜨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게 상처를 늘리며 현장을 지키는 동안.


용산엘 가봐야하는데, 라는 말을 한 세 번쯤은 나누었던 지숙과 약속을 잡았다.
그녀 역시 그곳에 가보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려 있었다 했다.
네이트온에 검은 리본 마크를 달고
방문 앞에 아직 걸려있는 리본을 확인한다.
근조, 라는 이름의 검은 리본.
메신저나 블로그에 이런 걸 다는 일이 요즘엔 너무 잦다.
슬픈 일이다.


용산참사, 이런 어이없는 일은… 정말 일어나지 않았어야했고,
이렇게 반년을 외면하고 두어서는 안되었는데…
 
“지구에서는 못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는 조세희씨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욕심

전생에 난 욕심이 너무 많아 망했던 사람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죽을 때 지난 생을 통렬히 반성하며, 다음 생에는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여러 모로 그닥 여유가 많지 않던 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욕심이 생기려 하면 그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번민도 생길까 두려워 얼른 덮어두고자 했던 것에는
어디서 연유했건 분명 타고난 기질같은 것이 작용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로 인한 번민은 비교적 적었을 테지만(물론 예외는 있었지만), 포기가 빨랐던 탓에 넘어서야할 것을 지나치거나 다다르지 못한 것들이 있고 갖추고 가야할 것들을 챙기지 못한 것이 참 많아, 그로 인한 결핍과 공허가 때로 오늘을 사는 일에 하중을 더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내 안에서 이런 저런 욕심 비슷한 것들이 생기려하는 걸 본다.
십년도 더 전에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 포기했던 대상에 눈이 가는 것도 그렇고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것이 그렇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내 욕심이란 게 아직은 대체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박한 것들이니,
편안하고 너그럽게 내 안의 욕심을 방치, 혹은 방관해보는 중이다.
뭐 사나운 욕심으로 자라기야 하겠어, 그게 일상의 박카스, 삶의 에네르기가 될 수도 있잖아 하면서.

대체로는 그러한데… 
근래에 나날이 나름 빡센 일정에서도 자꾸 새벽에 눈이 떠지는 걸 보면
그렇지 아니한 것도 있기는 한 모양이다.
아직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잘 파악은 안되지만…..

Keith Jarrett

6619922075.mp3근래에 가장 나의 마음을 울렸던 음악.

“Encores, Tokyo” (Sun Bear Concert, 1976)

“I Fall In Love Too Easily – The Fire Within” ( Live in Blue Note, 1994)도 좋은데 무려 27분이다.
음악이 형식만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장르, 라고 했던가.

그래서 어떤 내용이든, 어떤 인생이든 그 안에 그닥 부대낌 없이 편안히 깃들 수 있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키스 쟈렛(누군가 키스 잘해, 라고 표현한 게 떠올라 빙긋 웃음이 난다. 그의 연주모습을 보면 정말 키스를 잘할 거 같긴 하다.)의 연주가 맑고 투명한 것들을 연상시키는 아침.
그 맑고 투명함의 연상이 와인잔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틀 전 마신 와인의 여파이겠지.
무려 한시간이나 일찍 출근을 해서 빈 사무실에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작한 하루가 나름 상쾌하다.
내일은 싱싱한 우유 한 잔을 사들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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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토우 마리코, 광합성

광합성          — 사리토우 마리코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모든 책을 다 팔아버렸다. 헌책방 할아버지가 내 방에 와 내가 십 년 동안 간직하며 이사할 때마다 질질 끌어온 글자의 떼를 모조리 데리고 가셨다. 잘 가요, 내 책들아. 그것은 무척 무거웠다. <책이란 참 무겁군요> 내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럼요. 아무래도 원래가 나무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책 한 권 안 가지고 여기에 왔다.

일본말로 나무는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 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를 박았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 하고 부르면 내 속에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 년 공들여 간신히 푸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한국에 유학 가기로 했어요. 이 년이나 지나야 돌아올 거예요>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할아버지는 책에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 무렵에 나는 살아 있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꾸린 책을 헌 트럭에 싣고 나갔다. <잘 가시오,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면서.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책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가 전에도 책을 사러 내 방에 왔을 때 한 사회심리학 책을 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요 삼 년 전만 해도 잘 팔렸는데 요즘은 통 안 나가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안 팔기로 할게요. 사실은 저도 아직 안 읽어봤거든요> <그게 좋을 거예요. 한번 읽어보시면 아주 좋을거예요>
그래도 끝내 그 책은 읽지 않은 채 나는 떠나게 됐지만.

여기 와서 나는 또 많은 책을 샀다. 나무 밑에서 책을 읽으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볕 모양대로 생각이 흩어져 간다. 한 권의 책은 많은 나뭇잎들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말을 잃어버릴 때야 침묵은 어느 나라 말도 아니며 어느 나라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한 券의 말이 한 그루 나무의 삶과 어울릴 줄 안다면 어느 나라 말이라도 좋다.
말이 한 그루 나무의 내력을 지켜줄 줄 알고 그 나무를 키웠던 지하수 한 방울 한 방울까지도 엎지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삼켜줄 줄 안다면.

다른 나무들이 다 벌거벗게 된 다음에도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는 가로수 한 그루. 그것은 끝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과 같다. 또는 눈뜬 사람들 속에서 홀로 暝目하는 사람 같다. 나무들이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어 보이던 그 유월에는 다른 어느 나무와도 다름이 없게 보였던 그 나무. 그리고 다음날 내가 본 것은 그 나뭇잎사귀 사이사이에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는 참새들. 설레는 가슴처럼 들끓으며 서 있는 가로수 단 한 그루. 마치 말이 되기도 전에 사상을 달래는 꿈과 같이.

* 시의 생존을 위하여 시집을 달마다 한두 권씩 꼭 사보기로 했었다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시집이 생각났었다.
(시집을 사본 것도,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것도 얼마나 오랜만인지.)
사리토우 마리코의 <입국>.
민음사에서 나왔던 이 시집은 오래전에 품절이고, 내 방안에서도 찾지를 못하고 있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이 시를 찾았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이 먼저인 생활에서 시, 라 하니 책꽂이부터 뒤져지는구나 싶어 슬쩍 나 혼자 재밌다.
찾으면 반가울 거 같은데, 방안에서도 검색엔진을 돌려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얄팍하고 심플한 시집 앞날개에 있던 시인의 사진이 생각난다.
긴 생머리에 약간 정면을 벗어난 갸름하고 하얀 얼굴이 시와 어울려 독특한 인상으로 남았다.
시집 뒷면의 어느 평론가의 글에는 정확지는 않지만 “낯선 모국어의 아름다움”이란 구절이 들어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에서 고고학 전공을 하다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채광석, 김진경, 하종오, 양성우, 박노해 등등의 평론과 시를 발표하며 시를 쓰다가 1991년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녀가 쓴 군더더기 없는 나의 모국어로된 시어들이 발하는 아름다움이 참으로 그러했다.

** 저녁에 집 근처에 들른 친구와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고 들어와선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빗줄기가 창문을 툭툭 치는 소리가 계속 들리니 일어나 창문을 닫아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잠이 깨지 않았고 낯선 곳을 여럿이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오래된 독특한 모양의 돌들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고적한 마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이제 떠나야 하는데 내가 창문을 닫고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고, 한 친구가 남아 함께 큰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나를 위해 앞장을 서서 낯선 곳을 헤쳐가는 그가 참 고맙다고 생각하며 뒤를 따르다가 잠이 깨니 어스름한 새벽. 빗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얼른 베란다로 나가보니 다행히 열린 창문으로 들이친 비의 흔적은 크지 않았고 미처 걷지 않은 빨래 몇 조각들은 아직 뽀송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사무실에 나가 하던 일의 마무리를 하기로 했었지, 참.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고 피씨를 끄고 잠시만 더 침대에 누워 있다 일어나야지 마음 먹는다.
창문에 부딪는 빗소리가 참 리드미컬하다.
뚜욱 뚝욱 뚝뚝뚝. 왜 저런 리듬이 생기는 걸까 싶은데 또 금방 바뀌고 치익, 차소리가 끼어든다.
소란스럽다.

나도 광합성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처음 생각했던 건 언제였을까.

순정

야근후 늦은 퇴근길에 회사동료를 따라 들어간 오붓한 술자리에서, 한 동료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일여년간 순정을 바쳤던 아리따운 여학생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평소 조용조용 말수가 많지 않던 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높아졌고, 눈은 반짝 반짝 빛이 났다.
가슴속에 저만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간직하는 일,
그건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